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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40화 (340/380)

인조, 명군이 되다 340화

조선이 복이모사에서 거둔 승전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원정을 다녀온 군사들이 저마다 무용담을 풀어댄 탓이다.

그들은 복이모사의 이국적인 기후와 그곳 사람들의 습속에 대해 떠들어댔다.

-한여름처럼 덥고 습하더라니까.

-건물은 붉은 벽돌만 쓰거나, 아니면 나무만 써서 엉성하게 지어놓더라고.

-홍모이들은 엄청 화려한 옷을 입었는데, 반대로 섬 야인野人들은 거적때기만 둘렀어.

세인들이 알지 못하는 외부의 소식은 무척이나 귀가 즐거운 것이어서, 입에서 입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갔다.

여염에서 파문이 번져가자 그다음에는 식자들도 뒤따라 빠져들었다.

그들은 먼저 아조我朝가 난국을 딛고 금대今代에 이르러 또 한 번 경천동지驚天動地한 것을 찬미했다.

-대조선의 영광이 정녕 사해로 뻗치는구나!

-그게 말만 아니라 사실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나는 알았지, 이 불충한 인간아!

-나, 나도 알고 있었어!

임진왜란과 그 여파는 아직도 상흔으로서 생생했다.

물리적인 흔적은 남지 않았으나, 명나라 다음가는 천하 제이의 문명이자 강국을 자부하던 식자들이었다.

그러한 환상이 무참하게 깨졌던 식자들에게 조선의 위광이 재차 번져나갔다는 낭보朗報는 무척 기쁜 것이었다.

임란의 치욕은 ‘누구 말마따나’ 전왕이 무능하고 덜떨어졌기에 벌어진 치욕이었을 뿐.

절대, 우리와 이 나라가 못나서 벌어진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가 올바른 군주를 만나니, 반석이 제대로 서는구나!

-왜 전왕의 시호 선조宣祖란 말인가? 그 때 나라가 거의 망할 뻔했는데!

-원래는 선종宣宗이었는데 폐주가 멋대로 격상시킨 것일세.

-폐주가 쫓겨났으니 그가 격상한 시호도 원복하는 게 맞지 않나?

어떤 식자들은 임란의 치욕을 안긴 전왕을 성토하기도 했고, 또 어떤 식자들은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상께서 보위를 물려주신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불경한 소리!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다 망한 나라를 오롯이 상께서 회복시키셨네!

금상의 대에 이르러 조선이 몰락한 명나라를 대신해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다.

이것이 찰나의 단꿈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후대도 유능해야 했다.

세자의 평가야, 이전부터 무척 좋았으나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은 인품만이 아니었다.

사방四方에서 오랑캐가 할거하고 범접해오는 혼란한 시대.

과연 세자가 이러한 위협을 능히 감당해낼 수 있을지, 금상今上의 위업을 보존할 수 있을지가 식자들이 오랫동안 우려하던 바였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

-뭐라?

-복이모사를 평정하고 서반아를 치죄한 분이 바로 세자 저하임을 잊으셨는가?

때마침 세자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주었다.

후계 역시 능히 오랑캐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만족에 이어 안도까지 하게 된 식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세계의 넓음을 느꼈다.

남쪽의 대양 너머 한여름처럼 덥고 습한 섬.

녹음 짙은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한 섬.

그곳의 붉게 물든 벽돌집과 그곳에 사는 털 붉은 오랑캐들, 그리고 고리와 거적으로 몸을 감싼 섬의 야인들…….

팔도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식자들은 그 넓고 머나먼 천하를 직접 두 발로 주유하지 못함을 탄식했고, 기경奇景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함을 애석해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선 땅에서 지키고 쟁취해야 할 위치가 있었으니까.

-과거 공부만 아니었다면 전 재산을 훌훌 털어서라도 그 기경을 직접 보러 가는 것인데…….

-내 몸이 두 개가 아님을 슬퍼하노라!

여러 사람이 애석해하는 와중.

식자들 가운데 감수성 풍부한 이들이 나섰다.

이들은 귀환한 군사들의 증언과 세간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지해 시와 서, 화를 써내렸다.

이들은 시로써 아조의 성세를 찬미하고, 책으로는 나라의 미래와 식자들이 취해야 할 향방을 논했으며, 그림으로는 직접 두 눈에 담지 못한 이국의 경치를 그려냈다.

그리고 그것이 문화충격이 되었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 이국의 소식과 감성이 구체화하자 여러 사람이 열광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이게 실제 복이모사의 풍경이란 말인가?

-기이하다, 기이해.

-그림 한 장에 천하가 넓음을 알겠구나!

여기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더 많은 문화와 고찰을 만들어내어 한양에 번지는 파문을 강화했다.

남방南方의 소식을 접하고 놀라워한 건 비단 조선만 아니었다.

조선의 한복판.

한양에서 복이모사 평정의 반향이 몰아치는 동안,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방문한 불청객이 있었다.

“멀리도 왔구나. 여기가 바로 조선인가.”

불청객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마포나루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복층의 상가들을 마주한 채로 멀뚱히 서서 통행을 방해하는 그는, 앞머리와 정수리는 바짝 깎았으며 몸에는 헐렁한 윗옷 하나만을 걸친 채였다.

그러니 윗옷 자락 아래로는 털이 수북한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지라, 오가며 통행을 방해받은 행인들은 절로 눈살을 찌푸려댔다.

한 가지 생각만은 다들 똑같이 하면서 말이다.

‘궁벽한 섬나라 오랑캐들 아니랄까 봐, 마포 풍경에 혼이 쏙 빠져나갔구나!’

과연 불청객은 섬나라에서 왔으며, 그의 이름은 아리타 모쿠베有田 ?兵衛였다.

에도 막부의 3대 당주, 도쿠가와 이에미츠?川 家光가 보낸 간자였다.

* * *

아리타 모쿠베가 한양 지척인 마포나루에 당도하기 얼마 전.

조선의 소식은 일본에도 전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부산포 왜관을 오가는 왜인들에 의해 알음알음 전해지는 바가 있었다.

큐슈九州와 중국 남부를 오가는 서양인 상인들을 통해서도 중원의 소식이 전해졌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왜인들은 포르모사에서도 교역하고 있었다.

스페인 제국이라는 해양 초강대국이 점유한 그 포르모사인데.

그런데, 스페인이 조선과 접촉하기 무섭게 보복을 당해 단숨에 점령된 것이다.

그 반향이야 당연히 왜에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몇 달만에 다시 가 보니까 섬에 조선인들이 군림하고 있더라고!

-……조선인들이 왜 거기 있어?

민간에서 퍼져가던 소식은 큐슈를 거쳐 에도江戶까지 전해졌다.

“조선이 포르모사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포르모사?”

“명나라 남쪽에 있는 커다란 섬입니다.”

“나도 알아. 믿기지가 않아서 물어본 거지.”

“송구합니다. ……주군. 그러나 세인이 모두 입을 모아서 그 같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흐음…….”

에도 막부의 3대 당주,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본디, 그는 조선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1대 당주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는 양국의 전쟁을 수습해야 했고, 2대 당주 때는 전후 개설된 사신단이 양국을 오갔다.

그러나 3대 당주, 이에미츠의 치세에 이르러서는 어느샌가 소통이 끊겨 있었다.

조선에서 광해군의 치세를 마지막으로 통신사를 더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통이 단절된 후 즉위한 도쿠가와의 3대 당주에게 조선의 존재란 서양 각국만도 못했다.

오히려 서양에서는 적극적으로 일본과 소통해왔을 뿐 아니라, 윌리엄 애덤스라는 한 영국인은 아예 가신이 되어 막부에 충성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일본에 있어 조선이란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대전쟁이 벌어진 지 고작 한 세대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조선에 대한 소식들이 수시로 전해지다 못해 이에미츠의 귀를 틈틈이 간지럽혔으니까.

이래서야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요즘 조선이 잘나가기는 하는가 보군. 사람들이 내 앞에서도 그들을 거론할 정도이니 말이야.”

“이전의 왕을 몰아내고 즉위한 자가 제법 유능한 모양입니다.”

“그냥 유능하다, 라는 정도로는 표현이 충분하지 않지. 조선이 중원에 진출한 건 우리도 못 해낸 일 아닌가?”

“……그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히데요시는 그럴 필요가 있었나? 그래서, 되기는 했고?”

가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에미츠는 마저 턱을 매만졌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신을 강화하고 싶던 참이었다.

비록 2대 당주, 히데타다?川의 뒤를 이어 열도를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긴 하였으나 그 전후가 순탄치만은 않았던 탓이다.

이에미츠는 후계를 잇기 전에는 동생인 타다나가忠長와 경쟁해야 했다.

오늘날 후계를 잇게 된 것마저도, 직접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영향을 끼쳤던 1대 당주의 의사에 결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인 2대 당주는, 그 또한 1대 당주에게 당했던 방식 그대로 은거를 빙자하여, 막후에서 여전히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행세했다.

이에미츠 자신은 그동안 명목상의 쇼군에 불과했다.

“조부님과 아버지께선 조선을 이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았지.”

그들은 조선의 사절단인 통신사를 속국의 사신단으로 소개해 자신의 권위를 드높였다.

그러기 위해 막부는 통신사가 혼슈本島 서단西端, 아카마가세키赤間關에 입장하여 동단인 에도까지 수개월에 걸쳐 이동하는 동안 내내 성대한 잔치를 펼쳤다.

천하의 백성들에게 속국 사신단의 방문을 홍보하면서 막부의 부와 세력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를 위해서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지만, 대신 정치적인 이익은 제대로 돌려받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내지 못한 조선의 정벌을 저들은 해냈다고 과시할 수 있었으니까.

“나도 통신사를 다시 불러 행사를 재개한다면 조부님이나 부친처럼 조선을 부리는 천하인으로서 행세할 수 있지 않겠나?”

이에미츠는 입으로 호선을 그리며 덧붙였다.

“중원을 평정하고 스페인을 징벌했다는 그, 조선을 말이야.”

“소인은 주군의 의향을 따를 뿐입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뜻이로군.”

“…….”

“하지만, 그 전에.”

이에미츠는 조선의 현실부터 파악하고 싶었다.

과연, 경천동지驚天動地라는 표현이 부족하리만치 천하에 드날리는 조선의 성세는 과연 사실인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이다.

그런 허명을 떨쳐대는 나라를 속국으로 홍보할 수 있으니까.

혹여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건 조선의 치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선의 성세에 일말의 거짓도 없다면 문제가 된다.

혹 사신이 행차하는 와중 속국 사신단으로 포장한 것이나, 외교적 결례가 벌어져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기면 곤란해지니까.

‘명나라마저 어쩌지 못한 기마민족을 번견番犬으로 삼고, 명나라는 중원에서 몰아내 버렸으며, 해상에서는 스페인 제국과도 맞서는 나라와 분쟁이라.’

내부를 안정시키고 권력을 강화하려는 이에미츠에게는 최악의 가능성이었다.

조선을 이용해 얻으려는 이익의 정반대 결과인 것이다.

그러니 조선의 성세가 사실이라면 행사를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괜히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전에, 조선의 성세가 사실인지부터 확인해봐야 했다.

“편지 한 통 부쳐야겠다. 문방사우를 가져와라.”

* * *

마포나루에서 한창 통행을 방해하는 불청객, 아리타 모쿠베가 파견된 내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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