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359화
한 늙은이가 문간 같지도 않은 문간으로 들어섰다.
그야, 담벼락도 없이 처소 주변에는 싸릿대 울타리만 늘어놓았고 출입구가 될 입구만 뻥 뚫어놓았다.
이게 어딜 보아서 문간인가.
마치 시간의 흐름을 보이듯, 늙은이는 마치 계단처럼 순차적으로 세월을 탄 세 벌의 초피 갖옷을 동시에 걸치고 있었다.
십수 년 전 같았다면 그야말로 괴인怪人으로 여겨졌으리라.
그 값비싸고 진귀한 초피 갖옷을, 물론 옷이니까 걸치고 다니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마는, 왜 세 벌이나 걸치고 다닌단 말인가?
그러고 다니는 늙은이 본인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차마 팔까지 외투 세 벌을 다 겹쳐 입지 못하여 그저 어깨에만 걸어놓은 채였다.
덕분에 갖옷의 세 쌍 털가죽 소매가 옷자락 사이에서 힘없이 늘어져, 다른 역사의 400년 뒤 동묘에서도 보지 못할 힙한 감성을 과시하고 있었다.
설명이 이쯤 되면 한양에서 털가죽 괴인怪人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이 없다.
그가 어떻게 초피를 구하여서 미니어처 갖옷까지 씌워놓은 (물론 자신과 마찬가지로 3중이다.) 호패를 확인하지 않아도, 최근까지도 영의정을 지냈던 소릉少陵 이상의라는 건 누구나 알아보는 것이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그의 정체가 새삼스러운 반전으로 다가가고는 했다.
출세를 지향하는 이라면 꿀에 꾀인 개미처럼 모인다는, ‘소릉少陵 도서관’의 소릉이 털가죽 괴인 소릉을 지칭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 도서관을 세우자고 한 분이 그 사람이었어?!
-그 ‘사람’이 아니라, 대감이시네.
지방에서 상경한 선비 여럿 골 때리게 만드는 이상의였으나, 그는 자신의 명성이 ‘괴인怪人’이라는 다소 이상적이지 않은 식으로 알려진들 딱히 개의치 않았다.
그 ‘괴인’의 실체는 값비싸고 진귀한 초피 갖옷 세 벌을 겹쳐 입은 자신이며, 세 벌의 초피 갖옷은 모두가 대왕께서 친히 반사頒賜한 것이었으니까.
일인지하 만인지상까지 지낸 정승치고는 다소 유치한 과시이기도 했다.
그의 기행을 직설적인 언어로 치환하자면, 이럴 테니까.
-나는 대왕께 초피 갖옷을 세 벌이나 받았다!
-너넨 이런 거 없지?!
-안 부러우냐, 이 자식들아!
적어도 백관百官의 십중팔구는 이상의의 의도대로 부러워했다.
출세를 지향하고 인정을 갈구하는 사대부와 선비들에게 있어, 뻔뻔하리만치 대왕의 인정을 켜켜이 걸치고 다니는 이상의는 선망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반대로, 일부는 노골적으로 표현해 ‘꼴사납게’ 여기기도 했다.
이상의의 공적이 없지는 않으나 역대 영의정을 모조리 능가할 정도인가?
대왕이 친히 불러 독대한 뒤 제수한 이원익은?
조선이 가장 가열하게 부강해질 때 영의정을 맡은 박홍구는?
현 영의정 남이공도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중신들 또한,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탠 바 있거늘 이상의는 혼자 힘쓰다가 혼자 상 받은 양 우쭐댄다는 것이다.
-추워 보인다고 옷 한 벌 줬더니 너무 좋아해서, 아예 옷만 주게 되었다더니만?
성격 더럽고 사람 잘 긁기로는 아주 대성했다는 충청도 출신 선비 송宋 모의 촌평이었으나, 이상의는 일각의 여론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입만 분주하신 분들은 속곳 한 벌이라도 받아보셨다던가?
애초에 눈치를 볼 것 같았으면 외투를 세 벌씩 걸고 다니지도 않았으리라.
아무튼, 이렇게 인지도 화려한 털가죽 괴인이 싸릿대 울타리 사이로 들어섰다.
마당에 선 이상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갖옷을 한껏 끌어모은 채였다.
예전에 이곳을 찾았다가 옷자락이 싸릿대 울타리 끄트머리에 긁힌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싸릿대의 갈라진 끄트머리에는 여전히 털 몇 가닥이 끼워져 나풀거리고 있었는데 이상의로서는 볼 때마다 욱하는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여태 발길질 한 번 날리지 않은 건, 이상의의 인품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리梧里!”
이상의의 외침에 허름한 초가 마루에서 글을 쓰던 노인이 고개 돌렸다.
“오셨소이까?”
오리 이원익.
그는 영의정으로 다시 기용된 뒤에도, 다시 낙향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에 언문주해를 달게 된 뒤에도 낡고 허름한 초가를 고수하고 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된 사람이라면 응당 사치를 멀리하여 백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에서였다.
얼핏, 대놓고 과시하는 이상의와 대치하는 면이 있으나 완전히 반대이지는 않았다.
이상의가 사치를 과시하고자 갖옷을 걸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도 묘했다. 의정부에서야 일 때문에라도 자주 보고 협력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은퇴한 상황.
이상의는 관계를 긍정적으로 재수립하기 위해 이원익의 처소를 찾아온 것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납도록 날카로운 싸릿대 울타리만은 그냥 넘어가 주기 어려웠다.
기실 그게 오늘날에야 겨우 다시 찾아온 이유였으니까.
“영의정까지 지내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서 계속 지내서 되겠소이까?”
이상의는 여전히 갖옷 자락을 두 팔로 끌어모은 채였다.
마당도 매끈하게 쓸어놓지 않은 게, 혹 걷다가 흙먼지라도 묻을까 조심스러워질 정도였으니까.
이에 이원익이 느긋하게 답했다.
“아니 될 건 무어요? 오히려, 이제는 맡은 일이 없으니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지내야지.”
“누가 보고서 대왕이 인재를 박대한다고 오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남들이 다 나 같지는 않아서, 그들이 대신 항변해주고 있으니 이 사람은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리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이상의는 자신이 갖옷을 걸치는 게 그저 사치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님을 내심 되새기고는, 헛기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호梨湖는 어디 있습니까?”
이상의는 이원익이 박홍구, 김집이 함께 언문주해를 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있으랴.
이상의가 이원익의 처소를 찾아온 것도 비단 이원익 한 사람만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이호가 늦어서 신독愼獨이 알아보러 갔소이다. ……음.”
이원익은 인상을 굳힌 채 대답을 침음으로 마쳤다.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상의는 사정을 알지 못하였으나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은퇴의 이유는 십중팔구가 같다. 특히 노신老臣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보통 제이의 삶을 살고자 은퇴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혹여 사정 생길 이유란, 은퇴의 사유와 마찬가지로 십중팔구는 같았다.
“어음.”
이상의는 꽤 강하게 짐작하였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굳이 말로 꺼내기까지 해야 할 추측은 아니었다.
“……뭐, 알아보러 갔다니 곧 있으면 오겠지.”
“그럴 거외다. 와서 앉으시오. 뚱하니 서 있지 마시고.”
이원익이 안색을 풀고서 편하게 말했다.
이상의 또한, 잡념은 미뤄두고서 마루로 나아가 걸터앉았다.
이원익이 끼고 있던 서안에는 문방사우와 함께 맹자孟子가 펼쳐져 있었다.
세 사람이 주해를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사서四書 중 최후의 경전이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이원익이었다.
“외투는 벗어두지 않으시고?”
이상의는 자신이 끌어모은 갖옷 자락을 아이 등 두드리듯 툭툭 두드렸다.
“이게 이 사람 분신分身입니다.”
“아주 애지중지愛之重之시구려.”
이상의는 몇 가지 농담이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죽더라도 이 옷들은 함께 묻어달라고 할 예정이라던가.
아니면 신주神主에도 갖옷을 씌워달라고 유고遺稿를 남겨두었다던가.
그러나 이런 농담을 하기에는 썩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저 박홍구가 눈치껏 멀쩡한 상태로 나타나 주기를 바랄 수밖에.
“대감이라면 맹자야 눈을 감아도 다 외울 수 있을 텐데, 굳이 보고 계십니까?”
“팔도의 선비들이 다 이 사람이 보탠 주해를 보고서 수학修學한다니 마음을 놓아서야 되겠소이까.”
이원익은 이게 당연하다는 듯 흐뭇하게 미소 지었으나, 이내 금세 안색이 바랬다.
이상의와 비슷한 이유로 말을 아낀 것이다.
주해는 이원익 한 사람만의 저작이 아니었고, 아직 맹자는 완성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썩 매끄럽지 못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문득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울렸다.
마주한 게 거리였으므로 발소리야 당연히 날 수 있거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소리는 정확히 이원익의 처소로 다가왔다.
방문객은 늙은이를 앞둔 중년中年의 선비였다.
싸리 울타리가 높지 않았으므로 거리가 다 보였는데, 중년인은 거리에서부터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발을 재촉했다.
이원익이 속삭였다.
“신독愼獨일세.”
김집의 호였다.
이상의가 끄덕였고, 김집이 마당에 들어섰다.
“오리 대감. 소릉 대감.”
두 사람이 끄덕이자 김집이 덧붙였다.
“귀환이 늦었습니다.”
“무슨 일이던가?”
김집은 입술을 물었다가 어렵사리 답했다.
“이호 대감께서는…… 졸卒하였습니다.”
“……음.”
이원익이 침음을 흘렸고, 이상의는 내심 애석해했다. 이런 식으로 인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 * *
“대왕께서 사흘간 철조輟朝를 명하셨습니다.”
사인舍人의 전언에, 의정부 정본당政本堂에 모인 삼정승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남이공이 대표로서 답하자 사인은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남이공은 침음하고는 말했다.
“이호 대감이 졸하다니.”
마치 생경하다는 투였다. 죽음이 어색한 연배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왕이 즉위한 이래 은퇴한 영의정 중 죽은 인물은 없었다.
어제까지는.
김신국이 조심스럽게 평했다.
“놀랍다고는 못 할 것입니다.”
“음.”
평소 남이공 같았다면 싸가지 없는 소리 말라고 타박이나 주었겠으나, 조금 충격이 있었던 탓에 침음만이 다시 흐를 따름이었다.
김신국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은퇴한 정승들은 대부분이 연로하다.
예비 은퇴 정승인 남이공 본인도 예외는 아니다. 고희古稀를 앞두었으니까.
“확 느껴지는군.”
“무엇이 말인가?”
“한 시대가 흘러가는 게.”
“……그렇군.”
김신국은 쓰게 답했다.
그는 비교적 젊은 편이었다.
환갑還甲에도 미치지 못한지라 연배가 절대적으로 젊다고는 못 하겠지만, 고희를 앞둔 악우가 죽음을 어색해하지 않는 모습에 섬찟해할 정도는 되었다.
“시대라.”
두 친우 사이에서 대화를 엿듣던 김류가 중얼거리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촌평했다.
“대단한 시대였지.”
“흠.”
남이공은 긍정했다. 대단한 시대였다는 김류의 평에, 일순 등줄기가 오싹해질 정도로 공감했다.
조선은 어느순간 이상해져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휩쓸리게 되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많은 변혁과 변화가 있었다. 어떤 흐름은 특별히 모질었다. 임진년의 왜란이 대표적으로 그러했다. 기축옥사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은 안에서 문드러지고 밖에서 휩쓸렸다. 격랑을 맞이한 나라는 혼란과 환란 속에서 정신없이 가라앉았다.
족히 한두 세대 동안 내내.
반성도, 반전도 없이 밑바닥만을 향해서.
‘그러다가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지.’
밑바닥을 향해,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느 망국亡國들의 곁으로 잠기던 조선은 그날로부터 부상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조선의 몰락 그 자체의 실재와 다를 바 없던 자들이 거세게 저항했다.
대왕은 그보다 더 강하게 맞섰다.
도적과 해적이 처단되고, 간신과 적신들이 숙청됐다. 대왕의 칼날은 음양을 가리지 않아, 흉심凶心만 가득했던 소인배들은 이어지는 단호한 징벌들 앞에서 볕 맞은 벌레들처럼 숨고 흩어졌다.
그렇게 군더더기를 떨쳐낸 조선은 더욱 빠르게 부상했다. 전적으로 대왕의 인도였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선. 대조선. 해동성국.
언제든 제국을 칭해도 무방하리라. 몰락해버린 명나라는 갖추지 못했던 천명天命의 증거가 중원과 북방의 호지胡地를 방황하던 끝에 제 자리를 찾아왔다.
이 나라의 흥성함은 하늘조차 증거하는 것이다.
남이공이 지난 세월들과 함께 곱씹었다.
“실로, 대단한 시대지.”
이러한 시대에 정승 노릇을 하고 있다니.
“과분한 시대이기도 하고…….”
남이공의 말에 김류와 김신국, 두 사람이 함께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