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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01화 (301/380)

인조, 명군이 되다 301화

남이공은 이상의의 호전적인 제안에 놀라, 질리기까지 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소관이 제안 드리는 건 거래의 금지입니다.”

“…흐음?”

이상의는 의문스러웠다. 거래의 금지가 인습의 혁파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에 남이공이 덧붙였다.

“현재 노비의 가치가 급등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작료의 감소로 소작농을 들여 땅을 일구는 데 이익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럼 두 번째는…….”

“예, 거래를 통해서 얼마든지 노비를 다른 높은 가치와 교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막대한 수요가 가치의 급등과 함께 수월한 거래로 안정성을 보장해 주니, 이에 힘입어서 노비의 가치가 더욱 올랐다.

지주 개인의 상황이 달라져 노비를 처분하게 되어도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거래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금한다면 급변하는 현 상황을 수월하게 억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바라시는 건 인습의 완전한 폐지일세!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 어떻게 인습을 혁파할 수 있겠는가?”

이상의의 지적에 남이공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지주와 노비 주인들이 어째서 제도의 변화에 극렬히 반대했겠습니까? 자신에게 손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요체要諦는 지주와 노비 주인들이 겪는 손해를 줄이는 것입니다.”

미리 노비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말이다.

“허, 조삼모사에 불과한 계책일세!”

“하지만 조삼모사의 고사에 등장하는 송나라의 저공狙公은 원숭이들을 속이는 데 성공했지요.”

“우상께서는 사람들을 다 바보에 머저리들로 아는가?”

“바보에 머저리들 맞습니다.”

남이공은 당당하게 답했다.

마치 1과 1을 더하면 2가 나온다는 것처럼 당연한 말을 한다는 투라, 이상의는 일순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찌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에 남이공은 오래 품어두었던 생각인 양 늘어놓았다.

“사람을 대대로 노예로 부려먹는 저열한 습성은 오랑캐들 사이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이를 금하고 폐지한다면 해동海東의 국위를 선양하게 되며, 개인의 소유로 예속되어 있던 인구의 절반이 백성으로 풀려나 나라의 근본이 배로 탄탄해질 것인데, 이로써 더욱 부국강병富國强兵하면 아조의 성세는 더욱 영화로워져 백성 모두가 광대한 은덕을 입게 될 텐데, 알량한 손해를 감수하지 못하여 이 같은 성업을 훼방하니 과연 원숭이와 다를 바가 어디 있겠습니까?”

“…….”

“그저 먹고 싸지르며, 당장 손에 쥔 것을 지키고 눈앞의 것을 낚아채는 건 짐승들도 할 줄 아는 짓입니다. 그 이상은 하지 못한다면, 짐승이라는 뜻이겠지요.”

오늘날의 무수한 지주와 노비 주인들이 그러하니, 짐승인 원숭이와 다를 바 없고 고사에서 그러했듯 조삼모사에 당하고야 말리라는 확언이었다.

그 기세에는 이상의마저 주춤할 정도였다.

“……음.”

남이공은 확신했다.

강경한 수단은 먹히지 않는다. 그건 200년 장대한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당장 대왕의 권세에 갖은 수단을 접목한다면, 당분간은 일양즉양도 성과를 드러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이공이 단호하게 덧붙였다.

“이로 인하여 대왕의 권세도 부치고 치세마저 다할 즈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이보시오. 우의정.”

이상의가 제지했다. 남이공의 발언은 신하로서 적절치 못했거니와, 어전이라는 장소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남이공은 제 말을 이어나갔다.

“대왕께서 미리 안배해두신 바가 많으므로 세자의 후계는 공고하고 세인의 기대 또한 크지만, 성업을 거듭 이룩하신 대왕께는 미치지 못합니다. 세자가 막 대위를 이어받은 시점에 팔도 각처의 뿔난 원숭이들이 다시는 기회가 없다 여기고 일제히 소동을 일으킨다면, 세자라도 물러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

파격적인 발언에 이상의는 입술만 말고서 쉬이 답하지 못하는 동안, 남이공은 용상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말했다.

“신의 불충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신이 생각한 건 오롯이 인습의 철저하고 항구 불변한 폐지뿐이지, 다른 데 있지는 않사옵니다.”

왕이 답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망극하옵나이다.”

자칫 분위기가 꺼림칙해질 수 있었던 순간이 지나가자, 이상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의정의 계책을 따라 노비의 거래를 금지한다면 분명 그들 가치의 폭증을 어느 정도는 저지할 수 있을 테고, 나아가 제도를 항구적으로 폐지할 때도 도움이 될지 모르나, 단지 그뿐이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이상의가 단호하게 말했다.

“노비가 누군가에게 억류된 재산에 불과하고, 일천즉천一賤則賤의 원리가 유지되는 한 노비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소! 맺어줄 짝이 없다면 양천良賤 통혼通婚이라도 시켜 노비의 숫자를 늘려댄 것이 이미 뼛속까지 스며든 흉악한 폐습이 되었는데, 우의정의 방식은 단지 오늘날 기세의 날카로운 예봉銳鋒만 꺾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무엇도 바꾸지 못한다는 말이외다!”

마치 남이공의 기세에 지지 않겠다는 투였다.

그러나, 남이공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영의정께서는 노비 없이 생활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남이공은 여유로운 태도로 덧붙였다.

“소관은 흉내나마 내보았습니다.”

“…!”

“직접 경험해보니 노비들이 하는 일이 많고 번거로워, 한평생 구습을 쫓으며 썩은 선비腐儒로 살아온 소관으로서는 옳은 정신을 차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기간에 지주와 주인들에게서 노비를 빼앗을 수 있겠는가?

“다른 썩은 선비들 사이에서는 소위 육족六足이라 하여, 출타할 때는 나귀에 노비를 반드시 대동케 하여 안팎으로 수발을 드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기므로, 노비는 그들에게 수족手足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노비를 가져간다는 건 막대한 재산적인 손실 외에도, 지주와 노비 주인들에게서 사지를 잘라가는 꼴인 셈이다.

과연, 나라의 대업이자 백년대계라 하여 멀쩡한 몸에서 손발을 잘라가고자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꺼이 응할 수 있을까.

“인습을 철폐하는 과정은 최대한 은밀하면서도 간교해야 합니다. 조삼모사가 대수겠습니까?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씩 빼내어야지, 단김에 쇠뿔을 뽑겠다 하여 저의와 결과를 분명히 드러낸다면 원숭이들의 원성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골수까지 스며든 중병을 치료할 때는 무작정 독한 약만이 능사가 아니라, 정교한 처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음!”

“거래를 엄금하는 것으로는 과연 단기간에 근본적인 효험을 바라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세간의 반발이 없지는 않을 것이거니와, 예봉을 꺾은 다음에는 차후의 전략을 논의하고 도입하는 것 또한 수월해질 것이므로 이게 전부라 여기시면 아니 됩니다.”

남이공의 장광설에 이상의는 반박할 거리가 없었는지, 재차 침음과 함께 침묵을 지켰다.

그 어색한 침묵이 승자를 가려냈다.

그리고 왕이 못을 박았다.

“두 사람 모두 나의 명령과 바람을 진심으로 받든 데는 여지가 없으나, 이를 실현해내는 건 별개의 문제고 우위는 좌의정에게 있는 듯합니다.”

남이공이 고개를 숙였다.

왕은 마저 말했다.

“일양즉양은 분명 파격적이면서도 문제의 근원을 확실하게 해결할 방안이지만, 지적대로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누 백 년 간 진전의 시도와 실효가 있었지만, 오늘날 조선의 상태가 증명하는 건 결국 퇴행이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유지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일양즉양은 그 목적과 결과가 너무나 분명하므로 재산과 편의를 금세 잃어버릴 지주와 노비 주인들에게서 강력하고 일괄적인 반발을 면할 수가 없는데, 좌의정의 단순히 거래를 금지하자는 건 이를 회피하는 교묘함과 장기적인 이익이 있습니다.”

왕이 정리하자, 남이공에 이어서 이상의도 고개를 숙여 수긍했다.

임하는 데 있어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마음만 앞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법.

세 사람의 합의가 한 데 이르자 왕이 부연했다.

“좌의정의 정책을 입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처에 산재한 노비의 수와 신원부터 분명히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좌의정의 방식일지라도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겠지요.”

“실로 그러하옵니다.”

당사자인 남이공부터 당연하다는 듯 인정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그뿐이겠지요. 영의정?”

“예에, 전하.”

“의정부에서 각 읍 각처에서 노비의 수와 신원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삼가 왕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왕은 두 신하들을 흐뭇하게 둘러보았다.

“두 의정이 모두 나의 숙원을 실현해주고자 이토록 애써주니, 조심스럽게 말하건대 나는 두 분에게 군신君臣의 관계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왕의 말에 이상의와 남이공이 모두 황송하다며 몸을 웅크렸다.

“일이 이만큼 진전되니 이미 벌써, 조선 사람이 같은 조선 사람을 억류하고 구속하며 물건이나 짐승처럼 여기게 되는 끔찍한 구습의 폐지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두 의정께서는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이상의와 남이공은 왕이 각자 건네주는 과자를 받아먹고는 물러나는 예를 올렸다.

* * *

며칠 뒤.

의정부의 주도로 전국에서 호구조사가 시행됐다.

본디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와 황해도, 전라도 다섯 곳은 선혜법의 시행을 위해서 최근 호구조사가 완비됐다.

그런데도 다시금 호구조사를 시행하는 건, 이전까지 천민과 노비가 조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건 다행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리마다 노비를 보유하고 있을 가정은 지주나 향반鄕班 등 소수에 불과하므로, 크게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눈치 빠른 그들에게 전례 없던 노비 조사는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받아들여졌다.

호구조사란 것이 보통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거늘 오롯이 ‘노비’의 수효를 확인하고자 추가적인 조사를 시행한다?

이미 중앙에는 왕과 두 의정이 연일 회의를 가졌고,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듯 입단속까지 단단히 이뤄져왔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으리란 의심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유지들의 경각심이 작지 않사옵니다. 이미 몇몇 불손한 종자들은 몰래 노비를 숨기다가 적발되기까지 했으니, 어떻게 해야겠사옵니까?”

좌의정 남이공이 탄식하며 보고했다.

이에 영의정 이상의가 연이어 왕에게 제안했다.

“호구조사 자체는 어떠한 피해를 유발하지 않음에도 유지들은 지레 짐작하여 국가의 사업을 훼방하니, 이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아니 되옵니다!”

강경한 발언에 남이공이 즉각 반박했다.

“유지들이 의심하여 회피하고 국가의 사업에 해악을 끼치는 건 백 번 벌주어 마땅한 일이나, 섵불리 반응하였다간 바위를 들추는 것과 같아, 여러 벌레와 같은 종자들이 국법에서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인습을 철폐하는 건 나라의 백만 년 대계인데, 고작 벌레와 같은 종자들이 두려워 대업을 행함에 있어 눈치라도 봐야 한단 말이외까?!”

“사람이 벌레를 피하는 이유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성가시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사업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남이공이 타이르자 이상의는 당치도 않다는 듯, 홱 고개를 돌리고는 고했다.

“신에게 명해 주신다면 불온하고 불충한 종자들을 모두 사로잡아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성급하고 과격하게 조처를 시행했다간 대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도 전에 난관에 부닥칠 것이옵니다. 부디 상량하여 주시옵소서.”

두 사람의 간언에 왕은 탄식과 같은 날숨을 토해내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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