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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48화 (348/380)

인조, 명군이 되다 348화

북경, 자금성.

금나라의 한으로 군림하는 호격은 신하들을 내보내고서 홀로 집무실에 남았다.

그의 신하들은 주장했다.

금나라가 비원悲願대로 산해관을 넘어 중원에 진출하고 수도까지 옮긴 지금.

더는 조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신하들은 말했다.

조선이 발해渤海 가장자리에 세우는 장벽을 허락한다면, 그들은 어디에서도 대금大金을 침공할 수 있게 되고 반대는 불가능해진다고 말이다.

‘그러니 장벽의 완공을 저지하거나 선제공격하여서 조선을 몰아내야 한다고…….’

여러 입이 모여서 주장했으나 호격은 확신하지 못했다.

‘과연 조선을 적대하는 게 옳은 일인가?’

배신과 급습의 행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호격이 고민하는 건 저울 양편에 놓인 무게였다.

조선을 공격한다면 이익은 무엇이고, 조선을 공격하지 않을 경우의 이익은 무엇인가?

물론, 여기에는 양자 선택에 의한 불이익도 똑같이 올라가야 하리라.

호격은 이 저울질에서 기울어진 축을 확신하지 못했다.

각기 선택에서 얻고 잃을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전쟁을 일으켜 이긴다면 패자?者가 되겠지만, 지면 패자敗者가 되겠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감수할 망국의 위험은 없다.

대신, 조선인들이 특혜를 받으면서 부와 자원을 갈취해가는 꼴을 계속 지켜봐야겠지.

‘이유 없는 특혜는 아니지만…….’

과거 금나라가 분열하였을 때, 선한은 형제의 반란으로 수도 및 영토 대부분을 잃고 세력이 극도로 축소했다.

오늘날 조선인이 받는 특혜는 그랬던 형국을 반전시키는 데 조선이 도움 주었기 때문이다.

내전이 종식한 직후에는 식량도 공급해주어 피폐한 요동을 먹여 살려주기도 했고 말이다.

저들이 가진 특혜는 정당한 거래의 결과인 셈.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것만은 호격이 과히 확신할 수 있었다.

국가의 생존과 경쟁에 있어 도덕을 따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처럼 부차적인 건 없으니까.

일단 살아남는 게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이기는 게 중요한 법이다.

장벽은 완성되고, 조선인 상인들이 그 안팎을 오가며 부를 빼앗아간다면 금나라는 영원히 조선을 능가할 수 없다.

이 역시 호격이 확실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고민이 길어지는 건, 조선의 저력이 절대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팽창한 영토와 국경선으로 갖은 엄살을 부려대고 있지만, 그들이 정말로 유약했다면 지금처럼 영토와 국경선이 늘어날 수 있었겠는가?

과거, 몽골을 선두에서 정벌했던 선한과 조부마저도 끝내는 극복하지 못했던 조선이다.

이 비열한 나라는 뻔뻔하게 방심을 유도하고 빈틈을 보이다가 일순 숨겨두었던 비수를 내지르곤 하는 놈들인 것이다.

‘성급하게 전쟁을 일으켰다가 되레 당해버린다면 수습할 수가 없어진다.’

조선이 분개하여 정복할 마음이 없음에도 국체國體를 멸망시켜버릴 수도 있고, 남기더라도 가죽만이 남아 이름만 다른 조선의 한 부분으로 전락할 공산이 매우 컸다.

그들이 지난날 선한을 격파하고도 요동을 평정하지 않은 건 관대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호격은 고뇌 끝에 평가했다.

‘어렵군.’

어느 쪽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과는 불확실성마저 불확실하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에 펼쳐진 길이 꽃길인지 마름쇠로 도배된 길인지 분간조차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을 선택하건 최악의 경우에는 파멸 혹은 고사枯死뿐.

호격은 한의 지위가 요즘처럼 가시방석 같은 때가 없었다.

* * *

호격의 장고長考와 달리, 그의 신하들은 생각을 이미 굳힌 뒤였다.

“한이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모양이던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늙고 깡마른 체구의 신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주변에서 함께 뜻을 합치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한간漢奸 출신의 관료였다.

“제깟 것이 응하지 않더라도 별수 있겠습니까?”

날카로운 눈매의 신하가 빈정거렸다.

마찬가지로 한간 출신의 관료인 그는, 동료들처럼 중원에 문명의 지배를 되돌리고 싶었다.

배우지 못해 야만하고 학문을 업신여기는 건 폭도도 오랑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편의 이국이야 평가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으나, 본질이 변방 오랑캐인 점은 부정할 수 없으며 대국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죄가 있었다.

그들이 황제를 꼬드겨 중원의 절반을 버리게 하고 요동의 야만스러운 오랑캐들을 대신 불러오지 않았던가.

고작 산동 끝자락과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종자들!’

그러니 금과 조선을 붙이는 건 치죄이자 단죄이기도 한 셈이다.

직접 대명大明에 봉사하기 힘들다면 대신 그들의 적을 약화시키면 되는 법.

더욱이, 이 과정에서 흘릴 피라곤 오랑캐들의 피뿐이다.

말 그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이지 않으냐?

깡마른 한간 신하가 음험하게 말했다.

“변방에서 군사를 몰아, 한창 장벽 세우느라 바쁜 조선의 관리들과 배신한 역적들을 모조리 도륙해버리면 반드시 싸움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히야.”

날카로운 눈매의 한간 신하가 감탄했다.

“실로 놀라운 계책입니다.”

“그렇지요?”

“하나……, 우리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군대가 없지 않습니까?”

날카로운 눈매가 금세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이는 한간이라는 출신 문제에 더불어서, 문관은 군사를 이끌 능력이 없다는 저평가가 더해진 탓이었다.

그래서 금나라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자는 십중팔구가 여진족 출신.

지극히 몇 안 되는 예외는 요동에서부터 배신한 무리였다.

그들은 오랑캐의 주구가 된 지 무척 오래였으므로, 중원 출신의 한간들은 요동 출신은 신용하지 않았다.

-섣부르게 그들을 포섭하려 들었다가 고변이라도 당하면 큰일 아니냐?

중원 출신의 한간들이 공유하는 인식이었다.

요동의 배반자들은 아닐지라도, 우리만은 대명大命의 치세와 문화를 여전히 그리고 있다고.

물론 그 대가가 가볍지는 않았다.

말마따나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군사도, 포섭할 수 있는 군대도 없었으니까.

전략의 재고가 필요한 시점인가?

아니면…….

“꼭 ‘진짜’ 군사를 움직일 필요는 없지요?”

말라깽이 한간이 음험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랑캐 군사들의 무구를 확보하는 것쯤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

“정녕 무구를 입수하는 것조차 불가하다 하여도, 흉내 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금나라의 문물과 물자는 태생답게 지극히 저열하니까. 복제에 딱히 대단한 어려움은 없었다.

하물며 금나라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울타리 너머의 조선을 속이기 위함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과연 그들이 분간이나 하겠는가?

“……오오!”

그 음험한 수법에 여러 한간이 감탄하고 찬탄했다.

수하들을 금나라의 군사로 위장하여 조선을 친다면, 조선은 실체를 분별하지 못하고 곧장 금나라를 보복하려 들 터!

감탄한 한간 하나가 호평했다.

“이것이야말로 대명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오랑캐들만 서로 치게 만드는 수법이니, 말 그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대인이 상책上策을 내니, 우리에게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감탄과 칭송에 늙은 말라깽이 한간은 늘어진 수염을 느긋하게 쓸어내렸다.

이것이, 연륜年輪이렸다.

“정녕 이견이 없다면…… 제공께서는 오랑캐의 무구들과 수족을 모아주시오. 대사大事의 구체적인 논의는 그다음에 가져봅시다.”

“알겠습니다, 대인.”

중원 출신의 한간 관리들은 정의의 실현과 오랑캐들의 징벌을 다시금 결의하고서 해산했다.

여러 사람이 야음을 틈타 조용히 장원에서 빠져나갔고, 은밀하게 각자의 거처를 향해 흩어졌다.

* * *

날카로운 눈매의 한간 관리는 무리에서도 유난히 호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들과 회합會合을 가질 때마다 열정적으로 금나라의 죄악과 조선의 비열함을 규탄했다.

그리고 명나라와 저들 의인義人들이 천명天明에 힘입어서 반드시 악적들을 징벌하여 대의를 성취하고 말리라, 열정적으로 확언했다.

그런 그의 본업은 상단주였다.

원래부터 그가 상단주였던 건 아니었다.

그는 본디 반가의 자제로서 반평생 공부만을 해왔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고 극복한 끝에 감투마저 쓰게 되었다.

그랬던 그가 본업을 변경하게 된 건, 호격의 금나라가 이자성의 순나라 반란군을 몰아내고 북경을 점령한 직후였다.

원래 명나라의 경제를 지배하던 주역은 태감太監들이었다.

황제가 명목상 만금萬金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황제 본인이 직접 관리하지는 않았다.

대신, 황제의 수족인 태감과 환관들이 주인을 대신하여 무한에 준하는 부를 직접 관리하고 운영해왔다.

부패하고 타락한 이들 환관과 태감들은 주인의 재산일지라도 손을 대거나 장난을 치는 데 딱히 거리낌이 없었다.

주인에게 가짜 장부를 던져준들, 황제가 그걸 검증할 수나 있겠는가?

자신들이 눈과 귀이니 입만 다물고 모른척하면 황제는 멍청하게 당해줄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황실은 사치품의 막대한 수요처이기도 했다.

황실은 방대한 중원 전역을 통틀어서 가장 값지고 희귀한 상품上品과 진미珍味를 시시때때로 사들이고 소모했다.

이 역시 환관들이 관할하고 감독하는 영역이었다.

태감들은 아주 쉽게 재산을 증식하고 북경의 경제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환관과 태감들의 독주는 허무하게 종결했다.

수도에 반란군의 위협이 다가오자 황제가 근시近侍 소수와 함께 북경을 버리고 탈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자리를 찾아온 듯 순나라의 이자성과 그의 측근들이 북경을 방문하고 장악했다.

이자성과 그의 측근들은 부패한 조정 관료와 환관들에게 유감이 아주 많은 자들이었다.

애초에, 그런 자들에게 시달려 일어난 반란이 순나라의 태생이었으니까.

순나라가 북경을 장악한 직후는 마치 명나라의 건국을 재현하는 듯했다.

명태조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도 본디 이자성과 마찬가지로 일개 농민 반란군 출신이었고, 역시 타락하고 부패한 관료와 환관들을 매우 증오했다.

그래서 홍무제가 북경北京을 장악한 다음에는 타락하고 부패한 관료와 환관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해버렸다.

이자성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수염 없는 자라면 여지없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여기에는 뭇 환관의 우두머리인 태감 중에서도, 정점으로 군림해온 위충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북경의 부와 권력은 주인 없는 신세가 됐다.

이자성과 그의 측근들이 잠시 부와 권력을 점유하긴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금나라에 패퇴하고서 그들의 본거지로 달아나야만 했다.

그런 순나라를 대신해 북경을 장악한 금나라는, 오랑캐 무리답게 권력을 정교히 농단하고 부를 철저히 독점하는 데는 그다지 자질이 없었다.

그저 칼이나 좀 휘두르고 활시위를 그럴싸하게 놓을 뿐.

바로 이때였다.

날카로운 눈매의 한관 관료가 자신의 업종을 변경한 순간이다.

그동안 학살을 피해 숨죽여 지냈던 그는, 금나라가 당도하자 충성의 대가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

금나라는 미개하고 야만한 국가라, 북경과 직예 일대를 독자적으로 다스릴 능력이 없던 덕이었다.

덕분에 한 줌 권력을 회복한 한간 관료는 자신의 위치를 수단 겸 무기 삼아 민간의 식량과 자산을 강탈했다.

반발이 심했지만, 금세 사라졌다.

그의 뒷배는 야만인들의 나라였으니까.

여진족은 말 안 듣는 중원인을 쳐죽이는 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눈매 날카로운 한간 관료의 판단은 이러했다.

나라는 안팎으로 지극히 혼란하고 오랑캐 주인은 무능해 치국을 몰랐다.

그런데 농지는 내전과 전쟁으로 무수히 황폐화하고 피폐해졌다.

그러면 결과가 어떨까?

곡물가가 무자비하게 폭등할 수밖에 없다.

머리 좋은 한간 관료에게는, 마치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지고, 하늘에서 내린 비가 강을 타고 바다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그리고 한간 관료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미 폭등해 있던 곡물가는 십수 배 더 폭등했다.

미곡은 종류를 불문하고 같은 무게의 금은과 거래됐다.

한관 관료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곡물의 판매량을 제한했고, 도둑이나 성난 폭도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처단했다.

한간 관료의 축재蓄財는 곧 부의 축제祝祭이기도 했다.

북경과 주민들은 거듭 약탈을 당했음에도, 기술적으로 잘 긁어내니 수백만 냥의 금은이 모였다.

본디 명나라 시절 태감들이나 가능했던 경지.

눈매 날카로운 한간 관료는 장부만 봐도 황홀경에 이르렀다.

이성과 지성이 모두 기쁨에 녹아내리는 극도의 황홀경.

하지만, 이 재미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조선인 상인들이 금나라를 쫓아 북경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한간 관료가 의도적으로 폭증시킨 곡물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양곡을 팔았다.

조선인 상인들은 각기 다른 상단 소속으로 서로 경쟁했으므로, 곡물가는 빠르게 하강했다.

눈매 날카로운 한간 관료는 그렇게 황홀경에서 쫓겨났다.

모든 기쁨을 한순간에 강탈당하자 한간 관료는 뇌수가 썩고 사지는 벌벌 떨리는 고통을 느꼈다.

그는 조선인 상인들의 건방진 난행을 허락한 금나라 조정을 뼛속까지 증오했다.

조선인 상인들의 본거지이자 소굴인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마침 그의 주변에는 사정 비슷한, 좋은 장사를 망쳐 분개한 사람이 꽤 있었다.

* * *

……그리고 현재.

눈매 날카로운 한간 관료가 수하들 앞에서 일렀다.

“너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금나라 군사들의 군복과 무기를 확보해라!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

분명, 이것은 대명국의 복수를 위한 의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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