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261화
김육이 청주 부임을 앞둔 김경여와 송별식을 가진 다음 날.
그는 휴일이 아님에도 무단으로 등청하지 않았는데, 과음이나 늦게 일어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 자식이 날 팔아?!”
추궁 끝에 내막을 알게 된 김경여가 벌겋게 달아올라 외치자, 김육은 슬쩍 물러나면서 두 손바닥을 보였다.
“파, 팔다니……. 커흠! 친구를 출세시켜 주려고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지!”
“좋은 기회? …좋은 기회?! 그 좋은 기회에 자네가 지원하지 그랬나!”
김경여는 술상까지 엎어가며 와락 달려들었고, 김육은 멱살이 잡힌 그대로 대청에 처박혀서 신음했다.
“아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김경여는 마당에서 놀란 얼굴을 한 노복에게 일렀다.
“밧줄 가져와라!”
노복은 허둥지둥 창고를 다녀와 밧줄을 건넸고, 이어 노복이 제압하는 동안 김경여는 김육의 손과 발을 하나로 묶어 대들보에 매달아버렸다.
김육은 마치 대들보에 열린 열매 꼴이 되어버렸다.
나름 버둥대며 저항해보았으나, 친우가 감정을 담아 단단히 묶어놓은 포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이, 이보게! 장난은 이만하면 되었네!”
“……이게 장난 같아?”
김경여는 이마에 혈관이 돋은 채로 이글거렸다.
“참판께서 안 처맞은 지 오래되어 그런가, 사태 파악이 참으로 미진하신데…….”
지난 보름간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제발 청주만은 안 된다, 살려만 달라, 없던 신앙심도 짜내어 발휘해온 김경여였다.
그러는 동안 좋은 친우를 가장해온 이 원수는 자신을 바다 건너 내던질 적임자로서 참 좋다 왕에게 소개했단다.
이것이 배반이고 배신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참판께서는 몽둥이로 찜질 한 번 당해봐야 정신이 돌아오시겠나?”
“…….”
김경여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으므로, 정신이 번쩍 든 김육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고개만 돌려 눈알로 잡아먹을 듯한 날 선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김경여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우우……. 그래, 친구 좋다는 게 뭐겠나. 때려죽이고픈 일이 생겨도 한 번쯤은 봐주는 게 친구 사이겠지.”
김경여는 몸을 돌려 섬돌 아래로 굴러간 술병을 챙겨 목을 축이고는, 묶어놓은 김육의 머리맡에 달그락 세워놓았다.
“자네도 한잔하게. 많이 놀랐을 테지.”
“…….”
“나는 더 이성을 잃기 전에 혼자서 심신을 안정시켜야겠군. 기회가 되면 또 보세.”
김경여는 여전히 손발이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열매 상태의 김육을 토닥여주고는, 혼자만 덩그러니 사랑방으로 향했다.
“…….”
애처롭게 남겨진 김육은 자신을 슬쩍슬쩍 의식하는 마당의 노복을 향해 속삭였다.
“쉬잇!”
“…….”
“이보게!”
“…….”
“나 좀 풀어주시게!”
“…….”
노복은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김육과 주인이 들어간 사랑방 방문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모른 체하며 행랑으로 물러났다.
“……이런.”
김육이 다음날 등청하지 못한 경위였다.
* * *
다음날이 되어 새벽 어스름이 밝아올 즈음.
김경여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때마침 일찍 일어나 얼굴을 닦고 초조반으로 허기를 다스린 김경여는, 가볍게 의복을 정제하고 문간으로 나갔다.
“누구시오?”
조금은 뚱한 목소리.
자신의 처우가 꽤 곤란하게 된지라 고운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문간의 손님은 김경여의 어깨너머로 대청에서 매달린 한 사람을 구경했다.
저 인간은 어째서 저런 상태로 자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으나, 남의 집구석에서 벌어지는 남 일이었으므로 제 몫이나 하기로 했다.
“보시오.”
그가 꺼낸 것은 명命 자가 쓰인 붉은 목패였다.
흔히 초패招牌라고도 하는 물건.
왕이 신하를 궁궐로 호출할 때 보내는 패다.
김경여는 호출의 사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청주로 파견될 목민관으로서 물망에 올랐다.
목민관은 임지로 떠나기 전 왕 앞에서 수령칠사守令七事를 외우게 된다.
수령칠사란 이름 그대로 수령으로서의 의무와 역할 일곱 가지.
이를 외움으로써 목민관의 역할과 의무를 상기하는 것이다.
얼핏 대수롭지 않은 의례로 비치지만, 고작 스물한 자로 이루어진 수령칠사를 외우는 데 실패해 파면을 당한 자도 있었다.
김경여는 초패에서 눈을 떼고 답했다.
“관복만 입고 출발하겠소.”
김경여는 사랑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대청의 김육은 밤을 새우다가 늦게 잠들었는지, 불편한 자세와 오가는 인기척에도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김경여는 그런 김육은 내버려 두고 궁궐로 향했다.
* * *
“저지르는 것보다 수습하는 게 더 일이로군요. 뭐든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정복이 특히 그렇습니다.”
나는 김경여를 궐로 불러들여 독대했다.
임지로 보내기 전 수령칠사나 외우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동서고금에 패자와 정복자는 무수히 많은데, 그들의 나라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니 김경여가 답했다.
“통치란 정복과 달라 무력만으론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세심한 주의와 꾸준한 관심이 없는 한, 통치는 불가능하지요.”
김육의 추천을 받은 사람답게 김경여는 기본이 되는 사람이었다.
“현재 아조가 처한 상황에서 고려할 만한 편법이 있습니다. 점령지의 토착민을 전부 쫓아내고 빈 땅에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것입니다.”
보기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흔히 사용되어온 방법이지요.”
한반도 역사상 최고 명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대왕도 사용한 편법이다.
사군과 육진을 막 개척하고,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을 온전한 조선령으로 편입하고자 하삼도의 백성을 대대적으로 징발해 북쪽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이는 화폐의 강요와 더불어 세종대왕 치세의 유이한 오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강제 이주였으니까.
한평생 살아온 고향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환경에 내던져진 수많은 백성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어떤 이들은 징발을 피해 스스로 장애인이 되었다.
혹평하자면, 성군의 치세라고는 믿기 어려운 폭정이다.
그러나 국가적인 관점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초유의 명군이 주도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대 조선이 정복하고 편입했으며, 극단적인 방법으로 융화를 시도했음에도 최북단 지역이 완전히 동화되기까지는 조선의 존속기간 전체가 걸렸으니까.
특히 사군은 빈번히 개척에 실패해 행정구역 자체가 철폐되었다가 수백 년이 지나서야 겨우 부활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이들 최북단은 조선 역사 내내 겉돌았으리라.
“하지만 지금 건 상황이 다릅니다.”
“……하교하시옵소서.”
“먼저, 비사성과 청주는 폐사군이나 육진과 달라 의지할 만한 자연 경계선이 없지요.”
그나마 비사성은 여문呂門이라는 병목이 있지만, 산동 끝자락인 청주는 아예 대문이 활짝 열린 수준이다.
“조선이 성세를 구가하는 한 항상 외부에서 유입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비사성과 청주는 작지 않아 지금의 백성들로만 땅을 채우려면 막대한 인원이 동원될 겁니다.”
똑같이 편법을 시도한다면, 세종대왕 치세에 있었던 ‘성세의 참화’가 더 극단적이고 대대적인 형태로 재현되어야 한다.
“과연 그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국가적으로는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스린다治는 한자를 구성하는 건 물 수水와 기쁠 태台이지요.”
“…….
“한자가 발원한 중원에서는 장강水의 치수가 곧 다스림이기도 했다는 점을 제한다면, 다스림에 근본이란 백성들을 기쁘게台 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편법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성세의 참화가 필요한 일이었다곤 해도, 옳은 일이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편법을 쓰지 않겠다면 남는 건 정공법뿐입니다. 내가 방금 말하였는데 기억하고 계십니까?”
“세심한 주의와 꾸준한 관심, 말씀이옵니까.”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듣는 척만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
나는 문득 솟구치는 복잡한 감정을 콧김으로 떨쳐내고는 김경여에게 일렀다.
“막 정복한 땅을 정공법으로 귀화歸化 시키겠다는 발상이라니,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지요?”
부복한 김경여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오만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는 투다.
“천하의 세종대왕께서도 해내지 못하신 일을 내가 해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전하께서는…….”
“송애松厓.”
나는 김경여의 이름 대신 호를 가만히 부르고는, 덧붙였다.
“다스린다는 건 왕 한 사람만으로는 불가한 일입니다. 특히 외지라면, 대신 맡아줄 사람이 더욱 중요하지요.”
하물며 김경여가 부임할 청주는 바다 건너이기까지 하다.
일부러 관심을 두고자 해도 바다 건너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란 쉽지 않다.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진 호기에 왕위에 올라, 발해渤海를 아조의 바다로 삼고 그 너머까지 조선의 성세를 떨치고자 합니다.”
“…….”
“이것이 나 한 사람의 야망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기회가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기억하는 한, 이다음의 기회는 수백 년간 없다.
“그래서 나는 청주에 그 누구보다도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보내고자 합니다.”
부담이 과했을까.
김경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수령칠사는, 굳이 외진 않도록 하지요. 내가 기대하는 건 그 이상이니까.”
“…….
“송애.”
“……하명하시옵소서.”
“나의 대의에 일조해 주시겠습니까?”
“백골이 진토 될 각오로 힘써 부응하겠나이다.”
과자 상자를 들어 김경여에게 내밀었다.
김경여는 손가락을 내밀어 하나 집어가려고 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과자를 드리긴 힘들 것 같군요. 상자째로 가져가세요.”
김경여는 두 손바닥을 내밀어 과자 상자를 받쳐 들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 * *
퇴궐하고 거리에 나선 김경여는 축 처진 채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심경이 복잡했다.
고작 어젯밤까지만 해도 정화수를 떠놓고 극구 마다했던 청주행이다.
그런데 왕과 대면하고 나니, 지금까지의 필사적인 거부가 한심하다 못해 하찮게 느껴졌다.
조선의 성세가 마침내 바다를 넘어 중원마저 뻗어간 참이다.
이 순간을 때마침 살아가고, 또 이 영광에 일조할 기회가 주어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왕은 말했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진 호기에 왕위에 올랐다고.
분명 같은 순간, 같은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왕은 지금의 상황을 호기로 여겼고 자신은 위기로 여겼다.
‘그릇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착잡한 심정을 마저 갈무리하지 못하고 귀환한 김경여를 맞이하는 건, 집을 나설 때 그 상태 그대로 반겨주는 친우였다.
“오, 왔나? 온 김에 이것 좀 풀어주지 그러나. 피가 안 통해서 그런지 이젠 감각조차 없다네!”
김경여는 어젯밤 보인 추태에 더해 친구에게 해놓은 짓이 미안했지만, 차마 내색하지는 못하고 무심한 척 결박을 풀었다.
‘뭐 이렇게 단단히 묶어놨어?’
진땀을 뺀 김경여는 대청에 걸터 앉았고, 기괴한 자세로 한참 매달려 있었던 김육은 편히 드러누운 채 손목을 번갈아 주물렀다.
“그건 뭔가?”
김육이 턱짓했고, 김경여는 친우의 시선이 향한 상자를 향했다.
“하사품.”
“궐에 다녀왔나?”
“그래.”
“수령칠사는 외웠고?”
“안 외웠네.”
“…허, 그건 이상한데. 다른 일로 불려간 겐가?”
“자네 짐작이 맞아. 그냥, 전하께서 안 외워도 된다고 하셨네. 이 사람에게 기대하는 건 그 이상이라고.”
“부담스러운 하교를 하셨군.”
“…….”
김경여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긍정하지도 않았다.
짧게 침묵한 그는 상자를 열어 빼곡한 과자 중 하나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연신 손목만 주무른다는 친우에게도, 콧구멍에 하나 쑤셔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