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조 명군이 되다-369화 (369/380)

인조, 명군이 되다 369화

미친 혼령이 외쳤다.

“감히 내 자리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서 패륜까지 저질러?!”

패륜이라는 말에 선조가 면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웅크렸다. 폭력을 부르는 행태였다.

“돌았나…….”

“그리고 내 몸에 있던 원래의 혼백은 어떻게 해버린 거냐?! 음사를 써서 없애버린 거냐? 치졸하고 사악한 놈!”

“아오.”

나는 여태 ‘주먹이 운다’라는 표현을 공감하지 못했다. 도대체 주먹이 어떻게 운다는 말이냐. 엉엉?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주먹이 우는 게 느껴졌다.

“일단 붙고 시작하자.”

주저하는 미친 혼령에게 다가가 명치에 한 대 꽂아 넣은 다음, 내려온 머리통을 무릎으로 찍었다.

빡!

안와眼窩와 슬개골이 격돌했다.

미친 혼령은 찌그러진 면상을 젖히며 비명을 내질렀다.

감상할 틈은 없었다. 선조가 곧바로 몸을 날려왔다.

“이때를 노렸다!”

한바탕 시야가 휘청이고 나니 선조가 위에서 밤하늘을 등지고 있었다.

어렵게 포착한 기회가 놈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놈이 내려찍는 주먹을 팔로 막을 때마다 침이 튀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

발광하는 선조가 내지른 주먹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때리든 말든 양손으로 꺾어버렸다. 선조가 기괴하게 접힌 손을 덜렁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악!”

선조를 밀쳐내니 인조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왔다. 다시 시야가 날뛰었다.

대혼돈이었다.

격변하는 시야 속에서 혐오스럽게 생긴 두 낯짝이 괴성과 함께 어지럽고 움직였고 폭력이 교차했다. 난투극이다.

싸움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만!”

호랑이 울음과 같은 일갈이었다.

잠시 싸움이 멈춘 사이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색 용포를 걸친 태조가 종묘 밖으로 나와 있었다.

“누대의 인군이 휴식하는 장소 앞에서 이런 지저분한 싸움이라니!”

성난 얼굴의 태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선조는 난처한 얼굴로 주춤, 물러섰다가 태조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맞고는 쓰러졌다.

쩍! 하는 엄청난 박력과 함께였다.

인조는 그 광경에 눈이 동그래지더니 황급히 말했다.

“태조대왕님! 이놈은 진짜 왕이 아닙니다! 가짜입니다! 제 몸을 차지하고 왕을 행세하는 사악한 잡귀라는 말입니다!”

나는 멱살을 잡은 혼령의 손을 붙든 채로 항변했다.

“미친 소리……. 네가 얌전히 잘살고 있던 나를 네 몸에 밀어 넣었잖아!”

“얌전히? 감히 인군을 모욕하고서 그런 거짓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

“그러면 ?밥 주제에 나대다가 나라 말아먹고 항복하지나 말던가!”

나의 말에 인조가 무어라 개소리를 지껄여댔지만, 항변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태조가 손바닥으로 인조의 면상을 꽉 붙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이놈이 뭘 어떻게 했다는 말이냐? 항복이라니!”

“저놈은 제가 차지한 몸의 원래 주인으로, 왕으로서 태만하게 군림하다가 홍타이지라는 여진족 추장에게 항복하여 삼궤구고두례三?九叩頭禮까지 했습니다.”

“……뭐?”

태조의 이마와 손등에 힘줄이 돋아나더니, 인조가 새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갸아아아아아악!”

태조는 그런 인조의 면상에 더 힘을 줘 닥치게 만들고는 일렀다.

“더 자세히 말해보아라. 도대체 어떻게 된 경위냐?”

“소손은 본디 오늘날로부터 400년 뒤의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 악령과 말다툼을 했다가, 악령이 소손을 시험하겠다며 오늘날 자신의 몸에 밀어 넣은 것입니다.”

“기이한 일이구나……. 그건 잠시 차치하고, 항복에 대해서 더 말해보아라.”

태조가 애당초 묻고자 한 경위가 그쪽이었던 걸까.

하기야, 자신이 세운 나라가 자신이 업신여겼던 여진족에 항복했다는 말을 들었다. 곁가지 내막이야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저놈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습니다. 명분 중 핵심은 광해군이 친금 배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금나라와 적대했군.”

“예. 저놈은 재임하는 동안 어떤 유의미한 성취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반정공신이나 서인이라고 특별히 대북보다 더 유능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더 유능하지도 않았고, 더 도덕적이지도 않았다.

인조의 재위 초반은 광해군 치세의 연장선에다가 양념처럼 정적 학살을 더해놨을 뿐이다.

“성취한 게 없으니 따로 기댈 구석도 없고, 따로 기댈 구석이 없으니 더더욱 입만 살아서 명분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요. 대책도 대응도 없이 무턱대고 명나라마저 몰아붙이던 금나라를 적대한 것입니다.”

설마 망하기야 하겠느냐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내심, 인조는 전쟁이 터지면 선조와 마찬가지로 영토 끝자락까지 도망치면서 명나라에 구원이나 요청할 요량이었으리라.

그러나 금나라는 일본과 달리 기병이 주요 병과여서, 고작 20일 만에 상경길을 주파한 임진년 왜구들보다 더 빠르게 한양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과연 병자호란 때는 수도 함락에 고작 8일 만이 걸렸다.

‘한양과 지척인 개성이 노출된 건 고작 4일 만이었지. 후금군은 하루에 약 80km 속도로 내달렸다.’

조선이 금나라의 침공을 인지한 시점은, 금나라의 선발대가 한양에 도착하기 고작 하루 전이었다.

그러니 인조가 소식을 듣자마자 튀더라도 바로 붙잡힐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인조는 이괄의 난 때나 정묘호란 때처럼 개같이 도망치고자 하였어도 멀리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에 틀어박힌 것이다.

하지만 설사 인조가 예지력을 지녀서 진즉 도주했더라도, 선조와 같은 도망은 불가능했다.

선조는 육지로 연결된 요동으로 나라까지 버려가며 도망칠 궁리나마 할 수 있었지만, 조선의 남쪽은 삼면이 바다여서 더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제주도로 간들, 제주도 또한 원나라 시절에 점령되었던 지역.

여기서 더 도망칠 방법이라곤 과거 송나라가 최후를 맞기 직전 그러했듯 바다에 배를 띄운 채 둥둥 떠다니는 것뿐이다.

그러니, 인조는 도망친다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병자호란을 극복할 방법이라곤 대비를 충실하게 갖춰두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뿐.

하지만 인조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저놈은 찬탈 직후 공신들의 내분에 엉성하게 개입했다가 나란을 터뜨려 북방의 노련한 장수들과 군사들을 거의 몰살시켜버렸습니다. 거기다 내란에 억울하게 연루된 자가 있어, 유족이 금나라에 투항해 내지內地의 안내를 돕게 만들었습니다.”

“……!”

태조는 충혈된 눈으로 인조를 노려보았고, 인조는 태조의 솥뚜껑 같은 손을 붙든 채 부들부들 떨 따름이었다.

나의 고자질은 계속 이어졌다.

“전쟁에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내란 때문에 북방의 방위가 유명무실해졌다가 오랑캐 추장에게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무려 13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머리를 조아리기 10년 전에는 탐색전이 있었고, 그때는 단 보름 만에 평안도와 황해도가 함락하면서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복은 두 번이나 한 셈이다.

그 전에 정묘호란을 통해서 자신에겐 진정한 퇴로가 없으며, 국경의 방위는 완전히 무너졌고, 그 결과로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맛보기로 겪어보았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저놈은 태조대왕의 자리를 이어받고도 대왕께서 주구走狗로 부렸던 여진족들에게 고개를 조아렸고, 구차한 생을 연장하는 대가로 자신의 가족과 무수한 백성들을 팔아넘겼을 뿐 아니라, 이 모든 재앙이 13년, 10년 전 자신에 의해 거듭 예고되었음에도 찬탈 이래 내내 손가락만 빨았던 것입니다!”

내가 인조의 죄과를 명료하게 정리해내니, 태조의 손도 인조의 면상도 모두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인조는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전처럼 두려움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태조의 손에 들어간 힘으로 대가리가 압착되느라 떨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 광경에 처음 뺨을 맞고 날아갔던 선조는 그새 저 멀리 도망쳐서 조용히 기척을 지우고 있었다.

인조와는 다르게 도망의 전문가였던 선조다운 처신이었다.

‘아쉽네.’

태조의 다른 손에도 선조의 대가리가 붙잡힌 채 두 못난이가 사이좋게 찌그러지는 광경을 보고 싶었으니까.

인조는 압착이 이어지자 정신을 잃어버렸는지, 더 저항하지 못하고 두 팔을 축 늘어뜨렸다.

만약 현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인조는 기절과 함께 똥오줌을 갈기면서 바짓단을 무겁게 늘어뜨렸겠지.

그게 인조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최후였으나, 여기서는 보지 못했다는 게 또한 아쉬웠다.

인조가 틀어쥐었던 앞섶을 털어내니, 인조의 본신은 흙바닥에 툭 버려졌고 태조는 비어버린 손을 움켜쥔 채로 떨었다.

“통탄할 일이로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치욕을 당할 줄은 몰랐다!”

그 주범인 인조는 눈알을 까뒤집은 채 사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저놈이 유일하게 나라에 잘한 점이 있다면, 저를 찬탈 직전 자신의 몸으로 보내서 그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막았다는 것뿐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요.”

“자신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말이지?”

“예. 너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다고…….”

태조는 눈이 희번들해져서는 쓰러진 인조에게로 향했다.

“이 개새끼만 못한 게……!”

태조는 솥뚜껑 같은 손을 말아쥔 그대로, 쓰러진 인조에게 다가가 면상을 내려쳤다.

쾅!

땅이 울리는 엄청난 소리가 났고, 인조의 몸뚱이가 펄떡였다. 다시 축 늘어진 인조의 면상은 반쯤 움푹 꺼진 채였다.

내세로 이미 들어선 망자를 내세의 내세로 보내버리는 듯한 엄청난 박력이었다.

“어후.”

태종이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그가, 망가진 인조의 면상을 보더니 탄식을 내뱉었다.

“아주 박살이 났는데.”

“저 정도도 놈에게는 과분한 꼴입니다. 더 박살이 나 줘야, 이놈 수준에 걸맞은 모습이 될 테니까요.”

인조가 치세 동안 벌인 구차한 추태는 항복만이 아니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정이 더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추궁을 겸해서 낯짝의 교정을 도와줄 수 있겠는걸…….”

태종은 능청스럽게 피식피식 웃으며 농을 더했지만, 호선을 지은 입과는 달리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다른 열성들도 소란을 들었는지 다들 밖에 나와 있었다.

개중에는, 여전히 가면에 장갑을 쓴 채 종묘에서는 내내 과묵했던 세조도 있었다.

그는 인조의 면상에 발을 올려놓은 채로 몇 번 밟아보더니 거칠다 못해 닳아버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죄 많은 머리를 터뜨려버릴 수는 없는가? 나의 업보가 이렇게나 크구나…….”

세조가 아쉬워하는 동안 태조는 인조를 더 칠지 말지 고민하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다른 왕들도 각기 볼일이 생겼는지 인조에게 다가가서였을까.

태조는 인조 대신 내게로 향했다.

“나는 네가 그저 사직을 위해 힘쓴 줄로만 알았지, 이러한 내막은 몰랐다. 우리 모두 네게 큰 빚을 졌구나.”

“맡은 자리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들을 원망하고 시기하는 자 역시 얼마든 있고.”

절로 인조에게 시선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태조가 덧붙였다.

“미안하구나. 심정만으로는 무엇이든 베풀어주고 싶다마는, 나나 다른 이들 모두 망자들이어서 현세를 살아가는 네게 베풀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소손은 열성들께서 가상히 여겨주시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이에 태조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겸양하고 공손한 건 보기 좋다마는 반대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우리는 뭐가 되느냐?”

그러나 자책한들 달라질 것도 없었기에 태조는 소소하게 아쉬운 부분으로 여기고서 넘어가려는 듯했다.

하지만, 열성들이 나를 도와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소손이 감히 대왕께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태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무슨 부탁이든 해보아라. 망자에게 벅찬 부탁만 아니라면 최대한 들어주마.”

나는 인조를 바라보며 청했다.

“저 인간은 세월을 우롱하고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주술을 익혔습니다.”

“흐음. 그러니 너를 옛 자신의 몸에 넣었겠구나. 듣도 보도 못한 사악한 주술이다.”

“소손은 저 악령이 세자나 그 후대의 왕들에게 해악을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악령은 저 한 사람만을 향한 원한에 더하여,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나라를 망치려 들지 않겠습니까?”

“저리 사악한 놈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겠지.”

태조는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