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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78화 (378/380)

인조, 명군이 되다 378화

아들에게 연해주의 개척을 두고 서찰을 보냈는데, 막상 돌아온 것은 답서가 아니었다.

“아바마마.”

둘째 아들이었다.

녀석에게 나름의 과업을 맡겨 지리산으로 보낸 뒤 한참이나 보지 못했는데, 그동안 인상이 확 달라졌다.

“정녕 봉림대군이 맞으냐?”

“그러하옵니다. 어찌하여 소자에게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그야, 노상에서 보았다면 영락없이 산적으로 오인할 인상이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수염이 이쁘게 나더니, 이게 산 생활을 거듭해서 그런가 턱이 아주 밤송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덩치도 가로로 반 배쯤은 늘어난 게, 여기에다 노랗게 굳은살마저 배긴 손까지 보노라면 이 녀석은 맨손으로 두개골도 부숴버리겠구나 싶을 정도다.

“네 명성이 자자할 때마다 이 녀석이 다행히 안 죽고 아직 살아있구나, 하고 여겼는데 과연 잘 살아있을 만하다.”

봉림대군은 틈틈이 호피虎皮나 표피豹皮 따위를 진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부를 전해왔다.

그게 몇 통의 상세한 서찰보다도 봉림대군의 근황과 상태를 더 잘 알려주었다.

진상품의 품질이 정말 좋으면 이 녀석이 상태가 좋구나.

이따금 그렇지 못한 진상품이 드물게 올라온다면 상태가 영 좋지는 않구나, 하고.

이제 둘째의 실체를 보아하니 역변한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긴 해도, 그간 보여준 행보를 생각한다면 더없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둘째가 이 아비에게는 어인 일이냐?”

“아바마마께서 보위를 물려주신 뒤 즉각 함흥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즉각 찾아온 것이옵니다.”

“내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 달포는 꼬박 넘겼는데, 이제야 소식을 접했다니 그동안 비경?境이라도 누비고 다녔던 모양이구나.”

“예……. 그래서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서 많이 놀랐습니다.”

“내가 세자에게 양위를 하려고 대리청정까지 몇 년이나 시켰는데도 말이냐?”

나의 물음에 봉림대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춘추가 그리 많지 않으시고, 중대한 질병조차 없으시거늘 하루아침에 양위하실 줄이야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네가 나 몰래 한양을 방문한 적조차 없음을 알겠구나.”

나는 대리청정을 시작한 이후로 차근차근 왕업의 여러 부문을 세자에게 이관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의 보고만 받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신하들이야 굳이 거론하지는 아니하였으나 양위가 놀라울 소식은 아니었다.

만약 봉림대군이 한양을 방문했더라면 이런 공공연한 사정조차 모르지는 않았겠지.

“소자가 어찌하여 아바마마 몰래 한양을 방문하겠습니까?”

“그야, 한양에는 들르고 싶지만, 이목을 받으며 안부 인사를 다니는 건 싫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자 봉림대군이 두 무릎을 딱 짚고서 말했다.

“소자, 그러한 생각에 완전히 공감치 못하는 건 아니나 고향을 방문하고도 어버이께 인사치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냥 고향에 안 왔지. 한 5년 정도. 대비가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도 말이다.”

“…….”

“기왕 먼 길 와서 이 아비의 얼굴은 보았으니, 갈 때도 한양에 들러서 어머니께 인사나 드리거라.”

“……예에.”

봉림대군이 얌전히 수긍하자, 나는 미소로 마주하고서 물었다.

“이외에 달리 접해본 소식은 없더냐? 네 형이 하루아침에 보위를 물려받았으니 이런저런 소동이 없지는 않았을 듯한데.”

그러자 봉림대군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 함흥에서는 한양의 소식이 닿지 아니하옵니까?”

“당연히 닿지. 하지만 어떠한 종류의 소식은 굳이 전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또 어떠한 소식은 굳이 퍼뜨릴만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마치 독립심 강한 사람이 자신의 질병이나 난처한 상황을 굳이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첫째는 한참 예전부터 유능한 후계자로서 촉망받았고, 근자에는 오랜 대리청정 끝에 왕위를 물려받았으며, 나라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위치에 올랐다.

“책임감 강한 네 형이라면 혹 불미스러운 사정이 생겼을 때, 자신을 믿고 보위를 물려준 내게 소식이 전해지기를 원치 않을 듯하구나.”

나의 말에 봉림대군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형님…… 전하라면 아바마마의 말씀대로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자가 소식을 듣고 함흥으로 들려오는 동안에는 딱히 형님 전하가 난처해할 만한 소식은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오랜 기간 공을 들여서 양위를 대비해왔기 때문일까.

첫째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조정을 장악해낸 모양이었다.

그래도 한순간에 왕이 바뀌어버렸다면 이런저런 소란이 발생할 법한데도 말이다.

“그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이 아비는 혹 첫째가 곤란한 사정이 있는데도 내색만 하지 않을 뿐이 아닐까 걱정하였는데, 그냥 기우였던 모양이다.”

“형님 전하라면 이런저런 사정이 있더라도 능히 타개해낼 것입니다.”

봉림대군의 말에 과연 그럴 녀석이라고 동의하려는데, 봉림대군이 곧장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아바마마께 직접 배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하하!”

둘째가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듯한데 말이지.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새삼 세월이 느껴졌다.

하기야, 생긴 것부터 아주 상전벽해를 하지 않았는가.

원래는 키와 덩치만 좀 크고 활달했을 뿐, 갸름하게 미래적으로 잘 생겼던 둘째였는데 산적이 되어 돌아왔으니 말이다.

수염만 더 지저분해지고 만 게 아니었다.

밝고 말끔했던 피부는 볕에 새카맣게 타서는 사포처럼 거칠어졌고, 희고 가늘었던 팔은 털이 난 통나무가 되어버렸다.

산을 타느라 다리와 허벅지는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아예 무릎을 똑바로 꿇지 못해 상체가 붕 뜰 정도다.

‘아마, 머리 모양만 조금 다듬어서 내놓으면 오랑캐와 분간조차 못 하겠다.’

문득 든 생각이 벼락처럼 뇌리를 때렸다.

* * *

“이걸 아들을 잘 키운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봉림대군이 함흥본궁을 방문한 다음 날 첫째에게서 답서가 왔다.

서찰은 공문의 형식보다는 사적인 편지에 가까웠는데, 첫째는 먼저 나의 안부를 물었고 다음으로는 나라 안팎의 자잘한 소식들과 동향 따위를 풍문 전하듯이 알려왔다.

그리고 이 장대한 서문에 이어 본론이 되는 답변의 내용은, 무척이나 분명하고 짧게 정리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

이것은 부왕을 향한 전적인 신뢰의 증거인가?

아니면, 단지 새로운 과업을 거론하는 부왕에게 기꺼이 그 일을 떠안겨주려는 은근한 패륜인가.

‘이상하게 수도와 나라 안팎의 동향이 구구절절 많은 것도 그래.’

이 아비가 눈치가 아주 없지는 않은지라 재위 때부터 국경 안팎의 동향을 주시하다가, 여차하면 비집어 이익을 취해왔다는 건 첫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첫째 자신이 새롭게 왕으로 즉위하고 아비는 상왕으로 물러난 상황일지라도 혹 아비가 살펴 보아 나설만한 여지가 있다면 나서 달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단순히 최근 소식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첫째가 마냥 순진한 녀석은 아니란 말이지.’

아비의 의중을 짐작하고서 조용히 함흥부까지 배웅한 것만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무튼 금상今上이 좋다니, 이 아비가 기꺼이 따라줘야지.”

나는 곧장 관찰사를 불러 나의 심계와 아들의 허락을 알렸다.

“함경도의 수장은 경이니, 내가 윤허를 받았다고는 하나 마음대로 대사를 추진할 수는 없으므로 이렇게 불러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상왕으로서 위치는 더 높다지만, 관찰사가 모르는 상태로 일을 꾸밀 수는 없지.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주인이셨고, 지금은 보위를 물려주셨다고는 하나 여러 성업을 세우신 대왕이신데 어찌 신 따위를 불러 이르시옵니까. 개의치 마시옵소서.”

“함께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는 신세임은 같으니, 마땅히 경에게 알려 양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

아니, 세법의 개정을 아들하고만 논의한 건 관찰사가 먼저 잔머리를 굴려서 그렇고.

이건 다르지.

“아무튼, 번호藩胡들 중 충성스러운 무리와 수장을 규합하여 봉림대군을 구심점 삼아 두만강 이북을 개척하였으면 합니다. 마침 여러 번호의 수장들을 근자에 마주하기는 하였으나, 평소 그들의 처신을 알지는 못하므로 관찰사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관찰사가 금세 반색하고서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소관을 부르실만 하십니다. 마침, 북방의 뭇 수령들에게는 대대로 번호들의 태도와 동향에 대해 기록하니 총평과 함께 이 또한 가져다 드리겠사옵니다.”

“경이 이토록 나를 든든하게 지원해주는데 어찌 미리 알리지 않겠습니까?”

나는 미소로 덧붙였다.

“기실, 이러한 도움을 기대했으므로 경을 불러 알려드린 것이기도 합니다.”

“대왕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막중한 대업에 신 또한 일익을 맡게 되었으니 오히려 망극한 바이옵니다.”

두만강 너머 또한 요동과 마찬가지로 평정되고, 조선의 손아귀에 들어온다면 관찰사 또한 막대한 공을 인정받게 될 터.

“그러면 내가 이 일에 구상이 갖추어졌을 때 경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예, 전하. 총평과 기록은 빠르게 모아 바치겠습니다.”

관찰사는 꾸벅 허리를 숙인 뒤 예를 갖추어 물러났고, 뒤이어 불려온 봉림대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자가 야인들의 추장이 되어야 한다니요?”

* * *

봉림대군을 추장들의 추장으로 만들어주려는 건 이 때문이었다.

명나라가 간접지배를 위해 조직한 무리는 십중팔구가 동화 이전에 내분의 길을 걸었다.

명나라 멸망의 시작이 된 사안지란奢安之亂이 그렇고, 이전 역사에서는 여기에 막타가 되어준 후금조차 본디 그러했다.

후금의 전신은 명나라가 여진족들을 수월하게 통치하고자 조직한 건주위建州衛니까.

이외에도 이 같은 조직들이 명나라 안팎에서 제국에 반해 내란을 일으킨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제국이 수월한 통제를 위해 수립했던 조직들이 외려 반역의 주체이자 구심점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조직들이 현지에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현지의 권력과 질서가 되어버리고, 이를 근거로 제국에 편의와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더욱 부강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틈을 보아서 이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반역에는 이유가 없어진다.

내가 여문呂門과 청래도, 양관도를 개척한 뒤 시종 요동 및 중원에서의 격리와 현지의 동화에 집착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질적인 문화를 보유한 외부의 영토가 여차할 때 이탈하는 건 너무나도 흔한 사례니까.

이번 두만강 너머의 개척지 또한 얼마든지 역사 속의 무수한 사례를 뒤따를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조선의 왕족을 수장으로 기용한다는 건 조직을 절대 조선과 독립적인 집단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함이며, 동시에 적극적으로 동화시키겠다는 전제를 깔아두기 위해서였다.

봉림대군이 현지에서 운명의 사람을 만나 자식이 생기고, 그 자식이 수장 자리를 승계받는다면 그것대로도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조선판 심왕瀋王이 되어버리는 거지.’

그러니 그 꼴을 안 보려면 봉림대군의 대에 동화작업을 완수하거나, 수장의 선발을 조직 내부에서가 아닌 조선에서 지정하는 식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쪽이건 조선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법이었다.

“이제 알겠느냐?”

장광설 끝에 물어보니 봉림대군이 멍한 얼굴로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뭐, 몰라도 상관없다.”

봉림대군은 이 아비가 굿하는 걸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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