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조 명군이 되다-352화 (352/380)

인조, 명군이 되다 352화

호격은 연일 자화자찬을 이어갔다.

금나라는 대승했고, 사특한 모리배들의 반란 시도는 철저하게 분쇄되었다고.

그러나 분쇄된 것은 반란 시도만이 아니었다.

대화재와 함께 거주 구역 과반이 사라졌고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주인이 학살됐다.

거둔 수급首級이 산을 쌓을 지경이라는 점에서만은, 어쩌면 대승일지도 모른다.

그 도살해버린 수급들이 모조리 세금과 노동력을 제공하던 자기 집 백성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여염의 단위로 따지자면, 농장 주인이 자기 가축들은 모조리 도살해버린 채 축사에는 불을 지르고 고기 잔치라고 자축하는 꼴이다.

이런 사람을 멀리서 본다면 유쾌한 병신쯤으로 여기겠으나, 가까이서 본다면 상태 이상한 놈이고, 혹 가족쯤 된다면 돌아버린 농장주가 원수에 미친놈으로 여겨지리라.

금나라의 신하 중 적잖은 이들이 호격을 딱 그렇게 여겼다.

국경 너머에서는 자기 집으로 불장난을 한 유쾌한 병신으로 여기는 동안 말이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수도의 재천도 논의가 일었다.

북경이 파괴된 것은 이유로서 거론되지 않았다.

역린이었으니까.

대신, 사람들은 북경이 반란한 족속의 중심지이고 아직 혼란한 와중이라 행정의 중심으로는 적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드러나는 명분만은 그럴싸했다.

단지, 겉 보다는 내재한 본의를 눈치껏 받아들일 뿐.

‘북경이 아주 개판이 되어버렸는데 계속 수도로 두겠다고?’

‘이 지경에 북경을 고수한다는 건 아집이나 다름없다!’

여론이 이러했지만, 호격은 천도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칫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꼴로 보일까 두려워서였다.

반란 진압이 성공 아닌 성공, 실패 아닌 실패로 귀결하면서 입지가 이상해진 참.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수도를 옮기는 일이 가볍지는 않으니 차차 논의할 일이고, 아무튼 반란 진압은 대성공이다!

이것이 호격이 대외적으로 고수하는 태도였다.

덕분에 꼴이 우스워졌다는 건, 당사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격은 승전을 축하하러 왔다는 사절을 복잡한 심경으로 맞이했다.

“경하드립니다, 한이시여.”

사절은 얼마 전에도 북경을 방문했던 이였다.

조선의 우의정, 김류.

국경에서 장벽 건설을 전담한 이였다.

지난 만남에서 호격은 김류에게 그가 맡은 사업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류도 왕명을 받아서 사업을 전담하고 있었을 뿐.

사업을 중단시킬 권한은 없었다.

논의를 상주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기실 발의한 사람은 본인인지라 이마저도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김류로서는 호격의 간섭이 불쾌하다 못해 모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김류가 제 발로 북경을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승전을 축하하는 사절이라는, 호격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이용해서 말이다.

김류가 찬양했다.

“한께서 역적들을 단칼에 쓸어버려 한순간에 난을 평정하시니, 근래에 이만큼 호쾌한 대승도 없었사옵니다.”

호격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김류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하오나, 관官이 주변에서 듣건대 아직도 수도 주변에는 의심하고 불만 많은 자들이 있어, 민심이 맑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한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관官이 상上께 주청하여 군사를 원조해드릴까 하옵니다.”

말은 그럴싸하였으나 싸게 표현하자면 이러했다.

-너네 개판이라며? 우리가 막타 쳐줄까?

과거, 호격은 장벽 건설에 대해 강한 어조로 겁박하며 내정간섭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김류는 정반대로, 군사 파견을 통한 간섭으로 겁박하며 되로 받았던 것을 말로써 돌려준 것이었다.

“…….”

호격은 얼굴이 구겨지다 못해, 파기한 종이뭉치처럼 찌그러졌으나 신하들의 시선에 애써 인상을 폈다.

김류의 방문 의사나 발언 모두 표면적으로는 성공적인 반란 진압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다 대고 자신이 지난날 겁박했던 것을 복수하는 거냐며, 면상 와락 찌그러뜨린 채로 따진다면 진짜로 막타 치러 와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호격은 애써 부처를 떠올렸다.

딱히 신에 의지해본 적 없는 그였고, 의례적인 의식으로만 여겨왔으나 지금의 호격에게는 진짜로 부처의 가호가 필요했다.

억지로 인상을 편 호격이 어색하게 말했다.

“귀공의 축하와 배려는 무척 고맙다.”

김류가 정중하게 허리 숙였다. 그 모습마저 호격에게는 아니꼬왔으나, 억지로 말을 이었다.

“……하나 이는 금나라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수습에 대국의 원조를 바라기엔 염치가 허락하지 않는다. 귀공은 조선국 전하의 성총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마음에만 담아두라. 말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니.”

이에 김류가 답했다.

“한께서 정중하게 사양하시니 어떻게 강권하겠습니까? 다만 지난날 한께서 아조의 사정을 거듭 헤아려주신 은혜를 생각하니, 도의상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을까 우려할 따름입니다.”

저번에 시도하던 내정간섭은 어디에다 팔아먹었냐는 추궁이었다.

호격은 직감했다.

이 자리에서 시인하게 된다면, 더더욱 조선의 장벽 건설에는 간섭할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어서도 나는 뻔뻔하게 간섭하고 싶지만, 너희 간섭은 받고 싶지 않다고 강짜 부릴 수는 없는 노릇.

당장 재천도가 논의될 정도로 황폐해진 수도와 동요하는 민심, 양산된 난민과 조만간 창궐할 것이 예정된 도적들을 앞두고 외환外患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호격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난날에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여 대국의 정사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지금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니 내부를 돌보는 데만도 벅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말은 얌전하였어도 타는 속은 부정할 수 없었던지라 호격의 얼굴은 그새 벌겋게 물들었다.

“기업基業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바깥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겠는가? 더더욱 염치가 없을 따름이니, 부디 대국 전하의 성총을 어지럽히는 일은 바랄 수가 없다. 마음만 받겠다.”

다시는 까불지 않겠다는 항복 선언.

이것이 뼛속까지 깨우치고서 나온 자기반성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당장 호격이 바깥에 신경 쓸 자격도, 여력도 없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복수는 김류는 기분이 좋아졌다.

혹자는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지만, 그게 말이 되는가?

성공한 복수가 최고의 복수인 법. 하물며 그 방식이 자신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라면, 기쁨은 배가된다.

김류는 마음 같아서는 호격을 더 조리돌림하고 싶었다.

새파란 게 건방지게 대조선국의 대신을 겁박하였으니까. 개같이 망신을 준들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당초 호격과 금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겠다는 목적은 이미 달성한 상태.

단지 일신의 유쾌함을 노리고자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사사롭게 호격을 망신준다면 사직社稷에 해를 끼치는 꼴이었다.

‘아쉽구나!’

김류는 내심 탄식하고는 수긍했다.

“한의 뜻을 알겠습니다.”

“……고맙다. 내, 하관下官들을 시켜 자리를 마련할 터이니 공이 꼭 참석해주었으면 한다.”

집안 사정이 만신창이라도 일국의 군주인 호격이 체면치레를 아니 할 수는 없는 법.

더욱이 사신이 축하할 의사로 방문했으므로, 방문의 본의야 어쨌건 간에 보답은 해야 했다.

“받들겠습니다.”

“그래. ……공은 이만 물러나라. 신하들과 나누던 이야기가 있으니.”

“예.”

김류가 물러나는 예를 표하고 어전을 비웠다.

그러나, 호격이 말했던 ‘신하들과 나누던 이야기’가 재개되지는 않았다.

어전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호격은 용상에 팔꿈치를 댄 채, 복잡한 얼굴로 이마를 짚고서 긁었다.

* * *

“금나라가 제압됐나.”

나는 붉은색 장계를 내려놓았다.

이제는 다 끝난 일이지만, 금나라의 한간 관료들은 흥미로운 계획을 구상한 듯했다.

무구를 잔뜩 모아두었으나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분명, 반란은 속전속결일진대 말이다.

누군가를 해칠 의도는 분명했으나 직접 금나라를 향하지는 않았다는 뜻.

‘설마, 금나라 군사로 위장해 조선의 변경을 치려고 했나?’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성공한다면, 한간 관료들이 적대하는 조선과 금나라 모두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는 게 가능했으니까.

때마침 금나라 조정에서도 조선이 장벽 건설을 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참.

‘주로 한간 관료들에 의해서 말이지…….’

조선 역시, 정보를 입수하고서 선제 타격까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확실히, 성공만 했다면 파멸적인 결과를 낳았으리라.

그러나 이이제이를 노렸던 한간 관료들은 이쪽의 선수에 역으로 이이제이를 당하고 말았다.

보복으로서는 속이 시원하기 짝이 없다.

다만 아쉬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한간 관료들은 주도적으로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키던 자들.’

명맥이나마 이어졌다면, 잔당이 안에서부터 금나라의 골수를 다시금 파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격은 호쾌하게 한간 관료들을 도살해 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경의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해 한간 관료들의 유지를 이을 끄나풀조차 남지 않았다.

‘대신 중원에서 혐금 감정이 강화됐으니, 반 금나라 조직이라도 설립해볼까?’

내부에 반사회 세력을 심는 건, 사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사회이건 도태된 사람은 있으니까.

그 사회의 분위기가 부정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사람은 쉽게 타자에게서 책임소재를 찾고, 사회에 정말로 부조리가 만연하다면, 있는 책임과 없는 책임 모조리 떠넘겨서 적대할 수 있으니까.’

당장 금나라가 지배하는 중원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반사회 세력을 심는 게 동서고금에서 전례 없던 일도 아니지.’

동서고금을 통틀어 세력이 경쟁자 내부에 불안요소를 심으려는 시도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전 역사에서,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던가.’

중동과 남미에서 극렬 종교집단과 군부 및 야당의 쿠데타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대부분 성공했다.

미국의 자국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이익에 반하는 현지 정부를 파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목표는 달성되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그보다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극렬 종교단체와 군부 및 독재자, 혼란 속에서 번진 범죄 집단의 지배로 중동과 남미는 개판 중에서도 상개판이 되어버렸다.

그들 세상이 지옥이 되어 사람들이 서로 죽이거나, 억류하고 착취하면서 온통 마약과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건, 미국이 알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역류해오는 무수한 이민자와 범죄자들 그리고 마약은 분명 문제가 됐다.

더욱이 중동과 남미에서 뿌리 깊게 박히게 된 반미 감정 또한, 미국의 범세계 패권 유지에 이롭지 못했다.

‘사방팔방 분탕을 치고 다닌 대가지.’

그러니 반사회 집단을 심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 역시, 자신들이 지원했던 반사회 집단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을 테지.’

그리고 그런 미국조차도 실패했다.

조선은 금나라 하나조차 뜻대로 조종하기 어려워 술수를 써야 하는 판국이다.

그 금나라에 내부에 또 분탕을 치는 세력을 만들겠다는 건, 얼핏 새로운 목줄을 거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었다.

‘조심할 필요가 있지.’

남발은 금물.

‘그리고 꼭 반사회 집단을 심어야 한다면, 솔직히 금나라보다는 일본이 우선순위다.’

금나라야 지금처럼 가벼운 공작으로 저지할 수 있다.

내부의 결속과 질서, 지배와 장악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니까.

일개 유목민족 부족이 덩치만 커졌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조선에 굴복한 형국이기도 하고.

그러나, 일본은 어떠한가?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현시점의 조선보다도 강하다.

내부에서 질서를 강화하고 있으므로, 가벼운 술책만으로는 흔들기도 쉽지 않다.

‘그러한 시도가 적발된다면 무력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조선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는 일 순위기도 하다.

단순 비교만으로는 스페인 제국이 일본보다 더 강하겠지만, 이놈들은 본거지가 지구 반대편에 있고 이미 세계 각처에서 분탕을 치느라 바쁘다.

실제로도, 포르모사가 넘어갔는데도 여태껏 대응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니 스페인 제국을 제외하자면 단연 일본이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다.

견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견제는 물리적인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하면서도 은밀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본의 사회는, 반사회 집단이 성장할 환경으로선 이만한 곳이 없을 정도지.’

지리상 바다로 폐쇄되어 도망조차 마뜩잖은데, 가혹한 착취가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오죽하면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부족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영아살해 문화가 국가 단위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졌을까.’

이만하면 반사회 집단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하고, 그래서 실제로도 에도 막부는 수백 년 내내 민란을 겪었다.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우리가 조금 보태주는 게 어렵지는 않을 테지…….’

때마침 대마도를 조선 쪽으로 끌어오려는 중.

만약 대마도를 기점 삼아 열도의 반정부 세력을 은밀하게 지원한다면, 저 혼자서 흔들리는 금나라에 또 분탕을 치는 것보단 더 이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이건 유혹이 심한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