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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216화 (216/380)

인조, 명군이 되다 216화

국뽕의 충천은 이점도 분명했지만, 단점도 존재했다.

한양의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반전된 건 이미 한두 해의 일은 아니었다.

명군을 자칭하던 동강진을 분쇄하고, 후금의 팔기를 거듭 전멸시키며 조선의 신민들은 임란으로 추락했던 자존감을 되찾았다.

국가와 민생 역시 호전되고 있다는 점 또한 여기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홍태주가 원나라의 옥새를 바친 건 설상가상 되었다.

이 일의 실체는 거래에 가까웠으나, 세간에서는 홍태주가 그저 조선의 강성함과 우수한 문화에 감화되어 자발적으로 과오를 반성하고 옥새를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소문이란 자극적인 편이 더 쉽게 퍼지니까.

국뽕 충천한 신민들에게 거래의 자세한 내막이란 사족에 불과하기도 했다.

‘역시 조선은 세계최강이다.’

중원과 대비되어 동쪽 변방으로 칭해져 온 조선이다.

여기에 황제도 감당하지 못했던 적이, 명나라도 아닌 조선에 사실상 항복했다는 점은 여러 사람의 뇌수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조선의 기간을 채우는 중장년은 임진년의 끔찍했던 몰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더욱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군소 여진 부족들이 후계자와 일족을 보내 왕에게 하례를 올린 사건은 화룡정점이 되었다.

본디 여진족은 명나라보다는 조선에 더 충성해왔다.

조선의 창업군주 태조 이성계는 고려에 귀부하고 나라를 개국하기 전부터, 당시 원나라가 지배하고 여진족이 살고 있던 반도의 동북면을 본거지로 했으며 그곳에서 가장 강대한 호족이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신의 무용을 떠나, 호족이 본거지 밖에서 2, 3천가량의 친위대를 원정군처럼 끌고 다녔다는 점부터가 본디 태조가 가졌던 세력의 강성함을 증명한다.

이때는 무수한 여진 부족들이 직간접적으로 태조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었고, 이는 조선이 개국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후 조선이 명나라와 만주를 두고 벌인 경쟁에서 탈락하며 조선에 충성하는 부족은 두만강에 인접한 일부로 축소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 여진 부족을 일통한 홍태주가 옥새를 들어 바쳤다.

이에, 후금이 몰락하고 분열하면서 각지에 난립하고 부활한 군소 부족들로 새로운 만주의 패자인 조선에 줄을 서고자 후계자와 일족을 보낸 것이었다.

조선이 국초의 황금기를 되찾았다는 국제적인 방증이었다.

그것이 여러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대신이라는 작자들 중에 칭제건원을 주청드리는 이가 없으니, 이것이 조정이 간신배들의 소굴이라는 방증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홍태주가 아조의 위용에 굴복하여 당장은 목숨을 애걸한다지만, 오랑캐의 비열한 습성을 상고해본다면 화근이 되기 전에 압송하여 복주시키는 게 옳다!

-우리가 대명마저 어쩌지 못한 후금을 단죄하였는데, 어째서 지난날 대죄를 저지른 섬 오랑캐들은 여전히 주벌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는 말이냐!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고, 먹물깨나 핥았다는 문인이라면 유몽인 같은 재상조차 용비어천가를 불러대었다.

국뽕이 설상가상에 화룡정점마저 딛고 뇌수 녹아버린 사람들이 서로 부채질하는 단계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사태가 이쯤되니, 조정도 여론을 의식했다.

“선비들이 연명과 탄핵을 남발하여 뭇 재상을 공격하니 다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좌의정 박홍구.

“가벼이 언로를 막을 수도 없고, 대처하지 않자니 피로가 과중해진 당상들이 여론에 굴복할지도 모릅니다.”

우의정 이상의까지.

누구보다 왕 가까이서 국정을 노하는 삼의정 중 두 사람이 결국 여론을 인정하니, 영의정 이원익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실 세 사람 모두 세간에 들끓는 여론에는 회의적이었다.

왕부터 성급한 팽창에는 신중하였으나, 이러한 군주의 의견을 제하더라도 의정부서사제의 복원으로 삼의정은 국가의 현황을 손금처럼 훤히 보고 있었다.

“다들 나라의 사정을 훤히 알면서 칭제건원이니, 홍태주를 압송해 처형하자니, 왜와 전쟁을 일으키자니 하는 말들을 신경 쓴다는 말이외까?”

영의정 이원익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서 지성 최후의 보루를 자처했다.

그러나 과열한 국뽕의 열기는 본디 이에 회의적이었던 두 의정마저 굴복시킨 참.

박홍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픈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엄중한 계도에도 여러 신민이 부회뇌동을 그치지 않아 무시할 수 없는 여론을 일으켰으니 어떻게든 대응해야 할 뿐입니다.”

여기에 이상의 크흠, 헛기침하며 여론을 그저 찍어누르는 건 상책이 아니라던 자신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세간의 억지를 함부로 들어주면, 이는 불구덩이에 장작을 더 던지는 꼴일 뿐만 아니라, 백성에게 억지라도 시끄럽게 고집부리면 다 된다는 못된 교훈을 남기게 될 걸세.”

“……정론입니다만.”

박홍구는 난처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만사가 다 상식적으로만 돌아간다면 어째서 세상이 요지경이겠는가.

때로는 광기가 과분한 힘을 얻기도 하며, 조선은 현재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과거 개천 공사를 두고 백성들에게 여론을 물어보았을 때처럼 조선이 세계정복에 착수해야 하냐고 여론을 조사해 보면 9할은 찬성할 것입니다.”

“으음…….”

“오랫동안 억눌려온 욕망입니다. 2차 의주전투 직후만 해도, 여러 신민이 요동까지 몰아붙여야 한다고 여론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한계였다.

이유는, 우습게도 외정이 여전히 성공적이어서.

“그렇다고 그때처럼 요동을 정복하는 건 상책이 되지 못합니다. 기껏 홍태주를 지원하였는데, 그와 전쟁을 일으킨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되겠지요. 또한 아조는 여전히 요동 전체를 추가적으로 경영할 여력은 없습니다.”

“좌상께서는 생각해둔 게 있으신가 보오?”

“예.”

이원익은 팔짱을 낀 채 썩 편치 않은 얼굴로 콧바람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홍구는 사인舍人 여이징을 불러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해당 지도에는 반도를 중심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 너머로 요동 남부가, 남쪽에는 왜 열도 일부분이, 서쪽으로는 툭 튀어나온 산동반도가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박홍구는 두 의정의 집중하는 가운데 산동반도를 찍었다.

“……등주?”

“이곳은 지금 자칭 등래대원수라는 반란군이 황제에 항거하여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지요.”

“그래서 등주를 치자는 말인가?”

“명분도 있습니다. 등래대원수는 이름만 거창할 뿐 봉기한 반란군에 불과하며, 등주는 명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개척되어야 합니다. 사행로의 기항지로 인지도가 있으니 팽창에 굶주린 신민들에게는 홍보하기 좋은 성과이기도 하지요.”

박홍구의 제안에 이원익이 질색하고서 손을 저었다.

“당장 요동의 혼란함도 그치지 않았거늘 바다 건너에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이외까?”

“천명만 해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테지요. 개전은 영상께서 말씀해주신 이유를 들어 지연하면 됩니다.”

“답이 호쾌하시구려.”

이원익의 핀잔에 박홍구가 당당하게 답했다.

“여론이 들끓 때부터, 이를 들어줄 방법을 고민해 온 덕분이지요.”

“……제정신이외까?”

“신민들 모두가 공유하는 팽창의 과욕은, 냉정한 관점에서는 분명 무모하고 한심합니다. 그러나 국익 실현의 수단으로 보면 쓸모가 있지요.”

박홍구는 의자에 늘어져 여유롭게 말했다.

“개국이래, 백성들이 정복전쟁에 호의적이었던 적이 지금 말고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

“이 현상을 그저 광기로 치부하면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를 불길에 지나지 않으나, 잘 정제하면 대업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조는 이미 몇 년 동안 거듭하여 병화에 시달렸는데, 좌상의 개인적인 야욕을 달성하고자 여론을 이용하겠다는 말이오?!”

이원익의 추궁에 박홍구가 허허 웃었다.

“전쟁이 거듭한 건 사실이나, 병화에 시달린 건 아조가 아니지요.”

토벌된 건 동강진이고 몰락한 건 후금이다.

“일신의 야욕을 위해서 벌이는 일도 아닙니다. 영상께서는 타오르는 이 여론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불식할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

“뭐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판단했을 뿐입니다.”

이원익은 대답 대신 이상의를 바라보았다.

그대도 좌의정의 의견에 찬동하냐는 듯이.

이상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건, 그가 이 자리에서 줄곧 해온 유일한 주장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타오르는 여론은 조정마저 잠식하여 어디로 번질지 모를 화마가 되리라.

그럴 바에야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는 편이 나았다.

기실, 등주를 점령하자는 것도 여론을 이용한 폭거보다는 타협에 가까웠다.

박홍구가 제시한 근거부터가 그러했다. 출혈과 후폭풍은 최소화하면서 여론은 만족시킬 성과를 달성하자는 것이었으니.

“…….”

관청이 고요히 가라앉고, 이원익은 탁자만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러기를 한참.

이원익은 지도 앞에 멀뚱이 선 사인 여이징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소관은 일개 사인에 불과합니다만, 전쟁을 일으키는 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사료합니다.”

“사인은 상식이라는 게 통하는군.”

“……송구하오나 우의정의 주장에는 공감합니다. 그리고 달리 상책上策이 없다면,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최선을 골라야겠지요.”

사인까지 끌어들였음에도 아군을 찾지 못했다. 이원익은 눈을 감은 채 콧김을 뿜어냈다.

다른 상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원익은 세간의 여론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공감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신경 쓸 가치조차 전무하다 여겼다. 무시 이외에 다른 대응책이 떠오를 리 없었다.

“제공들은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구려…… 아니면, 나 혼자 뒤처진 것인지.”

“영상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론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정상적인 대응이 가능하겠습니까?”

박홍구가 곧장 위로하였으나 이원익의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내일 전하께 상주드리세.”

조선이 등주 정토에 착수하고, 그 일환으로 최명길이 비사성 조차를 요구하게 된 경위였다.

* * *

삼의정이 찾아와 합좌하는 경우가 간간히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의외였다.

‘대뜸 등주를 치자니.’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증명하듯 근거는 주로 박홍구가 제시했다.

들어보니 영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근래 들어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며, 신하들이 영향받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광기에 호락호락 당해주기만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오시면…….”

“삼의정이 굴복하였으니 등주 정토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대신, 선봉은 호전광들로 세우겠습니다.”

이미 내가 마다한 사안을 거듭 주청하고 연명聯名한 관료와 선비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명분은 확실합니다. 그대들이 애원했으니 그리 쓰겠다고 말이지요.”

삼의정은 서로 시선을 교차했다가, 금세 수긍했다.

“지당한 분부이옵니다.”

“승정원에 전하세요. 나의 사양하는 비답을 받고도 거듭하여 상소 올린 이들의 명단을 작성하라고 말입니다.”

합좌의 결론에 삼의정은 예를 올린 뒤 과자를 하나씩 챙겨 물러났다.

‘……등주라.’

한반도 세력이 산동반도에 발을 걸치는 게 전례없는 일은 아니었다.

백제의 요서경략遼西經略이라고.

국뽕이 주화입마에 달한 사람들의 주장과 다르게 통설은 해상거점이나 거류지 정도로 추측한다.

다른 사례가 없는 만큼 이게 어디인가 싶기도 하지만, 먼 미래에서 보았을 때는 아쉬운 점이 많기는 했다.

이번 역사의 두 번째 진출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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