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372화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총독 세바스티안 후르타도 데 코르쿠에라는 조선을 향한 원념을 잊지 않았다.
감히 제국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그 강역을 무단으로 장악한 동방의 이교도 국가다. 징벌하지 않는다면 신앙에 대한 모독이었고 황제에 대한 불충이었다.
이러한 명약관화한 진리에도, 세바스티안은 곧바로 조선 정벌을 추진할 수 없었다.
필리핀 일대에는 아직 정벌되지 않은 열등 이교 국가들이 난립해 있었고, 이들은 제국에 맞서 요충지를 공격하거나 선단을 습격하는 등 수시로 공격해 왔으니까.
만약 조선을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대대적으로 차출한다면, 제국에 맞서오는 필리핀 일대의 이교도 국가들은 이를 기회로 여겨 대대적으로 침공해 올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세바스티안은 조선을 향한 원념을 품고도, 이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세바스티안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포르모사와 더불어 산 펠리페 호의 상실이 황제의 귀에 끝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마닐라에 이르러 세바스티안을 투옥하고 새로이 총독직에 오른 이는, 디에고 파하르도 차콘Diego Fajardo Chacon이었다.
그는 제국의 유서 깊은 기사단인 산티아고 기사단의 일원이었다.
산티아고 기사단은 본래 기독교인의 순례길을 수호하기 위해 조직된 기사단인 만큼, 지극히 종교적인 제국에서도 특히나 종교적인 집단이었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 기사단의 일원인 디에고는 신앙심이 무척 투철한 인물이었다.
임지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는 총독이 새로 부임하자 현지의 무수한 유력자가 총독의 호의를 얻고자 뇌물을 바쳤음에도, 디에고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검소한 차림새만을 유지한 것이다.
그렇게 단숨에 현지인들에게 인망을 얻은 디에고는, 어쩌면 조선에 있어 의외의 강적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디에고는 세바스티안과 다르게 조선 징벌을 추구하는 대신 일대의 방비를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포르모사의 상실은 전임자의 실책이었지 디에고 본인의 실책은 아니었으며, 때마침 적국인 네덜란드의 함선들이 네덜란드령 포르모사에 결집했다는 첩보까지 입수되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에 있어 네덜란드의 위험성은 조선이나 미개한 일대 이교도 국가들의 위험성과는 비할 수 없었다.
네덜란드는 제국마저 곤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국가였으며, 그 근간은 해양에 있었다. 전 세계에 흩뿌려져 취약해진 제국의 해군을 국소적으로 압도할 전력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력이, 네덜란드령 포르모사에 집결한 것이다.
-이건 네덜란드가 필리핀을 침공하려는 징조다!
디에고는 제국의 필리핀 개척 이래 계속 적대적이었던 일대 이교도 국가들과의 평화협상에 돌입했다.
그들이 네덜란드의 공격에 발맞춰 대대적으로 침공해온다면, 필리핀령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신실한 디에고로서는 당연히 이교도들과의 협상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임지가 칼뱅파 이단이자 반역자들에게 위협 당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전쟁을 앞둔 채 불가피한 타협을 이룬 디에고의 머릿속에서, 이역만리 조선의 존재는 빠르게 잊혔다.
* * *
금나라는 한간 관리들의 반역을 막아냈으나, 그 여파로 북경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명나라의 수도로 군림하며 번화했던 북경은 금나라가 점령했을 때부터 이미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앞서 이자성이 이끄는 순나라 군대에 의해 약탈되고 유린되었으며, 뒤이어 들이친 금나라 군사들에 의해 다시금 약탈되고 유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수백 년 황도로서 군림해온 북경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난을 피해 도망친 수십 만의 주민들이, 북경이 잠잠해질 즈음 다시 돌아와 폐허를 치우고 가건물을 올리며 북경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북경은 세 번째로 타버렸고, 이번에는 분노한 금나라 군사들에 의해 대대적인 학살까지 벌어졌다.
한족이라면 북경에서 박멸해버리겠다는 듯 철저하고 잔혹했던 학살은 이전까지 북경에서 발생한 약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부쩍 줄어들었음에도 제법 많은 수가 살아남아 도망친 북경의 피난민들은 북경에 네 번째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북경은 버려졌다.
호격은 중원 개척의 상징이자 최대의 수확이기도 했던 북경에 미련이 많았지만, 사람 하나 없이 방대한 영역에 폐허만이 남아버린 북경을 계속 수도로 둘 수는 없었다.
일대에서 주민들을 끌어와 북경을 다시 채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대적인 학살이 벌어진 마당에 어떤 주민이 순순히 이주에 응해주겠는가. 기꺼이 도살장을 찾아가는 돼지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호격 또한 북경을 버렸다.
그는 수도를 옮겼다.
금나라의 새로운 수도는, 과거 금나라가 이전에 수도로 이용했으며 홍태주가 선양을 차지한 다이곤과 대적할 때 기반으로 사용하고, 결정적으로 조선과 무척 가까워 그들의 영향력이 짙게 배인 요양이었다.
호격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중원 정벌의 최대 성과를 상실해버린 호격의 권위는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과거에 그는 금나라를 조선의 영향력에서 탈피시켜 조부 노아합적의 시대처럼 중원 전체를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성장시키고자 했지만, 그러한 야망은 철저하게 좌절했다.
그리고 오직 상국의 보호를 받아야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호격은 자신의 안위와 금나라의 명운을 조선에 맡겼다.
그리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며 수도에 입성하는 조선군을 환영했다.
* * *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이 회복되고 5년의 세월이 지났다.
당시 선왕들의 묘역을 회복한 주역으로서 직접 기념행사까지 주관한 세자는, 다시 한번 대리청정을 맡게 되었다.
이때의 대리청정은 왕의 정무를 잠시 대리하는 것과는 성격이 달랐다.
세종대왕 치세 말엽, 문종은 세자의 신분으로 장기간 대리청정을 했는데 이는 왕위 승계의 한 절차였다.
세자가 직접 왕사王事와 국무國務를 이행함으로써 경험과 관록을 축적하고, 부왕의 조언과 감독을 받아 부족한 부분은 교정하고 감독하는 것이다.
마침 세자는 앞서 대리청정을 맡아 수행한 경험이 있었다.
단기간이었으나 유의미했던 경험은 세자가 본격적인 대리청정에 착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주었고, 세자는 5년 동안 세자의 신분보다 왕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바마마. 경상도에서 선혜법을 착수한 경과이옵니다.”
세자는 나와 편전을 공유했다.
용상 좌측에 자신만의 자리를 가지고서, 때때로 장계를 직접 처리하거나 내게 올렸다.
“선혜법이 드디어 경상도에서 시행되는구나. 내가 보위에 오르면서 가장 먼저 착수했던 대계가 선혜법인데, 이제야 말미를 보았으니 흡족하다.”
“아직은 미진한 부분이 많사옵니다. 강원도와 가까운 일부 산간은 수로水路에 의지하기 어려운데, 그간 삼베로 세곡을 갈음하였던 영동嶺東을 조례照例하거나 영동 또한 선혜법을 적용하는 게 합당할 줄로 아옵니다.”
“세자는 어떤 방편이 마음에 드느냐?”
“영동은 예로부터 산이 험하고 토질이 나빠 농업이 거의 진흥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바마마께서 선혜법을 최초로 확대하실 때 영동만은 세곡 대신 삼베로 대신하게 하셨는데, 이는 백성들의 부담을 낮추고 운송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셨사옵니다.”
“과연 그러하다.”
“경상도의 일부 지역 또한 영동과 사정이 다르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이 전례를 따라서 시행하되, 금납金納을 권장하여 차차로 통보通寶로서 세금을 내게 한다면 매우 큰 효용이 있을 줄로 아옵니다.”
“가하구나. 세자의 의견대로 하여라.”
“망극하옵니다.”
큰일은 대체로 이렇게 처리했다.
잡다한 업무는 세자가 거의 전담하고, 이따금 군사나 인사 그리고 중요한 정책에 관해서는 왕과 상의하여 처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기했듯 이러한 생활도 5년째.
이만하면 세자가 대리청정하는 신세에 질릴 법도 하다. 잡무는 모조리 떠안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항상 상의를 거쳐야 하니까.
이를 나 또한 의식했기에 최근에는 대부분 세자의 의향에 따랐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양보하고, 세자의 의견을 존중해 준들 대리청정은 대리청정일 뿐이고 세자 역시 세자일 뿐이다.
세자의 입장에서는 중대사마다 부왕의 의견을 물어야 하고, 여차할 경우 어떠한 사안이라도 자신의 의견은 배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리청정은 보위를 승계하기 위한 절차였다. 나만 없다면 세자는 언제든 왕이 될 수 있는 입장이고, 자신의 뜻을 거리낌 없이 펼칠 수 있다.’
세자가 워낙 효자인지라 내색은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세자가 자신의 뜻을 개진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환경만 받쳐준다면 언제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할 터.
더욱이 세자는 이미 자신의 의향에 따라서 자잘한 왕업을 수행해 왔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도 세자의 판단을 존중해주어야지 않을까.
“세자야.”
문득 부르니 세자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말씀하시옵소서.”
“세자는 문종대왕께서 대리청정을 맡은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8년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줄로 아옵니다.”
“흐흐. 나름 정확하게 아는 걸 보니 세자 또한 대리청정의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의식하는 모양이다.”
세자는 민망했던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내 문종대왕께서는 송구스러우나, 이 아비는 세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능히 문종대왕 이상의 성세를 펼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자가 어찌 지극한 성세를 펼친 옛 대왕과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외람되이 아뢰옵자면, 문종대왕께서 성세를 펼치신 건 앞선 세종대왕께서 먼저 지극한 성세를 펼치셨기 때문입니다. 소자 또한 오롯이 문종대왕과 마찬가지로 선대왕의 성업을 극진히 받들어 이어나가기만을 애쓰고자 할 따름이옵니다.”
“내 이미 세자의 그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세자의 익선관을 쓸어내렸다.
“세자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서 기업基業을 받들 준비가 되었는데 어찌 대리청정을 더 이어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
“……!”
세자는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곧장 몸을 돌려서 부복했다.
“아바마마.”
“세자는 왕위에 올라라. 대리청정은 이만하면 되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천하에 더 없을 타고나심으로 거의 망했던 나라를 소생시키고, 오늘날까지 진흥시키셨사옵니다. 이 땅의 억조창생이 모두 과분한 은택을 받았고 또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두려운 말씀을 내리시옵니까.”
“태종대왕께서도 세종대왕에게 보위를 넘길 적에 거두절미去頭截尾하셨다. 내가 넘긴다면 넘기는 것이지, 세자가 사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바마마…….”
세자가 등허리를 더욱 굽혔다.
“본디 임금의 재위가 말미에 이르고 후계는 장성하여 뜻을 펼칠 준비가 되었다면, 임금은 시기를 보아서 보위를 사양하는 게 이 나라의 아름다운 관습이었다.”
그래서 정종부터 태종과 세종의 시기에는 상왕上王이 있었다.
물론, 상왕이 있게 된 사연까지 따져본다면 마냥 아름다운 관습은 아니나 뻔뻔해지자면 못 둘러댈 정도는 아니다.
천하의 태종에게서 눈물을 뽑아낸 양녕대군도, 지금은 자발적으로 세자위를 양보한 군자처럼 포장됐으니까.
아무튼.
“세자는 장성하였고 나는 재위가 말미에 이르렀으니 이제 아름다운 옛 관습을 재건하려는 것뿐이다. 혹, 이 의도가 아니라면 전대의 혼군처럼 자식이나 괴롭히고자 대사大事를 남발하려는 것이겠느냐?”
선조의 쓰레기 짓을 새삼 거론하여 비교하니, 세자가 차마 아비를 선조로 만들지는 못하겠던지 얌전히 답했다.
“삼가 아바마마의 전교를 받들겠습니다.”
“그래. 마침 대보大寶도 여기 있으니 가져가거라.”
서안에 놓인 도장을 들어 앞에다 가져다주니 세자가 공손하게 양손으로 받들었다.
“마, 망극하옵나이다.”
왕권의 상징인 대보 치고는 인수가 너무 평범했기 때문일까.
세자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정무는 서궐에서만 행해라. 안 그래도 좁고 낡아빠진 경운궁인데 이제는 숨을 돌리고 싶구나.”
“…받들겠사옵니다.”
“조회朝會 때가 되어서 번잡한 소동이 나는 것은 원치 않으니, 패초牌招를 돌려서 중신들을 서궐로 부르거라.”
“예.”
보위를 넘기기로 한 이상 더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 부분은 확언을 해두는 게 좋을 성싶었다.
“혹 내가 물러나는 것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이가 있어 소집에 응하지 않는 자가 나온다면 율대로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너의 권위가 바로 서고, 즉위도 깔끔해진다. 어정쩡한 상태로 임금이 된 첫날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겠지?”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 가는 길에 승전색承傳色도 데리고 가거라. 여기서는 더 할 일이 없을 터이니.”
“예…….”
세자는 여전히 얼떨떨한지 도장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어정쩡하게 있다가, 자신의 서안과 그 위에 놓인 권자들을 보고는 곧바로 움직였다.
대보를 서안 위에 둔 채 자신은 권자 쌓인 서안을 든 것이다.
이제 왕이 되는 신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엉성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게 되레 흡족해했다.
대보도 중요하지만, 그 대보를 가지고서 하게 될 일은 결국 정무다.
그 점은 대리청정을 해온 그간과도 딱히 다르지 않지만, 대리청정 때와는 달리 왕이 되면 정무의 결과는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정무에 달린 책임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랏일이라는 왕의 본분을 인지하고서 어떻게든 서안째로 챙겨가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가.
“……이제 자유인가.”
세자를 보내고 나니 나 또한 새삼 얼떨떨해졌다. 짧지 않은 세월 막중한 짐을 내 몸무게처럼 감당하고 살아왔는데, 그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왕이 아닌 나는 누구일까.
과거의 나 자신이 얼핏 생각나기도 하지만, 역시 왕업의 무게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일단은 상왕인데……. 완전히 백수는 아니고.”
여러 의전이 있을 테니까.
“그건 곤란하네. 평소에도 의전은 안 챙겼는데 자식놈 때문에 불려 다녀야 하나?”
상왕이란 행사에 불가결한 존재가 아니다.
왕이 없다면 어떠한 행사도 의미 없지만, 상왕이 없어서 불가능한 행사는 없으니까.
그냥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의상 행사마다 초청받을 텐데, 부르는 사람이 또 왕인지라 사양하기가 어렵다.
“어째서 태조가 함흥으로 떠났는지 알겠군……. 정종도 말이지.”
정종은 함흥으로 가지는 않았다만, 대신 각지 산처를 유람하고 다녀 태종이 부러워했다.
왕이란 죽거나 그만두기 전까지는 궐이라는 새장에 갇힌 신세 아니냐.
하물며 태조와 정종, 태종은 모두 고려 시대에는 무인으로서 팔도를 전전하고 다녔던 인물들.
궐에 콕 박혀서 사는 게 태생과는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괜히 태종 또한 말년에 이르러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게 아니지.
본인이 봐온 게 있으니, 자식도 장성했겠다 앞길도 닦아주었으니 나도 이제는 바람 좀 쐬면서 살아야겠다는 거다.
태생이 자유인인 나 또한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러면 내가 한양에만 콕 박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나?”
없었다.
“선대왕들께서 좋은 선례를 남겨주셨는데 선위만 하고 그냥 남아있을 수는 없지.”
아들 딴에도 가까이 계시는 선왕을 행사마다 안 부를 수는 없다.
설사 내가 보이콧을 한들, 위치가 그쯤 되면 당사자들의 의견보다는 사람들의 눈치가 더 보이니까.
선왕이 뻔히 계시는데 왜 행사에 안 나오시냐.
아무리 그래도 아예 안 부르셔야 되겠느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게 아니시냐.
‘상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서 질식하겠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세간의 이목에 잡혀 살지 않으려면 내가 한양을 떠야 한다.
마침 나 또한 바라는 바이니 잘 됐지.
“바깥에 게 있습니까?”
* * *
“전하…….”
대전내시에게 일러 경운궁의 궁인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이들은 이제 더는 필요가 없는 사람들.
다소 가혹한 평가로 들릴지 모르나 서궐에는 이미 아들을 보조해줄 궁인들이 충분하다.
물론, 경운궁에는 본디 궁인이 많지 않았고 아들이 대리청정을 시작한 뒤에는 충원조차 중단되어 손에 꼽을 지경이다. 정 서궐로 재비치를 해주자면 차질은 없다.
‘그러나 이들은 나를 오랫동안 곁에서 보필해 준 사람들이지.’
아들 딴에는 부친의 눈과 귀가 주변에 남아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이 나라의 지존은 언제나 금상今上이라지만 상왕은 그 금상의 전임자이자 부친이기도 했다.
‘하물며 나는 이룬 업적마저 작지 않으니.’
아들이 왕위에 오르더라도 간섭을 하자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욱 효율적인 통치가 가능하겠지.
‘열도에서도 막부의 실권자들은 표면적인 은퇴를 통해 자신과 자식의 입지를 더했지. 그러면서 이목은 덜 끌어 수월하게 통치했고.’
내가 부친 주도의 2단 합체 상태로 군림을 꾀한다면, 이례 없는 지배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구도를 바라고서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하나하나가 태조나 정종과 마찬가지로 후대가 참고할 귀감이 될 터.
믿고 왕위를 넘겨준 자식에게 자신의 눈과 귀를 심어 감시나 간섭할 여지는 남겨두지 않는 게 좋았다.
‘그편이 아들 또한 뜻을 펼치는 데 부담이 없을 것이고.’
그러니 왕이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면, 그 왕을 보필하는 궁인들의 임무 또한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상선께서는 세자가 승전색을 대동하고서 퇴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예에.”
일순 멈칫한 상선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승전색에게 서안을 맡겨 함께 퇴궐하였사옵니다.”
짧은 침묵은 상선이 주어의 선택을 고민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즉위식을 거행하지는 않았으나, 금상의 대보를 받들어 이미 이 나라의 왕으로서 전임자에게 인정받은 상태.
저하건 전하건 다 그리 부를만한 여지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어떻게 부르든 책 잡힐 여지 또한 있다는 의미고.
눈치 좋은 상선은 주어를 생략한다는 방법으로 여지 자체를 감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벌써 소식이 퍼졌다는 뜻이로군.’
세자가 대보를 전해 받았다는 걸 모른다면 이렇게 조심할 이유가 없으니까.
편하게 말하면 되겠군.
“방금 세자에게 대보를 주었습니다.”
“……!”
절반쯤은 무척 놀라워했고, 다른 절반은 그리 놀라워하지 못했다.
역시 발 빠른 말이 천 리를 가는 법이다. 반나절만 더 지났어도 모두가 알았겠지.
“앞으로 정무는 서궐에서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양을 떠서 아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니, 그대들은 각자의 향방을 정해야 합니다.”
그러자 눈치 좋은 상선이 말했다.
“신과 몇몇 사람은 궐을 나서더라도 생활을 영위할 여유가 있으나, 몇몇 사람은 그렇지 못하오니 그 점은 상량해주시옵소서.”
역시 내시부의 수장이라는 것일까.
궁인 모두에게는 자신부터 왕의 의지에 순응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반대로 왕에게는 궐 외 생활이 막막한 수하와 동료들을 챙겨달라 청하니까.
하지만 이런 치밀한 의중의 심계도 보기 어려워질 테지.
나는 기꺼이 상선의 요청에 응했다.
“각자 의중에 둔 행보가 있다면 그것을 따르되, 막막하여 당장 의지할 데 없고 생계 또한 불투명한 이가 있다면 은행에 양해를 구하여 소일거리나마 한동안 맡기게 하겠습니다.”
아예 직원으로 만들어주는 건 은행에 횡포를 부리는 거라 장담하지 못했다.
그래도 궁인 출신이라면 최소한의 산수 능력이나 성실함은 갖추었을 것이니, 대부분은 원한다면 정직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다.
상선 또한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는지 허리를 굽혔다.
“성상께오서 부족한 신하들을 이토록 챙겨주시니, 어찌 은혜에 감읍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궁인들에게 일렀다.
“나는 이제 왕이 아니고, 그대들은 궁인이 아니니 각자 가야 할 길로 가세요. 궁녀들은 가정을 이루더라도 책 잡히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가세요, 가!”
훠이훠이 손을 흔드니 눈치를 보던 궁인들이 말석에서부터 슬금슬금 예를 올리며 흩어졌다.
다들 궐 밖의 생활이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본디 궐 밖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들이다.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경운궁에서의 시절은 금세 추억의 한구석으로 밀려나겠지.
나 또한 그리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