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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246화 (246/380)

인조, 명군이 되다 246화

깐깐한 도道당과 원숙한 정正당의 싸움은, 요란했던 태동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될 수도 있었다.

-왕이 그렇게 일침을 좋아한다니 우리도 한 번 긁어볼까?

이러한 미친 발상을 도당에서 직접 행동으로 실천해보는 것이다.

그 결과가 만약 ‘선비면 일침 좀 넣을 수도 있지!’ 하고 왕을 두둔하는 정正당의 주장과 반대된다면, 비록 몇 사람 목은 달아나겠으나 지고한 왕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도당이 왕의 권위를 무너뜨려 무엇을 할 것이냐면, 딱히 정해놓은 건 없었다.

선비의 습성이란 이유가 없어도 왕을 긁어보는 것이니까.

목적이 없어도, 할 수 있다면 해볼 뿐이다.

그리고 이 위태롭고 위험천만한 발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보려는 이가 있었다.

도당의 영수이자 중추부에서 첨지사를 지내는 김장생金長生.

그가 거느린 제자 중 제대로 난 놈이 하나 있었는데, 문중은 은진恩津 송가宋家요, 함자는 시열時烈이었다.

이 송시열이란 인물은 이전의 역사에서도 왕을 잘 긁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효종을 상대로는 예송논쟁을 일으켜 정통성을 긁었으며, 숙종이 후궁에게서 갓 태어난 아이를 후계자로 삼자 또 긁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숙종이 이참에 잘 되었다, 어디 한 번 죽어보라는 식으로 몰아세웠음에도 송시열은 끝까지 달렸다.

참선비라면 참선비고, 미친놈이라면 미친놈인 셈.

송시열은 이번 역사에도 그것을 증명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라고?”

송시열의 친척이자, 첫 스승 송이창宋爾昌의 아들이기도 한 송준길宋浚吉의 전언에 송시열은 붓을 내려놓았다.

“말 그대로일세. 전하께서 석어당으로 나아가 대비마마와 담판을 지었고, 대비마마께서는 끝내 수긍하셨다는군.”

“허어. 이런! ……이런!”

한참 상소를 쓰던 송시열이었다.

내용은, 선조비인 소성대비昭聖大妃가 왕실의 웃어른으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거늘 어찌 선왕을 욕보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대비께서 먼저 뜻을 꺾으신 듯하네.”

송준길이 덧붙이자, 송시열은 입술을 씹었다가, 아직 먹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상소를 붙들어 찢어버렸다.

“전하야 차치하더라도 대비가 선왕을 저버리면 안 되지!”

처참하게 두 쪽이 난 상소문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송시열이라도, 왕과 왕이라는 거물들이 부딪혔는데 ‘내가 보니 좀 꼽더라?’ 하고 나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성대비를 끌어왔는데, 대비가 먼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니 이런 상소는 올릴 수가 없었다.

남은 건 오갈 데 없어진 분개뿐.

“어떻게 만방 부녀자의 귀감이 돼야 할 대비가, 지아비를 욕보인 데 수긍할 수 있단 말인가?!”

“나보고 따지지는 말고.”

“아니 따지게 생겼나? 동춘당同春堂(송준길의 호)은 아무런 생각도 없어?!”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왔지.”

송준길은 눈살을 찌푸리며 방문 앞 마루에 앉았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전하의 심기를 긁는 건 자중하고 세태를 관망해봄이 어떤가? 신중한 것도 선비의 도리야.”

송준길이 자중을 권유하자 송시열은 모독이라도 들은 듯이 되레 화를 냈다.

“논란이 벌어졌는데 침묵하는 것이 어찌 선비의 도란 말인가! 그래서 마땅히 영광스러워야 할 이 나라 역사가, 되려 오점들로 가득한 게 아닌가? 자네는 성현의 말씀을 잘못 배웠구만!”

“이 사람아.”

“자네야말로 ‘이 사람아’일세! 괜히 찾아와서 초치기는, 에이…….”

송시열은 신경질을 부리며 홱 고개를 돌렸고, 이런 광경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 송준길은 작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기다리면 미리 알아봐 둔 장지葬地 시험해볼 기회가 오겠지. 오늘은 자네 천수가 다하는 날이 아닌 듯하네.”

“미친놈.”

“그 기념으로 친우와 사이좋게 술이나 한잔할까.”

송준길이 하늘을 보며 태평하게 권하자, 송시열은 충동적으로 두 쪽 내어버린 상소문을 흘기고는, 후 한숨 쉬며 답했다.

“……그러세!”

그렇게, 아직은 재야에 묻힌 한 바오밥나무 씨앗의 정치적 자살 시도는 죽마고우의 도움으로 무산되었다.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것 아니겠는가.

* * *

대비의 수긍으로 도당의 도발이 일단락한 동안에도, 도당과 정당의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도당의 날카롭던 기세도 조금씩 무뎌졌다.

정당 당여들에게서 ‘이게 실화인가?’ 싶은 괴담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으니까.

도당 당여들 대부분에게 선조의 치세는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나마 경험해본 자들도, 당시에는 어려 세상 물정을 몰랐거나 재야에 있어 혼란한 정국을 뒤덮어버린 초유의 사태에 대한 인상이 더 컸다.

그래서 도당의 당여들은 선조에 대해 ‘임진왜란 막았으니 괜찮은 왕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인상만을 가졌다.

하지만 그 흐리멍덩한 평가는 선조의 치세를 정계 한복판에서 살아간 정당 당여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괴담 앞에서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이미 내지른 바가 있어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해도 ‘선조는 진짜로 병신이었던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흉중에서 계속 치고 올라온 것.

대하는 감정이 달라지자 주장도 자연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오직, 이 모든 괴담이 정당의 유언비어이고 권모술수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소수만이 애처롭게 되었을 뿐.

그렇게, 결과적으로 도당에서는 두루뭉술한 결론만 제멋대로 내버리고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가 틀린 건 아니다…… 충과 효는 지고의 가치가 맞고, 왕에게도 예외가 아님……. 암튼 그럼!

정당에 설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자존심 상하니까.

단지, 문중의 어른들에게서 검증된 괴담들에 따르면 선조는 비호하기엔 너무 병신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강건한 신념과 옳은 논리로 무장하였어도 그것으로 지키는 게 병신의 명예라면 웃음거리 아닌가.

* * *

정쟁이 일단락하자 선비와 식자들의 관심은 그간 밀려났던 주제로 향했다.

-명나라를 도와야 하나?

-돕는다면, 얼마나 도와야 하는가?

왕은 명나라 황제가 북경을 버리고 남경으로 이어하는 것을 대가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니 조선이 명나라를 도울지 말지는, 조선이 신뢰를 지키려는 한 명나라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이국의 전쟁에 참가함은 사소하지 않은 일.

나라의 기둥뿌리까지 뽑아가며 도와줄 수는 없다. 하물며 조선은 국경 안팎으로 굵직한 일감이 많았다.

“지난 중국 사신에게 문의한바 …….”

좌의정 박홍구가 제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등래대원수를 자칭한 진광부陳光福라는 작자는 요동군 지휘관 중 하나였으며, 금이 요동을 강탈한 후 여느 요동군 지휘관들과 마찬가지로 휘하의 패잔병을 이끌고 산동에 재배치되었소이다.”

진광부의 이력은 계속 이어졌다.

“명 조정에서는 패잔병들을 다시 전장으로 보내지 못했고, 또 군량을 지원하지도 못했으므로 타지에서 온 패잔병들은 산동의 현지인 및 관리들과 꾸준히 반목을 거듭했다 하외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입니까?”

우의정 이상의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물었다.

“패잔병들의 반란은 명확하게 처우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어난 건 아니외다. 내막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데, 몇몇 패잔병 무리가 유지의 닭을 훔쳐 잡아먹었다가 발생한 살인이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졌다고 하오.”

“……허, 참!”

이상의의 탄식과 함께 박홍구가 강조했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사신에게 대국이 문제를 자각하고 있는지 물어보신 것이외다. 닭 몇 마리로 대규모 반란이 터지는 지경인데, 대국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아조가 도와 무슨 소용이 있겠소?”

“지당합니다……. 대명도 갈 때가 다 되었군요.”

“천명은 명나라를 떠났소이다. 필요에 의해 우리가 존속을 궁구해 줄 뿐이요.”

떠나간 천명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두가 알았으므로 굳이 거론되지 않았다.

“아무튼, 반란의 계기는 황당무계하나 등래대원수는 오늘날 십수 만의 군대를 가지고 산동을 지배하고 있소. 그들을 소탕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요.”

한때 패잔병 무리였다는 건, 그들이 군대에 몸을 담았다는 뜻이다.

여기에 군략을 익힌 지휘관급도 그대로 반란에 가담했다.

등래대원수의 반란군은 섬서와 사천에서 활동하는 농민 반란군이나 오랑캐와는 질적으로 다른 셈이다.

하물며 조선이 등래대원수를 직접 토벌하러 간다면, 대후금 전쟁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이었던 지형의 이해도와 이점을 역으로 적용받게 된다.

군대의 규모도 심각하게 열세인 상황.

심지어 바다 건너이기까지 하다.

“강군 양성의 필요성은 명나라가 아조의 관대하고 진심 어린 우려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와는 관계없이 중요하지만 만약 명나라가 아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미리 군대를 더 양성하고 조련할 필요가 있소이다.”

문제는 그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는 점이었다.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면 전쟁에서 큰 의미가 없을 테고, 반대로 과하다면 국력을 손상할 터.

이에 예조판서 남이공이 좋은 소식을 꺼냈다.

“지난날 비사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조선이 섬서로 진출하게 된다면 금나라의 군사도 끼워주기를 홍태주와 약조하였습니다.”

명나라가 좋아할 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나라의 군사를 등래대원수 토벌에 앞장세운다면 이는 이이제이以夷制夷하는 이익이 있고, 동시에 우리 군사를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니겠습니까?”

“대신 점령지 일부를 금나라에 양도하게 될 것이외다.”

“어차피, 아조가 당장 산동까지 경영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해외海外 영토라면 비사성만으로도 빠듯한 실정이다.

조정이 백성들에게 산동을 지배하고야 말겠다 천명한 것도, 전적으로 실리 때문만이 아니었고 말이다.

혼란한 명나라에서 값진 자원과 사치품을 헐값에 사들일 무역거점과 중원 땅에 우리의 깃발을 꽂았다는 상징성.

조선으로선 그 정도로도 족했다.

“그렇다면 형식적인 정도로……?”

호조판서 김신국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조선의 경제 상황이 빠르게 호전되고는 있지만, 허공에서 돈벼락이 쏟아지는 일은 세상에 없다.

조금씩 생겨나는 여유를 다시 재투자하여 눈덩이를 굴리는 중.

이런 상황에서 군대 확충이란 다년간 호조의 판서를 전임하며 눈을 굴려온 김신국에게는 비보나 마찬가지였다.

“명나라를 돕지 않아도 군사의 강화는 필수적이지요.”

병조판서 김세렴金世濂이 말했다.

“고庫가 늘어났으니 그만큼 고지기도 두는 건 도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마땅한 일입니다.”

전임 병조판서 이광정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뒤 그 후임이 된 김세렴이었다.

본디 왕은 이광정의 후임으로 한명련을 낙점해두었으나…….

한명련은 2차 대후금 전쟁에서 야인여진과 분전하던 중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오갈 데 없어진 왕의 안배와 안타까움은, 뒤늦은 한명련의 병조판서 추증으로 남았다.

그 빈자리를 차지하게 된 김세렴이라고 자질이 부족하진 않았다.

김세렴은 고작 24세의 나이로, 삼년상을 다 마친 직후 치른 대과에서 장원급제한 인재이기 때문.

검증된 건 지성만이 아니었다.

광해군이 인목왕후(지금의 소성대비)를 폐위하자, 당시 지내던 사간원 정언正言이라는 관직의 이름에 맞게 옳은 말을 했으니까.

그러다 귀양까지 갔으니 김세렴은 지성만 아니라 의기까지 갖춘 셈이다.

“아조가 부강해지고 영토 또한 넓어졌으니, 그만큼 군사를 더 징발하고 조련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지 못할 사정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김세렴이 은근히 묻자 김신국이 미간을 찌푸렸다.

군사를 징발하고 먹이는 건, 나라의 근간인 백성과 세입에서 나오는 것.

그리고 이를 관장하는 게 호조의 업무였다.

그러니, 나라가 부강해진 만큼 군사를 더 징발하고 먹이겠다는데 그러지 못할 사정이 있냐는 건 곧 호조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나라에 사업이란 강군의 양성만 있는 게 아니지요. 지금 거둔 낱알 백 개를 다시 밭에 뿌리면 내년에는 천 개의 낱알을 거둘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당장 먹어치워서야 되겠습니까?”

“먹어야 쟁기질을 하고,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 부국하면 강병하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호조판서께서는 먹지 않고 쟁기질하고,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다 말씀하십니다.”

“국가의 도리란 한낱 짐승이나 인간의 도리와는 달라서, 필요하다면 주린 배로라도 쟁기질을 하고, 물에 들어가려면 숨 참는 정도의 사고력과 결의는 필요하지요……. 병조판서께선 그러지 못하실지라도 말입니다.”

양측 사이에 도발이 오간 뒤, 김신국과 김세렴은 서로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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