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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13화 (313/380)

인조, 명군이 되다 313화

“도서관 건립으로 중인들이 소란스럽사옵니다.”

어전.

당상이 시립한 가운데, 국가의 재정을 전담하는 호조판서 김신국이 말했다.

“영의정의 간언으로 도서관을 설치하게 되었으며, 또한 도서관에서는 백성들이 서적을 탐독할 수 있다고 하교해 주신 바가 있으시나 자세한 제도는 알지 못하여 뭇 신하들 또한 궁금해하옵니다.”

공공도서관의 개념은 오늘날의 백성이나 신하들에게는 생소한 것.

처음 거론이 되었을 때는 뜻이 좋은 줄로만 알고서 그러려니 치부하였으나, 공사가 크게 펼쳐지면서 온 한양의 관심거리로 떠오르자 다시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호조판서께서는 기탄없이 물어보세요. 아직 구상되지 않아 미진한 부분은 있으나, 최대한 알려드리겠습니다.”

김신국은 허리를 숙여 왕의 관대함에 답하고는 물었다.

“도서관에서는 백성이 도서를 탐독할 수 있다고 하교하셨는데, 이 백성이란 정확히 어떤 부류를 의미하옵니까.”

“흐음, 호조판서께서는 백성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시고 마치 거기에 부류라는 게 있기를 바라시는 듯합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씀이시옵니까?”

김신국의 질문에 중신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서란 진귀하며 값비싸며, 지식이란 때론 누군가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다.

유학에 있어선 백성들을 교화하고 깨우치는 것을 높게 치지만, 관리나 식자들로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지식의 말단만을 어설프게 함양한 자들이 지식인을 흉내 내며 채우다 만 빈 수레처럼 시끄럽게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역사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장서藏書를 비축해둔 공간에 불특정한 외인의 왕래를 허용했다간, 도서가 파손되거나 분실되는 사고를 방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선현의 말씀을 곡해하여 왜곡된 학문을 신봉하고 설파하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 양산될 수 있사옵니다.”

김신국이 꺼림칙한 얼굴로 말했고, 이에 중신들 역시 예외 없이 공감했다.

“백성의 출입을 구분 없이 허용한다는 것이 곧 시정잡배들이 들락거려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왕 역시 우려하는 바였다.

책이라는 게 워낙 귀하고 값졌으니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간 인파가 무수히 오가는 가운데 부주의한 자나 부정한 자에 의해 도서가 파손되거나 도난당할 공산이 컸다. 그런 사고가 발생한다면 도서관은 절대 오래 운영하지 못한다. 베푸는 것에도 절도節度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방문자에게 특별한 제한은 두지 않으나, 대신 전, 현직 관리와 동행해야만 합니다.”

다소 엄격한 규칙.

최대한 조여두고서 상황을 보아 차차 풀어나가겠다는 게 왕의 안배였다. 일단 풀어진 것은 다시 조이기 어려우니까.

그러나, 그런 엄격한 규칙이 중신들로서는 도리어 만족스러웠다.

중인 범부들의 난잡한 출입을 우려했는데 관리의 동행이 필요하다면 그럴 일은 없었으니까.

나아가 도서관 방문을 원한다면 일단 관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점 또한, 현직자들로서는 더욱이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동행하는 관리가 곧 보증인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책으로 장난을 칠 사람은 데리고 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며, 혹 문제가 발생했다간 동행한 관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김신국이 다시 물었다.

“도서의 대여는 어떻게 이뤄지옵니까? 외부로 반출할 수 있사옵니까?”

“도서관에는 사서司書를 두어, 탐독하고픈 도서를 요청한다면 사서가 구해다가 빌려줄 것이며, 도서의 외부 반출은 불가능합니다.”

“도서관에는 어떠한 책이 비치되옵니까?”

“학문과 교양 증진을 위한 책 위주로 두되, 공무나 기밀에 관련한 것이 아니라면 불문하고 비치하고자 합니다.”

왕은 도서관에 사서삼경과 그 주해들은 물론이요, 근래 경전 못지않게 떠받들어지는 홍문관의 ‘그 책’이나, 고서 및 여타 도서들도 채워놓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인 건 과제각체科題各體와 경외제록京外題錄, 과문규식科文規式 등이다.

사서삼경이 교과서라면 과제각체科題各體는 역대 과거 출제지, 경제외록京外題錄은 우수 답안지, 과문규식科文規式은 논술수험서에 해당했다.

또한, 오래전에 명맥이 끊겼던 수석합격자의 답지 모음, 동국장원책東國壯元策의 재간행도 도서관의 부흥을 위해 고려될 만했다.

무수한 수험서가 증명하듯, 옛날 사람들이라고 어설프게 공부하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한 회의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만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달했고 이들은 모두 합격할 때까지 학문에만 수십 년을 쏟았다.

경쟁이 이토록 살벌한데 어떻게 주먹구구로만 배우겠는가.

소위 명문가名門家로 칭해지는 집안들은 후손을 도와주고자 선조들이 남몰래 남겨놓은 시험 공략서나 족집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수험서들은 조선 후기가 되어서는 시들해진다.

나라가 병폐에 찌들어가면서 과거가 공정해지지 못하고 문란해지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고, 다른 이유는 필사에 의존한 복제라는 절대적 공급 부족에 명맥이 끊겨갔기 때문이다.

전자는 당장의 조선에는 해당하지 않았고, 후자는 이번 역사에서 인쇄소와 도서관의 도입으로 기우가 됐다.

무수한 사람이 찾고 탐독하며 구비하려는 한, 공급은 그치지 않고 수험서의 명맥 또한 끊기지 않을 테니까.

왕이 말했다.

“경들께서도 무척 만족하리라 확신합니다.”

* * *

커다란 규모의 공사에도 별다른 소란이 따르지 않으니, 한양 백성들의 의문과 기대는 차차 잦아들었다. 도서관이라는 생소한 개념조차 흘러가는 일상에 파묻혀서 떠내려간 것이다.

그동안에도 세자의 강론은 계속됐다.

무수한 사람이 서궐을 거쳤고, 한동안 하향세를 타던 제자들의 수는 더 줄어들지 않고 고정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동궁전 뜰에 남은 자들은 다양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최초 세자의 인망과 명성에 기대 모여든 양천良賤의 범부들부터, 홍문관의 책에 매료된 선비나 소문을 듣고 고향에서 한양까지 찾아온 향반까지 귀천에는 예외가 없었다.

제자들은 제각기 신분이 다양하고 서궐을 방문하게 된 계기 또한 저마다 달랐으나, 한 가지만은 분명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끝내는 세자와 강론에 매료되어 마지막까지 동궁전 앞을 지켰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세자가 강론하며 의중에 둔 바가 있어, 열성적인 제자들은 그 뜻에 매료되기까지 했으므로 하늘과 땅처럼 분명했던 신분의 간극조차 동질의식과 사상의 유대 앞에서는 작은 틈조차도 되지 않았다.

신분을 극복해버린 새 시대의 첨병이 수백 명이나 생긴 것이다.

“……강론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세자는 책장의 마지막을 넘겼다.

홍문관의 책이 아무리 방대한들 강론이 꾸준하게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끝을 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일상처럼 세자의 강론에 참여하던 제자들은 일독의 종결終結에 비참한 표정을 지었다. 예고된 결과이기도 했으나, 그들로서는 세자의 강론이 영원토록 그치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이에 세자가 자리한 누각의 기둥 바로 앞에서, 마치 하늘을 올려다보듯 고개를 치켜든 소년이 말했다.

“저하…….”

“말씀하시게.”

“정녕 이것으로 끝이란 말입니까?”

소년의 물음과 함께 제자들이 일제히 누각을 바라보았다.

세자가 답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으니, 더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책은 끝났으나 저하께서는 가르침을 이어가실 수 있으시옵니다. 부디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계속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소년의 간청에 계속 침묵했던 다른 제자들 역시 간절한 목소리로 찬성했다.

말만으로는 절박한 기분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듯, 한 제자가 엎드려서 탄원하자 다른 제자들 또한 엎드리니 뜰에는 검은 뒤통수와 알록달록한 등판만이 빼곡하게 드러났다.

세자는 곤란할 따름이었다.

“나는 특별히 학문을 성취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여전히 배움을 구하는 신세인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스승이 되어서 계속 가르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엎드리느라 머리를 누각의 그늘로 들이민 소년이 웅크린 채로 답했다.

“본디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므로, 성현께서도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저하께서 스승을 두어 배우는 중이라 하여 제자를 두지 못하겠사옵니까?”

소년의 능숙한 대답에 제자들이 다시금 찬동했다.

소년의 이름은 유형원柳馨遠.

부친 예문관藝文館 말직인 검열檢閱을 지낸 유흠劉歆이었던 만큼, 반가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을 접했다.

나아가 세자 이전에는 홍문관의 부교리 이원진李元鎭과 공조판서 김세렴金世濂을 각기 스승으로 모셨으니, 세자의 무수한 제자들 가운데 유난히 어린 나이에도 맨 앞에 앉고, 나서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이를 다른 제자들이 제지하지 않는 이유였다.

이전의 역사에서는 자신의 호를 따 제목을 지은 저작, 반계수록磻溪隨錄의 저자였으며 조선 실학實學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이에 세자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대들의 여망이 이처럼 간곡하다면 강론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일제히 반색한 얼굴로 일어났다.

환호가 시작되려는 찰나 세자가 덧붙였다.

“그러나 준비된 강론이 없어 당장 강론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 그대들은 스스로 학문을 갈고닦으며 강론을 통해 깨우친 바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알려주십시오. 실천하지 않는 학문에는 소용이 없으며 베풀지 않는 깨달음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당장은 강론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말에 제자들은 얼핏 아쉽기도 하였으나, 일단은 세자의 마음을 돌린 데 만족하기로 했다.

따지자면 세자의 당부 또한 일종의 가르침이었다.

그것을 실천하지 않고서 강론만을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제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소년 유형원이 답했다.

“저하께서 다시 불러주실 때까지, 저희는 저하의 가르침을 주변에 전하겠사옵니다.”

세자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우려는 있었다.

홍문관의 책을 통해 설파한 가르침은 대다수의 통념과 달랐으니까.

특히 신분 이전에 조선인으로서의 동질의식을 강조한 부분은 일각에서 극렬한 반발을 일으킬 수 있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누군가는 저변에 양천良賤의 분간을 철폐하겠다는 의도를 읽어내지 않았겠는가?

또한 같은 가르침이라도 신분제 정점에 선 왕족이자 왕위 후계자인 세자가 은연중에 드러낸 것과 정반대로 신분제의 바닥에 놓인 인물이 교묘함 없이 투박하게 드러내는 것은 반응이 극단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제자 중 혹자는 일신상에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는 셈이다.

그러나, 세자 자신이 가르쳐낸 제자들에게 배움의 설파를 자중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애초에 제자들로서 스승을 삼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민족으로서의 동질의식을 고취하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감수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이제 와 제자들에게 은인隱人 자중自重을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자에게는 제자들을 보호할 수단이 있었다.

부왕에게서 물려받았으며, 이를 통해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배울 수 있었던 것.

실방사.

그들을 부린다면 각지로 흩어져 배움을 설파할 제자들을 보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자는 제자들을 해산시키고 배웅한 뒤, 곧바로 실방사의 일원이기도 한 동궁내시를 불렀다.

그리고 동궁내시를 통하여 실방사에 제자들의 안위를 부탁하기 전.

동궁내시가 먼저 붉은색의 권자를 내밀며 강조했다.

“매우 위중한 일이라는 예조판서의 첨언이 있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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