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5화 (5/119)

〈 5화 〉 직감과 킬힐의 상관관계

* * *

도서관에서 밤을 샜지만, 나는 생각보다 아주 멀쩡하다.

빙의 전에야 늘 좋다고 야근을 해댔기에 철야에 익숙했고 이 몸은 일기에 따르면 부모님의 혼을 불러오기 위한 제사를 지내느라 심심찮게 밤을 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눈 앞의 아저씨는 정신이 아주 말똥말똥한 나에게 아주 대놓고 사기를 치려고 드는 게 아닌가.

"아니, 무슨 레그 홀스터 하나가 12만원이에요?! 이거 원가 2만원도 안 하는 거 다 알거든요?!"

"아가씨 눈엔 내 인건비가 공짜로 보이나 보지? 그리고 아카데미 근처에서 떼어가는 세금이 얼만데! 세금만 5만원이야!"

"그럼 2만원짜리 재료를 들고 5만원짜리 노동력을 들였다는 말이에요? 아무리 봐도 그 정도로 멋진 퀄리티는 아닌데요?!"

"이 아가씨가 정말! 사기 싫으면 사지 마! 장담하는데 이 근방에서 나보다 싸게 파는 놈은 없을걸?"

분하게도 저 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질 좋은 장비가 시장에 흐르는 아카데미 근방에서는 여기보다 싸게 가죽제 도구를 파는 곳은 없었다.

나는 계백에게 패하고 손발이 묶여서 돌아오는 관창의 심정으로 12만원을 결제했다.

"시발 좆같은 정부새끼들 세금을 얼마나 받아 처먹어야 만족할 거야"

현 대한민국의 재정은 상당히 위태로운 편이다.

중국이 붕괴하며 재앙이 셋이나 들어섰고, 그 중 '영원한 순회' 가 언데드를 이끌고 한국의 북방을 지속적으로 침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한국의 자랑인 극정 아카데미에 드는 예산도 만만치 않고.

그래서 아카데미 근처에 온갖 장비점이나 소모품점을 모아놓고 무지막지한 세금을 때리는 식으로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고 있는데, 난 그 돈이 150% 누군가에게 착복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왜냐? 한국이니까.

'음, 너무 자국혐오적인가 뭐, 영원한 순회만 어떻게 하면 삥땅을 치든 굿을 하든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아무튼, 좆같은 건 좆같은 거다.

내 5만원!

그래도 어차피 내가 피땀 흘려 번 돈도 아니고 본판 주술소녀가 제사를 위해 모아놓은 돈이니 억울해할 것 없다고 생각한 나는 짐짓 밝게 발걸음을 옮겼다.

"음 마지막으로 살 건 전투화네. 아마 이 쪽이었지?"

나는 지금 추후 사용할 장비를 구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칠흑여제의 사랑' 과 '송곳니 학살자', '천린' 을 구하기 위한 것들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정규반 시험, 더 나아가 새로 얻어야할 주술, 장송곡을 위한 장비였다.

미리 봐둔 가게는 입소문을 탔는지 꽤 사람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막 줄 설 정도는 아닌지라 여유있게 상품을 뜯어볼 수 있었다.

나는 비슷하게 좋은 품질의 여성용 워커들을 보면서 고민하다가 구석 쪽에 처박혀 있던 범상치 않아보이는 장비를 발견했다.

그 워커는 신기하게도 깔끔한 흰색이었는데, 다른 워커들이 전투시 오염과 적에게의 발각을 줄이기 위해 검은 색으로 도색을 한 것과 정반대였다.

흰색 워커는 그러한 점 때문인지 설명서도 없이 진열장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이에 대해 주인장에게 물으니, 그 설명서에 대한 행방은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자기는 공급 받는대로 파는 것뿐인데, 설명서가 없다면 아마 처음부터 없었을 거라나.

"음 뭔가 마음에 드는데."

흰색 워커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는 워커의 정보창을 열었다.

썩 믿음직한 능력은 아니지만, 있는 걸 안 쓰기에도 뭐하니까.

[전쟁걸음(B)]

­ 청결을 비롯한 여러 마법으로 가호 받는 지휘관용 부츠.

"오"

여전히 성의 없는 설명이지만, 다행히도 내가 원하던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여타 워커들보다 품질이 살짝 더 좋은 B등급에 여러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다는 정보까지.

그렇게 내가 흰색 워커를 집어드는 찰나.

"앗!"

하고 등 뒤로 누군가가 달려왔다.

뭔가 싶어서 돌아본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익숙한 외모의 붉은 머리의 소녀였기 때문이다.

"그, 그거 살 거야?"

"어? 으, 응."

"아아아아아! 이럴 수가"

플레이어블 캐릭터, 화수연이 충격이라는듯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내가 봐둔 건데!"

"."

어쩌라고, 이 아가씨야.

네가 봐둔 거면 샀어야지

'줘, 줘야 되나?'

플레이어블 캐릭터와의 관계를 위해선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기분은 나쁘겠지만.

"꼭 필요한 거야?"

"아니, 그 정돈 아니고 구경하다가 더 좋아보이는 걸 찾았거든. 헤."

"그럼 그걸 사면 되지 않아?"

"아니, 그게 좋아보이긴 하는데 내 감이 그럴 뿐이라서. 너도 그거 고른 거 보면 되게 감 좋은 것 같은데 와서 한 번 볼래?"

화수연은 폴짝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가게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화수연의 마이페이스적 성격이 잘 드러나는 행동이다.

나는 잠시 쭈뼛대다 그녀를 따라 가게 구석의 진열장으로 향했다.

'잠깐, 여긴 진열장이 아니라'

물류창고잖아?

화수연은 붉게 늘어뜨린 생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방 가운데 박스에 올려놓은 빨간 하이힐을 분석하듯이 보고 있었다.

"오! 왔어? 내가 말한 게 이건데, 어때보여?"

"전투화 사러 온 거 맞지?"

"응? 응. 당연하지."

화수연은 내가 꽤나 좋아하던 플레이어블 캐릭터다.

일단은 외형부터가 섹시하게 뽑힌데다 특유의 성격 덕분에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답답한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전형적인 실력캐.

상대의 공격을 알맞게 흘려내거나 튕겨내며 경쾌하게 적 사이를 누비는 화려한 캐릭터다.

그런데 그녀가 신겠다고 보고 있는 건 하이힐.

그냥 하이힐도 아니고 스틸레토 하이힐, 소위 킬힐이라 부르는 굽 높이 15cm의 높은 하이힐이다.

그런데 그걸 신고 싸우겠다고

"진심이야? 저거 신고 걸을 순 있어?"

"해봐야 알겠지?"

"너 검사잖아. 저거 신고 뛰어다녀야 되는 거 아냐?"

"응?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임기응변으로 흘려보냈다.

"아니, 이 흰색 워커 말야, 이걸 보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근접전 위주라는 거 아냐?"

"음 칼 쓰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네 손 보고."

화수연은 그 말에 굳은 살 박힌 손을 내려다보다가 와! 하고 소리쳤다.

"너 되게 관찰력 좋구나? 이름이 뭐야?"

"어? 난 정시현."

"난 화수연이야. 그나저나 네가 그 정시현이구나? 요즘 꽤 유명하던데."

"유명해? 내가?"

화수연은 내 반문에 제대로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듯 다시 하이힐을 가리키며 웃었다.

"어때보여? 네 관찰력으로 봤을 때!"

"그러니까 이걸 신는다는 것 자체가"

잠깐, 진짜 그런가?

다페르헤이드엔 별별 방어구가 다 있다.

대표적으로 서큐버스 퀸의 매혹치마(S)나 타락마법소녀의 속옷(A), 촉수기생내갑(B).

나는 가끔 다른 동료들 모르게 이 셋을 화수연에게 입히고 플레이해보기도 했다.

'아니,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무튼 그렇고 그런 의미로 다 보이는 방어구를 입는다고 해도 스토리상 변화가 일어나거나 전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게임이니까.

'물론 신발 방어구에는 하이힐도 많았지. 그리고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렇다면 저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여긴 현실이지만, 감 좋은 화수연이 저렇게 나올 정도의 방어구라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듯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빨간 킬힐의 정보창을 띄웠다.

[죽음의 무도(S)]

­ 그녀의 춤에는, 갈채가 쏟아지지 않는다.

"뭐라?"

"응? 왜그래왜그래?"

S급?

하지만 제작진이 만든 장비 중에 저런 건 없었다.

나는 당혹감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가 화수연이 취하는 행동에 경악하고 말았다.

"잠깐, 뭐하는 거야?!"

"신어보고 있잖아. 이게 제일 확실하지 않아?"

"저주템이면 어쩌려고?!"

나는 뒷걸음질 쳐서 물러나며 크로스백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적을 꺼냈다.

다페르헤이드에서 저주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장비를 착용하는 건 일종의 금기다.

미쳐서 날뛰는 저주나 악령에 빙의 당하는 저주, 심지어는 즉사의 저주도 있을 정도니.

나는 화수연이 광란의 저주에 씌여 우월한 전투 능력으로 날 때려 죽이는 상상을 하며 부적에 스피릿을 우겨넣었다.

"응? 저주템? 저주 토템 말하는 거야?"

하지만 화수연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수연은 신난다는 듯 발을 땅에 따각따각 디디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죽음의 무도는 그 끔찍한 이름과 다르게 화수연의 발을 예쁘게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덜덜 떨었던 게 무안해져 꺼냈던 부적을 빈 부적 하나만 남기고 천천히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꽤 안정적으로 발을 놀리는 화수연에게 잠시 와보라고 했다.

"응? 왜?"

"가만히 있어봐. 확인할 게 좀 있어서."

나는 빈 부적에 글자를 하나 써넣었다.

"응? 와, 그거 부적이야? 강시 이마에 붙이는 거?"

"음 비슷하긴 해."

나는 부적에 '성?'을 써넣고 죽음의 무도에 붙였다.

그러자 부적이 은은한 빛과 열기로 백열하며 사라졌지만 하이힐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신성력? 와, 부적도 신성력으로 발동되는 거야?"

"아니, 부적술은 주술인데. 아무튼 저주는 없었네"

창고에 박혀있던 죽음의 무도도 설명서가 없었기에 일어난 사달이다.

그나저나 이런 게 왜 창고에 박혀있는걸까.

나는 의문을 느끼며 화수연에게 물었다.

"그거괜찮아?"

"응? 아, 이거? 좋아. 발도 안 아프고, 마치 맨발인 것처럼 균형도 잘 잡히고, 음, 또 이걸로 차면 아플 것 같기도 하고?"

죽음의 무도의 좋은 점을 나열하던 화수연이 갑자기 나를 홱 돌아봤다.

이내 화수연이 나를 경계하며 말했다.

"이건 내 거야. 절대 안 줘."

"아 그래."

저게 아무리 좋다고 한들 발목 위까지 덮어주지는 않는다.

애초에 나보다는 화수연에게 유용할 것 같고.

하이힐을 신는 것도 아직은 거부감이 든다.

저게 정확히 어떤 힘을 지닌 건지는 감정소에 맡겨봐야 알겠지만 아무튼 화수연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거다.

대충 결제하고 나온 나는 화수연에게 물었다.

"내가 요즘 유명하다는 게 뭔 뜻이야?"

"응? 아, 별 거 아냐. 너 아카데미에서 소문 안 좋았던 거 알고 있지? 막 이상한 짓 한다며."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저렇게 말하다니, 살짝 상처 받았다.

내가 한 것도 아닌데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일까.

"그런데 갑자기 멀쩡하고 예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굉장히 이런저런 말이 도는 것 같은데."

화수연이 핸드폰 화면을 툭툭 두들기더니 내게 보여줬다.

그곳엔 어제 출석체크를 하러 가던 평범한 내 모습이 찍혀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뱉듯 말했다.

"아니, 이거 하루도 안 된 사진 아냐? 그런데 뭔 놈의 유명인사"

"응? 제니스에 개념글로 올라왔던데."

뭐라.

이게 제니스 개념글에 올라갔다고?

나는 황급히 폰을 조작해 극정 아카데미 학생 전용 커뮤니티, 제니스에 접속했다.

곧 개념글 상단에서 내 이름이 적힌 게시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목: 정시현 갑자기 왜 이러냐?

작성자: ㅇㅇ

작성 시각: 2051년 2월 14일 17:44

(사진) 오늘 교실에서 자습하는데 정시현이 들어왔거든? 근데 저러고 있었음 ㄷㄷㄷ

"."

평소에 내가 그렇게 유명인사였나?

아니, 그보다 얼굴 드러낸 게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인가?

음침한 주술소녀 정시현은 지금까지 대체 무엇을

나는 다음 댓글을 살펴봤다.

ㅇㅇ: 와 존나 예쁘네 정시현 몇 반이었지?

ㄴ나는야최강힐러: 조기반 D 아니었냐

ㅇㅇ: 구라치지마 저게 뭔 정시현이야

ㄴㅇㅇ: ㄹㅇ

ㄴㅇㅇ: 오늘 독서실에서 봤는데 ㄹㅇ이었음

ㄴㅇㅇ: ㄴ ㄹㅇ?

ㄴ사랑을유괴하다: 가슴 크기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설원의여명: ?? ㄹㅇ??

하르미아가슴핥: 개이쁘다... 넌 오늘부터 내 상상 오나홀이다

ㄴㅇㅇ: 역시 호감 하르미아가슴핥님 ㅋㅋ

여러모로 개판이었다.

대체로 뭔 개소리냐는 반응이었고, 대충 예쁘다는 말은 그것보다 많았다.

나는 다음 개념글을 봤다.

제목: 념글이랑 옛날 정시현 비교 짤 ㅋㅋ

작성자: 그래도모스크바

작성 시각: 2051년 2월 14일 18:29

(사진) (사진) ㅆㅂ ㅋㅋㅋㅋㅋㅋ

사진 두 개만 띡 올라온 글이었다.

첫번째는 아마 내 옛날로 추정되는 사진이었고 두번째는 아까 글에 올라왔던 사진이다.

나는 두 사진을 번갈아 보며 눈꼬리를 찌그러트렸다.

'그럴만 하네'

첫번째는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기괴한 외형이었다.

봉두난발에,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다 가리고, 옷가지는 쓸데 없는 해골 장신구나 은색 체인으로 도배를 한 상태였다.

하고 있는 자세도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 기분 음침하게 걷고 있는 그런 자세였다.

반면 두번째는 그에 비하면 여신이나 다름 없었다.

쓸데 없는 건 다 뺀 수수한 교복에 살짝 피곤해보이는 탁한 보랏빛 눈동자를 예쁘게 감싸는 눈매.

예쁘게 뻗은 콧날과 작고 앙증맞은 입술은 그림으로 그려낸듯한 외모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나르시즘인데'

아무튼,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댓글의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지금껏 왜 저따구로 하고 살았냐, 가슴 보면 동일인물 맞는 것 같긴 하다, 지금 고백편지 쓰러 간다, 낑낑하고 싶다, 당장 정시현한테 굿 받으러 간다

"나 무당 아니거든?"

"응? 갑자기?"

"아, 아냐."

하여튼 음습한 욕망이 댓글창을 지배하고 있었다.

제니스가 익명인지라 이런 일이 아주 잦다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직접 당해보니 좋은 기분은 아니다.

미간을 찡그리며 제니스를 끄고 폰을 집어 넣었다.

그걸 후후 웃으면서 보고 있던 화수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현아."

"어?"

"그런 것들 너무 신경쓰진 마. 아무튼, 오늘은 고마웠어.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나봐."

"아, 음, 고마워"

생각해보면 그녀도 상당히 예쁜 외모로 제니스에서 많이 언급되지만 특유의 자유로운 성격 덕에 그런 건 잘 신경을 안 쓰는듯 했다.

슬프지만 난 그게 힘들 것 같은데.

화수연은 내 번호를 받고 친근한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만나서 뭐 특별히 친해질만한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만났으면 친구'라는 그녀의 지론 다운 행동이었다.

동갑이라는 점도 있고.

나는 인파 속으로 사라진 그녀의 등을 그리며 한동안 멀거니 서있었다.

그러다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처신을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모르겠네."

관심을 얻는 건 좋다.

아카데미에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늘어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를 질투하는 이는 분명히 있을테고, 관심이 모일수록 낙차효과가 큰 법이다.

물론 지금 나는 외모 변신으로 쓸데 없는 관심을 끌었기에 당장 고민할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인간관계.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과 친해지는 건 지상과제 중 하나지만 이 몸의 전주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친화력이 좋은 편은 절대 아니다.

화수연의 성격을 반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 것들이 당장 무슨 소용이겠는가.

본편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다 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다.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캔커피 두 개를 사서 단숨에 꼴깍꼴깍 마셔버리곤 간단히 먹을 것 몇 개를 사 아카데미 뒷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장비를 비롯한 짐 때문에 조금 곤욕이었지만 승객이 적었던지라 괜찮았다.

지금 시각은 오후 5시.

칠흑여제의 사랑이 굴러다니는 고블린 던전을 털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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