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때 타지 않는 흰색처럼
* * *
아카데미 뒷산의 고블린 던전은 꽤나 꽁꽁 숨어 있다.
칠흑여제의 사랑을 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뒷산의 히든피스라고 볼 수도 있다.
마주보고 자라는 쌍둥이 나무, 그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 있는 바위.
그냥 신기한 풍경이라 생각하고 넘기기 쉬운 곳이지만, 바위 밑 작은 틈으로 계속 기어내려가다보면 큰 동굴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아으, 이거 왜 이렇게 좁아"
나는 애써서 몸을 구겨 넣으며 신음했다.
새로 산 얇은 가죽 갑옷과 바지에 흠이 가는 걸 느끼며 속으로 비탄의 눈물을 삼켰다.
지금껏 고블린들이 사람 몇을 납치해대면서도 들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좁은 틈이 큰 동굴로 이어져 있을 거란 상상은 잘 안 되니까.
나는 좁은 틈을 계속 기어내려가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동굴에 도달했다.
옅디 옅은 빛을 내는 형광봉을 허벅지의 레그 홀스터에 끼우고 동굴의 어둠을 아주 살짝 몰아냈다.
아직은 동굴의 초입인지라 아무것도 없었지만 곧 초록 난쟁이 괴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카페인이 심장에서 뛰노는 것을 느끼며 손에 부적을 쥐었다.
키르륵, 키륵.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키륵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블린의 목소리로 지정된 음악 파일과 소리가 동일했다.
놈의 울음소리로 보아 아직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형광봉이 달린 다리를 뒤로 빼서 빛을 가리고 막대형 조명탄을 준비했다.
아마 한 놈일테지만, 첫 실전을 그르쳐서야 되겠는가.
나는 조명탄을 당기면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던졌다.
치이이
"키에에엑?!"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조금 명도가 높은 조명탄을 사용했을 뿐인데 마치 섬광탄에 당한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어둠을 걷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건 늘어선 뼈 몇 개와 그 위에서 미처 떨어지지 않은 살점이 곰팡이에 먹혀가는 모습, 그리고 눈을 가린 작은 진녹색 괴물 하나였다.
나는 침착하게 당황한 놈에게 다가가 '화火'가 적힌 부적을 머리에 때리듯이 붙여버렸다.
그러자 자색 불길이 일어나 고블린의 머리를 삼켜버렸다.
"카아아악!!!! 캬아악!!! 캬아아아악!!!!"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구르며 머리를 땅에 문댔지만 곧 행동이 둔해지더니, 이내 팔다리만 목적 없이 꿈틀대다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임무를 완수한 자색 불길은 사그라들어 흉측하게 타버린 고블린의 머리를 드러냈다.
"."
허무할 정도로 쉬웠지만, 뭔가 마음은 편치 않다.
평생 삶을 살아가며 본 죽음이라곤 작은 벌레들이나 기껏해봐야 길고양이 등의 소동물의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죽어가는 걸 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고.
심지어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인 게 아닌가?
"나 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조명탄이 다하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조명탄의 빛이 다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근처에 몇 개 널린 뼈들과 그 위의 곰팡이였다.
나는 다시 다리의 형광봉을 내세워 동굴의 심부로 내려갔다.
아까 죽인 고블린이 죽어가는 동안 마구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인지 가는 길엔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편하네"
그런 정적 속에서 나는 갑작스레 내 가슴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 알아챘다.
가죽갑옷 때문인가, 하고 어깨를 비틀면서 걸었지만 그 느낌은 어째선지 잘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이윽고 고블린들의 키륵대는 소리가 가득한 동굴의 끝에 도달했다.
바닥에 골라놨던 부적을 몇개 던지고, 오른손에 다른 부적을 잡는다.
나는 남은 손으로 아까 그랬던 것처럼 조명탄을 당겨 앞으로 던졌다.
"캬아아악!!"
"케르르륵!!"
들려오는 경계 어린 괴성을 귀로 흘리며 조명탄이 밝힌 주변을 빠르게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레 느껴진 가슴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깨달았다.
"젠장."
그것은, 아마도 처음부터 어렴풋이 느껴왔을 죄책감일 터다.
나는 왠지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느끼며 오른손의 빙을 집어던졌다.
형편 없이 날아간 종이 부적은 한 고블린의 다리에 붙어 얼음을 퍼트리며 놈을 넘어트렸다.
"시발"
그곳엔 토막나서 저장식품 취급을 받는 인간의 훈제 팔다리와 먹다만듯한 피가 떨어지는 물어뜯긴 여성의 다리 한 짝, 그리고 그 다리의 전 주인인듯한 살아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 배가 부푼 여자는 눈빛을 흐린 채 왼다리가 있었을 곳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사지에서 하나 남은 오른팔은 축 늘어트린 채였다.
"."
나는 별안간 숨을 삼켰다.
들숨과 날숨이 불규칙적으로 헐떡인다.
벌써 조명탄은 반이나 타들어갔지만 발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동굴에 눌러붙은 검은 핏자국들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부러진 사람의 손톱이, 넉넉히 쌓여있는 사지가, 결정적으로 여자의 부풀어버린 배가.
왜 다페르헤이드를, 이런 세상으로 만들었냐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았다.
와,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이네.
하하, 이래야 재밌죠! 안 그래요?
하긴 그래. 극렬한 난이도에 비참한 세상! 어울리는구만.
동료들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간다.
이 세상은 밝은 세상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미국 서부, 이집트, 영국.
이 다섯을 제한 모든 국가는 이미 재앙에 의해 초토화된지 오래고, 한국 또한 대륙의 군세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며 겨우겨우 거짓된 평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게임의 중반부 스토리는, 붕괴하는 북방 저지선과 남쪽 지방에서 태어난 재앙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것이다.
중반부 스토리가 지나고 나면, 서울 일부 외에 모든 지방은 사람 하나 없는 잿더미가 된다.
혹은, 흑람마녀의 노예가 된다.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던 고블린 하나가 바닥에 뿌려둔 부적을 밟고 감전 당해 쓰러진다.
뒤에서 단검을 든 고블린이 살금살금 다가오길래 워커로 걷어 차버렸다.
나 또한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마물들은 인간 고기를 좋아하며, 인간 여성의 자궁에 정액이나 알을 처박는 걸 좋아하고 일부는 감염을 통해 자신들과 동류로 만드는 짓으로 번식한다.
그게 내 팀에서 제안한 설정이었다.
"그래서 뭐."
멀리 떨어져 있던 어린 고블린이 조악한 활을 당긴다.
부들부들 떨리는 시위가 날린 화살은 용케 내게 닿았지만 가죽 갑옷을 툭 건드리고는 힘을 잃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대퇴골을 갈아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홀스터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비극이 예정된 세상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팔다리가 여전히 내게 삿대질하고 있었다.
나는 그 원망을 거스르며 한 걸음, 내딛었다.
"이"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씨발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
얼마 남지 않은 몇 마리의 처죽일 마물들에게 덤벼들어 단검으로 찔러 죽였다.
애초에 일반인 정도의 스펙이라면 고블린을 때려죽이는 것 따위 일도 아니다.
머리를, 다리를, 가슴을, 목을.
놈들이 뭐라 소리쳐도 난 듣지 않았다.
이미 시끄러이 울어대는 죄악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만들면서 재미 있었어?
덕분에 우리는 끔찍하게 죽어나갔어.
앞으로도 우리 같은 사람은 무수하게 생기겠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그렇다고 해서 네 죄가 사라질 것 같아?
"지랄하지 마, 애미 뒤진 새끼들아!!!!!!!"
나는 무차별적으로 고블린을 찔렀다.
내가 이미 죽어버린 고블린을 찌르고 있다는 걸 깨닫자, 나는 단검을 빙에 맞아 쓰러진 고블린에게 내던졌다.
그리고 감전 당해 쓰러진 놈에게 다가가, 흰 워커가 신긴 발을 들었다.
놈이 눈가를 떨며 공포의 사인을 보냈지만 나는 군홧발을 머리 위에 놓고 천천히 무게를 실을 뿐이었다.
뽀가각.
발에 울리는 감각이 좆같다.
머리에서 터져나온 뇌수와 초록빛 피가 흰 워커를 더럽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청결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나는 워커의 코를 바닥에 툭툭 두들겼다.
뇌수와 초록 죄악이 흰 워커에서 떨어졌다.
워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돌아왔다.
그래.
나도 이 희고 멋진 워커를 닮아야한다.
왜 세상이 이딴 식일까, 내가 잘못한걸까?
이런 식의 끊임 없는 마음 속 규탄을.
툭툭, 하고.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 걸어야한다.
"만들어줘도 지랄이야, 씨발"
하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