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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279화 (279/380)

인조, 명군이 되다 279화

지난밤 정찰병의 보고대로, 순나라의 군사들은 대로大路를 타고 호격의 금나라군을 추격해왔고 수효는 셀 수조차 없었다.

켜켜이 늘어선 군사들 때문에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호격이 그들과 맞서기로 한 방법은 밤사이 군영을 기습하는 것도, 전장을 선택해 저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쳐라!”

그의 단호한 명령에 숲 전체가 즉각 시끄러워졌다.

휘하의 수하들이 명령을 받들었고, 군사들을 내몰아 행군하는 순나라 군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게 했다.

우군의 피부터 흩뿌리고 시작하는 독전에 금나라의 군사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고, 이내 양측이 함성과 함께 격돌하며 전장이 들썩였다.

“도적놈들 아니랄까 봐, 아주 하수들이로구나!”

승기를 잡은 호격이 숲 가장자리에서 외쳤다.

안장 위에서는 전장을 넓게 볼 수 있었다. 전장에서, 순나라의 대군은 금나라의 습격에 놀라 무너지고 있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순나라의 볏짚을 마구 베고 싶다만…….”

호격이 들뜬 채로 중얼거리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친위병들의 대장 라이무부賴慕布가 나섰다.

“아니됩니다!”

홍태주 시절에도 친위대의 대장을 맡았던 라이무부다.

그도, 홍태주도 전사로서 약한 인물은 아니었고 친위대는 한의 거동을 필사적으로 보좌하였으나 진광부의 사특한 계략으로 선한은 허망하게 전사했다.

라이무부는 그 같은 일의 재현을 원치 않았다.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건 전사로서 매우 중요한 소양이지만, 한께서는 나라를 책임지고 계시는 몸이니 가볍게 거동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그런 라이무부의 강경한 제지에, 호격은 빤히 쳐다보다가 혀를 찼다.

“쯧!”

그러면서도 억지로 나서지는 않았다.

홍태주의 허망한 죽음은 호격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전장은 누구에게도 만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적지를 종횡무진하고픈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선한처럼 죽는 건 더더욱 사양이었다.

호격은 자리를 지키며 외쳤다.

“여세를 몰아 쓰레기들을 마저 흩어버려라! 이 전투는 이미 우리가 이겼다!”

호격의 명령이 각 수하에게 전해졌고, 금나라의 군사들은 한층 더 가열차게 적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상대방은 대군.

근본이 없다곤 해도 싸운 경험마저 없지는 않았다.

순나라의 장수들은 농민 반란군 특유의 저열한 사기에 익숙해져 있었고, 응당 대처법도 알고 있었다.

급변하는 전황에 지레 질겁하여 대오에서 이탈하는 병사를 무자비하게 베어버리는 것이다.

각 부대에서 지휘관과 비장裨將들이 탈주병의 수급을 들고 다니며 군율을 정돈했고, 앞에서 도망온 자들도 여지없이 베어버리니 혼란의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그리고 전위가 거의 패주하여 남은 우군이 없을 즈음.

“공격하라!”

순나라의 군사들이 반격했다.

일군이 꺾였어도 순나라의 군세는 여전히 대군이었다.

나아가 무자비한 정돈으로 군율을 가다듬은 채였으므로, 그들 역시 금나라 군사의 파죽지세에 호각지세로 맞서니 전황은 일진일퇴로 치열했다.

‘이런!’

호격은 전황의 변모에 경악했다.

금나라의 군세는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했다. 전황의 백중지세는 궁극적으로 금나라의 열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습의 실효는 이만하면 다 거두었다. 군사를 물려라!”

호격이 말고삐를 휘어잡으며 외쳤고, 명령이 전달되자 전장에 퇴군을 신호하는 징소리가 울렸다.

이에 맞춰 금나라의 군사들이 우르르 물러나자, 순나라의 군사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따라붙었고 호격이 곧장 박차를 가했다.

“한이시여!”

“적의 예봉만 끊어내겠다!”

호격이 대로로 난입하며 활시위를 튕기자, 금나라 군사와 뒤섞인 채 따라붙던 순나라 군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라이무부와 친위대가 주변의 순나라 군사들을 베어내니, 추격의 기세가 순식간에 끊겼고 호격과 라이무부는 관통하듯 반대편으로 빠져나가 우군과 합류했다.

금나라의 군대는 간밤에 그들이 파괴한 마을로 향했다.

여전히 흩날리는 잿가루를 헤치며 내달릴수록 대로의 좌우 숲이 점차 물러났고, 공터 또한 넓어지다가 순식간에 논밭으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금나라와 순나라의 군세는 대치했다.

순나라의 군세 사이에서 장수가 나와 외쳤다.

“말이나 박고 살아가는 저열한 오랑캐들! 습성대로 풀이나 처먹고 살지 않고 대순의 변경으로 들어와 난장을 피우다니!”

만주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언어였으나, 그들의 군사로 붙들린 금나라의 한족 병사들에게는 뚜렷히 전해졌다.

호격은 답하지 않았다. 만주어로도, 한어로도 모양새가 좋지는 못했다.

대신 호격은 단숨에 활시위를 재어 도발한 이를 노렸다.

쉭!

한 발의 대살이 허공을 가로질렀고, 순나라의 장수는 쇄도하는 화살에 놀라 말고삐를 잡아챘다.

놀란 말이 일어서며 화살은 대신 맞아주었으나 순나라 장수는 그대로 낙마해 땅을 굴렀다.

그의 생사는 호격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쳐라!”

명령과 함께 금나라의 군사들이 적에게로 질주했고, 북소리가 전장을 일깨웠다. 너른 전장의 사방에서 매복해 있던 금나라 기병들 또한 합세하여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속속히 증원을 받으며 대오를 정비하던 순나라의 군세는 다시 한번 금나라의 군세와 격돌했다.

* * *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멀리서 전황을 관망하는 무리가 있었다.

복식은 매우 평범했으나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나무 높은 곳에 앉아 천리경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금나라군이 초반 승기는 꾸준히 잡고 있지만, 결국 숫자에 밀려나는 모양새입니다.”

“누구 말로는 대군에 병법은 필요치 않다던데 딱 그 짝이로군.”

“개입할까요?”

“미리 준비만 해두자고.”

논의 끝에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모으고 새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났고 울음소리는 숲을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욱, 우욱……

욱, 우욱……

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인들이 있었다.

금나라군이 마을들을 약탈하며 모은 전리품을 값싸게 사들이고, 달리 필요한 물품과 도움을 비싸게 제공하면서 상인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해 왔다.

원정의 성패와는 별개로 승자로 남을 자들이었다.

“금나라 놈들이 아슬아슬한데요.”

“저러다 지면 곤란해지는데. 순나라 놈들은 근본이 도적이라서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슬슬 도망칠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상인들은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숲 가장자리에 몰려 전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새 우는 소리가 들렸고 상인들 사이에서 몇몇이 입술을 검지에 댔다. 그러자 무리가 다 조용해졌다.

그중 하나가 가까운 상인에게 중얼거렸다.

“신호입니까.”

“그렇군.”

“준비들 시킬까요?”

상대편 상인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자, 곧 상인 무리에서 절반 가까이가 일어나 따로 빼두었던 상자를 뜯었다.

그리고 나머지 상인들이 재물을 챙겨 숲으로 피신하는 동안, 상자에서 지푸라기로 포장한 수석식 조총과 장비들을 챙겼다.

“우리가 나서면 양쪽 다 깜짝 놀라겠지요?”

“한쪽 장수만 계속 죽어 나가면 특히 더 깜짝 놀라겠지. 탄환은 한 사람마다 열 개씩이다. 귀물貴物이니 공평하게 분배하고, 함부로 낭비하지 마라.”

지시에 따라 상인으로 위장한 실방사 요원, 그리고 조선군 군관들은 얇은 기름종이로 포장된 탄환을 세심하게 챙겼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할까요?”

포장된 탄환은 보통의 조총용 연환鉛丸과 다르게 끝이 뾰족했다.

원리는 누구도 알지 못하였으나, 뾰족한 특수 수제 탄환은 격발 시 일반적인 원형의 연환보다 훨씬 멀리 나갔고 정확하게 맞았다.

멀리서 격돌하며 우글대는 양측 군사들 사이로 표적만 암살하기에는 최적의 병기였다.

“돌아가서 상주해보면 알겠지.”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가는 건 아니겠지요?”

“아직 국내에선 전례가 없긴 한데……, 보통은 과도한 호기심이 화를 부르는 편이지.”

“자중해야겠습니다.”

“부디 그러라고.”

* * *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순나라의 군사들이 끊임없이 증원되었고, 그들을 에워싼 금나라의 군대를 밖에서부터 에워싸려 들었으니까.

호격은 승리와 생존을 위해 친위대와 이곳저곳을 누비며 구원을 다녀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내달리며, 총애하던 전마는 하얀 거품을 물었고 몸에서는 뜨거운 증가가 뿜어질 즈음 전황은 다시 반전했다.

처음에는 본인이 분전한 덕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외부에서 도움이 있었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눈앞에서 순나라의 장수들이 화살 한 대 맞지 않고 갑자기 고꾸라지거나, 비명을 내지리며 낙마했으니까.

그러한 광경이 라이무부와 다른 부하들, 즐비한 금나라 군사들의 눈에도 다 들어왔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누군가 외쳤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신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했고 금나라 군대에 매우 이로운 상황이었다.

“와아아아!”

“하늘이 우리와 함께한다!”

금나라의 군사들이 저들 스스로 최면을 걸듯 함성과 함께 사기를 끌어 올렸다.

반대로, 장수들이 픽픽 급사하며 지휘가 어지러워지던 순나라의 군사들은 그 말을 듣고 정녕 하늘의 뜻이 적들에게 있는 줄 알았다.

당연히 사기가 추락할 수밖에 없었고,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해 금나라의 군대를 압도해가던 순나라의 군대는 파도 맞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호격이 이때다 싶어 외쳤다.

“몰아붙여라! 적들이 등을 돌린 순간에 최대한 많은 수급을 거두어야 한다!”

호격이 채근했고, 적들의 수적 우위에 압도되어 찌그러졌던 팔기군은 기세를 단숨에 반전하여 패주하는 순나라 군사들을 베어갔다.

그럴수록 순나라의 군사들도 살고자 필사적으로 달아났지만, 사람의 두 다리로 말을 피해 도망치지는 못하는 법.

팔기의 군사들은 그간의 수모를 보복하듯 10리里의 거리를 꼬박 쫓아 패잔병들을 베었고, 말과 사람이 모두 지쳐 발굽을 옮기지도, 팔을 들지도 못하게 되자 비척거리면서 시체로 만들어진 피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숨을 돌리면서 승전을 자축했다.

금나라의 군사들은 가까스로 생명을 보전한 데 환호했다.

대개는 지쳐 그대로 주저앉고, 드러누웠으나, 또 일부는 전장을 서성이며 적들의 시체에서 전리품을 뒤졌다.

고작 무구라 할지라도 쇳값은 받을 수 있었고, 널린 게 병사의 시체였으므로, 상인들이 아무리 값싸게 사들인들 품팔이하는 대가 치고는 꽤 짭짤한 편이었다.

그 광경에 다른 금나라 군사들도 비척거리며 일어나 전장을 뒤쳤다.

전리품을 두고 다투는 일은 없었다.

그러기엔 다들 기력이 부족하기도 했으나, 널린 게 시체여서 굳이 다툴 이유가 없는 덕이기도 했다.

그런 태평한 광경 한가운데서 호격은 가까운 수하들과 모여 어두운 낯으로 말했다.

“그대들 중 이번 승전이 정녕 하늘의 도움이라고 믿는 자가 있나?”

“…….”

분명 신묘한 일이 벌어지긴 하였으나, 진정 하늘의 도움이라고 믿기엔 그다지 순진하지도 않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호격과 금나라의 장수들은 능히 신묘한 일을 벌일 무리를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을 내색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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