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태도충 주술소녀 (2)
* * *
ASDF조(이수아가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머지 셋은 귀찮다고 저렇게 정해버렸다.)에서 합을 맞춘지 5일차.
나는 꽤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배당된 개인수련시간엔 부적술을 연마하거나 기본적인 칼 다루는 법을 선생에게 지도 받았고, 나머지 시간엔 조원들과 실습을 진행하며 합을 맞췄다.
"시현아아! 그 쪽이 아니야!"
"왜 이렇게 얼타? 이래서야 플렉스 할 수 있겠어?"
"넌 쟤네가 부르기만 하면 냅다 빠져나가냐?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는 게 어때?"
셋은 꽉 아물린 톱니바퀴처럼 빈틈 없이 돌아가는데 나만 왠지 겉도는 느낌이다.
마치 정교한 기계장치에 낀 쇳조각이 된 느낌이라 해야되나.
그래도 셋은 내 과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나를 잘 상대해주고 있었다.
여전히 나와 마주치면 아니 꼬운 시선으로 보거나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무리들이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저 둘 같은.
"흠, 야, 재밌는 일 없냐?"
"이따가 홍주랑 성철이랑 막고라 한다는데."
"그래? 가보자."
태연한 척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저 둘은 은근히 날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어떻게 했는지 늘 외형은 바뀌지만 어딜 가나 대체로 두 명이 날 주시하고 있다는 것에 기시감을 느껴 몰래 바닥에 향?의 부적을 놓아 어찌어찌 밟게 했더니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야, 근데 너 향수 뿌렸냐? 왜 그딴 짓을 한대."
"몰라. 난 진짜 안 뿌렸는데."
내 힘으로 향?은 아직 버거웠지만 수련의 성과가 있는지라 그럭저럭 구별해낼 수는 있었다.
나는 약간의 불길함을 느끼며 향?에서 스피릿을 거뒀다.
그나저나 벌써 주말이 다가왔다.
유시험 전형은 벌써 다음 주로 다가왔고, 나는 새로운 무기를 얻기 위해 주말 훈련을 빼려 사력을 다해 김빛을설득하는 중이었다.
"무슨 소리야. 마지막 수행평가가 벌써 다음 주 수요일인데. 한시가 아까운데 어딜 가겠다고?"
"아니, 그, 갈 데가 있어서."
"어디로 가는데?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 봐. 그냥 쉬고 싶은 거 아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핑계까지 대야 하는 걸까.
나라서 댈 수 있는 핑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류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요즘 정신과 다녀."
"."
김빛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정적은 이수아의 개입에 의해 겨우 깨졌다.
"미, 미안. 우리가 네 사정을 몰랐어 다녀와. 그, 힘 내고."
이수아는 김빛을 툭 찌르며 나직히 말했다.
"너도 사과해, 멍청아!"
김빛이 손을 모으고 사과했다.
"미안, 내가 좀 앞뒤 없는 성격이라."
아마 요즘 들어 내가 멀쩡해진 것도 정신과 치료의 성과로 보고 있는 거겠지.
나는 비참함을 느끼며 말했다.
"이건 비밀로 해줘."
"응 당연하지."
젠장.
***
나는 지하철을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현재 수원은 수많은 대장간들이 들어서며 금속 냄새 풍기는 곳으로 변해 있었는데, 주로 극정 아카데미 근처의 상점으로 납품을 하거나 주문제작을 받는 식으로 경제가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수원역에서 근육 가득한 거한이 나오는 대장간 광고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지금부터 저런 사내들에게서 칼과 칼집을 훔치러 가야 한다.
수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 대장간으로 향했다.
폐차장을 겸하는 데다 교외에 있는 지라 꽤 크면서도 한적한 느낌이었다.
"휴우."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 갔다.
안쪽엔 자동차 프레임을 집채만한 용광로 속 쇳물에 집어던지는 4미터의 거인이 있었다.
그가, 이 빌어먹을 대장간의 주인이다.
대장장이는 한참 멀리에서 나를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려 소리쳐왔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가아아!!!"
나도 그 자리에서 마주 소리쳤다.
"절세의 신검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더냐아아아!!!"
나는 부적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글자를 새겨 적으며 대답했다.
"감히 하늘과 땅을 가로 잇는 것, 감히 마력으로 하늘의 별을 따다가 땅에 수놓는 것, 감히 우주의 첫번째 법칙을 찾아 헤메는 것, 감히 천신을 베어죽이고 대악마를 오줌 지리게 한 것!!! 인간이 아닙니까!!!!!"
그는 이내 대장간 전체가 떠나가라 와하하하 웃다가 내게 말해왔다.
"정답이다아아아!!!! 네가 멍청한 제자 놈들보다 낫구나아아아!!!"
그는 돌연 쇳물이 팔팔 끓던 용광로를 땅에서 뽑아 뒤집더니 그 아래에서 아름다운 칼과 낡은 검집을 들어 내게 던졌다.
"가져가거라아아아!!!"
그것은 송곳니 학살자와 천린이었다.
칼도 안 집어넣고 던진지라 식겁했지만 다행히도 송곳니 학살자는 흰 워커 바로 앞에 푹, 하고 박혔다.
천천히 날아온 천린을 무사히 받아내고 송곳니 학살자를 땅에서 부드럽게 뽑아내자 대장간에서 웬 거한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외인에게 보상을 주시다니!"
"인정할 수 없습니다. 쇳물에 몸을 담가보지도 않은 가녀린 소녀에겐 스승님의 작품을 다룰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천린에 송곳니 학살자를 꽂아 넣고 부적을 앞에 뿌렸다.
그리고 모종의 자세를 취했다.
등 뒤에서 거인이 소리쳤다.
"이 무지몽매한 것들아!!!! 저 소녀에겐 그럴 자격이 있노라!!!"
"그게 무슨 소립니까? 모루의 모 자도 모르게 생겼는데!"
"정 의심된다면 너희들이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러자 7명 남짓한 근육질 거한들이 일제히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세상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자격을 확인하자!!!!"
""와아아아아!!!""
이런 미친 놈들.
놈들이 날 때려죽이러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어둠을 등진 악마, 카우디의 공방이다.
그는 나약한 인간들이 무기를 사용하여 악마들을 처죽이는 것에 감복했고 그 길로 마성을 버린 뒤 대장장이가 되어 이 곳에서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그는 약 3년 전에 신문을 통해 작은 광고를 하나 실었는데, 그 내용이란 다음과 같았다.
절세의 신검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카우디 대장간에 연락하세요!
물론 사람들은 추호도 신경 쓰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에 찾아와 세간에 알려진 명검들의 이름을 댔지만 모조리 박대 당하고 쫒겨났다.
다페르헤이드에선 여러 곳에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 카우디에게 알맞은 대답을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지금과 같이 자격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으로 넘어간다.
받은 강력한 무구를 다룰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한 시험으로!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이 시험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것에 대한 단서도 다페르헤이드의 정보를 모으다 보면 알 수 있게 설계를 했으니까.
더욱이 직접 참여해서 다 알고 있는 나라면야.
두두두두두.
인간이 달리는 소리라곤 믿기지 않는 소리였지만, 일곱 거한이 덮쳐오는 광경은 수백의 물소가 만들어내는 스탬피드보다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발도 준비 자세를 풀지 않았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어려울 것 없어. 부채꼴로 다가오니까 한 번에 베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그 시험이란, 다름 아닌 천린을 이용한 발도술 시험이었다.
발도술은 서브컬쳐에서 절세의 공격술로 취급되곤 하지만, 실제론 그리 녹록지 않다.
싸우는 도중에 칼을 집어 넣는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 뿐더러, 칼집에서 칼을 있는 힘껏 뽑아낸다고 해도 그냥 휘두르는 것보다 위력이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다페르헤이드는 그런 점을 적극 반영하여 발도 공격에 매우 낮은 공격력을 부여했다.
비전투 상태에서 발동 가능한 유일한 공격인지라 일반인 암살을 위해 쓰이는 용도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린은 다르다.
로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작진의 타협점이라고 할까.
나는 거리를 가늠했다.
10미터.
눈동자를 일곱 거한이 가득 메운다.
5미터.
거한들의 비장한 표정이 보인다.
3미터.
가속되는 인지 속에서, 공격을 위해 한껏 당겨진 근육이 보인다.
눈을 감았다.
2미터.
띵
감?이 쓰인 부적이 신호를 보내온다.
그리고.
한껏 긴장한 작은 팔 근육이 손잡이를 당겼다.
멋들어진 태도를 품은 낡은 검집이, 시원한 바람을 뿜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