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351화
우당탕!
누군가 정신없이 대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장원을 지키는 하인들이 놀라 뛰쳐나가 막았지만, 이 불청객은 무척이나 다급하고 필사적인 손짓으로 하인들을 모두 밀쳐내고서 장원의 주인 앞으로 달려왔다.
“대인!”
“너는…….”
장원의 주인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대사大事를 공모한 동지의 하인이었으니까.
그런 놈이 무척 다급한 얼굴을 하고 찾아왔으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불미스러운 사건뿐이었다.
“대인!”
불청객을 막아서지 못한 장원의 하인들이 쩔쩔매는 얼굴로 다가왔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난입한 불청객으로 인한 질책만을 걱정하는 모습들이었다.
장원의 주인이 팔을 휘둘렀다.
“장원의 입구를 막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장원의 주인은 단정을 서두르는 대신, 일단 대문부터 막으라며 재차 팔을 휘둘렀다.
곧 하인들이 다시 뛰쳐나가 대문을 닫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그동안 장원의 주인이 채근했다.
“속히 고해라!”
“큰일 났습니다! 제 주인이 잘못한 게 하나 없는데, 갑자기 금나라 병사들이 쳐들어오더니 장원과 창고를 마구잡이로 뒤집어놨습니다!”
“뭣!”
장원의 주인이 사색이 되어 기함했다.
동지의 처소에는 확보해둔 무구의 일부가 있었다. 놈들이 작정한 듯 헤집는다고 하니, 지금쯤이면 숨겨둔 무구들도 적발되었을 터!
‘어디서 말이 샌 거지?!’
장원의 주인은 기겁하였으나, 이내 냉정하게 정신을 가라앉히고서 일렀다.
“알았다. 너는 주인에게 돌아가지 말고, 다른 대인大人의 처소도 방문하여 소식을 알려라.”
“아, 알겠습니다.”
“가라! 서둘러라!”
“예!”
하인이 허둥지둥 대문을 열고 나갔다.
장원의 주인은 생각했다.
‘놈들이 작정하고 뒤졌다는 건 믿을만한 정보가 들어갔다는 뜻이다. 두 오랑캐를 서로 치게 만들어 공의公義를 달성하자는 대사가 모조리 그르쳤구나!’
장원의 주인은 절망하다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대로 곱게 죽을 수는 없다!’
장원의 주인은 결의에 찬 얼굴로 제 하인들에게 일렀다.
“창고를 열어 무구를 모두 꺼내라! 곧 금나라의 병사들이 들이칠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장원 한복판에 무기와 갑옷이 쏟아졌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건 일자무식인 하인들이라도 알 수 있었을까.
장원의 주인이 하인들을 모두 소집하였으나 과반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비열하고 한심한 배신자들 같으니!”
장원의 주인이 치를 떨며 일갈했다.
어떻게 문명을 숭상하는 사람이 되어, 오랑캐들과 맞서는 순간에 부끄러움 없이 등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삼대가 내리 내장이 썩어 죽을 것이다!”
악에 받쳐 저주를 토해낸 장원의 주인은 자신 앞에서 눈치를 보는 하인들에게 무장을 명령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찾아올 오랑캐의 하수인들을 기다렸다.
과연, 머지않아 분주한 발소리들이 거리를 타고 다가왔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라! 우리는 이 집을 수색하라는 대한의 명령을 받아서 왔다!”
“닥쳐라! 이 오랑캐의 주구들! 그깟 추장의 명령이 어떻다는 말이냐!”
장원 주인의 일갈에 침묵이 뒤이었다.
금나라의 군사들은 단지 수색을 위해 찾아왔을 뿐.
집주인이 반역을 도모했다는 건 파악하지도, 전해 듣지도 못한 참이었다.
일단 가택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받아 돌아다니고는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성과가 없던 참이었다.
그런데 장원의 주인이 정직하게도 제 발을 저린 것이다.
의외라는 시선들이 당혹한 가운데 교차했다.
그 침묵 속에서, 장원의 주인은 내심 기대했다.
저들이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깨닫고서 알아서 물러나지는 않을까 하는.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전개는 벌어지지 않았다.
장원의 주인이 당당하게 자신이 역적이라는 것을 드러냈으니, 금나라의 군사들은 성과 없이 등을 돌릴 수 없었다.
퍽!
나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휘청거렸다. 도끼로 쪼개는 것이다.
장원의 주인은 자신이 기어코 최후를 직면했음을 깨닫고서 꼴깍 침을 삼켰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안쪽으로 쓰러졌다.
그 위로 금나라 군사들이 발이 우당탕탕 올라갔고, 마당을 지키던 장원의 주인들은 군사들의 기세에 놀라 달아났다.
“뭣! 돌아와라!”
장원의 주인이 놀라 팔을 뻗었으나 그런다고 도망치는 하인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금나라 군사들이 장원의 주인 주변을 포위했다.
그 흉흉하고 기세등등한 모습에, 장원의 주인은 사방으로 칼끝을 들이밀다가 곧 자신의 목을 겨눴다.
그러자 금나라 군사를 이끄는 장교가 손바닥을 내보였다.
“잠깐!”
“…….”
“네놈 혼자 반란을 일으키려던 건 아니겠지.”
“…….”
“다른 역적들이 누구인지 알려준다면, 너를 보지 못한 것으로 넘어가 주겠다!”
장원 주인의 눈빛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 * *
쾅!
호격이 성난 얼굴로 팔걸이를 내리쳤다.
“기껏 살려주었더니 나를 배신해?!”
분개한 목소리가 어전에 쩌렁쩌렁 울렸다.
금나라의 대신들은, 반란을 적발하는 데 자신들이 해낸 게 없으므로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바닥에는 피까지 뿌려졌으니까.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 채로 입조한 한간 관리들이 모조리 어전에서 베어진 탓이었다.
목 달아난 몇 구의 시체들이 저마다 꿀럭거리며 몸에 남은 나머지 혈액을 짜냈다.
“더는 볼 것도 없다! ……라이무부!”
한의 호명에 반란을 사전 적발해낸 라이무부가 피바닥을 철벅거리면서 나와 무릎 꿇었다.
손끝과 함께 바닥에 닿는 부분이 모조리 끈적이는 혈액으로 젖었으나, 라이무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차피 곧 피로써 몸을 적실 예정이기 때문일까.
“대령했습니다, 폐하.”
라이무부가 대답하자 호격이 질린 얼굴로 손을 저었다.
“그대가 다시 호위대를 맡아 수도를 청소하라! 반역한 자들은 당연히 씨족까지 죽이고, 방해가 되는 자들 역시 모조리 죽여라!”
“예!”
라이무부는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에 전율하며, 쿵 이마로 바닥을 찧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 때는 온통 얼굴에 피가 묻은 채였다.
* * *
라이무부가 군사를 이끌고 출성하는 동안.
북경에서는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누군가의 상세한 고변 덕에, 반란을 모의하던 이들의 처소마다 금나라의 군사들이 찾아갔으니까.
한간 관료들은 고이 죽어줄 생각이 없었다.
몇몇 장원에서는, 끝내 금나라의 군사들을 떨쳐내기도 했다. 금나라 군사들이 급작스레 사정을 파악하고서 체포에 돌입한 만큼 그 수가 많지 않았던 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자유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금나라의 군사들을 격퇴한 한 장원에서, 주인이 옅게 중얼거렸다.
무장한 그와 하인들, 그리고 마당에서 나뒹구는 금나라 군사들의 시체 몇 구는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음을 보여주었다.
그때였다.
“금나라 군사들이 사람을 죽였다!”
담벼락 너머 옆집에서 들린 외침이었다.
소란이 작지 않았으니 옆집에서도 사태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하지만, 금나라 군사들이 반역자를 체포하고자 찾아와 싸운 내막까지는 모르는 모양.
그저 무작정 찾아와 사달을 일으킨 것으로 착각한 듯했는데, 그것이 장원의 주인에게는 번뜩이는 영감을 주었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하인들에게 외쳤다.
“다들! 장원을 나가서 외쳐라! 금나라 오랑캐들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다닌다고 말이다!”
일단 북경에 엄청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혼란이 벌어지면 틈을 타 탈출을 도모할 수도 있고, 세인들이 거의擧義에 동참한다면 더더욱 좋다!’
마침 무구들도 구비해둔 참이었다.
원래는 금나라의 군사로 위장하여 조선의 변경을 치기 위한 무구였기에,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멍청하게 있지 말고 나가서 알리란 말이다!”
장원의 주인이 채근과 함께, 몸소 모범을 보이겠다는 듯 무장한 채 거리로 나가서 외쳤다.
“금나라 군사들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다닌다! 금나라 군사들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고 다닌다!”
과연, 그 외침에 북경의 거리가 순식간에 분주해졌다.
여러 사람이 뛰쳐나갔고 아이는 울었으며 개들은 짖었다.
고작 반 시진 전의 고요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듯한 혼란. 그 틈을 타 한간 관리들과 사대부들이 도망다니는 이들을 선동하고 닦달했다.
적들이 비록 사납다곤 하나 수가 적으니 함께 맞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때마침 무장까지 들려주니, 장정들은 반란에 동참할 생각은 없더라도 저들 가족만은 여차하면 지킬 심산으로 무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앞에 라이무부와 호위대가 당도했다.
라이무부가 외쳤다.
“이 축생畜生들이 떼거리로 배신을 모의했구나!”
혹 양자의 언어가 통했다면, 상황은 만에 하나일지라도 달라졌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여진족은 여진족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했고, 그들의 수장인 라이무부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쳐라!”
일갈과 함께 금나라에서 최고의 무력을 보유한 호위대가 박차를 가했다.
전마戰馬들이 일제히 김을 뿜어내며 질주했고, 엉성하게 무기를 들고 서 있던 북경의 주민들은 그대로 말발굽에 짓밟혀 분쇄됐다.
예외는 없었다.
말에 받혀 날아간 자, 말발굽에 찍혀 넘어진 자, 도망치다가 누군가에게 밀쳐 쓰리전 자 모두 흙바닥과 수백 개의 질타하는 말발굽 사이에 압착되어 피곤죽이 되었다.
일부 달아나거나 말을 피해 두 다리로 선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기수騎手들이었다.
그들이 곧바로 창과 칼을 내질러 질주하는 호위대 앞에서 감히 두 발로 서지 못하게 만들어주니, 곧바로 전마들이 뒤따라 짓이겨버렸다.
수도 북경에는 붉은 파도가 쏟아진 듯 거리마다 피바닥이 번져나갔다.
비명과 고함. 저주와 오열.
귀 따갑게 사방에서 인간들이 저마다의 감정을 내지르는데, 거리마다 두 발과 네 발이 정신없이 내달리고 지붕들 아래에서는 언제 번졌는지 모를 불에 의해 연기가 치솟았다.
북경의 생명력은 놀라웠다. 두 번의 약탈과 방화에도 몇 년 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으니.
그러나 혼란 속 일어난 화마火魔 앞에서 밀집한 건물들은 그저 장작더미나 다름없었다.
화재는 피바닥과 함께 빠르게 번져나갔고, 청명했던 하늘에는 시커먼 연기가 매캐하게 번져나갔다.
대낮이 마치 일식日蝕처럼 변했다.
그 아래에서 무수한 인간들이 감정과 저주를 토해내고, 토해내고, 또 토해내다가, 그렇게 죽어갔다.
* * *
북경은 또다시 파괴됐다.
처참할 정도의 살육이 벌어지고 난 뒤, 태울 만한 건 이미 다 태워버린 화마는 알아서 사그라들었다.
금나라는 이를 대승으로 선언했다.
실제로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제 손으로 수도 겸 요서 통치의 중심지를 파괴하고 무수한 인명을 살상해버린 금나라와 호격이다.
반란 진압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려 든다면, 절대로 좋은 평가가 나오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빈대를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었으니까.
그러니 대승으로 칭해야만 했다.
대승으로 여겨져야만 했다.
그래서 호격은 이를 대승이라고 자축했으며, 선두에 섰던 라이무부는 원했던 바를 얻었다.
조선 역시, 원했던 바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