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302화
영의정과 좌의정이 각자 내놓는 해답은 달라도, 비협조적인 유지들에게 학을 뗀다는 건 일관적이었다.
다들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위치인지라 당연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이 그 이익과 특권을 좁쌀만큼이라도 빼앗기기 싫어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반응.
그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와는 별개로, 물이라면 아래로 흐르듯이 인간의 탐욕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부는 그렇지 않겠지만, 일부는 어디까지나 일부.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이 당연한 현상에 순응하지는 못할지라도 인정은 해야 했다.
“성인聖人이 지양하고 학자가 회피하며 두 분처럼 힐난할지라도, 몇 마디 말과 불쾌한 감정이 원숭이가 원숭이 아니도록 만들 순 없고, 벌레가 벌레 아니 되게 할 수도 없지요.”
영의정과 좌의정은 조삼모사의 고사를 인용하거나, 성급한 대응을 마치 바위를 들어서 그 밑의 벌레를 놀라게 만드는 것처럼 표현하면서 솔직한 인상을 드러냈다.
꽤 노골적이었던지라 왕은 두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대신 해소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혐오감이 국가 정책의 근간이 될 수는 없는 노릇.
“두 분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오시면…….”
“조사에 의도적으로 불응한 진상이 명백히 드러났다면 국법에 따라서 처결하고, 증좌는 없으나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따로 기재만 하게 해두십시오.”
그러자 이상의가 신나서 물었다.
“나중에 처벌하기 위함이옵니까?”
“전국의 호구조사가 다 말미에 이른 뒤에 다시금 확인하여, 사실과 기재된 바가 다르다면 응당 그 역시 국법에 따라 처벌해야겠지요.”
“지극히 온당한 처사이옵니다.”
“그저 법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미리 바위를 들춰 벌레들을 놀라게 하지는 말고.”
“실로 영명하십니다.”
이상의가 거듭 호들갑을 떨었다.
어물쩍 넘어가지 않겠다는 게 마음에 든 걸까.
당연한 조처다. 정책을 시행하고, 이를 정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공정함이다.
일부의 부정을 방관한다면, 부정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되려 법에 순응했다는 이유로 벌을 주는 꼴.
그리고 그것을 나라가 장려하는 형국이 되어버리니, 응당 상하上下를 다 아울러 분별이 없어야 하고 부정을 용납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에 남이공이 덧붙였다.
“의심스러운 자들을 기록할 때는 특별히 기밀에 공들이지 않게 한다면, 우매하고 우유부단한 자들은 차라리 후환이 없기를 바라고서 조사에 정직하게 응하는 이득 또한 있을 것이옵니다.”
“대신 부정한 자들은 악착같이 기록을 회피하거나 지우려 들지 않겠는가?”
“그 부분은 기밀에 공을 들이더라도 예방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린 구석에서는 반드시 악취가 새어 나오기 마련이므로 부정한 자를 포착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소문만 캐물어도 더러 잡힐 테니까.
노비는 금송아지처럼 집안에 숨겨둔다고 역할을 다하는 존재가 아니다.
더군다나 옆집의 숟가락과 젓가락 개수도 아는 시대.
금송아지도 아닌 노비를 숨긴다고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숨길 수 있을까?
부패하고 부정한 관리 및 아전과 결탁하여 입막음만 하고서 들춰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전부일 따름이다.
“또한, 유지가 부정을 저지르려면 반드시 목민관이나 아전과 결탁해야 하는데 유난히 부정과 부패가 심한 사람은 증좌를 만천하에 알린 뒤 제거하면, 여러모로 이익이 많을 것입니다.”
남이공의 단호한 발언에 이상의가 놀라서 물었다.
“살수殺手를 쓰자는 말이외까?!”
“법대로 하더라도 죄를 온전히 물기 어려운 자들이 있습니다.”
관직이 높거나, 중앙과 인맥이 두터와 그러한 자들을 두루 우군으로 갖춘 자들이 보통 그러했다.
“그런 자들이라도 처벌은 피할 수 없으며, 피하고자 한다면 비법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응징하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으음……! 그건 그것대로 너무 큰 반발을 일으키지는 않을는지 우려되오만.”
이상의가 인습을 대할 때와는 정반대로 유약한 모습을 드러냈고, 남이공은 정반대로 단호하면서도 무자비했다.
“죄인이 쌓아 올린 권세와 인맥이 모두 부정의 증거인데, 여명餘命을 붙여둔다면 반드시 재기를 노리겠답시고 죄과를 더할 것이므로, 이러한 악적惡敵은 살려두지 않는 게 일벌백계一罰百戒을 거둘 뿐 아니라, 나라와 무고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이에 왕이 답했다.
“훗날 논란의 여지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죄인이 극도로 흉악한 데다 권세까지 갖추어 국가와 질서, 만백성과 법률을 모조리 기망한다면 반대로 국가와 질서, 만백성과 법률이 자위自衛로써 응분의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의가 물었다.
“장차 그러한 행위를 스스럼없이 수행하다, 본래의 의도마저 변질한다면 결과 또한 달라지지 않겠사옵니까?”
“나 역시 우려하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
“하온데…….”
“우리가 직면한 건 국가의 백년대계입니다. 해충과 같은 작자들이 당당하게 훼방을 놓게 둔다면, 이 사업부터 변질할 것입니다.”
매사에 정의와 순리대로 맞설 수는 없다.
상대가 매사 정의롭거나 순리대로 맞서오진 않기 때문이다.
조조는 수춘을 함락시키기 위해 애꿎은 왕후王?의 목을 빌렸지만, 이쪽이 빌리고자 하는 목은 알량한 이익을 위해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고 법을 기만하는 자의 것이다.
더욱이 나라에서 얻고자 하는 것 또한 경쟁자의 땅뙈기가 아닌 국가의 잠재력과 백성의 절반을 잠식한 채 대대로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시켜온 사악한 관습의 철폐.
“여기서 도덕의 엄격한 추구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의 재현과 같지요.”
물렁함이 과도하여 도리어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성상의 뜻이 이처럼 분명한데, 신들이 어떻게 왈가왈부하겠사옵니까? 삼가 받들 따름이옵니다.”
남이공이야 이미 강경책을 거론한 장본인이었으므로, 수긍할 사람은 이상의뿐이었다.
그래도 썩 내키지는 않는 기색.
이에 왕이 타일렀다.
“아무나 하나 죽이고 시작하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일단은 지켜보지요. 과연, 백성 중에 나의 도덕심을 시험할 정도로 사악한 자가 얼마나 있는지를 말입니다.”
* * *
추가 호구조사에 있어 의심스럽거나 불온한 태도로 임하는 자는 따로 기록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여기에다 이미 증좌가 드러나서 적발된 자는 여지없이 처벌하니, 유지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몇몇 유지가 인맥을 활용하여 정책의 근간을 알아보고자 하였으나, 명확하게 드러난 정상은 없었고 돌아오는 답은 오직 처신 잘하라는 것뿐.
그래서라도 유지들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떨게 만든 것도 잠시.
몇몇 죄인이 노비를 숨기다가 처벌받은 사례를 제외하고는 다른 후속 조치가 없자, 유지들의 긴장도 차차 풀려갔다.
한양에만 국한되어 있던 실방사의 활동이 전국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알지 못한 채.
실방사가 응달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뒷받침하는 동안, 양지에서는 조정의 다른 사업들도 바쁘게 돌아갔다.
전라도의 선혜법은 거의 완성되었고 수운의 발달로 태안반도의 우회는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청래도에서 언문의 교육이 교재를 통해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동안 산해관을 두고 서관과 동관으로 나뉜 해안에는 토벽과 목책이 거의 완성됐다.
그리고 해도該道로 파견된 우의정 김류는 토벽과 목책 위로 빠르게 석벽 쌓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 * *
겨울이 왔다.
“옛날로 돌아온 기분이구나.”
오래간만에 찾아온 경복궁 터의 풍경도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궐은 여전히 재건되지 않았으므로, 웅장한 복층 전각인 경회루는 돌기둥만 남았다. 연못은 때마침 청소한다고 물을 비워놓았다.
제법 수고스러운 일이다.
궁궐은 재건된 후원의 첨성대를 제하고는 쓰는 사람도 없건만, 청소는 틈틈이 하니까.
특히 연못은 시시각각 흙먼지와 낙엽이 쌓여 바닥에 깔리니, 잠시만 날이 가물어서 흐르지 않고 고이면 날벌레가 꼬이고 물은 썩어 악취를 풍긴다.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혐오 시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구경할 사람도 별로 없겠다, 관리의 편의만 따지자면 그대로 메워버리는 게 지극히 편한데도 그리하지 않고 거듭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옛 기억 속에서 경복궁은 엉성하게나마 재건되어 있었고, 그럭저럭 보기 좋은 흥취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생에서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지라 정작 조선 시기의 경복궁은 본 적이 없다.
남은 건 돌로 된 바닥이나 계단, 기단 따위뿐.
그렇다면 나는 경복궁의 재건을 바라는 것일까?
세자에게 한 당부는 거짓도 빈말도 아니었다.
무리한 궁궐의 재건이 국가에 도움 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조선은 정확히 ‘무리한 궁궐의 재건’을 그대로 이행하여, 거의 망해가던 나라가 확실히 망하게 됐다.
아쉬움만으로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재건을 바라고서 경복궁의 터를 관리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마음속으로 그릴 뿐이다.
눈이 보이는 건 오직 터고, 기억조차 이제는 흐릿하여 세세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경복궁은 그려진다.
조선은, 고려라는 다 썩고 죽어가는 구시대의 나라에서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다시금 그들이 가져야 할 안녕과 평화를 돌려준 나라다.
건국자인 태조는 직접 사병까지 이끌고서 중원의 홍건적紅巾賊, 원나라 및 그들 내부의 군벌, 바다 너머에서 팔도 각지로 쳐들어오는 왜군까지 모조리 격퇴했고, 새로운 나라의 주축이 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들은 삼정三政의 문란을 시정하고 권문세족權門世族을 약화하여 공사公私로 착취당해온 백성들을 해방했다.
조선은 동서고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권력다툼이나 전쟁의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은 임란이나 호란이라는 여느 다른 나라 같았으면 망하고도 남았을 상황에서도 끝끝내 망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조선을 완전히 무너뜨린 건 말기에 이르러 초심을 완전히 상실하여, 조선이 타파하고자 나라까지 무너뜨리고 새로 새웠던 삼정의 문란이 재개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경복궁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초심을 갖추었을 때 최초로 세워졌다.
궁궐에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을 붙인 정도전은 출처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景福을 모시리라.
여기서 말하는 이미 취하고 배불렀다는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 백성과 신하를 의미한다.
조선의 신민이 즐겁게 술에 취하고 편하게 배 부르는 한, 임금께서는 큰 복을 누리시라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는 과연 정도전이 말한 대로 시작했고, 끝을 맺었다.
그리고 정도전은 이렇게 말한 자리에서 함께 덧붙였다.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
그래서 나는 터만 남겨놓아도, 아니, 터만 남겨놓았기에 경복궁을 느낀다.
먼 훗날에는 나라의 사정이 이보다 개선되어 궁궐의 재건도 부담이 아니게 될 수 있겠으나, 당장 이 순간에는 재건되지 않았기에 경복궁은 더 아름답다.
터만 남은 경복궁을 계속 관리하는 건 이러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함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