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303화
노비제의 폐지 시도와 그에 따른 현실적인 저항은 내게 방황을 안겨주었다.
본의의 방향과는 별개로, 여기에 인간적인 저항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악인가? 엄벌해야 할 죄인가?
이러한 의문에는 차마 답하지 못한 채 나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보복을 가하고 쉬운 길을 선택했다.
소수의 불령한 무리에게 호된 처벌을 내림으로써 일벌백계하고, 다수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 스스로 근신케 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아니면, 적어도 정답이기라도 한가?
다시금 뒤따르는 의문에도 나는 시원하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대신 경복궁 터를 찾았다.
평소 기거하는 경운궁에서는 보통 집무도 보는 데다, 장소부터 비좁았고 궁인들이 산재하므로 마음이 썩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방문한 경복궁에서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터만 남아버렸지만, 그래서이기에 경복궁은 더욱 아름답고 정갈했으며 본의에 걸맞고 자유로웠다.
물리적 재현에 구속되지 않았기에 도리어 본의에 부합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날의 경복궁에는 터만 남아버렸기에 도리어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매력과 철학이 있다.
거기에 내가 추구하던 해답이 있었다.
“경복궁으로 드러나는 조선의 건국 의의와 철학을 백성들도 알게 된다면, 그들도 나의 진심은 조금은 깨달을까.”
조선은 지독한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얼룩져, 지옥이 되어버린 이 땅에 군신君臣이 합심하여 백성들이 응당 가졌어야 했을 것을 되돌려주고자 건국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무려 과반에 달하는 백성이 노비의 굴레에 속박되어 응당 그들이 누렸어야 했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노비제와 오늘날 노비들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극히 기형적이며, 그래서 비정상적이다.
당장 전조前朝 고려 때만 하더라도 노비의 비율은 추정으로 5푼, 혹은 1할에 불과했다.
이렇게 소수에 불과했던 노비가 과반으로 폭증한 건 한순간에 벌어진 재앙이 아니다.
창업 군주인 태조부터 노비제를 약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세가 거듭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도 달라졌다.
위정자가 타락하고 제도가 퇴행하면서 가진 자들은 재산을 늘리고자 노비를 증식시켰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어려운 때를 맞아 살아남고자 자신을 팔았으며, 제도는 이러한 작태를 용인하고 권장하며 눈감아주는 쪽으로 퇴락했기에 오랜 세월을 거쳐서 노비가 양산된 것이다.
즉, 나라가 초심을 잃고 몰락해가는 과정이자 결과로서 노비가 폭증해온 것이다.
또한, 삼한의 노비제는 중원과도 달랐다.
삼한과 비교하여 중원의 제도가 항상 최선인 것은 아니나, 노비제에서는 분명 그러했는데, 중원은 노비의 굴레가 세습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삼한의 제도는 대대로 세습되니, 노비의 수가 줄어들기 힘든 것이다.
“개국 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
조용히 비책을 뇌까렸지만, 말만큼은 쉬웠다.
초심이란 저도 모르는 사이 없어지고, 잃고 난 뒤에는 다시 찾기 어려운 것.
이를 되찾는 건 이미 지워져 버린 기억을 애써 되살리는 것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렵군.’
과연 말만 쉬울 뿐이다.
그러나, 실마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이 시기의 여느 군주들도 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까? 외부로는 경쟁이 치열하고, 내부로는 폐단이 축적된 시점에서 열국이 선택한 건 크게 두 가지였다.
바깥으로는 세계 각지를 침공하여 식민지를 확보하고, 이렇게 국위를 선양하고 시장을 증대하면서 안으로는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동질감을 드높임으로써, 산재한 폐단으로 인한 내부 분란을 최대한 억제한 것이다.
“……민족주의라.”
미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마냥 밝은 면만 있지는 않다.
그러나, 무수한 열강이 민족주의를 고취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근본적인 제도나 질서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도 내부의 결합을 증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니까.
나는 그런 편법의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노비까지 예외 없이 조선의 백성으로 포함하여서, 모두에게 동질감과 유대감을 안겨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또한 저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의 백성이라는 공감대가 생기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게 만든다면, 자신과 동류 절반이 기형적이고 불합리한 제도에 속박된 데 반감이 들지 않을까?
* * *
“그래서 이렇게 두 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영의정 이상의와 좌의정 남이공.
저 혼자 서관과 동관에 장벽을 세우고자 떠난 우의정 김류를 제하고, 근래 자주 편전을 찾는 의정들이다.
이번에는 참석자가 그 둘만이 아니었다.
노비제의 폐지가 단숨에 이뤄질 대사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당연히 보다 먼 미래까지 아우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후왕後王을 논의하는 자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저하.”
이상의가 서안 오른편에 자리한 세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에 세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왕이 말했다.
“내가 두 분을 청한 건, 작은 생각이 떠올라 인습의 폐지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상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백성들이 귀천貴賤을 나누어 서로 차별하는 이유에는 실상 검증하기 어려운 신분 외에는 근거가 없습니다.”
“…….”
이상의와 남이공이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식자들이 하늘과 땅처럼 여기는 반상의 구분에 근거가 없다는 건, 충분히 파격적인 발언이었으니까.
“오늘날 군림하는 자들은 본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그렇게 지내온 명가名家의 자손들로, 근거가 전혀 없다고는 하지 못하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구분한다는 말입니까?”
“그들 스스로 족보를 만들어 관리해왔으니, 그것이 증거이옵니다.”
“그들 스스로 만든 족보가 어떻게 증거가 되겠습니다. 정녕 영의정께서는 즐비한 자칭 명문가 중 족보를 위조한 가짜 명가가 하나도 없으시리라 생각하십니까?”
“……으음.”
왕은 실소하며 손을 저었다.
“족보의 진위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합시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요.”
“예에.”
이상의도 이견 없이 수긍했다. 논제와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더 떠든다고 얻을 것도 없으니까.
“나는 인간의 귀천과 고하 자체를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분명 사람 사이에는 격의 차이라는 게 있어요.”
당장 왕가만 하더라도 영명하신 태조대왕께서 개국하신 이래, 나라와 백성들에게 힘쓴 여러 열성이 있는 데 반하여,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폭정을 일삼거나 선조나 인조처럼 비행을 거듭한 자가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 신분과는 얽매이지 않는 귀천과 격의 고하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
그러나, 이 역시 본의와는 다른 이야기다.
왕은 멋쩍게 미소지었다.
“곁가지에 불과한 이야기를 내가 너무 길게 하는군요. 경들을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아니옵니다.”
이상의는 긴장하면서도, 동시에 그 긴장이 풀리는 대조적인 기분이 들었다.
긴장한 연유는 왕이 신분과 귀천을 둔 사고가 난해하면서도 위협적이기 때문이었고, 긴장이 풀린 연유는 이게 본론이 아닌 ‘곁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진의가 무엇이건 당장 이 난처한 상념이 즉각 결과로 비화하지는 않으리라는 듯.
거기서 이상의는 대조적인 감정을 느끼며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상의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렇다면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백성들이 서로 신분으로 배척하는 게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겠사옵니까?”
왕 또한 본론을 찾아가려는 질문이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답했다.
“신분은 서로가 즉각 분간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인데, 이를 붙잡고 서로 배격하기보다는 당장 분명하게 보이는 공통점을 통해 동질감을 공유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당장 분명히 보이는 공통점이라면.”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 말입니다.”
“……!”
“나는 물론이고, 사대부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팔도에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이들 중 조선 사람이 아닌 이는 없습니다.”
근래 소수의 외부인이 새롭게 터를 잡긴 했다.
본디 표류한 홍모이였다가, 조선어를 익히고 공로를 세워, 이제는 각자 관직을 받고서 본분을 다하는 이들이라던가.
그들이 진정 조선 사람이냐는 의문은 잠시 뒤로하고…….
“백성들이 서로 신분을 비교하며 배격하거나 무리 지으면서 각자 다른 존재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조선 사람이라는.
“백성들 사이에서 그런 공통점을 인지할 기회를 제공하고,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할 계기가 생긴다면, 같은 족속이 나머지 절반의 같은 족속을 억류하고 속박한 현실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왕의 제안에 남이공은 무척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되물었다.
“제도 자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인습因習을 공략하자는 하교이시옵니까?”
“좌의정의 해석이 무척 명료합니다.”
제도 이전에 사람이 있다.
제도가 유지되고 변모하는 계기 또한,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감정 때문이다.
그것이 제도의 토대인 셈이다.
그리고 토대가 무너진 건물은 아무리 드높고 견고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남이공은 공손히 끄덕임으로써 치하에 답하고는 다소 경외감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이는 만백성을 공평하게 자식처럼 포용하시는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이 전제하지 않고는 상상조차 불가한 계책이옵니다.”
이에 이상의 또한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과연, 왕의 발상은 사대부와 노비를 신분 이전에 모두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다 자식처럼 여기지 않고서는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했으니까.
부모에게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란 없듯이 말이다.
왕이 말했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의 작은 방도가 대업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에 이상의가 놀라 답했다.
“작은 방도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사옵니다. 백성들이 그간 망각한 가장 본질적인 공통점을 일깨운다면, 대업의 성취도 크게 가까워질뿐더러, 여러모로 이익이 많을 것이옵니다.”
남이공 또한 긍정했다.
“그러하옵니다. 때마침 오늘날의 백성들은 대왕의 인도를 받아 천하에서도 전례 없는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이 특권을 정립하고 명시한다면 아래에서는 깨닫는 바가 있어 충성할 것이고, 위에서는 계도하고 다독임으로써 부응할 것이니, 이는 만백성이 다 화합하는 첫걸음이옵니다.”
두 사람이 극렬하게 찬동하니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하지 않았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렀다.
“두 분께서 그리 생각해 주시니 민망하면서도 고맙습니다. 부디, 나의 계책을 대업에 보태어 큰 성취를 앞당겨주었으면 합니다.”
“삼가 성은을 받드옵나이다.”
두 사람이 깊게 허리 숙였다.
* * *
이상의와 남이공이 각자 과자를 받아먹은 채 어전에서 물러난 뒤.
그동안 어전에서 이뤄지는 논의를 경청하고만 있던 사람이 있었다.
왕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세자는 이 아비의 방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답은 금세 나오지 않았다.
왕은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세자는 고민 끝에 답했다.
“자애롭고 따스하옵니다. 또한, 치밀하고 원대합니다. 강대하면서 치명적이기도 하옵니다.”
“세자가 내가 한 말을 깊게 보았구나.”
“…….”
세자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