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화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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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Prologue

* * *

내 방.

꽤나 칙칙하고 별 거 없는 곳이다.

있는 거라곤 컴퓨터랑 게임기 몇 개, 서적 몇 권이 끝.

"씨발!!!!!"

쾅!

나는 회사에서 챙겨온 단프라 박스를 집어던지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렇게 아끼던 다페르헤이드의 A4용지 설정집이 여기저기 흩날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씨발!"

손에서 묵직한 감각이 사라지자 이번엔 괜히 책상 위에 올려진 것들을 엎어버렸다. 수없이 두드려 온 키보드는 전선에 걸려 땅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곧 나의 울분 섞인 샷건 행위에 자판이 마구 깨졌다.

손에 플라스틱 쪼가리가 박힌 건지 조금 아팠지만 개의치 않고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경영진 좆같은 새끼들이!"

내 학창 시절은 '모이드'의 게임으로 가득 차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넓은 세계, 높은 자유도, 수많은 아이템과 치밀한 설정

다른 사람들은 설정충 회사가 만든 게임이라며 싫어했지만 나는 꽤나 좋아했다. 싸구려 아이템 하나에도 각종 사연을 부여했고, 그 사연들을 좇아나가며 하나의 일련된 이야기를 완성할 때마다 크나큰 재미을 얻을 수 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수능에서 죽기살기로 쟁취해낸 이름 높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중소기업에 불과한 모이드에 취직했다. 그 세계들이, 멋진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곁에서 보고 같이 만들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스펙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후회따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었으니까.

그래,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아아아아악!!!!!!"

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하고 말았다.

무능한 새 경영진과 국가적 경제공황이 겹치며 만들어낸 위기에 중소기업에 불과한 모이드는 폭삭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게임 '다페르헤이드'의 개발이 취소된 건 물론이다.

나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 방 안을 빙빙 돌았다. 감정이 격해질 때 나오는 나쁜 버릇이다.

그러다가 이내 이러고 있어도 바뀌는 건 없다는 걸 깨닫고 침대로 뛰어들어 꼴사납게 처울기 시작했다.

"으윽 흑"

군대도 갔다 온 새끼가 이런 걸로 처운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만 다페르헤이드는 내 전부나 다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때를 고르라면 라면을 처먹다가 합격 문자를 확인하고 급체에 걸렸던 때를 고를 것이고, 가장 슬플 때를 고르라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을 고를 것이다.

나는 침대 밑에서 용케 부서지지 않고 형체를 유지하던 휴대폰을 들어 알람을 꺼버렸다. 더 이상 출근할 일도 없는데 무슨 알람이야.

일단 처자고 보기로 한 나는 베개에 얼굴을 박은채 다리만 꿈틀꿈틀 움직여 이불로 몸을 둘둘 말았다.

'아직 해피엔딩을 못 만들었는데'

이 상황에서도 이딴 생각을 하다니. 어지간히 중증인 모양이다.

한바탕 울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잠이 잘 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대로 잡념을 가라앉히며 수마에 몸을 맡겼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그래도 버리지 못한 미련 하나가 떠올랐다.

정말로, 만에 하나라도,

내가 그 게임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 바람은, 어딘가 왜곡된 채로 실현되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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