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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68화 (368/380)

인조, 명군이 되다 368화

선정릉 도굴 사건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자 망신이었다.

조선은 고인에 대한 예법이 생자生者 대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한 유교 국가니까.

하물며, 충효忠孝의 궁극적 대상이었던 선대 왕들의 능묘가 도굴을 당하다니?

게다가 선대왕들의 유해遺骸마저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자, 조선에서는 대마도에 도굴꾼들의 인도를 요청했다.

유해를 되찾고 죄인을 징벌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마도에서 진범이랍시고 인계한 자들은 실상 도굴과는 무관한 범죄자 둘뿐.

이 거짓된 내막은 단순한 추궁만으로도 모두 드러났다.

고작 이로써 조선을 기만하려던 셈이었으니, 조선에서는 치욕스러운 수준의 능멸을 ‘또’ 당한 셈이다.

선정릉 도굴 그 자체에 이어서 말이다.

다만 대마도가 마냥 기분 나빠지라고 이러한 술책을 벌인 건 아니었다.

‘임란 때는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각기 2만 명쯤을 이끌고 경쟁적으로 한양을 점령했지. 그 뒤로 한양은 일본군의 거점으로 활용되다가 꼬박 한 해가 다 지나서야 탈환됐다.’

그리고 이 시점에야 선정릉의 도굴 사실이 확인된다.

한양에 최초 입성한 4만의 선봉대부터 시작해, 뒤늦게 합류한 후발 부대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일본군이 약 1년간 무소불위로 한양을 유린했다.

그동안 누가, 언제 선정릉을 도굴했을지 대마도에서 알 요량이 있을까?

진범이야 어딘가에 있기는 할 테고, 성종과 중종의 유해 또한, 운이 좋다면 어딘가에 있기는 할 테다.

이국의 왕 유해에 금전적인 값어치는 몰라도 상징적인 가치는 존재하니까.

다만 열도와는 한참 동떨어진 섬에서 겉도는 세력을 구축한 대마도가 진범과 유해의 행방을 알아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꼴이다.

그런데도 조선에서는 어떻게든 면을 세우고자 도굴꾼의 이송을 요구했으니, 대마도에서는 어차피 죽어야 할 놈들을 대신 보낸 것이다.

‘조선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으니 도굴꾼들이 진범이 아님을 확인하고도 일단락할 수밖에 없었지.’

이게 선조에게 최선이기도 했고 말이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대신, 책임소재가 분명한 자에게나마 죄과를 묻는다면 선조는 본인 발등부터 찍어야 했을 테니까.

선정릉을 도굴한 놈들이야 따로 있지만, 선정릉이 도굴당하게 만든 놈이 누구인가?

이건 왕이 무능하고 국가가 미약하여 벌어진 참극이었다.

선조는 이를 시인할 수 없었기에 대마도에 비현실적인 요구를 했고, 엉뚱한 왜인들임을 알고도 대충 죄과를 물어 죽인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최대한 숨기기 위한 구차한 발악.

‘덕분에 선정릉 도굴 사건은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넘어갔다.’

그리고 후대에서는 아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역린이 되어버렸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일단 명백한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텐데, 선조가 이걸 막아버렸으니까.

후대의 왕으로서는 진전시키지 못할 논란거리를 구태여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만 무용하게 흐른 탓에, 수백 년이 지난 미래에도 선정릉은 끝까지 유해 없는 빈 무덤으로 남아버렸다.

자초지종은 영원히 오리무중으로 남아, 무엇 하나 똑바로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런데 유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이건 안 듣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중종이 끄덕이며 답했다.

“왜구들은 선릉과 과인의 능을 파헤쳐 관을 꺼내고 묘지墓誌를 파손했으며, 염습한 옷을 훔치고 저마다 크고 작은 유골을 빼돌렸다.”

“……참담합니다.”

“그뿐이겠느냐. 나아가 왜구들은 과인의 저주를 막겠답시고 관에 불을 지르고 타인의 시신을 놓아두기까지 했다.”

“타인의 시신이라 하심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중종의 능묘에서는 정체불명의 시신이 하나 함께 발견되었다.

그 탓에 조선에서는 정체불명의 시신이 옥체인지 아닌지로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중종이 친히 답했다.

“내 비록 참화가 있기 50년 전 죽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과인을 보필했던 이들이 더러 살아 있었거늘 분별을 못 하였겠느냐?”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왕.

중종이 반세기 전 인물이었다고는 하나 검증을 도왔던 이들은 얼핏 본 정도가 아니라, 과거 중종을 직접 보고 가까이서 모셨던 원로대신과 종친 및 환관과 궁녀들이었다.

아무리 시신이라고 해도 못 알아볼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증언들 또한 일관적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회의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균鈞은 불명의 시신이 나의 것이 맞을 거라고 치부하였다. 성종대왕에 이어 나의 유해까지 잃어버린 것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게지.”

중종이 콧바람을 내쉬며 덧붙였다.

“패륜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것만큼이나 놀랍지 않은 사실이었다.

“……도굴에 끼어든 왜구들이 저마다 대왕의 유해를 빼돌렸다면, 옥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중종이 낙담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래. 왜구들은 과인의 유골을 쉬이 잃기도, 버리기도 했다. 기껏 훔쳤으나 막상 금은과 교환하기 어려우니 함부로 대한 것이지.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중종이 노기 섞인 어조로 이르고는, 신색을 고쳐 덧붙였다.

“그 모든 파편의 위치까지 과인이 알지는 못한다. 다 신경 쓸 수도 없었고. 아마 십중팔구는 이미 이 땅에서 진흙이 되었을 테지.”

“아닌 유골도 있다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렇다.”

중종은 작게 끄덕이고는 침음과 함께 말했다.

“두개골은 다른 뼛조각과는 달리 상징성이 크다. 과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두개골만은 되찾기 바란다는 뜻이리라.

중종이 말을 이었다.

“능묘를 도굴한 왜구 중 대장격인 자가 과인과 성종대왕의 상징적인 유해를 가져가 제 주인에게 바쳤다. 금은으로 바꾸긴 어려우니, 옥체를 대가 삼아 주인에게 후의를 사고자 한 것이지.”

“…….”

“그리고 그놈의 주인 역시, 제 주인에게 과인과 성종대왕의 유해를 헌상하더구나. 이유는 같을 것이다.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다 보니 어느새 바다도 건너 왜구들의 소굴에 닿았지.”

“혹시…….”

추측을 위해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니, 중종은 경청하겠다는 듯 채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지금은 관백?白에게 있습니까?”

열도의 실세인 쇼군과 관백?白은 본디 별개의 직책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열도의 실세를 칭하는 명칭으로서 혼용했다.

이는 조선이 열도의 관위에 무지한 영향도 있으나, 역대 열도의 실세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직책을 때에 따라 중구난방으로 지냈던 탓이 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쇼군을 거치지 않고 관백으로 시작해 태정대신을 겸했다가 태합에 태정대신을 겸했다면, 그의 가문을 몰아내고 열도를 차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으로 시작해 오고쇼大御所를 지내다가 말년에 오고쇼에 태정대신을 겸했다.

이렇게 관직을 저마다 지저분하게 지내니 명칭이 혼용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중종에게 말한 관백이란 막부의 현재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

두 선대왕의 유해가 바다를 건널 시점에서 열도의 시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으나, 그의 권력은 도쿠가와 가문이 흡수했다.

그러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리품으로 바쳐졌을 선대왕들의 유해들도 어느샌가 도쿠가와의 것이 되었을 터.

중종이 나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덕천씨가 풍신수길의 집안을 몰아내고 왜구들의 수괴가 되더니 지금은 덕천가강의 손자가 관백을 지내고 있더구나. 그런데 그는 가문의 창고에 성종대왕과 과인의 유해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듯하였다.”

“그에게 임진왜란은 조부 때의 일이고, 하물며 그 조부조차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남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거둔 선인의 유해를 흉중에 둘 이유는 없을 테지요.”

어려서부터 부친 및 형제와의 권력투쟁으로 바빴던 이에미츠다.

인연 하나 없이 어느샌가 입수되어, 창고 한구석을 차지한 옛 망자의 머리에는 관심을 줄 이유도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이에 중종이 인상을 찌푸렸다.

“졸지에 별 의미 없이 도굴만 당한 처지로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구나.”

“과연 그러하옵니다만……, 외람되오나 다행스러운 무관심이기도 합니다.”

“놈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 말이지?”

“예. 관백이 딱히 안중에 두지 않는다면 관리가 치밀하지 않을 테고, 사라진들 쉬이 발각되지도 않을 테지요.”

설사 발각된들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공산 또한 컸다.

“되찾겠습니다. 반드시 두 대왕의 옥체를 원래 현궁玄宮이 있던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가능하겠느냐?”

중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침 왜구들의 소굴에 소손과 세자를 따르는 세작들이 세를 넓히는 중입니다. 적당한 인물을 포섭할 수 있다면, 대왕들의 옥체를 되찾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

중종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만족한 얼굴로 끄덕였다.

“망자에게 있어 현세란 이미 지나온 길에 불과하나, 금시今時에 벌어진 이적은 무척 특별하여서 거의 망각한 미련이 다시 살아나 무리한 부탁을 하였다.”

“아닙니다. 소손으로서도 옥체의 행방을 알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막연한 추측 정도는 하고 있었다.

옥체가 유실되지 않고서 왜족들에게 회수되었다면, 덴노가의 유물 창고인 쇼소인正倉院이나 에도 막부에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이다.

하지만 명확한 단서 없이 무턱대고 들쑤실 수는 없는 노릇.

다만 애석하게 여겼을 따름이었는데, 중종의 말마따나 특별한 이적이 일어나 행방을 알게 되었으니 실로 행운이었다.

중종 또한 그리 여기는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주상이 진실로 마음을 써주니 벌써 족하다. 만약 해골을 회수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위태로운 파급이 예상된다면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라. 결국에는 흔적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확 달라진 중종의 분위기에 나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벌써 미련을 버리셨습니까?”

중종은 쓴웃음과 함께 턱을 매만졌다.

“그건 아니다. 미련이야 여전히 있구나. 다만 그간에는 유난히 집착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내 피를 이어받은 손자라는 놈이, 할아비의 능묘가 원수들의 손에 파괴되었는데도 저 부끄럽다고 남의 유해를 대신 안치하는 꼴을 봐버렸으니 말이다.”

“당연히 화가 나실 수밖에 없고, 미련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게 ‘당연’한 반응이겠지.”

자손으로서도 말이다.

그러나 선조는 그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과오를 필사적이고 구차하게 외면했을 따름이다.

“주상만은 이해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중종은 문득 한숨을 푹 내쉬고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차라리 횡액橫厄이나 천벌로 여겨 자책하거나 좌절했다면 안타깝게 여겼을 터이거늘, 그 되바라진 새끼는……. 크흠.”

중종은 말하면서도 일순 욱했는지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곤,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했다.

“아무튼, 그렇다. 주상이 못난 손자를 대신하여 진실로 신경을 써주니 미련이 많이 흩어진 모양이다. 주상이 과인의 자식들보다 낫구나.”

중종의 말에 각기 깡마르고 낯빛 검은 두 젊은 왕이 고개를 숙였다.

“두 대왕의 옥체는 후환이 없도록 세심하게 회수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중종은 감사와 함께 성종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선왕인 선조를 대놓고 병신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한소리 했던 성종이다.

그러나, 막상 선조는 외면했던 자신의 옥체를 회수하겠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성종이 얼굴을 빨갛게 한 채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내 뼈의 일부나마 다시 조선으로 가져오겠다고 들었다.”

제법 민감한 주제였던지라 다른 왕들도 침묵하고서 경청했던 만큼, 엿듣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예.”

“그래…….”

성종은 꼴깍 침을 삼키고는 답했다.

“내가 주상을 오래 접하지는 못하여서 처음에는 오해를 하였다. 이제 보니, 과연 누가 왕위를 얻어걸린 듯이 멸시하였는지 알겠구나.”

선조 역시 원래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던 자.

성종이 말을 이었다.

“균은 자질이 일천하여 종사를 욕보이고, 주상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왕후장상의 자격이 혼이나 운명에 매여 있지 않음을 알겠다.”

내가 원래 인조를 대신하여 왕이 된 것에 대한 성종의 대답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뒤에서 응원하고 있으마.”

성종은 민망함이 아직 다 가시지는 않았다는 듯, 빨간 낯빛 그대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열성들은 모두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열성들에게 예를 보인 다음, 배웅을 받으면서 종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종묘의 대문 너머에는 본 적 없었던 혼령이 있었다.

“너!”

대뜸 삿대질하는 그 혼령의 곁에서, 선조는 이미 이 미상의 혼령과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빙글빙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 대 이로 싸우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왠지, 선조 옆에서 초면 아닌 초면에 싸가지 없이 삿대질부터 갈기는 혼령이 누구인지 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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