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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14화 (314/380)

인조, 명군이 되다 314화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선단이 주유하고 있었다.

배들은 뚱뚱한 유선형에 저마다 수 개의 돛을 찌를 듯이 세워놓고 있었는데, 범선帆船임은 분명하였으나 오늘날 대양大洋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는 양식이 조금 달랐다.

선단은 이민자들을 데리고 청래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조선의 서편西偏은 쇠락하고 부흥하는 여러 세력의 각축장으로 여전히 혼란하고 위험했지만, 그 두 가지는 동시에 기회 또한 의미했다.

서편은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본토의 조선인들에겐 그야말로 모험의 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서徐 형은 무슨 사업을 하실 생각이오?”

한 승객이 면식을 익힌 다른 승객에게 물었다.

모두 고향을 등지고 나온 사람들이었고, 바다를 건너면 예전의 인맥과 연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수사에서 우편郵便을 맡아 편지와 소포를 대신 전해준다고는 하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 또한 멀어지는 법.

모두의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승객들은 다 함께 서편을 개척하려는 주변인들과 면식을 익혔다.

서徐씨 사내가 우물대며 답했다.

“아, 내가 하려는 사업은 기밀을 요하는데…….”

“기밀?”

“미안하게도 그렇소이다.”

서씨 사내가 난색을 드러내자, 처음 그의 사업을 물어보았던 이가 웃었다.

“뭐요… 기밀이라니. 어디서 금 난다는 소문이라도 들으셨소?”

“……!”

서씨 사내가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진솔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반응에, 능청스럽게 추측했던 사내가 실소했다.

“너무 놀라지는 마시오. 서씨 형장만 금 찾으러 떠나는 건 아니니 말이요!”

“그럼…….”

서씨의 은근한 물음에 사내가 끄덕였다.

청래도에는 금광이 많았다. 이미 헤집어진 곳이야 즐비했고, 그럼에도 몇몇 금광은 새롭게 발견되어 현지와 본토의 조선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금광의 수가 개척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정도로 많은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기적을 이룰 경우엔 말 그대로의 일확천금一攫千金하여 단숨에 거부로 떠오를 수 있으므로, 모험과 기회는 찾지만 본전이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무모한 개척자들을 개미 앞의 설탕처럼 꾀어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본토와 서토와의 제도적 차이도 영향이 컸다.

본래 본토는 오래전부터 대국에 금은을 진상하는 작폐를 철폐하고자 의도적으로 귀금속 광산의 개발을 제한해 왔다.

그 제도가 조선이 우뚝 서게 된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 여전히 산과 들을 사사로이 들쑤시는 일을 엄금하고 있었다.

오직 강바닥의 사금砂金을 몰래 잠채潛採하는 것이나, 목숨을 건다면 가능할까.

하지만 서토西土는 막 편입한 외지였고, 이미 개발이 난립해 있었다.

전례가 즐비하고 현지인의 관습이 이미 굳어졌는데 하루아침에 엄격한 법도를 강요할 수 있을까.

조정과 청래도 감영에서는 논의 끝에 결정했다.

번거롭게 엄률嚴律을 적용하여 잡음을 일으키기보단, 금광 개발을 용인하여 세입을 창출하고 국부國富를 증진하기로 말이다.

나라에서 용인하는데 거리낄 게 어디 있겠는가.

무수한 개척자들이 배를 타고 서편으로 향했다.

수운水運에서 압도적인 지분을 가진 내수사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선단은 서편으로 사람을 실어나른 뒤, 빈자리에는 개척자들이 긁어모은 보화와 진귀한 기물을 실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였다.

“어?”

민망해하던 서씨가 문득 놀랐고, 주변 사람들도 일제히 이목을 집중했다.

그 광경에 맞은편 사내 또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의아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이 망망대해에서 놀랄 게 뭐가 있는가.

“……!”

막상 돌아본 사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두 척의 하얀 돛을 단 범선들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사내와 승객들에게는 배의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아직은 서양의 범선을 마주해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이다.

“저 배들은 조선의 배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흉심을 품은 오랑캐들은 아니겠지?”

“오랑캐가 어떻게 저런 배를 몰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명나라의 배가 아니겠습니까?”

“틀린 소리! 처음 이 같은 배를 설계한 사람은 홍모이紅毛夷요. 원래 오랑캐들이 이런 배를 타고 다녔다는 말이오!”

“그렇다면…….”

승객들의 우려가 일파만파 번져나가고, 몇몇 이들은 두려운 마음을 참지 못하여 선원을 닦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개 선원들이라고 어떻게 사정을 알겠는가?

그저 소식만이 사관들을 통하여 신속하게 선장실까지 전해졌을 따름이다.

아직 범선들과의 거리는 지척咫尺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분명 선수를 이쪽으로 향하고는 있으나, 선원은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는 망망대해.

바다 위에서는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다. 쫓아오는 자들이 더 빠르기만 하다면 따라잡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홍모이의 배들은 점차 시야에서 커졌다.

“선장님!”

한 승객이 선장을 알아보고 외쳤다.

이에 갑판에 선 승객과 선원들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이내 시끄럽게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정을 묻고 따지느라 시끄러운 와중 사관들이 몰려드는 승객들을 제지했고, 그럼에도 소란이 그치질 앉자 선장은 호위하는 수병에게서 총을 뺏었다.

“……!”

그 광경에 소란이 일순 잦아든 와중, 선장은 붉은 머리와 이국적인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유창한 조선어로 선언했다.

“응급한 상황이오! 만약 소란을 일으키며 선원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자는, 내가 책임을 지고서 즉결 처형하거나 바다에 빠뜨리겠소!”

흉엄하기 짝이 없는 선포였으나, 본디 배는 선장에게 있어 절대적인 영역이었다.

부주의한 소동과 혼란만으로 무고한 동승객과 선원들이 애꿎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통제가 엄격해지는 건 당연했다.

“선원들은 모두 승객들을 갑판 아래로 내보내라! 그리고 무장을 가져와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라!”

선장의 엄명을 사관들이 닦달했고, 선원들은 호들갑을 떠는 승객들을 갑판 아래로 밀어냈다.

그리고 이내 갑판에는 총기와 도검이 와르르 쏟아졌다.

평상시에는 쓰일 일이 없어, 천에 밀랍을 먹여서 만든 방수포도 대포에서 벗겨냈다.

배裵 제독, 옛 이름 페르바스트는 홍모이 출신으로서 이들의 습성을 잘 알았다.

평상시에는 상인을 행세하며 해상 무역에 종사하다가, 적대국 상선이나 명나라와 같은 중립국 상선 중 취약해 보이는 표적을 발견하면 곧바로 해적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한때는 사략선의 선원이기도 했다.

당시의 해묵은 기억과 경험을 비추어 보아, 서양의 선단이 외부 세력에게 접근할 때의 의도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배裵의 상부인 내수사에서는 상선의 무장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내수사가 왕실의 산하로서 강력한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긴 하지만, 군대가 아님에도 총포와 화포라는 강력한 병기로 공공연히 무장하는 건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 같은 무장을 상비하는 데 있어 드는 비용 또한, 작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로 내수사에서는 상선이라도 무장해야 한다는 배裵 제독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했다.

다른 두 홍모이 동료들이 의견을 같이해도, 그저 무장을 오랑캐들다운 사납고 흉포한 습성으로만 치부하였을 뿐.

정점에 놓인 관대한 주인이 아니었다면 상선의 무장을 끝까지 견지하지도 못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런 식으로 내가 옳았다는 걸 증명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고, 이제 남은 일은 생존하여 현재 상황을 내수사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상선의 무장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방심한 내수사로서는 선단의 실종에도 외부의 공격보단 자연재해를 떠올릴 가능성이 컸고, 그런 상태에서는 또다시 선단이 무방비하게 습격당할 테니까. 최악의 미래였다.

‘배의 숫자는 저쪽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쪽은 네 척에 달했지만, 다가오는 외부의 범선은 두 척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도 미친 것처럼 달려드는 건 이쪽이 해전海戰에 미약한 동방의 세력이라 여겼기 때문인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긴 했다.

동방 바다의 주인은 오롯이 네덜란드와 스페인 제국이었고, 나머지는 정크선에나 의지하는 약해 빠진 미개국이었으니까.

조선만 하더라도 그와 동료들이 나서기 전까지는 널빤지 비슷한 것을 배랍시고 타고 다니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미 범선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화포 또한 충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저 동방에서 범선을 막연히 답습해 만들어진 선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놈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완전히 격멸해버린다. 생존자는…… 남겨두지 않는 게 좋겠지.’

저 무모하고 호전적인 해적들이 포르모사로 돌아가 어떤 소문을 퍼뜨릴지 몰랐으니까.

조선의 명성이 이미 해외로 뻗어나갔다는 건 그 또한 이미 알았지만, 정녕 해적들에게 탐스러운 표적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필요까진 없었다.

그리고 배裵 제독의 의향이야 어떻건, 두 척의 외부 선단이 쾌속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해전은 결코 피할 수 없었다.

후폭풍을 도외시하고 도망이라는 속 편한 선택지를 고르고자 하여도, 불가능한 것이다.

한때는 나무로 된 배 위에서 살아가는 오해도 돌았던 홍모이다.

진상을 아는 이들에겐 어처구니없는 오해이나, 이러한 오해조차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배 제독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이곳까지 수 개의 대양을 가로질러 찾아왔다.

그러고도 선원으로 남은 자들은, 정녕 뭍에서보다 배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배와 바다, 바람을 다루는 데 이곳 해역의 홍모이들 이상으로 능숙한 집단은 없는 것이다.

배 제독이 외쳤다.

“대포를 장전해라! 그리고 내가 명령할 때까지, 절대로 방포하지 마라!”

양측의 거리가 수백 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즈음.

다가오던 외부의 선단이 선수를 돌려 비스듬하게 서더니, 이내 선측에서 뭉게뭉게 포연을 뿜어냈다.

“숙여라!”

제독의 외침과 함께 포탄이 작렬했다.

꽈과광!

폭음과 함께 돛에 구멍이 뚫리고, 난간이 폭발하며, 사람이 쓰러지고 파편이 튀었다.

갑판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곳곳에 부상자가 널브러졌고 저마다 피와 신음을 흘려댔다.

그 아래 갑판의 틈새로는 아래에서 놀란 승객들의 비명까지 새어 나오니, 극도의 혼란함 속에서 멀쩡한 선원들마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히이익!”

“해, 해적이다! 해적이었다고!”

“엄마!”

사관을 제하고는 전투를 처음 겪는 선원들이다. 배를 무장시킨다고 그들의 정신까지 무장시킬 수는 없었다.

“정신 차려!”

“일어나!”

사관들은 그런 선원들을 일으켜 세우고, 뺨을 때리며 다그쳤다. 포격에 의한 공포와 충격으로 얼이 나갔던 눈동자들마다 조금씩 이성이 돌아왔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 배 제독이 외쳤다.

“좌절하지 마라! 적의 수는 우리보다 적으며, 또한 우리는 충분히 무장을 갖추고 있다! 굳건하게 버텨라! 내가 놈들을 일시에 소탕할 것이다!”

지도력 있는 지휘관의 존재만큼 안심되는 건 없었다.

선원들의 숨 가쁘게 헐떡이던 가슴이 차차 가라앉고, 사관들은 그런 선원들을 향해 다음으로 찾아올 포격에 대비하게 했다. 그중 제독과 가까이 있던 이가 말했다.

“제독 어르신. 지금의 대형隊形으로는 적과 효율적으로 교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말단 수병들에게까지 전할 필요는 없었기에 지적은 중얼거리듯이 이루어졌다.

과연 선단은 네 척의 배가 마름모꼴의 형태로 항해하고 있었다.

이중 배 제독이 선장으로서 지휘하는 배가 가장 외부에서 적과 마주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포격에 먼저 노출됐다.

그리고 적과 반대편에는 아군의 상선이 있어, 그쪽에서는 적과 교전하고자 해도 배 제독의 배로 시야가 가려져서 불가능한 상태였다.

배 제독은 네 척의 수적 우위를 가지고도 기함旗艦이 가장 노출되었고 교전에도 불리한 대형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래서야, 바다에서는 날고 긴다는 홍모이 해적들이 더더욱 좋아서 날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배 제독이 바라는 바였다.

“대형은 이대로 고수한다! 놈들이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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