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박사과정 밟는 마녀 속이기 (2)
* * *
시간은 어둠이 만물을 치료하는 밤.
사서는 아직도 정시현이 내려간 계단을 보고 있었다.
"진짜야? 사서봉사 대신 서주겠다고?"
"어. 마침 여기에 볼 일이 좀 많거든."
남학생이 피곤해보이는 인상의 사서, 성초은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래준다면야 뭐, 고맙지. 그럼 수고해!"
"어. 잘 가."
남학생이 사라지고 나서 성초은이 가방 속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그녀는 메모장을 켜 두 수식을 적었다.
아스칼파리테라포스 방정식과 흑백인자 공식.
정시현이 그녀에게 무안을 주며 말해줬던 두 식이다.
'아니, 이게 될 리가. 전혀 다른 두 분야인데'
두 식을 엮어내는 건 괴이하기 그지 없는 발상이었다.
그런데 이 둘이 무슨 상호작용을 한다고?
'좋아, 안 되면 궁둥이를 아주 팡팡 때려줘야겠어. 건방진 수박가슴 꼬맹이.'
성초은은 머릿속에서 수많은 관련 공식들을 떠올리며 증명에 돌입했다.
건방진 소녀의 엉덩이를 때려주겠다는 다짐과 함께.
***
문자의 기적은 부적술 중에 최고봉에 위치하는 주술이다.
문자에 축적된 인류 역사의 힘을 끌어내는 위대한 주술 치고는 아카데미 고서관 구석에 처박혀 있는 등 취급이 영 별로지만 그와 별개로 상당한 힘을 자랑하는 기술인 것이다.
문자의 기적은 총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째 장은 그냥 문자의 힘을 끌어내는 것.
둘째 장은 오행이나 사단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 위상들의 힘을 끌어내는 것.
셋째 장은 그 중에서도 팔괘를 기반으로한 육십사괘의 힘을 끌어내는 것.
셋째 장의 필체가 그 전 장과 다른 것으로 보아 저자가 다른듯 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발, 개어렵네.'
내가 직접 익히고 배워야 했으니까.
사진을 찍어놨기 때문에 밖에서 천천히 익혀도 되지만, 오기가 생긴 나는 기어이 고서관에서 밤을 새고 말았다.
휴일인 일요일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밤새 미약한 램프불에 기대 챙겨온 부적에 유효한 글씨를 써넣기 위해 끙끙대던 나는 아침이 밝아서야 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해냈어."
부적에 쓰인 문자는 화火.
부적은 그 글자에 쓰인 그대로 보랏빛으로 타올랐지만, 고서관을 불태운다던가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상을 다루는 마법과 달리 주술은 섭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나는 힘이 다해 재가 되어 흩어지는 부적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전신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는 게 아프면서도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재수 시절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다페르헤이드 시나리오도 이렇게 못 짰는데'
역시 나는 창의성보단 주입식 교육에 강한 건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책을 돌려놓고 고서관을 나섰다.
문 밖엔 퀭한 다크써클을 하고 있는 사서가 눈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당신!"
"꺅?!"
검은 다크써클 위에 붉게 충혈된 흰자, 피곤에 찌들어 숫제 긁는듯한 목소리.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꺅? 내 입에서 나온 소린가?'
여성호르몬 때문이야.
사서는 내게 웬 태블릿을 내밀더니 내게 말했다.
"이거!"
"네?"
"당신이 말한 흑백 결합문제의 증명이거든요?"
뭐라.
그걸 증명했다고?
그녀는 갑자기 허리를 푹 숙이더니 웅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네? 갑자기 뭔"
"정중지와?中之?가 넓은 대해를 못 알아보고 감히 길을 막아서 죄송합니다!"
'???'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식은 땀을 흘렸지만 그녀는 직각으로 꺾인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혹시 어디 소속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담피스트? 아님 에어펠트?"
아 대충은 알겠다.
내가 질문했던 흑백결합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나와선 안 되는 지식이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모방한 것이니 그 가치를 알아본 그녀가 이런 자세를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걸 힌트만 듣고 하룻밤만에 증명한 그녀가 더 비정상이지만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에요?"
"그, 극정 아카데미 연구계 4학년 A반 성초은이라고 합니다! 과분하지만 연구계 학생회장을 겸하고 있어요."
"성초은?!"
"힉?!"
조건반사적으로 큰 소리가 나왔다.
성초은은 한국의 3번째 재앙, 흑람마녀의 본명이다.
흑람마녀는 가뜩이나 불타는듯이 뜨거운 게임의 난이도에 석유와 LPG 가스통을 마구 던져넣는 강력한 적이었다.
극도로 하드한 난이도를 추구하는 다페르헤이드 제작진 내에서도 밸런싱 논의가 오갔을 정도로.
성초은은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 건지 와들와들 떨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 지식이 일천해서 이런 일이"
"."
아니, 이거
오해는 풀어줘야겠지?
***
"그래서 진짜 1학년 조기반 전투계라고요"
"아니,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고 꼭 봐야 되는 게 있어서요"
성초은은 내 앞에서 추태를 부린 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덜덜 떨었다.
"흑백결합에 대한 건 우연이고요"
"네, 아무 말이나 한 건데 정말로 그런 일을 하실줄은 몰랐죠"
내가 생각해도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지만 그녀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풀었다.
곧 성초은은 정중하고도 가시돋친 목소리로 황당무계한 요청을 했다.
"엉덩이 대요."
"네?"
"대라고. 후배님."
나는 쭈뼛대며 그녀에게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짝!
"꺅!"
"움직이지 마요!"
성초은이 내 엉덩이를 붙잡고 때려버렸다.
나는 뒤늦게 탈출하려 했지만 그녀의 스팽킹을 향한 강경한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흑 가뜩이나 학점 쌓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짝!
"악! 왜, 왜 이래요!!!"
"시퍼런 전투계 후배까지 날 우롱하네!!!"
짜악!
"꺄악!!"
나는 한참을 맞고나서야 그녀의 나쁜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울분을 내 엉덩이에 다 풀어내었는지 순순히 놓아주며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좀 서러운 일이 많아서. 특히 교수새끼 때문에"
'한 번 더 서러웠다간 사람 잡겠네!'
아카데미의 연구계가 대학원생+내신챙기는 고등학생 정도의 포지션으로 설계되었기에 울분이 생기는 건 이해할만 하지만 그걸 왜 굳이 엉덩이를 때려서 풀어내는가?
물론 내가 맞을짓을 하긴 했지만 굳이 엉덩이를
이번엔 내가 수치심에 고개를 수그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아마 얼굴 색도 빨갛겠지.
특히 엉덩이는 더
이 레즈마녀가!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그리고 전화번호 좀 주시겠어요?"
"왜, 왜요?"
내가 두렵다는 듯이 되묻자 오해라는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다른 건 몰라도 마력학에 꽤 박식하신 거 같아서요 전투계에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래서 가끔 학문에 대한 얘기를 좀 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으, 하긴, 내가 너무 많은 지식을 쏟아내긴 했다.
연구계 학생회장의 질문이 동날 정도로 열심히 대답을 해댔으니.
흑람마녀가 될 정도로 지식욕이 굉장한 성초은으로서는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순순히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그녀는 피로에 물든 청순한 눈가에 웃음을 지어보이며 계단을 총총 올라갔다.
그러다가 돌연 뒤돌아선,
"연락 받아요!"
하곤 사라졌다.
"시발"
엄마한테도 이렇게 맞은 적이 없건만
나는 따끔거리는 엉덩이를 어색한 치마의 감각으로 뭉개려고 애쓰며 계단을 올라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
아카데미 뒷골목.
두 소년이 서로를 마주보며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정시현 알지? 그 처녀귀신 같은 애."
"어, 알지. 걔가 왜? 또 체력단련실에서 제사지냈냐?"
금발 머리의 반문에 멀대가 풉, 웃으며 휴대폰 화면을 들이 밀었다.
그 안엔 머리를 넘기고 얼굴을 드러낸 정시현이 있었다.
"응? 얘가 누군데? 설마 얘 정시현이야?"
"그렇대. D반 친구가 찍어서 보내줬어."
이제는 몰카까지 당한 정시현.
금발 소년은 정시현의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휘면서 품평하듯 말했다.
"개이쁘네. 그동안 왜 그러고 다녔대?"
"몰라. 듣기로는 이상한 장식까지 다 빼버렸다는데."
멀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휴대폰을 빼버렸다.
금발이 아쉬워하자 멀대가 킥킥 웃으며 금발에게 말했다.
"너, 가만히 있을 거 아니지?"
그 말에 금발이 대답 없이 마주 웃었다.
두 병신이 킥킥대는 소리가 뒷골목을 낮게 메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