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박사과정 밟는 마녀 속이기 (1)
* * *
극정 아카데미에서의 내 위치는 상당히 곤란했다.
주술소녀의 엉망진창 일기를 읽어보니 그녀는 평소 외모와 기괴한 언행 등으로 친구가 없는, 소위 찐따인듯 했다.
내 학창시절이 기억나는 행적이긴 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교복을 몸에 걸쳤다.
"이 빌어처먹을 학교는 여자한테 바지도 못 입게 하는 건가?"
여성인권 따윈 없는 쓰레기학교!! 라고 비판하기엔 바지 입은 여학생 리소스를 안 만들어 놓은 개발진의 잘못이 컸기에 조용히 옷을 입을 수 밖엔 없었다.
아침의 소동이나 샤워하기, 브래지어 입기, 치마 앞뒤 구분하기 등으로 시간을 엄청 날린 나였지만 오늘은 어차피 토요일, 자유등교였기에 인터넷 검색으로 열심히 의복에 대한 지식을 익혀가며 천천히 옷을 입었다.
교복을 다 입고나서 목에 걸 학생증을 찾았다.
그런데 학생증에 있는 증명사진의 상태가 이상했다.
"내가 평소에 이러고 다녔다고?"
긴 앞머리가 예쁜 얼굴을 죄다 가리고 있었다.
그래, 마치 처녀귀신처럼 제 얼굴을 긴 머리카락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입과 코는 숨쉬기 위해선지 가리지 않았지만 이래서야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일기에 왜 외모 때문에 친구가 없는 것 같다는 소리를 적어놨나 했더니."
이렇게 음침하게 다니니까 친구가 없지.
현재 진명인 '음침한 주술소녀' 에는 이런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을듯 하다.
나는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 얼굴이 드러나게 만들었다.
눈 앞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걷는 취미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겠지만 그래봤자 찐따 하나가 외모를 드러낸 정도다.
큰 일이 생기진 않겠지.
나는 목에 건 학생증을 사진이 안 보이게 뒤집고 신발을 신었다.
운동화에도 뭔지 모를 금속제 해골 장신구가 달려 있길래 떼버렸다.
문을 열고 등굣길에 나선 나는 이뤄야할 목표와 그를 위해 우선적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내 목표는 세상에 닥쳐올 재앙들을 막고 해피엔딩을 이루는 것.
우선 8명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나 다른 주요 캐릭터들과 연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필요한 건 본신의 무력이다.
이 몸은 마력 대신 주술의 원료인 스피릿을 각성한 몸이기에 근접전 혹은 주술을 익히는 게 유리한데, 공교롭게도 주술은 내가 혼자 만들다시피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개발진 중에서 나만이 한문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문자의 기적은 아카데미 고서자료보관실에 있어. 오늘은 그걸 익혀서 나오자.'
지금은 어디까지나 조기반이기에 정규반에 편성되려면 그에 맞는 성적을 달성해야했다.
물론 이 주술소녀는 아카데미 성적보다 제사에 더 관심이 많았기에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정규반에 편성될 수 없었다.
'제사 숙련도를 A 찍을 노력의 반만이라도 성적에 투자했으면 상위 4%는 거뜬히 들었겠네.'
나는 내 반인 D반의 문을 스르르 열었다.
반에 앉아 있는 학생은 한 여섯 정도였다.
나머지는 아마 단련이나, 뭐 그런 걸 하러 간 거겠지.
나는 혹시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 조심히 걸어 교탁 앞에서 졸고 있는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으음, 깜빡 졸았군. 누구지?"
제 학생도 못 알아보는 건가.
학교 선생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는 나로서는 정말 마음에 안 드는 태도다.
"정시현입니다."
"흠? 아, 인상이 바뀌어서 몰랐군. 평소에도 그러고 다니지 그랬나."
"아하하"
선생이 불성실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거였구나.
나는 출석체크를 마치고 강의관을 나와 독서관으로 향했다.
아카데미 부지가 워낙에 큰지라 몇 번 길을 잃을 뻔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체적인 지도와 현재 풍경을 가늠하면서 걸어 결과적으론 옳은 길로 올 수 있었다.
도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건물이었다.
1층은 로비와 일반 서적이, 2층과 3층은 마법서들이, 4층은 무술서들이, 5층은 그 외에 잡기로 분류되는 서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 잡기에는 주술 또한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5층으로 향하지 않고 지하로 가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내가 당당하게 계단을 내려가려하자 옆에 서있던 여성 사서가 나를 멈춰세웠다.
"저기, 후배님? 그리로 가시면 안 돼요."
"왜요?"
"고서자료보관실은 정규반 학생들만 들어올 수 있거든요 돌아가주시겠어요?"
그런 게 있었어?
다페르헤이드의 시작은 2051년 3월 1일, 1학년 정규반 개강부터다.
당연히 현 시점인 1학년 조기반은 구현되어있지 않았다.
'곤란한데 문자의 기적이 없으면 정규반 시험에 통과할 수가 없어'
억지를 써서라도 들어가야한다.
저곳에 내 목표의 첫 단추가 있기에.
나는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저 연구계인데요."
"예?"
"정규반 연구계라고요. 2학년."
나는 당연히 1학년 조기반 전투계다.
맞는게 하나도 없는 거짓말이었다.
사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학생증의 색이 조기반 전투계잖아요. 그리고 제가 연구계 학생회장인데 당신같이 특징적인 사람을 아니, 그, 아무튼 모르겠어요?"
"특징적인 사람?"
"말이 헛나온 거에요. 아무튼 규정 때문에 안 되니까 돌아가주세요."
이런.
하지만 나는 물러설줄 모르는 남자.
연구계 학생들을 다루는 법은 잘 알기에 나는 계속 내 주장을 밀어붙였다.
"연구계 2학년 맞다니까요."
"하."
그녀는 짜증난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손빗으로 검은 머리칼을 슥슥 빗어댔다.
그렇게 머리를 슥슥 쓸어내리던 사서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금의 마력전도율."
"증류수 기준 7.245871."
"!"
사서가 손빗을 멈췄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계끼리 시비가 붙으면 대련으로 승부를 보듯, 연구계끼리 시비가 붙으면 웃기게도 지식배틀로 승부를 본다.
"심장의 정류기관이 스피릿을 마력으로 바꾸는 원리."
"스피릿은 본질적으로 영혼이 발하는 파장으로, 교류전류처럼 사인그래프를 띠며 나타남. 스피릿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힘이기에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고, 이를 막기 위해 심장의 판막이"
나는 심장의 판막이 어떻게 작용하며 스피릿을 마력으로 붕괴시키는지 수식을 들어가며 상세하게 설명했다.
스피릿 각성자는 이 정류기관이 망가진 사람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서.
그녀는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다 마이비드 역설의 해법이나 순수마력에서의 흑마력 확산 등을 물었지만 나는 모조리 교과서적으로 설명해버렸다.
당연하다. 나는 이 게임의 세부 설정을 만든 사람이니까.
모이드는 설정충 게임사라는 별명답게 별 쓸모 없어 보이는 것까지 죄다 설정할 것을 규범으로 삼는 회사였다.
나는 대충 학력이 높단 이유로 주술에 이어 학문에 대한 세부 설정까지 혼자 만들다시피 했고, 그 결과가 이 세상의 마력학이다.
'물론 현대 물리법칙이나 화학공식을 베낀 거지만'
예를 들어 스피릿정류는 와류작용과 파동의 상쇄간섭, 원소의 스펙트럼 현상 등을 합친 것이고 흑마력 확산은 화학의 그레이엄 법칙을 갖다 박은 것이다.
사서는 꽤 해박한지 계속 질문을 던져댔지만 곧 생각이 동났는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역으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공이 뭐에요?"
"이질마력분석학."
"이상순수이질마력 기준의 흑마력과 백마력을 합치는 법은? 순마력 없이."
"회심가속결합기?"
나는 최대한 얄밉게 땡, 하고는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아스칼파리테라포스에 흑백인자 공식 넣으면 나오지롱."
"뭐? 그게 무슨!"
나는 그녀가 붙잡기 전에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가 고서자료보관실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가슴에서 차오르는 뿌듯함과 승리감을 느끼며 우히히, 하고 웃어버렸다.
나는 그 웃음에 놀라 황급히 입을 닫았다.
'여성호르몬 때문인가. 뭐 이런 걸로 신이 나고 그러냐.'
정신차리자, 정시현.
나는 찬찬히 보관실을 뜯어봤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붙어 있던 도서관만큼의 작은 크기였지만 오래된 서적들이 풍기는 책냄새와 어둠을 가까스로 몰아내고 있는 단 하나의 광원인 램프 하나가 왠지 모를 신비감을 조성했다.
'실제로 보니 느낌이 좀 더 사는데?'
게임 테스트를 하며 이곳에는 뺀질나게 들러봤지만 화면 너머에서는 적당히 잘 만들었다, 이런 정도의 느낌일 뿐이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온 현실감에 당황하며 팔을 쓸었다.
'게임처럼 생각하지 않기로 했잖아. 여긴 명백한 현실인걸.'
그렇지?
이곳은 현실이니까 정해진 엔딩따위 없다고.
그러니까 나는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다시금 목표를 상기한 나는 늘어선 책장들에서 '문자의 기적' 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책장 구석에 박혀 있었다는 묘사가 다페르헤이드에 나왔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찾았다'
나는 책의 정보를 확인했다.
[문자의 기적(S)]
문자는 인간의 생각과 역사, 그 자체다. 그로 인해 문자는 주술적 힘을 띠게 되었고, 부적술은 그 힘을 끌어내는 위대한 주술이다.
'역시 정보창은 미완인 것 같네.'
그래서 뭐.
완성이고 미완성이고 그런 게 중요할까.
나는 아무도 없는 고서관에서 램프 곁에 앉아 문자의 기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