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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258화 (258/380)

인조, 명군이 되다 258화

나의 개발품이 정충신에게 도움이 됐다니 기뻤다.

단순히 도움이 되어서만은 아니었다. 정충신은 용법을 고민했고, 이상적으로 활용해주었다.

수발식燧發式 조총은 개념이 명확하다.

기존의 조총이 불붙인 화승火繩을 이용해 격발한다면, 수발식은 화승을 부싯돌燧로 대체한 것이다.

정충신은 그 차이를 교묘하면서도 치명적으로 이용해 주었다.

‘화승총은 격발을 위해선 계속 불을 붙이고 있어야 하지…….’

반대로, 충격과 마찰을 이용하는 수석식은 그러한 불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야간에서 은신과 매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수발식이 화승총을 상대로 가진 가장 확실한 장점이기도 하고…….’

수발총은 화승총보다 일방적인 우위에 놓인 무기가 아니었다.

수발식이 기술적 진보가 반영된 건 맞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비용과 수고로움의 문제가 있으니까.

화승총은 불붙인 화승을 화문에 가져다 대면 그만이다.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수발총은, 부싯돌에 충격과 마찰을 발생시켜야 격발할 수 있다. 단순히 방아쇠와 용두의 연동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만큼 수발총은 화승총보다 설계가 더 복잡하다.

여기엔 탄성과 복원력을 가진 금속 소재가 필요하고, 부싯돌 역시 무한정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소모되는 희귀 자원이다.

수발식이 화승식보다 더 신뢰도가 뛰어난 격발 방식이냐면, 그 또한 아니었다.

화승은 구조와 원리가 단순한 만큼 불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격발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싯돌은 저마다 성능이 천차만별이고, 충격과 마찰하는 과정에서 기능이 훼손되거나 부싯돌 자체가 파손 혹은 망실할 가능성이 있었다.

수발총은 화력과 신뢰도 양면에서 화승총을 압도하지 못하면서도 감수할 비용과 수고로움만 큰 셈이다.

조선이 이전 역사에서 나선정벌羅禪征伐을 통해 수발식 조총을 입수하고도 이를 도입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

‘그래서 많이 만들지도 못했고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였는데…….’

정충신이 이상적인 방식으로 활용해 주었다.

조총으로 야습을 역습으로 받아친다는 건 수발식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니까.

수발식이 기존의 조총과 어떠한 차이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다.

“과연, 도원수에게는 전술을 고안하고 그것을 의도대로 실현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지난 왜란에서 명의 장수 진린陳璘은 이순신에게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가 있다고 하였지요.”

그렇다는 점에서는,

“정충신이 지상의 이순신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에 재상들이 고개를 숙였고, 좌의정 박홍구가 말했다.

“산동에서의 대승이 어찌 정충신 한 사람만의 위업이겠습니까.”

그럼 달리 공을 세운 사람이 있냐는 듯 신하들이 이목을 모으자 박홍구가 덧붙였다.

“전왕 때는 이순신을 두고도 나라가 위기에 처해 적을 막기 급급하였으나, 지금은 아조가 바다를 건너 중원을 제패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이는 인재 이상으로 인재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방증이옵니다.”

박홍구가 낯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해주었다.

그런 민망한 금칠에는, 자신을 버리지 않고 살려 의정으로 계속 기용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지지도 느껴졌다.

‘이래저래 점수를 잘 타먹는군.’

원래 눈치가 좋던 사람이다.

한 번씩 던지는 극단적인 발언도, 성질 더러운 내가 못 하는 말을 대신해 주는 느낌도 있고.

그런 박홍구에게 씨익 웃어주곤 제신들에게 일렀다.

“제공과 도원수가 분전하여 난적亂賊을 격퇴하였으니 아조가 이미 산동을 차지한 듯합니다. 내가 마음이 과히 뿌듯하여 종묘에 서게 될 날이 고대되는데, 경들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신하들이 꾸벅 허리 숙였다.

왕에게 종묘가 있듯, 신하들에게도 조상이고 있고 제사가 있다.

자신이 성세에 일조하여 반도에 구속되었던 아조를 마침내 중원까지 진출시켰으니, 누군들 조상 앞에서 떳떳지 않겠으며, 이 위업이 문중에는 어떻게 기록될까.

“아직 이른 때지만 성취를 즐기더라도 책잡을 사람은 없겠지요. 회의는 이만 파하겠습니다. 제공도 금일만은 정무를 생략하고 편하게 쉬세요.”

신하들은 누가 마다하겠냐는 듯, 재차 허리 숙였다.

* * *

경기도 여주목.

올해 들어 시범적으로 이앙법을 도입한 이 고을에서는, 도저히 물을 끌어올 수 없는 일부를 제하고는 논 대부분을 수답水畓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볼 때마다 믿기지 않는단 말이야…….”

농군들은 빼곡하게 여문 이삭을 보며 매일같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렇게 좋은 걸 여태 안 하고 있었다니…….”

논에 곧바로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直播法은, 뿌리는 그 순간은 편할지언정 무한정 돋아나는 잡초를 계속 제거해 주어야 했다.

그 전에 볍씨가 싹을 틔우기 전 참새가 벌레 따위가 먹어버리기도 하며, 싹을 틔워도 모 상태가 안 좋기도 했다.

모만을 모판에 따로 길렀다가 옮겨 심는 이앙법은 이런 문제를 원천 차단해 주었다.

싹이 날 때까지 볍씨를 보호할 수 있고, 상태가 좋지 않은 모는 옮겨심기 전에 거를 수 있으며, 논을 물에 잠겨두어 대부분의 잡초를 예방할 수 있으니까.

“수고로움은 덜고 과실은 늘어나니 정녕 물 대지 못할 곳이 아니면 이앙법을 쓰는 게 백 배 이득이로군.”

이에 함께 벼 이삭을 구경하던 농부가 말했다.

“대신 물을 잘 대야지.”

관개시설을 미리 충분하게 구축해 두지 않으면 가뭄에 매우 취약해지니까.

하지만 처음에는 그 수고로움을 견디기 어려워한 농군들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을 더 들일 걸 그랬나?”

“에이……. 그땐 마지못해 겨우 해냈는데, 어떻게 공을 더 들일 수 있었겠나.”

이앙법의 효험은 막연히 전해듣기만 한 게 전부였고, 자신의 논에서도 그런 소출이 가능할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었으니까.

하물며 많은 관개시설이 전쟁으로 혼란한 와중 방치되고 잊혔다.

그것을 모두 드러내어 정비하고, 나아가 확장까지 했으니 수고가 적지 않았다. 유지들이 발 벗고 나서기 전까지 괜히 버려져 있던 게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지.”

이앙법의 효험을 직접 체감했고, 이런 효험은 충분히 갖춰지고 잘 정비된 관개시설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고 있으니까.

이제는 남이 말려도 나서서 정비해야 했다.

“갑자기 배가 아프구만.”

“……왜?”

“우리는 마지못해서 했는데, 다른 고을에서는 좋다고들 하지 않겠나?”

“하하. 그렇겠군.”

“아주 배가 아파!”

“그래도, 쉽지는 않을걸?”

안주목에서는 이앙법의 체계적인 도입을 위해 관민 전체의 협력이 있었다.

유지들은 단순히 적극적인 것 이상으로 헌신했고, 관에서는 중재와 독려에 더불어 하삼도에서 알음알음 모내기를 해오던 사람도 데려와 농사법을 가르쳐주었다.

이런 총체적인 협심이 없었더라면 지금 같은 성과도 없었을 터.

“게다가, 요령 없이 무턱대고 따라 하려 들었다간 진은 진대로 빠지고 효험은 못 볼 걸세.”

“그런가?”

“왜, 경상도에서 온 그 친구가 가르쳐준 비결이 있잖나.”

“아.”

하삼도 농군이 가르쳐준 이앙법의 비결은, 함께 이앙법을 하는 사람들끼리 협력하는 것이었다.

모를 올바르게 옮겨 심으려면 여러 농부가 오와 열을 맞춰 동시에 작업하는 게 편했으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수답水畓이라고 잡초가 아예 안 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모를 미리 질서 있게 옮겨 심으면, 두서없이 난 풀들은 세심히 살펴볼 필요도 없이 무조건 잡초인 것.

“올해 이 주변에서 이앙법을 쓴 고을은 우리밖에 없으니…….”

“쌀은 실컷 먹겠구만.”

“아니지.”

“뭐가 말인가? 대풍년인데.”

어떻게 실컷 먹겠다는 말에 아니란 말이 나오는가.

“내년이 되면 주변에서는 다 이앙법을 따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겠지.”

“그러면, 내년이 되면 쌀값이 아주 떨어진다는 소리일세. 온 동네가 다 대풍년일 테니까.”

“흐음…….”

“하지만 올해에는 이앙법을 쓴 고을이 우리밖에 없어서 쌀값이 아주 떨어지진 않을 거란 말이지?”

예전 같았으면, 고을 전체에 풍년이 들었을 때 양곡가의 폭락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러나 근자에 들어선 세상이 넓어지고 상인들이 많아져 흔한 것은 가져가고 귀한 것은 가져오니, 고을 한 곳에서 대풍년이 들었다고 양곡가가 폭락하지는 않을 터였다.

“이건 비밀인데…… 자네는 친한 사람이니까 말해줌세.”

“뭔가? 뜸 들이지 마시게!”

“예년부터 천석꾼이다, 뭐다 하는 사람들은 쌓아둔 쌀을 다 은행에 보내서 돈으로 바꿨다는구만.”

“왜?”

“이 사람아. 쌀값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안 떨어질 것으로 미리 바꿔두는 게지!”

“흐음…….”

“그런데 다 먹어치우면 되겠나? 내년에는 훨씬 더 많은 쌀로 바꿀 수 있는데!”

친우의 말에 턱을 쓰다듬던 농부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 천잰가?”

“이제 알았어?”

* * *

조선에서 이앙법의 도입과 관개수로의 확충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동안.

바다 건너 산동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파괴하시지요.”

부관이 마지막 관창을 앞두고서 말했다.

그동안 조선군은 도원수 정충신의 주공과 원수 이완의 조공으로 나뉘어, 등래대원수 세력에 놓인 관창을 모조리 털어왔다.

나아가 등래대원수 회심의 군대마저 격멸하고 막대한 보급품을 입수한 지금.

“현재 가진 물자도 많아 행군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조선군의 보급 상황은 포화였다.

본디 군대에서 보급이란 항상 부족하고 절박한 것인데, 지금은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정충신의 원정군은 삼한의 성립 이래 가장 부유한 군대였다.

“……그렇다고 이 귀한 식량을 모조리 없애는 건 내키지 않는군.”

“대감의 마음에는 저도 공감하지만, 가져가지 못한다면 적의 수중에 남겨질 뿐입니다.”

“흐음.”

고민하는 정충신의 옆에서 금나라 세자 호격이 말했다.

“이 많은 식량을 그냥 파괴해 버리자니? 그대 나라에서는 먹을 게 썩어 넘치는가 본데, 금에서는 그렇지 않소!”

“어쩌기를 바라십니까.”

“무겁다면 나의 군사들을 부리시오. 고생하는 삯만 제대로 쳐준다면, 기꺼이 응해주지.”

“…….”

홍태주와 함께 원정군 과반을 잃어버린 호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독으로 산동의 나머지를 정벌할 수도 없으니, 어렵게 원정에 참여하고도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호격만의 성과가 있다면, 조선군이 다 패퇴시켜놓아 흩어진 등래대원수군의 패잔병과 술래잡기를 했다는 점일까.

홍태주의 후계를 이어 금한으로 즉위해야 할 호격에게는 무척이나 자존심도, 입지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무리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본국으로 귀환할 때 어떻게든 성과를 과시해야 하니까. 그나마 금나라에는 여전히 부족한 식량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

모두가 보는 앞이기 때문인지, 호격은 차마 애원까지는 못하였으나 궁상맞은 눈동자로 정충신을 주시했다.

정충신은, 덕분에 조금 난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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