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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57화 (357/380)

인조, 명군이 되다 357화

“적장을 처단했다!”

부두로 돌아온 시게오키가 수급을 들고서 외쳤다.

대마도의 옛 주인, 소 요시나리의 머리였다. 막 참획한 수급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절단면에서 뚝뚝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흉악한 광경에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게오키와 동행한 낭인들이 이미 승전한 것처럼 함성을 내질렀다.

“에이! 에이! 오!”

“에이! 에이! 오!”

마치 결과에 못을 박는 듯한 함성이었다.

피칠갑 한 낭인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에, 제때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대마도의 병사들이 눈치를 보다가 무기를 내렸다.

그들의 주인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상황.

그리고 독전할 가신이나 무사 또한 산 채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일개 잡병에 불과한 그들이 흉포한 낭인들에게 맞설 수야 없었다.

시게오키와 낭인들이 기세 좋은 함성이 신호가 되었을까.

수평선에서부터 다가오는 함선들이 있었다.

족히 십수 척은 될 세키부네?船 선단이었다.

“능력은 좋군.”

시게오키가 이목을 쫓아 뒤를 돌아보고는, 감탄해서 말했다.

저만한 선단이라면 노잡이들은 제하더라도 상당한 숫자의 병력을 태우고 있으리라.

그 병력에다 대마도 원주민들까지 무장시켜 성을 공격한다면, 함락도 꿈결만은 아니었다.

곧, 어떠한 저항도 없이 시게오키를 지원하기 위한 선단이 부두에 닿았다.

병사들은 하나둘 긴장한 얼굴로 뭍에 내렸다.

역시 낭인만은 못한 모습.

목숨을 건 싸움이 곧 살아가는 방식인 무사와는 다르게, 범부들에게 있어서 싸움이라면 최대한 피하는 게 이로운 법이니까.

그럼에도 최소한의 무장을 갖춘 채 대마도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떠돌이 유랑민이나 도적이라면 새로운 터전이 이유가 될 수는 있겠군…….’

시게오키는 내심 분석하는 동안, 오가는 병사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아.”

그의 조력자이자 가장 큰 후원자이며, 불명의 세력을 등에 업은 상인이었다.

그는 시게오키에게 인사하며 덧붙였다.

“덕분에 저항 없이 의병義兵들을 부두에 진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게 내가 맡은 임무였으니까. 그런데, 의병?”

뭐 얼마나 정당하고 올바른 군사들이라고 그런단 말인가.

시게오키가 기억하는 상인은 딱히 비꼬아 말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막부와 종씨 가문 모두, 기만적이며 백성들을 착취하는 사악한 무리들이지요. 그들을 단죄하기 위해 나리가 나섰으니 이에 따르는 이들은 모두 의병 아니겠습니까?”

“……흥.”

시게오키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했다.

그러나, 마음이 아주 동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막부와 종씨들은 모두 기만적인 종자들이 맞았다. 그들을 단죄하는 건 분명 악보다는 의에 가까우리라.

그렇다면 군사들도 마냥 의병이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는 셈이다.

“재미있군. 그렇다고 치지.”

“성은, 어떻게 함락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마도의 중심지 이즈하라嚴原에는 두 개의 큰 성이 있었다.

하나는 산기슭에 세워진 가네이시성金石城이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을 앞둔 시점에서 더 안쪽에 물자 보관용으로 세워진 시미즈산성?水山城이다.

대마도가 강대한 세력은 아닐지라도 양국의 무역을 중개하며 상당한 부를 지녔던 만큼, 두 성 모두 엉성하지 않았다.

하물며 후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세워진 성.

면적이 방대하여, 혹 종씨 가문의 잔당이 숨어들어 저항한다면 쉽게 장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게오키는 근심 따위 하나도 들지 않았다.

“내가 누구냐? 원래는 이곳의 가신이었던 사람이다. 당연히 내부로 통하는 비밀 문도 여럿 알고 있지!”

종씨 가문에서 여차하면 탈출용으로 쓰고자 만들어놓은 일부 암문暗門이 있었다.

대놓고 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출입로들과는 달리, 지붕도 누각도 특별한 장식도 없이 후미진 곳에 덩그러니 있으므로 어지간한 사람들은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게오키는 대대로 대마도에서 가신을 지냈던 집안의 후예.

비밀 문 따위 얼마든지 알고 있었다.

“허접한 병사들은 바깥에서 공격하게 하고, 내가 직접 무용이 뛰어난 무사들을 데리고 비밀 문을 통해 침입한다면 종씨의 떨거지 잔당들은 저항하지 못할 것이야.”

“자신감이 넘치시는 걸 보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걱정? 하!”

시게오키는 코웃음을 치곤 들고 있던 수급을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상인의 가슴께에서 피가 튀었다.

목 달아난 요시나리의 낯짝이 혀를 내민 채 축 늘어졌다.

“아무튼, 네가 원했던 요시나리의 수급이다. 왜 사람 대가리를 원하는진 모르겠지만 이상한 성벽이라도 있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군.”

상인은 가슴께 묻은 피를 주시하다, 시게오키에게 피식 웃었다.

“농담까지 하시는 걸 보니 여유만은 넘치시는군요. 하지만, 이제는 다녀오시지요. 저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더 줄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

시게오키는 단답하고는, 일부 낭인들에게 일러 의병과 항복한 대마도의 병사들 및 백성들을 통솔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외부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자신과 함께 침투할 나머지 낭인들을 이끌고 멀어졌다.

* * *

두두두두두!

십수 개 발들이 황급하게 나무마루를 찍어댔다.

비명과 고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시게오키와 낭인들은 방황하는 하인과 병졸들을 베어나갔다.

그중에는 침입자를 알아보는 이 또한 있었다.

“시게오키 님!”

한 무사가 검을 내던지고 두 팔을 들었다.

시게오키 또한 아는 자였다. 자신의 가문과 가깝게 지내면서 안면을 틔웠던 사람이다.

무사가 말했다.

“합류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좋아. 여기서는 적아의 구분이 어려우니 나가서 병사들을 무장 해제시켜라.”

“예, 예!”

무사는 예를 올리고는 황급히 달아났다.

그가 정말로 항복한 것일까? 혹 그러한 척을 하고서 배후를 찌르려던 의사는 없었을까. 정녕 그랬다면, 제 뜻이 먹히지 않은 지금 어딘가로 달아나고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게오키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뒤늦은 투항자 따위에 연연하기엔 마주한 대사大事가 워낙 막중했다.

“종宗씨 성을 단 것이라면 하나도 살려놓지 마라! 이 땅에서 종씨 성을 쓰는 놈들은 모두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오!”

낭인들이 호쾌하게 답하였으나, 기실 열도를 배회하던 그들이 종씨 성을 쓰는 놈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확실하면서도 단순한 방법을 사용했다.

우군만 아니라면 그저 베어버리는 것이다.

덤벼들거나 도망치고 숨는 것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면, 종씨 종자들은 자연히 절멸하겠지.

발바닥으로 마루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고, 비명과 외침을 쫓아 발소리가 다다를 때마다 바닥과 벽에 피가 뿌려졌다.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는 가운데 낭인들은 저들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실로 공정한 거래였다.

부유하고 유능한 미상未詳의 진짜 주인을 모시는 대가로, 간판인 시게오키와 함께 적을 살육하고 전공을 쌓을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진정 낭인들이 되찾고자 했던 과거의 삶이었다.

* * *

시게오키는 가네이시성에 이어 시미즈산성까지 같은 방식으로 점령했다.

시미즈산성은 물자 비축용으로 축조된 만큼, 종씨 가문의 잔당들은 지구전이라도 펼칠 요량인 듯했으나 시게오키가 비밀 문을 통해 침투하자 금세 항복해 버렸다.

시게오키는 종씨 가문의 마지막 잔당들을 처단했다.

대마도는 섬.

대사가 그르쳤을 경우, 도망칠 수 없다는 지형적 맹점은 종씨 가문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열도에서 멀리 떨어져 고립된 세계인 대마도는 빠르게 새로운 주인을 인정했다.

그리고 앞다투어 종씨의 잔당을 바쳐 새롭게 등극한 주인에게서 후의를 사고자 했다.

시게오키는 기꺼이 종씨 성을 단 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대세의 변화에도 제때 항복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편을 바꾸고자 했던 가신과 무사들 역시도.

어차피 시게오키 자신과 함께 대마도로 들어온 낭인 무사들과 병사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죽어줘야 자리를 충분하게 나눠줄 수 있지 않겠는가.

대마도에 오래 뿌리 내린 채 저마다 유서 깊은 세력을 구축한 가문들은 쉬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주효했다.

아예 싹 갈아치워 버려야,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강탈하려는 경쟁자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부의 정리를 마친 시게오키는 본디 종씨 가문의 거성이자 자신이 첫 번째로 점령한 성, 가네이시성으로 귀환했다.

시게오키가 바삐 떠날 적만 하더라도 가네이시성의 천수각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으나 그새 깔끔해져 있었다.

새롭게 충원된 하인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인사를 올렸다.

“흐으으음…….”

시게오키는 마저 몰아내지 못한 형향을 느끼면서, 자신이 베어버렸던 소 요시나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이런 기분이었나?”

죽은 사람에게서 답은 없었다.

하물며 몸통은 바다에 버려지고, 수급은 조력자에게 넘겨진 참.

그가 원귀가 되어 나타나지 않는 한 대답을 듣기는 어려우리라.

기실, 시게오키도 딱히 요시나리의 대답이 필요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천수각의 꼭대기 층이 영주가 기거하는 장소였다.

시게오키는 기꺼이 소 요시나리가 데워놓고 있었던 자리를 차지하러 향했다.

내실內室의 입구는 하인들이 지키고 있었고, 시게오키가 등장하자 눈치껏 좌우로 문을 열어주었다.

안쪽에서는 텅 빈 공간과 함께 그 가운데 선 조력자 상인이 시게오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와 있었군.”

시게오키가 뚱하게 말했다.

이 공간을 최초로 오롯이 느끼고 싶었거늘.

조력자가 답했다.

“무사들을 소집하기 전에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실 듯해서 말입니다.”

“……그건.”

그랬다.

이제는 정산이 필요한 때였다.

시게오키는 대마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으나, 대마도의 진정한 주인은 그가 아닐 터였다.

아마 휘하로서 지휘한 낭인들 역시 자신 이전에 조력자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터.

조력자가 데려온 병사들 역시 그럴 공산이 컸다.

시게오키 자신은 대외적으로 걸어놓은 간판에 불과한 것이다.

“대사大事는 다 마쳤으니 솔직한 대답을 기대해봐도 되겠지? 자네의 정체는 뭔가? 뒷배로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고?”

조력자가 답했다.

“나리께서 짐작하고 계시는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비술이라도 쓰나?”

“나리께서 짐작하신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

시게오키가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과연 그러했다.

두 강대한 국가 사이에 끼여 이리저리 박쥐처럼 들러붙고 빨아먹으며 존속해온 대마도다.

그러나, 이런 대마도라도 언젠가는 특정한 세력에 귀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까지는 열도에 가까웠다.

대마도의 유력자들 또한 이러한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

이러한 흐름, 반전시키고픈 세력은 어디일까.

막부의 지배를 받아들인 대마도의 종씨와 여타 유서 깊은 유력 가문들을 쓸어버리고픈 세력이 어디일까?

그래서 대마도를 백지상태로 만들어버린 다음, 이미 막부에서 버림받아 의지할 데 없는 풍전등화의 신세를 대마도주로 만들고 싶을 세력이 어디일까?

이 모든 책략이 대마도의 궁극적인 주권을 반전시키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기실 조력자의 배후를 짐작하는 건 해가 내일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질 것을 예상하는 것만큼이나 쉽고 명료했다.

단지 이들은 막부와의 공개적인 분쟁은 원치 않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칠 뿐.

그리고 그것이 시게오키의 효용이었다.

달리 말하면, 시게오키가 배후세력의 의향대로 뻔뻔한 낯짝을 하고서 곧 들이닥칠 막부의 견제와 추궁을 외면하는 것만으로도 지위는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뭐, 아무래도 좋다.”

시게오키는 털털하게 수긍했다.

어차피 대마도는 막부 아니면 조선, 두 세력 중 하나에는 예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두 세력 모두 자신을 이용할 의사로는 차고 넘치지만, 적어도 조선은 막부처럼 자신을 배신하거나 몰락시키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상고해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이 무엇인지는 명료했다.

“이제 어쩔 심산이냐?”

시게오키가 조력자……, 아니 상전上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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