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224화
“진짜 저질러 버리고 싶네.”
장계를 내려놓고 얼굴을 문질렀다.
원정군의 원수가 앓는 소리를 해왔다.
현장의 고충이 이러하니 이렇게 도와준다면 참 좋을 거라는 식이다.
나도 요청은 들어주고픈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조선의 재정은 언제나 그래왔듯 여유롭지 않다.
‘확, 화폐를 주조하고 은행도 세워버려?’
신용화폐는 주조차익을, 은행은 빚을 창출한다.
빚이라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미래를 빌려 현재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합리적인 행위가 아니었을 때 독이 되는 것이지.
아무튼.
‘내수사에는 차곡차곡 쌓아둔 금이 있다. 많지는 않지만, 부족한 신용을 충당할 정도는 되지.’
국초 신용화폐의 도입이 거듭 실패한 건 국가가 쇳덩이 따위에 대단한 가치가 있다, 신민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나.
천하의 세종대왕마저 자신이 일으킨 융성한 황금기의 신뢰도에 고압적인 정책까지 덧붙여 화폐의 도입을 시도했으나 끝내는 좌절했다.
백성들이 일자무식이라고 다 바보 멍청이가 아니다.
쇠를 다루는 장인도 아닌, 대부분인 농군들에게 금속화폐는 먹지도 써먹지도 못할 쇳덩이에 불과하다.
여기에 조정이 남겨 먹기 위해 주조차익까지 더한 가상의 가치가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마땅히 담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역사적으로는 귀금속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게 금이었다.
내수사에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조정의 금을 사들인 이유다.
원기옥을 모아 터뜨릴 수 있도록.
‘……하지만 지금 화폐를 주조할 짬이 있나?’
조정은 현재 나라의 대계인 대동법의 확대에 더불어, 비사성을 개척하면서도 동시에 요동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셋 모두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이 되겠으나 당장은 무언가 떨어질 구석이 없다.
백성들의 신뢰와 지지는 분명 대단한 가치를 지니지만, 무형의 자산을 유형으로 끌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여기에 돈까지 찍어내자는 건 저지르는 게 아니라 어지르는 게 아닌가…….’
그러나, 설령 어지르는 짓이라도 일단 해버리고픈 강한 충동이 일었다.
나라에 돈이 부족한 건 진행 중인 사업이 크고 많아서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식량이 화폐의 역할을 겸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지갑과 계좌에 돈을 넣어두고 사는 것처럼 식량을 저마다 창고에 쌓아두고 사니까 당연히 먹을 식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장 국외에서 벌이는 사업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는 물자가 무엇인가? 식량이다.
‘확 저질러버려?’
내적 갈등을 거듭한 끝에, 상선을 불렀다.
“밖에 아무나 있습니까?”
“예. 전하.”
“들어오세요.”
최 상선은 내가 즉위한 이래, 정원이 두 자리뿐인 상선 중 하나를 꼬박 맡아온 이였다.
그만큼 신뢰하는 인물이었고 내수사의 실질적인 수장이기도 했다.
나는 그 두 가지 이유로 최 상선에게 흉중의 충동을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화폐와 은행에 대한 개념이 미진할 시대의 특성을 배려했기 때문이나, 최 상선은 거금을 오래 만져왔기 때문인지 그런 친절함이 과하다 느껴질 정도의 이해도를 보여주었다.
“은행의 설립이라면 내수사에서도 준비할 수 있는데, 이를 거론하지 않으시는 건 달리 우려하시는 바가 있기 때문이시겠지요.”
“……예. 나라의 경제를 왕실이 대대로 지배하게 되면, 훗날 큰 화근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왕실의 주인이 태종이나 세종처럼 유능한 명군이라면 문제가 없지.
그런데 광해군이나 흥선대원군처럼 경제관념이 파탄 난 병신이라면?
-당일전 대신 0을 두 개 더 붙여서 당백전으로 찍어내면 백 배 이득 아닌가……?
-잠깐, 왜 아무도 이 간단한 생각을 못 했지?
-설마 이 몸은 천재인가!
-……나조차도 나의 천재성이 두렵다!
이따위 발상을 하는 저능아가 국가의 경제를 뒤흔들었다간 진짜로 재미없는 일이 벌어질 거다.
흥선대원군 때는 실제로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전하께서 훗날을 우려하신다면, 은행을 별개의 조직으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옵니다.”
“은행은 내수사의 담보로 세워질 겁니다. 그게 은행의 전부이기도 하고요. 분리는 쉽지 않습니다.”
“인사권을 내부에 부여하는 건 어떻겠사옵니까?”
“……그건 그것대로 화근이 될 겁니다.”
인사권을 내부에 전적으로 부여한다면, 내 돈이 떼이는 셈이라는 건 둘째 치고 은행은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어진다.
미래의 금융기관들만 봐도 그렇다.
해커와 금융범죄자들에게 심심하면 손이 가는 과자가 되어, 허구한 날 개인정보가 털리고 자금은 횡령당하지만 털린 개인정보는 그래서 어쩔 거냐는 식이고 구멍 난 자금은 고객들이 채우라는 식이잖나.
“그럼 전하께서는 조정이 은행을 소유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옵니까?”
“……으음.”
공적인 영역에만 맡기는 것도, 막상 생각해보니 상책은 아니었다.
은행이 왕가가 소유할 경우 왕이 멍청할 때 문제가 생기고, 또 달리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을 때도 문제가 생긴다면, 국가가 은행을 쥐었을 때는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문제가 생긴다.
공무원에게 수준 높은 경제관념을 기대하긴 어렵다.
최소한 진지한 태도로 임해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먼 미래 선출직들조차 표면적인 성과와 지지, 사익을 위해 혈세와 국가 경제를 허비하고 착취하는 건 일탈보단 일상에 가까웠다.
꼭 반도의 미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나라라도 경제를 억압하는 정부라면 벌이는 행태가 다 그렇다.
21세기 터키의 대통령은 아예 자신의 종교적 이념을 실천하고자 범세계적 경제난에도 금리를 인하했고, 덕분에 리라화 가치는 폭락하여 물가상승률을 80%를 경신했다.
제일 심할 때는 단 하루에만 물가가 13%가 올랐다.
그날 터키 사람들은 단지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재산의 13%가 사라진 꼴이다.
주식만 아니라, 계좌도.
대한민국 같았으면 대통령을 끌어내어 광화문에다 효수를 해버렸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터키 사람들 심성이 참 착한 모양이지.
시답잖은 상념을 끝낸 건 최 상선의 조언이었다.
“그렇다면 내수사와 은행, 조정이 각자 의결권을 가지는 건 어떻겠사옵니까. 한쪽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할 때 다른 쪽이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괜찮은데?
“솥발은 세 개일 때 가장 안정적이라지요. 상선의 말씀이 옳습니다. 전부 의결권을 가진다라……. 대신 물주인 내가 4할을 가져가야겠습니다.”
인간적으로.
은행을 내 밑천을 내가 세우는 건데, 4할이 아니라 10할을 다 가져도 이상할 게 없지.
사실 3할이건 4할이건 별 의미는 없다.
폭주하는 한쪽을 다른 두 쪽이 견제한다는 데 의의가 있는지라.
최 상선이 웃으며 답했다.
“그러시지요.”
“자세한 구상을 계획해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실무를 맡을 인력을 마련해두세요.”
“예에.”
* * *
은행 도입하여 빚을 창출하는 건 수단 중 하나일 뿐.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빚을 진다는 건 신용을 시험하는 행위다. 이러한 행위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만큼 신용을 잃게 된다.
하물며 내가 시험하려는 건 한 개인의 것이 아닌, 국가와 그 근간을 이루는 나라의 경제 전체.
나라가 빚지는 걸 좋아하면 백성 모두가 피해를 받는다.
즉,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는 것만이 유일하고 최종적인 해법이다.
국외의 두 거대한 사업이 유발하는 문제에 있어선, 신용화폐의 도입이 결정적인 타개책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신용화폐의 도입은 날치기가 불가능하다.
하루아침에 신뢰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익을 위해서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쇳덩이와 휴지에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하루아침에 설득할 수는 없다.
이는 천하의 세종대왕께서도 끝내 해내지 못한 업적.
여기에 강압이 더해지면 폭력일 뿐이다.
‘동시에, 신용화폐는 은행을 설립하고 빚을 지는 행위와 한 데 묶인 개혁이기도 하지.’
빚을 져 식량을 끌어온다면 기존에 식량을 보유했던 사람들에게는 어음을 지급하게 될 테니까.
그 어음이 곧 신용화폐다.
‘이건 보통 복잡한 문제가 아니야. 보다 직접적이고 단순한 해법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모름지기 현명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가진다던가.
그렇다면, 식량난을 타개할 가장 직접적이고 단순한 해법은 무엇일까.
‘식량 생산량 자체를 늘리는 거겠지.’
식량이 부족하면 더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1과 1을 더하면 2가 되지 않느냐는 수준의 단순한 논리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쉽게 되진 않는다.
먼 미래 20세기 중국과 소련이 식량을 공산품처럼 더 찍어내려고 들었다가 어떤 결과가 나왔던가.
대약진 운동은 5천만 명이 굶어 죽음으로써 모택동이 그저 못된 똥에 불과했다는 걸 증명했고, 흐루쇼프는 파종에 들어간 옥수수가 수확량보다 많았다는 비논리적 마술을 선보였다.
그 어떤 철인에 독재자라도 말만으로 새를 떨어뜨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황무지에서 식량이 샘솟게 만들지도 못한다.
위정자의 권력이란 단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촉구할 때 힘이 더 실리느냐 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애초에 그것이 권력權力의 사전적 정의이기도 하다.
말에 무게權가 실리는 것.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이를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자격 미달의 위정자들이 사사건건 현실을 조종하려 들다가 매번 참패하는 이유다.
그래서, 미복微服에 잠행潛行하여 한성을 나섰다.
조선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나라다. 도처에 널린 게 농사의 전문가였다.
실제로 황무지에서 쌀과 곡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사람들.
친히 한양 바깥으로 행차하는 건, 이들을 어전으로 불러내자니 나랏님 본다는 데 압도될 것을 우려해서다.
그런 상황에서는 하고 싶은 말 다 못하지.
“일부러 만만한 사람처럼 보이고자 하니, 사람이 결례를 저지르더라도 막지 말게.”
그래도 안전상의 이유로 시위 몇 명이 갑주를 벗고 동행했다.
한양 바깥은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었다.
미래의 시골보다는 더 평화롭고 기분 좋은 광경.
시야의 지평선에는 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미래와는 달리 환경오염이 없어 멀어도 녹음이 생생했다.
그 아래에는 외줄처럼 좁은 논틀밭틀길을 경계 삼아 녹색과 갈색의 논밭이 구획처럼 빼곡하게 깔렸다.
산에서 본다면 친환경 소재로 엮은 색색의 보자기를 연달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 광대한 들판 위로는 농군들이 집 겸 휴식처로 세워놓은 작은 사당 같은 초막草幕들과, 양손에 각기 농기구와 막 뽑아낸 잡초를 들고서 서성이는 사내들이 있었다.
마침 밥때일까.
마을이 보이는 쪽에서는 아낙들이 저마다 소쿠리를 인 채 거미줄 같은 논틀밭틀길을 타고 있었다.
나는 논벼랑에 앉아 이미 소쿠리를 끼고 밥을 먹는 농군에게 다가가, 바로 옆에 앉았다.
농군은 아는 사람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려봤다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뭐지, 이놈은?!
정확히 그런 느낌.
“……나리?”
소쿠리를 덮어놓은 지저분한 보자기를 걷어보니, 아직 주먹밥과 깍뚝 썰어놓은 짠지가 보였다.
“염치 불고하고 맛 좀 봐도 되겠나?”
“어어…… 예에. 뭐어……. 드시지요. 그런데 입맛에는 맞지 않으실 겁니다요.”
웬 미친놈이 갑자기 밥을 얻어먹으려 들지만, 차림새를 보아하니 지체 놓은 양반이 분명하여 마다하지는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금 미안해지는군.
그래서 가노家奴로 변장한 시위를 불러, 미리 가져온 주병酒甁을 건넸다.
“반주하시게.”
“아!”
의심 가득했던 농군의 표정이 화색으로 물들었다.
조선 시대의 술은 귀한 곡식을 대량으로 소모해야 만들 수 있었고, 그래서 식량난 때는 자주 금주령이 내려졌다.
따로 금주령이 내려지진 않았지만, 그만큼 귀하다는 뜻.
“감사히 먹겠습니다, 어르신.”
농군은 존칭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곧장 주병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찬탄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귀한 술 같은데…….”
물론, 귀한 술 중에서도 더 귀한 술이 있다.
막걸리를 증류식으로 정제하여 얻어내는 청주라던가.
“마시게. 밥값이라 생각하고.”
“헤. 두 번 마다하지는 않겠습니다요.”
농군이 귀한 술을 반주 겸 참 삼아서 주먹밥을 해치우는 동안, 주변에서 다른 농군들이 눈치를 보내왔다.
아는 사람이 거듭 주병 기울이는 모양새가 얻어먹고픈 심정을 간지럽히지만, 옆에 보도 못한 양반님네가 떡하니 앉아 있으니 섵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모양새.
그것을 농군도 아는지 일부러 주변에 손도 흔들어주었다.
그동안 나는 농군이 남겨놓은 주먹밥과 짠지를 살폈다.
주먹밥은 조밥으로 빚어 만들었다. 찰기를 더하기 위해서인지 약간의 쌀도 들어갔지만, 대부분은 노란 알갱이.
짠지는 깍뚝 썰어놓은 무를 소금물에 절여놓기만 한 것이었다.
오늘날 백성들의 일반적인 식단이었다.
400년 뒤에도 반도의 절반쯤은 이렇게 먹고 살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