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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260화 (260/380)

인조, 명군이 되다 260화

양측 군대가 대치했다.

여명이 돋는 곳에서 온, 휘황찬란한 원색의 갑주를 과시하는 조선군.

그리고 여명을 찾아,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온 등래대원수의 군.

겨울을 맞아 눈발이 휘날리는 전장에서 양측 군사들은 입김만 쏟아내기를 한참.

조선군의 도원수 정충신은 부관을 보내 항복을 권유했지만, 진광부는 응하지 않았고 역으로 항복을 권해왔다.

“제안은 고맙네만, 받아주진 못하겠군.”

정충신이 여유롭게 답했고, 진광부의 사절은 허리를 숙이고는 기수를 돌려 물러났다.

대치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일순 진눈깨비와 함께 돌풍이 불었고, 등래대원수의 병사들은 희뿌연 낯을 마주한 채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이었다.

“방포하라!”

고함이 삭풍을 헤치고 귓전을 때렸다. 불씨를 조심스럽게 지켜온 포수들이 기꺼이 대포에 불을 붙였다.

꽈과광!

파공이 지축을 흔들었고 무수한 포탄이 적에게로 쇄도했다.

사람의 팔이 바람이나 진눈깨비는 막을지라도 쾌속으로 쏘아진 쇳덩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와 열을 맞춘 인체의 대오가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시체들이 눈발 위로 우수수 드러누웠고, 불시의 선제를 허용한 진광부가 곧장 외쳤다.

“돌격!”

진광부의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질주했다.

금세 대오가 무너졌지만,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조선군 앞에서 질서를 유지한 채 진군한다는 것도 무모하긴 마찬가지.

조선군은 더 많은 포성으로 화답했다.

뒤이어 무수한 포탄이 사방에 내리꽂혔다.

육중한 쇳덩이가 찢어발긴 건 허공만은 아니었다. 여러 불운한 생애들이 질주를 다하지 못하고 바스라졌다.

진광부의 병사들은 그런 동료들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광부의 병사들은 조선군의 지척에 이르렀다.

조선군은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내세운 장창 사이로 총구를 내렸다.

타타타타탕!

쇳조각의 소나기가 작렬했다.

겨울 안개로 희뿌연 시야가 총연으로 더욱 짙어졌고, 가장 앞에서 총탄을 받아낸 진광부의 병사들은 검은 인영이 되어 몸부림치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동료들과 총연의 안개를 헤치고 후열의 병사들이 조선군과 격돌했다.

장창과 칼자루가 서로를 치고 쳐냈다.

격전 속에서 진광부의 병사들은 이따금 장창 사이로 몸뚱이를 비집는 데 성공했고, 그러면 정면의 조선군은 장창을 버리고 환도를 뽑아들고 나섰다.

그리고 빼곡한 장대 사이에서,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한 숙적처럼 칼질을 교환했다.

양측 정면에서 총창의 방진과 인간 무더기가 격돌하는 동안.

양익에서는 기병들이 부딪혔다.

조선군과 유사한 복장을 하였으나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이들은, 호격이 이끄는 금나라 최후의 팔기였다.

규모는 전성기와 비교하여 한없이 쪼그라들었지만, 최후의 팔기는 그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전성기 이상의 전의를 가지고 있었다.

최후의 팔기는 진광부의 기병대를 상대로 치사馳射 끝에 창검을 빼 들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폭음.

직후 무수한 인마가 근육이 파열하고 뼈가 부러졌다.

격돌과 함께 즉사한 시체들이 접전한 양측 사이에서 마구잡이로 흘러내렸고, 교차하는 무수한 말발굽이 시체를 짓뭉개는 동안, 최후의 팔기는 건조하게 창검을 내지르고 휘둘렀다.

그 무기질적인 냉혈함에 진광부의 기병들은 잊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언제 그들이 금나라의 기병대를 상대로 승리한 적이 있었던가?

전장 전역에서 접전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진광부와 그의 수하들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조선군을 압도하고자 했지만, 조선군은 다른 면에서 진광부의 군대를 더 압도하고 있었다.

패색이 짙어지자 진광부의 병사들은 독전마저 무시하고 등을 돌려 흩어졌다.

조선군을 향해 쓰러진 시신들 위로, 반대 방향으로 쓰러진 시신들이 엎어졌다.

그렇게, 눈발 위에 서 있는 등래대원수의 군사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등래대원수 진광부 본인밖에 없었다.

“…….”

진광부는 부하들의 시체 너머로 다가오는 조선군을 마주한 채, 저항도 도주도 없이 그저 눈만 가만히 감았다.

“포기했나?”

조선군 무관이 물었으나 진광부는 침묵했다.

포기인가, 항복인가, 좌절인가, 도발인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려운 다른 복심이 있는 것일까.

종잡을 수 없었던 무관이 상관을 기다리는 동안, 뒤이어 진광부를 찾아온 이는 금나라 세자 호격이었다.

멀리서부터 말을 재촉해 허겁지겁 달려온 호격은 곧장 안장에서 뛰어내려 진광부를 마주했다.

그리고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진광부에게 말했다.

“기이한 짓거리를 하는군. 소용없다. 넌 내게 맞섰을 때부터 최후가 정해졌다.”

그리고 누가 만류할 새도 없이, 호격은 칼을 뽑음과 동시에 진광부의 목을 갈랐다.

호격은 고대하던 전리품을 얻었다.

복수의 증거.

원정의 성과 자체는 극히 미진하였으나, 이 정도라면 본국으로 귀환하더라도 체면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호격은 눈발 위로 굴러온 수급을 잡아 들었다.

“한의 영전에 올려야겠다. 소금에 절여라.”

호격은 수하에게 진광부의 머리채를 넘겼고, 뒤이어 조선군 지휘관들이 찾아오자, 빤한 시선을 느끼고는 묵례했다.

그 모습에 도원수 정충신은 머리 없이 나자빠진 진광부를 확인하곤 일렀다.

“원했던 건 얻으셨습니까?”

“얻었소.”

“등래대원수를 자칭하며 일대를 거느렸던 자였지요.”

“…….”

“심문하면 유익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만큼 이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정충신은 이게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통보라는 의미에서 대답은 듣지 않고 기수를 돌렸다.

기패관이 도원수의 명령을 받들어 하늘 높이 손을 휘저었다.

그 손짓을 확인한 조선군은 기꺼이 전장에서 철군을 시작했다.

그렇게, 조선군이 위협을 일소한 뒤 물러난 장소에서.

호격은 멀어지는 우군을 한참이나 주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오직 금나라의 군사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때, 호격은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오는 부하들에게 명했다.

“전장을 수습해라.”

호격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조선군은 미련 없이 버리고 간 전장의 잔해다. 그것을 뒤지려니, 참으로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호격은 원수의 수급은 취했을지라도 여전히 티끌 하나 아쉬운 신세.

더 취할 수 있다면, 그리해야만 했다.

* * *

예나 지금이나 먼 곳으로 발령나기를 좋아하는 공무원은 없다.

더욱이 조선은 공무원이 고향에 부임하지 못하는 상피제相避制를 시행했다. 멀리 나가게 되면 무조건 타향에서만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배려로서 외직外職을 맡을 경우 가족을 대동할 수 있지만…….

가족을 대동하는 경우에는, 대동하지 않는 미설가未?家보다 원칙상 두 배의 임기를 지내야 했다.

나아가 임지로 대동한 가족 구성원들이 혹 가장이라는 뒷배를 믿고서 소란이라도 일으켰다간 탄핵거리가 되어버린다.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조선의 관리들에게 외직이란 자갈밭과 같았다.

자갈밭에서는 서 있으면 발이 아프고 누우면 등판이 배기듯이, 어떻게든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중앙에서 요직을 맡기 위해서는 청요직淸要職이라 일컬어지는 삼사三司의 관직과 지방의 목민관牧民官 이력이 필요했다.

출세욕이 있다면 아예 안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그나마 한양과 가까운 곳에 떨어지기를 빌고 또 빌 뿐.

하지만, 어지간한 출세욕이나 공명심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외직이 있었으니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에 부임하기 위해서는 아예 뭍을 떠나 바다를 건너야 했으므로, 여차하면 파도에 휩쓸려 죽기 일쑤인 조선 시대에서는 유언을 남기고 가는 게 당연한 임지였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장례마저 미리 치러버리기도 했다.

제주도로 부임하기 위해서는 나는 죽은 사람이다, 하고 치부할 정도의 각오마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관리들은 부임을 앞둔 시점에서 사직하거나 심지어는 도망을 가버리기도 했다.

당연히 괘씸죄 낙인이 찍히기 매우 쉬운 짓인 만큼 유배 보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나, 그럼에도 어떤 관리들은 출세도 공명도 마다하고 이승의 개똥밭에서 구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주도마저 양반으로 보이는 기피지역이 둘이나 생겨났다.

비사성卑沙城과 청주靑州.

모두 최근에 편입된 만큼 여러모로 행정적인 시험을 받는 동시에, 본토와의 입출마저 쉽지 않은 외지였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더 최악을 고르자면 단연 청주靑州였다.

옛 이름 등주登州.

금나라의 발호로 명나라와의 육로가 단절된 뒤 잠깐 해상의 창구로 이용되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제국에 우후죽순 반란군이 난립하는 과정에서 등래대원수를 자칭한 진광부가 차지했다가, 고작 반 년 전에 평정됐다.

언어는 이식되었으나 엉성한 수준이었고 문화권은 상이했으며, 절박한 상태에 놓인 유민들이 막 정착해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중원과 직접 연결되어 통제조차 어려웠다.

그렇다고 가까스로 획득한 대륙 진출로와 해상 거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다수의 외관이 파견될 수밖에 없었고, 또 파견되어야만 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군정을 대체할 행정구역으로 청주靑州를 설치했다.

청주는 산동의 옛 이름이며, 또한 삼국사기에서 백제 위덕왕이 북제의 황제에게서 청주지사靑州刺史 관직을 수여받았다는 기록도 있는 만큼 근본 충만한 명명이었다.

다만 거론되지 않는 더 본질적인 개명의 이유는, 등주라는 기존의 지명이 가진 명나라와의 연결 관계를 단절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행정구역의 개명이나 그 본의야, 막 물망에 오른 예비 목민관들에겐 하등 중요하지 않은 것.

최근 부여현감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귀환한 김경여金慶餘는, 오밤 중에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부처님, 앞으로는 매일 발원도 하고 시주도 할 테니 제발 청주에는 떨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김경여는 정화수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모름지기 유학자을 배운 사람이라면 공자孔子를 받들어 군자불언君子不語 괴력난신怪力亂神 해야 하지만…….

설사 공자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하느님과 부처님을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김경여는 빌어야 할 대상이 잘못되었음은 몰랐다.

김경여의 양전어사 동기이자 오랜 친우이기도 한 공조참판 김육이, 후보를 고민하는 왕에게 자신의 친구를 이미 추천해 버렸으니까.

* * *

며칠 뒤.

“소식 들었나? 내가 청주에 부임하게 되었어…….”

간절한 발원이 통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자, 김경여는 죽을 날짜라도 받아놓은 사람처럼 시커먼 낯으로 하소연했다.

그런 김경여의 맞은편에 한탄 들어줄 사람으로 불린 이는 김육이었다.

“나쁘게 생각지 말게. 품계가 몇 단계나 올랐잖나?”

“이보게! 남의 일이라고 막 말하는구만. 나는 천천히 출세해도 좋으니 청주에는 안 가길 바랐네!”

김경여는, 말장난 같게도 청주靑州 부임을 앞둔 채 잔에 받아놓은 청주淸酒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에 김육이 슬쩍 운을 뗐다.

“자네가 그리 생각하는 줄 알았다면…….”

김경여는 그 말이 어딘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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