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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46화 (346/380)

인조, 명군이 되다 346화

의정부에서.

한참 공무를 보던 중 집중력이 떨어진 남이공이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화제가 옮겨간 것이 바다 건너 있을 김류의 사정이었다.

“분명 우의정은 아랫사람들에게 다 떠넘긴 채 느긋하게 배꼽이나 긁으면서 호사를 누리고 있을 겁니다.”

남이공이 무척 부럽다는 듯 무척 과장하여서 투덜거렸다.

의정부에서는 삼공三公 중 하나가 빠지고서 거의 두 배는 바빠졌다.

덕분에 눈코 뜰 새 없어져 문인文人으로서의 명성은 거의 다음 생에서나 기약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이에 영의정 이상의가 때마침 읽던 공문을 밀어냈다.

“좌상의 생각은 틀리셨소이다.”

남이공은 의아한 얼굴로 공문을 받아 읽었다.

공문은 산해관 서쪽 해안에 설치된 서관도에서 온 것이었다.

그러나 발신인은 서관도 관찰사가 아니었는데, 공문 말미에는 김류가 서관도에 파견되면서 임시로 발급된 관인이 찍혀 있었다.

“우의정이 일은 하는가 봅니다.”

남이공이 조금 비꼬듯이 말했지만, 이상의은 농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외다. 전문을 읽어보시오.”

농담은 이쯤하자는 느낌의 딱딱한 어조.

이에 남이공도 들떴던 안색을 지우고서 공문 내용에 집중했다.

“…….”

김류가 보낸 공문은 충격적이기보단 불쾌한 편에 가까웠다.

남이공은 조금 어이가 없기까지 했으므로, 막 일독한 공문을 탁 내려놓고서 평했다.

“감히 패전한 오랑캐들 주제에 아조의 행사에 간섭하려 들다니요?”

“금나라가 갑자기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하였었는데, 본심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반역의 후환이 두려웠던 모양이외다.”

“허! 참. ……북경으로 도망치면 우리의 군사가 아니 쫓아가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대가리만 숨기는 날짐승도 아니고.”

남이공이 지극히 고깝다는 투로 혹평했다.

그는 마음 같아선 당장 칼을 빼들고 금나라를 정벌하는 군사들 앞에 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즉각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반아에 이어서 왜에다가, 진즉 치죄되었던 여진까지 준동이라니.”

조선의 사방에 불온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오랑캐들의 시대요, 좌의정.”

“대조선이 갖은 수모를 다 극복하고서 이제 날개를 펴려는 참입니다. 이게 맞습니까?”

“……그건 이 사람에게 따져도 할 말이 없소이다.”

“영상께서는 억울하지도 않으십니까?”

“억울하기는 하외다. 단지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억울해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소?”

이상의는 막상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숨을 덧붙였다.

기실, 그는 분쟁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조선의 기세가 사해四海를 준동시키는 건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시대에 대왕을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서 받들고 있다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 없는 법.

그 격언은 비단 자식 많은 집안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세외世外로 영토를 확장하고 각지에 명성을 드날리는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중원의 제국들도 다 그랬지. 땅으로 이어진 삼면만 아니라, 바다와 맞닿은 동쪽도 왜구에 의해서 조용할 날이 없었다.’

광대한 나라라면 다 통용되는 비애가 아닐까.

조선 역시 금나라를 완전히 파멸시키건, 혹은 그들의 괘씸한 죄과를 잠시 묻어두건 결국에는 다시 누군가와는 부딪히게 되리라.

이상의가 애석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과연, 지금은 야만의 시대였다.

“금나라는 어떻게 할지부터 생각해봅시다.”

이상의가 본론을 재촉하자 남이공은 침음부터 흘렸다.

“도처에 난립한 오랑캐들이 다 준동하고 있는데, 그나마 다스려놓은 금나라를 서둘러서 치죄하는 건 횡액橫厄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남쪽 원해遠海에서는 섬 하나만을 정벌했을 뿐, 서반아가 건재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 딴에도 일대의 종족들과 전쟁하느라 바쁘다지만, 그게 서반아의 전부인 것도 아니었다.

‘놈들의 세력은 온 지구에 뻗이 있고 특히 소굴은 구라파歐羅巴 말단에 있다니.’

바다를 통해서 번창하고 창궐하기로는 동쪽의 왜족들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최근 그들의 족속 중 하나가 염치도 없이 한양의 지척까지 다가왔다가 적발된 적도 있었다.

‘전하께서는 놈이 대마도주가 보낸 간자라고 하였다. 그런데 과연, 쥐처럼 눈치만 살살 보는 대마도주가 믿는 구석 하나 없이 아조를 도발했을까?’

한때 예조판서로서 실방사를 직접 통제했던 남이공이었다.

당시에도 왜족들은 고작 십수 년 전 대전쟁을 일으킨 위협적이고 흉포한 족속이었던 만큼 감시의 대상이었는데, 그들의 사정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인 풍신수길?臣秀吉이 지옥으로 간 뒤, 덕천이 그의 세력을 배신하여 열도를 통일하고 주인으로서 군림하는 중이 아닌가.

정녕 대마도주에게 뒷배가 있다면, 그 실체가 무엇일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녕 덕천 집안이 대마도주의 뒷배라면, 아조가 혼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놈들이 어떻게 나설지 알 수가 없다.’

왜족의 야만한 습성은 고래古來를 통틀어 매우 일관적이다.

마치 마당에서 얼핏 보았던 벌레가 어느샌가 알을 까고 창궐해 집구석마저 범접하듯이, 조금이라도 세력이 생기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삼한의 땅을 침범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막 전쟁을 종결하였고 왜놈들도 서로 쳐죽이느라 한동안 눈에 밟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놈들이 세력을 다시 하나로 통합한 데다가, 언젠가부터 물길을 타고 한양 지척에서 출몰하더니 이제는 내부마저 범접하려 드는 상황이었다.

만약 조선이 군사를 일으키는 동안 배후를 노린다면 무척 위험했다.

“예전 같았더라면 군사를 몰아 호쾌하게 징벌했겠으나, 각처에 도사리는 오랑캐들이 많아 방심하기 어려우니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수법을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남이공의 제안에 이상의가 물었다.

“아조 외에도 금나라를 싫어하는 족속이 또 있었단 말이요?”

“있지요.”

“……?”

“영상께서는 명나라를 잊으셨습니까?”

“아.”

이상의는 오래간만에 거론된 국명에 짧게 탄식했다.

명나라는 대전쟁 때는 조선을 도와 함께 왜를 몰아내는 데 공헌해주었지만, 그때 명나라는 이미 천명天命이 다해 있었다.

족히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무능한 황제들의 치세로 안에서부터 썩어 있던 탓이다.

결국, 명나라는 왜족들을 끝으로 동서 양단兩端에서 창궐하는 오랑캐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민란까지 겹치면서 요란하게 몰락해버렸다.

그들의 본거지인 장강 이북은 모두 외세外勢에 내어준 채로 강남으로 퇴행한 것이다.

‘마치 망하기 직전의 송나라처럼 말이지…….’

그 뒤로 명나라는 대국으로서 군림할 수 없게 되었고, 조선 또한 그들을 상국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유일한 우방인 조선의 행보마저 두려워하며 살금살금 견제나 하는 것들이 어떻게 대국이고 상국이란 말인가?

그들 스스로 내려놓은 지위였으니 존중해줄 것도, 애석해할 것도 없었다.

그 뒤로 명나라란 그저 변방에 즐비한 세력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남이공이 말했다.

“명나라야 금에 원한이 많을 터이니, 그들의 손을 빌려 금을 단죄한다면 조선은 피 흘리지 않고 일거양득을 누리는 셈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명이나 금 중 한쪽이 파멸하여 다른 쪽에 흡수된다면 되려 재앙이 되지 않겠는가?”

중원으로 진출한 개척지가 모조리 고립무원이 되는 셈이니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하는 편이 더 확실한 법이지.”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직접 나섰다간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배후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만 문제는 아니었다.

“아조의 현황상, 금나라를 직접 단죄는 할 수 있겠으나 그들을 멸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인구와 군사력이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다.

범지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선의 인구나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약한 수준은 아니다.

조선만 뚝 떼다가 구라파에 놓는다면 꽤 위협적인 강호?豪로 여겨지리라.

하지만 하필이면 붙은 데가 극동인지라, 중원과 요동 그리고 열도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곳이 없었다.

여기서 2천만 백성이란 과장 조금 보태 국체를 겨우 존속시킬 수 있을 정도의 하한이다.

그리고 이미 조선은 중원과 요동에 개척지를 확보했고,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많은 백성들이 본토에서 유출되고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적절한 인구 부족이 마냥 나쁘지는 않다.

희소성은 곧 가치인 법이므로, 인구의 부족은 사람 자체의 가치를 높여 게급과 부의 격차로 인한 갈등을 좁히고 각 개인의 생산성을 증진시키게 된다.

마치 흑사병이 돈 직후의 유럽에서 사회가 진일보하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 인구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을 겪어야 한다. 비를 맞은 다음에야 땅이 굳는 것을 도모할 수 있다.

지금 조선은 비를 맞는 중이었다.

남이공이 덧붙였다.

“하물며 금나라는 요동만 아니라 중원마저 장악한 상태입니다. 과연 그만한 방대한 땅을 조선이 수월하게 지배할 수 있겠습니까?”

무리해서 과식했다간, 기존 형태의 국가를 다스리는 데 최적화된 내부가 한계에 부닥칠 뿐 아니라 정체성까지 희석당하게 된다.

“오랑캐들이야 원래 근본이 없던 족속들이니 중원에 빠져 정체성을 잃게 되더라도 우리가 알 바는 아닙니다만 만약 아조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면 많은 가치를 잃고 혼란한 상황에 빠질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은 중원과 요동의 개척지에서 이미 발생하는 문제였다.

그나마 육로로 이어지지 않아 그곳의 혼란이 직접 본토로 유입되지 않고 있을 뿐.

“개척지의 교화만으로도 벅찬 상황이 아닙니까.”

남이공의 부연에, 이상의는 쓰게 침음했다.

“……으음.”

남이공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도살인 역시 상책이 될 수는 없음이 분명하네.”

중원이 하나의 세력으로 통일되면 반드시 조선을 몰아내고자 할 것이므로.

그렇게 될 위험성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결국에는 중책中策이냐, 하책下策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야.”

이상의의 회의적인 대답에 남이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상계上計겠습니까?”

“그걸 이 사람이 알았다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았겠지…….”

이상의가 지극히 곤란한 얼굴로 답하자 남이공도 짧은 고민 끝에 수긍했다.

“어쩌면 이래서 금나라가 건방을 떠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저들을 제대로 다스릴 방법이 없으니 말이지?”

“예. 그러니 배짱을 부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녕 그런 걸수도.”

금나라도 조선이 저들을 쉬이 정벌하지 못하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덕에 조선을 침범하는 대죄大罪를 저지르고도 멸망하지 않은 채 아직까지도 국체를 이어가는 중 아닌가.

“과연 그 오만한 배짱질의 근본이 아조의 곤란한 구석을 알고 있어서라면, 약다기보다는 과히 무모한 게 아닐까 싶네.”

“어째서 말입니까?”

“아조의 사정이 호전되면 오늘날의 건방을 배로 갚아야지 않겠는가?”

이에 남이공이 별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답했다.

“그만한 사고가 가능했다면 애초에 아조를 침범하지도 않았을 테지요. 그 전에, 오랑캐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흠. 하기야…….”

이상의는 수긍하고서 말했다.

“좌상의 말씀대로요. 아무튼, 이 오랑캐들이 멍청하고 무모한 것 때문에 애먼 아조가 고생하고 있으니 애석할 따름이외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나서서 화근禍根을 뿌리 뽑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요. 하하.”

이상의는 쓰게 웃고는 덧붙였다.

“좌상께서는 따로 상책上策이랄 만한 게 없으시오?”

“이 사람은 차도살인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아조가 직접 피를 흘려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 사람도 부정하지 않겠소. 상책의 전제가 아조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님은 지극히 동의하는 바요.”

“그러나 명나라를 끌어들이는 건 상책이 못 된다는 말이지요?”

이상의는 재고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남이공이 물었다.

“순나라나 서나라는 어떻습니까?”

“그들과는 아조가 서로 거리가 멀어서 소통이 쉽지 않고, 본디 근본이 반란한 도적과 오랑캐일 뿐인지라 함께 대사를 모의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위험한 점도 있소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손을 빌릴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게 나도 걱정거리요.”

이상의는 쓰게 수긍하고는, 앞에 늘어놓았던 권자와 서책을 정리했다.

그 모습에 남이공이 물었다.

“갑자기 자리는 왜 뜨고자 하십니까?”

“우리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문의할 데라고는 하나밖에 없지 않소이까?”

조선이 난관을 맞이할 때마다 과감하면서도 절묘한 계책을 동원해 타개시켜준 사람이 있었다.

따지자면 조선이 오늘날까지 성장하여 다시금 금나라의 처분을 두고 고뇌하게 된 것도 순전히 그분 덕이기도 했다.

애초에 의정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찾아가서 대척을 문의할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오직 한 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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