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238화
조선스웹 작전의 요체는, 제임스웹처럼 망원경을 우주로 띄우겠다는 건 아니다.
그건 당연히 불가능하지.
요체는 제임스웹 망원경처럼 광학 장치를 조각화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발상이다.
제임스웹 망원경은 소형 반사판을 연달아 붙여 반사판의 면적을 극대화했다.
이전 우주 망원경인 허블이 단일 반사경을 이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발상을 17세기 초반의 조선으로 가져오려는 이유는, 당장 조선에는 거울을 제작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유리야 오래전부터 만들 수 있었으나 투명이 아닌 색유리였고 이마저도 귀했다.
그러면 유리 없이 어떻게 망원경을 만드느냐?
바로, 렌즈를 이용해서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전에 안경이 전래했고 천리경 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발명해낸 지 얼마 안 된, 고작 17세기 초반에 명나라를 방문한 사신을 통해 입수한다.
조선이 렌즈와 광학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조선은 자체적으로 안경을 생산했다.
이때, 렌즈의 원료로 석영을 사용했는데 의외로 조선에서는 질 좋은 석영이 난다.
그 품질은 삼국시대부터 투명한 석영을 이용해 장신구와 돋보기를 제작할 정도.
가깝게는, 밥버러지 인조가 재위 초반 최상급 석영으로 칼자루를 잔뜩 만들다가 한 소리 들은 적이 있다.
다만 품질 좋은 석영이 나더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자연물이니까.
크기에도 수량에도 한계가 있다.
괜히 투명한 석영을 수정이라 달리 칭하며 보석으로 취급하는 게 아닌 셈.
렌즈와 광학을 인지하고도 이러한 수정으로 칼자루나 만들고 자빠진 밥버러지가 레전드일 따름이다.
어쨌거나, 조선스웹 작전의 요체는 이러한 자연물의 한계를 제임스웹 망원경의 반사판처럼 조각화하여 극복하는 것이다.
하나의 덩어리로 주경을 만들려면 크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으니까.
그러나 적당한 크기의 렌즈를 다수 확보해 커다란 주경으로 조립한다면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원익을 편전 집무실로 데려온 이유다.
말만으로 설명하긴 어려우니까.
그래서, 세필에 막 갈아놓은 먹물에 적셔 그림을 그렸다.
“가까이 와서 보시지요.”
“……오오. 흠.”
조선스웹 망원경의 대략적인 구조를 본 이원익은 감탄 섞인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놀라움이 여전한 얼굴로 평가했다.
“작은 천리경을 여럿 모아 하나의 커다란 천리경으로 만드는 셈이로군요.”
말만으로 설명이 되는 거였나?
“이해가 빠르십니다. 하지만, 정확한 비유는 아니로군요.”
이번 역사에서는 조선이 요동에서 흘러나온 천리경을 일찍, 다수 입수해냈다.
그러나, 이런 천리경들을 무작정 하나로 모아놓는다고 조선스웹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천리경마다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굴절률屈折率…….”
이원익으로선 분명 난생처럼 듣는 단어일 텐데도, 조선스웹의 모식도를 보고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굽을 굴屈, 꺾을 절折.
빛이 렌즈를 통해 모여드는 그림만으로 깨달은 것이다.
‘영의정 자리를 딱지치기로 따지는 않았다는 거지…….’
이천만 백성 중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만한 통찰력이다.
그런 안목이 있었기에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세법도 제시한 걸 테지.
이런 이원익에게 최대의 불행이 있다면 모신 왕들이 하나같이 폐급들이었다는 거다. 선조에 광해군, 인조니까.
살벌하기까지 한 기적의 라인업이다.
이거야말로 진짜 유리천장이 아닐까?
“관상대에 이러한 기구가 갖춰진다면 과연 두 눈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많고 정확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정작 내키지는 않으시는 듯하군요.”
“이런 기구를 만들려면 많은 수정을 사용하게 될 테니 비용이 상당히 들어갈 것이며, 또한 관측에 값비싼 보석을 마구잡이로 쓴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올 것이옵니다.”
지구 반대편은 이 순간에도 활달하게 발전하고 있다.
나로선 그런 불평도 배가 불러서 나오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야가 국한한 이들에게는 진정 사치로만 보일 터.
조선은 본디 과학과 기술을 잡다하다 뭉뚱그리며 업신여겨 왔다.
수천 년 된 성현의 말씀을 기억하기 바빠, 수백 년 된 기술이 종종 실전되는 데도 별 감흥이 없었다.
당대 기계기술의 총아인 옥루玉漏가 고장 나자 그냥 손을 놔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신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조선스웹은 거금을 들여 설치해도 빛을 받기 힘들다.
그저 이상한 데 돈을 잔뜩 쓴 결과일 뿐.
조선스웹이 비용과 기술적 진전에 어울리는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신하들부터 조선스웹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했다.
‘마침 좋은 명분이 있지…….’
선조가 저지른 패악은 흔히 알려진 것 외에도 많다.
심지어는 천문조차 예외가 되질 못 해서, 이놈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구호를 요청하면서 조선이 자체적인 역법을 사용하는 일로 트집 잡히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동안 칠정산七政算을 써왔다는 이원익의 설명은 정확하지 않은 셈이다.
세종대왕이 칠정산을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칠정산을 계속 써오긴 했지만, 선조 이놈이 제 발을 저려 딱 임진년부터 칠정산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수시력을 칠정산으로 개정한 이유가, 역법이 중국과 달라 조선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하면 선조는 천문과 역법에서 대대적인 퇴보를 일으킨 셈이다.
그리고 이는 후대의 왕과 신하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광해군 자리를 찬탈하여 정통성에 민감했던 인조 치세부터, 몇몇 신하들은 수시력보다 더 정확한 역법으로 저들 가문의 제사를 계산했기 때문.
인조는 선조의 후계자를 자처한지라 그가 싸놓은 똥을 섣불리 치우지 못했으나, 바로 다음 왕인 효종은 즉위 초반부터 역법 개정에 들어갔다.
당대의 왕과 신하들 모두 선조의 칠정산 금지가 멍청하고 덜떨어진 짓이었으며, 이를 다시 바꿔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전왕前王이 칠정산을 금지한 이래, 역법이 뒤틀리고 어그러져 아조의 실정과는 극단적으로 불합하게 되었지요.”
“…….”
“명나라의 눈치를 더 볼 필요도 없는데, 다시 선대의 우수한 역법을 도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백관들 역시, 제례의 정확한 기일을 알이 위해서라고 한다면 설득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칠정산을 재개하시겠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만, 거대 천리경의 필요성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지난 수십 년 칠정산의 계산이 정지되었고, 또 역법 자체가 수백 년이 되었습니다. 재개하는 김에 더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래도 부족할까요?”
정확한 날에 제례를 지낸다는 건 중요하지.
사대부들이 한평생 익힌 도리가 제례에 집중되어 있다.
괜히 인조 때부터 사대부들이 알음알음 시헌력時憲曆 따위의 다른 역법을 이용해온 게 아니다.
그런데도 명분이 부족할까?
이원익은 장고 끝에 답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천리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정은 내가 보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천리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상이 고생을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
“예에.”
대답이 무척 빨랐다. 고민하면서 미리 결심한 것일까.
이원익의 의사가 분명해졌으니, 나는 그를 더 도와주기로 했다.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준다면, 무수한 시행착오를 절약할 수 있을 테니까.
“고마운 영의정께 광학光學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 드리지요…….”
* * *
미래에서 배운 지식을 가져왔다지만 시대적으로 보면 오히려 매우 오래된 수준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10세기에 정립이 끝난 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영의정은 세계적으로 낙후한 지식을 전수하였음에도 벼락이라도 맞은 얼굴이 되었다.
“언제 이런 걸 다 연구하셨사옵니까?”
“내가 평소에 잡생각을 많이 했다고 칩시다. 원리는 내가 알려드렸으니,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영의정께서 관상감원들과 함께 궁구해 보세요.”
“……예에.”
곧 이원익은 얼떨떨한 얼굴로 예를 올린 뒤 물러났다.
“한숨 돌렸군.”
조선스웹이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다는 건, 사실 나도 부정하긴 어렵다.
지구 반대편에서 6세기는 지난 학문에도 까무러칠 정도인데 무슨 조선스웹이냐.
돋보기조차 없는 판국에 현미경을 개발하는 꼴이다.
‘……하지만, 막내에게도 뭔가는 해줘야지.’
본인이 밤하늘을 감상하는 게 좋다고 해도, 그건 한양을 떠나기 어려운 자신의 현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직 핏덩이 같은 나이다.
앞날 창창한데 벌써부터 한계 앞에서 좌절한 듯해 가슴이 다 미어졌다.
그리고 막내가 밤하늘 보는 걸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비록 인평대군을 세상에 내놓은 건 내가 아니지만 그대로 자식 아닌가.
더 넓은 세상을 원한다면 마땅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왕의 자리가 그것을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았다.
아비로서 마땅히 부끄러운 일이다.
자식이 한양 안에서 살아갈 위안거리를 찾았다는 데 기뻐했으니 더더욱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조선스웹은 그런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한 나의 억지였다.
비록 한양 밖으로 보여주는 건 내게도 어려운 일일지라도, 조금만 억지를 부리면 막내를 이 세상의 인류 누구도 아직 닿지 못했던 밤하늘의 영역까지 보여줄 수 있으니까.
아비로서 이 정도는 해주고픈 것이다.
* * *
가을을 맞아 한 가지 일이 완수됐다.
경기도에서 시범적으로 이앙법移秧法, 즉 모내기를 도입할 고을을 선발하는 것 말이다.
설문의 결과는 크게 갈렸다.
어떤 고을은 무관심하였으나, 또 어떤 고을은 적극적이었다.
그나마 일반적인 경향성이 있다면, 준비되지 않은 이앙법의 위험성을 아는 유지와 식자들은 거의 일관적으로 이앙법에 반대했다는 점일까.
익힌 지식 외에도, 제한적인 식량공급 상황에서 큰손이 가지는 그들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실리적으로도 반대할 이유는 충분했다.
농민들 사이에서 의견이 판이하게 갈린 건, 논밭의 상황을 그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겠지.
수원에서 멀고 관개시설이 미비하다면 무리해서 이앙법을 시도하는 건 자멸과 같았다.
일자무식이라고 그 정도 판단조차 못 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고을의 최종적인 선발에는 두 계층 모두의 호응이 전제되어야 했다.
시키는 사람과, 행하는 사람 모두 내키지 않는다면 사업이 실패할 것은 자명하기 때문.
이 과정에서 단 두 개의 고을만이 살아남았다.
미래에서도 맛 좋은 쌀이 나기로 유명한 이천부利川府.
마찬가지로 미래에서, 저들이야말로 맛 좋은 쌀의 근본이라는 여주목驪州牧.
이중 어떤 고을에, 혹은 두 고을 모두 이앙법을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매우 간단했다.
여주목은 남한강이 고을을 한가운데 관통한다.
그리고 이 남한강은 한강으로 합류해 한양의 지척을 지나간다.
관개시설 확충에도, 수운에도 모날 구석 하나 없이 딱 들어맞는 셈.
이천부는 안타깝게도 이런 천혜의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이앙법의 도입이지, 더 맛있는 쌀이 아니다.
나는 경기감사의 장계에서 여주목을 낙점하고는 짧게 비답했다.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