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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42화 (342/380)

인조, 명군이 되다 342화

“멈춰라!”

숭례문의 수문군이 황급히 손을 뻗었다.

웬, 미친 왜인이 당당하게 한양으로 입성하려고 들었으니까.

어깨가 붙들린 왜인은 놀란 얼굴로 양손을 저어댔다.

“ちょっと聞いて!”

“뭐, 뭐라는 거야?!”

“聞いてください!”

왜인은 허둥지둥 그들 족속의 언어로 지껄여댔고, 느닷없는 소란에 숭례문 주변의 사람들은 가던 길도 멈춘 채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래요?”

“왜놈 같은데?”

“왜놈이 왜 여깄어?”

“뭐야?!”

소란이 갈수록 커지자 수문군의 머릿속도 당혹으로 물들어갔다.

뜬금없이 한양과 이어지는 성문 앞에 나타난 왜인.

마포나루에 몇몇 오랑캐가 면상을 들이민다는 건 뭇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오랑캐들도 한양마저 침범한다는 만용을 보인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왜인 하나가 남대문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전쟁의 상흔이 다 지워지지 않은 한양의 주민들에겐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 일이 공론화된다면 남대문의 수문장과 수문군들은 어떠한 시비에 휩싸일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으리라는 것.

“조용히 해!”

수문군은 우악스럽게 팔을 뻗어 왜인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 불청객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놓진 않았지만, 일단 사람들의 이목부터 피하고 봐야 했다.

하지만 왜인은 제가 죽기라도 한다는 양 더 시끄럽게 떠들며 버둥댔다.

“放せ! この野?!”

“이, 이 자식이!”

수문군과 왜인이 아옹다옹하는 사이 수문군의 동료들이 합류했다.

그들 역시 지금 상황이 좋을 건 없음을 알았고, 특히 수문장이 그러했다.

알록달록한 철릭을 휘날리며 등장한 수문장은 왜인의 뒤에서 등채로 목을 걸었다.

“어르신!”

왜인은 곧바로 팔을 넘겨 저항하려 했지만, 주변 수문군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붙들어!”

“잡아! 잡아! 잡고 있어!”

두 팔에 이어 두 다리까지 허공에 들린 채 꿈틀대던 왜인은 눈이 까뒤집히며 축 늘어졌고 수문장은 그제야 등채를 빼내며 비지땀을 훔쳤다.

“아오, 이 쪽발이 자식이.”

다른 수문군들도 지친 얼굴로 손을 뗐다.

왜인의 사지가 차례차례 땅에 떨어졌고, 몸뚱이까지 버려졌다. 왜인이 대로大路 한가운데에 대大자로 뻗었다.

수문장이 물었다.

“이놈은 어디서 튀어나왔길래 백주白晝에 행패야?”

“마포에서 온 것 같습니다.”

“아, 거기! 빌어먹을. 오랑캐 놈들은 좀 쫓아내 버려야 하는데!”

수문장이 신경질과 함께 왜인을 걷어찼다.

기절한 왜인은, 제가 드러누웠는지 차였는지 분간도 못 하고서 반개한 눈만 뒤룩뒤룩 굴려댔다.

그 광경을 수 초 구경하던 수문군이 말했다.

“이번에 전함사 해운판관이 복이모사로 간다던데요. 앞으로는 단속 좀 똑바로 하지 않을까요?”

“아, 몰라! 됐고. 이 자식부터 어디 안 보이는 데다 갖다 처박아라. 전옥서典獄署는 내가 직접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수문군들은 저마다 왜인의 사지를 하나씩 붙들었고, 수문장은 어수선하게 물러나는 구경꾼들 사이로 지나갔다.

“아씨, 조졌네. 조용하게 안 넘어갈 거 같은데…….”

* * *

“헉!”

모쿠베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어둡고 축축한 곳에 있었다.

손에 잡히는 건 잘 다져진 흙바닥과 깔개처럼 놓인 지푸라기들이었다.

모쿠베는 한 줌 지푸라기를 쥐어 올렸다가, 이내 비척거리면서 일어나 나아갔다. 그러자 몇 걸음 되지 않아 나무 창살과 닿았다.

“…….”

감옥.

“……아.”

모쿠베는 탄식을 토해냈다.

조선의 난폭한 군사들은 자신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떼거리로 나와 사지를 결박하고 뒤에서 습격했으며, 추궁조차 없이 무작정 감옥에 집어넣기까지 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모쿠베가 창살을 붙든 채 중얼거렸다.

“그래, 말이 안 통하는 건 아는데…….”

모쿠베는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한숨만 토해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순간이었다.

화르륵, 하고 타오르는 소리가 나더니 감옥 주변이 동시에 밝아졌다.

곳곳에 놓인 화등을 뒤로한 채 수 개의 건장한 인영이 모쿠베 앞에 서 있었다.

분명, 빛을 등진 그들은 표정이 보이지 않았으나 모쿠베는 인영들마다 실소를 짓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왜국의 간자가 제 발로 한양에 침범했다는 것은, 귀중한 정보들을 모두 넘기겠다는 의사로 봐야겠지?”

모쿠베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에게는 익숙한 언어였다.

“조선에 붙은 놈들인가?!”

상인, 용병, 해적.

정확한 분류가 무엇이 됐건, 일본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 발에 챈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자신이 이렇게 심문의 대상이 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모쿠베는 마저 따졌다.

“누구냐! 아니, 누군가가 너희에게 정보를 판 것인가?!”

인영 중 하나가 답했다.

“그건 답해주기 어렵군. 하지만, 이제 누가 우리에게 정보를 팔 건지는 말해줄 수 있지.”

날카롭게 절그럭대는 쇳소리가 감옥 주변을 울렸다.

모쿠베는 눈동자가 화등잔처럼 커진 채로 뒷걸음쳤고, 인영 하나가 도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느긋하게 일렀다.

“우리의 차기 정보원이 누가 될지를 자네도 알아야, 이 소통이 잘 풀릴 것 같은데 말이지…….”

* * *

모쿠베는 쉬운 길을 택했다.

대마도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가신이 되었지만, 고문까지 당할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놈들은 절대 허술하게 고문할 것 같지 않으니!’

모쿠베는 필사적으로 추궁에 응했다.

인영들은 물었다.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 출생이냐는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누구의 명령으로 파견되었고 어떤 의도로 벌어진 행각인지도 말이다.

“내가 아는 건 도주가 조선의 사정을 정탐하고 오라고 명령했다는 것뿐이야!”

“추측조차 못 하겠나?”

“대마도주는 오래전부터 조선과 일본 양국에 관심이 많았어! 대마도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곳이니까! 그러니 사정을 알고 싶었겠지!”

“그렇다고 안전하게 정탐할 수 있는 부산포 왜관을 두고 한양까지 직접 찾아와?”

“모, 몰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 건지, 아니면 쇼군에게 명령이라도 받았는지!”

모쿠베는 아무튼 필사적으로 답했다.

“대마도 사정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답할 수 있어! 차라리 그걸 물어 봐!”

“대마도주가 내린 명령의 저의는 대마도의 사정이 아닌가?”

“그놈이 상의조차 없이 내린 명령의 동기는 내가 알 수 없지!”

“……그놈이라, 흠.”

인영들은 새로운 정보원에 대한 기대가 많이 꺾였는지, 과연 대마도의 사정을 대신 물어보았다.

현 대마도주는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목적이 있는가.

대마도의 인구는 몇이며 군사력은 어떻게 되는가.

핵심 방위 시설의 위치는 어떻게 되며, 군사를 투입할 경우에는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

모쿠베에게는 이전과 달리 대답하기 쉬운 질문들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의심하는 마음도 들었다.

꼭 자신과 같은 도주의 가신이 아니어도, 대마도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니까.

의문이 크지는 않았다.

저들이 자신의 협조성을 시험하고자, 일부러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섞어 던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대답과 미리 파악해둔 사실을 대조해봄으로써 말이다.

‘쓸데없는 정성이다. 나는 아는 그대로 모조리 답하고 있으니까…….’

모쿠베는 그저 몸 성히 빠져나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협조의 대가로 저들이 여생을 보존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고문을 당해가며 억지로 추궁에 함구한들 여생이 보존되는 것 또한 아니다.

후자라면 오히려 빠르게 죽는 편이 더 낫다.

반대로 전자는, 그나마 살아서 나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고 말이다.

모쿠베는 그 미약한 가능성을 믿었다.

‘도주가 나를 꺼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붙잡힌 이상, 본인 앞에 놓인 미래 중 최선을 도모해야지 않겠는가?

인영들은 수차례 거듭하던 질문을 그쳤다.

모쿠베는 직감했다.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때가 다가왔다고 말이다.

인영 중 하나가 말했다.

“하늘이나 부처, 천주天主 중 믿는 게 있다면 행운을 빌어라.”

“……그게 무슨 말이지? 행운?”

모쿠베가 거의 따지듯이 물었다. 자신의 생사를 주사위라도 돌려 결정하겠다는 것일까.

인영이 답했다.

“우리는 죽이는 데는 권한이 있어도, 살리는 데는 권한이 없거든.”

“…….”

“너는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될 거다. 조선의 수도를 무단으로 침범한 오랑캐로서 말이야.”

“그, 그럼…….”

“변명거리를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다. 그래봐야 높은 확률로 목이 매달리거나 잘리겠지만, 필사적으로 자비를 읍소한다면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르지.”

인영의 흉악한 말에 모쿠베는 입술을 말았다.

과연, 지난 전쟁에서 원치 않게 일본인의 수도 입성을 허락한 조선이 자신을 살려두고자 할까?

모쿠베는 인영이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데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비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인영이 마저 덧붙였다.

“물론, 우리는 만난 적이 없는 거다.”

“…….”

“심문 받는 과정에서 괜한 소리라도 한다면, 판결이야 어떻건 곱게 죽지는 못한다는 것만은 보장하지.”

그 말을 끝으로, 감옥 주변을 밝히던 화등이 일제히 꺼졌다.

그리고 정적이 몰려왔다.

모쿠베는 조심스럽게 감옥의 창살까지 나아갔다. 그곳에서도, 사람의 발걸음이나 숨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허깨비 같은 놈들이었다.

모쿠베는 등을 돌려, 창살에 기댄 채로 흘러내렸다.

곧 받게 될 조선의 공식적인 재판이 어떻건, 적어도 삭막한 인영들의 심문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으리라.

그때까지, 모쿠베는 심신을 준비시키기로 했다.

* * *

“왜인이 숭례문 앞에 나타나 난동을 부린 사건이 세인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사옵니다.”

영의정 이상의가 고했다.

그가 주안을 둔 부분은 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건을 목도한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풍문이 파다하게 퍼지는 중이옵니다.”

한양의 백성들은 왜라면 치를 떨었다.

임진왜란이 그리 먼 과거가 아니기도 했지만, 당시 왜가 평양성 함락에 대한 보복으로 한양에서 학살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참상은 기록되지 않았으나 흔적만은 남아, 조선군이 한양까지 수복했을 때 펼쳐졌다.

-성 중의 백성은 백에 한둘도 남아 있지 않은데, 생존자들은 굶주리고 지쳐 안색이 귀신 같았다.

-사람과 말이 즐비하게 죽어 썩는 냄새가 성에 가득하였으므로 사람이 코를 막고 다녀야 했다.

-성 안팎에는 백골이 무더기로 쌓였고 집들은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실록의 기록이다.

백성을 초개草芥 같이 여기는 위정자들의 눈에도 이렇게 보였을진대, 그 참상을 몸소 겪은 생존자들의 심정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왜인이 출몰한 사건이 파급이 크고 빠를 수밖에 없다.

“풍문이 더 과열하기 전에 속히 진정시킴이 옳지 않겠사옵니까?”

이상의가 물었다.

기실, 이론 따위는 나올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마저도 부족하여, 기름까지 뿌려야겠다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나.

“죄인의 신변을 이미 구속하였으니, 오랑캐로서 감히 한양을 침범한 죄를 물어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거열하시옵소서!”

이귀였다.

잔뜩 흥분한 그가 주먹을 쥐고 외쳤다. 그 역시 임진왜란을 거친 세대였다.

이는 중신 대부분도 다르지 않았다.

“여느 오랑캐라도 허락 없이 한양을 침범하려 들었다간 응당 목숨으로 벌을 받아야 하는데, 하물며 왜이니 더더욱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옵니다. 만백성 앞에서 죄인을 극형에 처하여, 놀란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위무하시옵소서!”

신하들이 역정을 내는 동안.

왕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간자라…….’

세자는 왜인의 정체를 빠르게 보고했다. 믿고 실방사를 맡긴 보람이 있었다.

아무튼.

왜인을 어떻게 처형하느냐는 왕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일본이 다시 조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내가 원치 않는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일본…….’

왕은 신하들의 역정으로 귀가 간지러운 동안, 조선의 불미스러운 이웃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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