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더, 더 높이 (1)
* * *
극정 아카데미는 '조기반'이라는 특수한 학기가 있다.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진행되는 조기반은 예비 신입생을 받는 학기이고, 이 조기반의 학생들은 조기반에서의 성적을 얼마나 잘 받느냐에 따라 정규반 편성 여부가 결정 난다.
나는 물론 성적을 예술적으로 망쳐놓은 상태기에 위의 방법으로는 정규반에 편성될 수 없고, 외부 입학 희망학생들과 같이 치르는 유시험 전형으로 정규반에 편성 되어야만 한다.
이 유시험 전형을 치르려면 또 이 수행평가를 잘 봐서 눈에 들어야하고, 그러지 못하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깜짝이야."
"혹시 긴장했어?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김빛이 어깨를 팡팡 쳤다.
홍성우는 지나가는 말투로 나를 격려했다.
"긴장 풀어. 여기에 인생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 그렇지."
인생 뿐만 아니라 세계가 걸리게 생겼다.
'그래도, 응, 담임한테 적당히 잘 비벼보면 되겠지.'
내가 요즘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 건 아마 담임이 제일 잘 알 거다.
개나 소나 다 시켜주는 유시험 추천을 안 해줄리가 없지 아마도.
'그래도 최선을 다 할까.'
혹시 몰라 무리하면서까지 비장의 한 수까지 구해 놨다.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잖은가.
나는 레그 홀스터에서 거치적거리는 최종병기를 보았다.
[송곳니 학살자(A)]
널 조각내서, 어머니께 선물로 드려야겠군!
[천린(A)]
풍신의 바람이 주저하는 등을 떠민다.
빠르게 휘두를수록 날이 예리해지는 송곳니 학살자와 하루 두 번 믿을 수 없는 발도술을 선보일 수 있게 해주는 천린.
설사 한국 칠성이 온다고 해도 마냥 얕볼 수는 없으리라.
"ASDF조!! 입장하세요!!"
"가자."
우리는 게이트 앞에 섰다.
아카데미 명예 교수이자 한국 칠성인 환상파수꾼, 하르미아의 협조 하에 이루어지는 수행평가.
우리는 이 안에서 목적을 수행하고 나오면 된다.
조장, 김빛이 외쳤다.
"팀 ASDF! 돌입합니다!"
우리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게이트로 돌입했다.
***
"저건 대체 뭐야?"
환상파수꾼 하르미아는 ASDF조의 환상세계를 관찰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병아리들이 무슨 일들을 벌이나 환상세계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그들 모르게 관찰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검집을 든 스피릿 각성자 소녀에게서 풍기는 기운.
분명히 칠흑여제의 것이었다.
"분명히 전신이 가루가 돼서 흩어졌다고 들었는데."
강력한 재앙이었던 만큼 그 시체에 담긴 힘은 대단할 거라 생각되었지만, 그녀는 투명한 다이아몬드로 빚어진 눈물을 하나 남기고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그 다이아몬드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말이다.
"혹시 칠흑여제의 딸인가?"
그럴 듯 하다.
그녀는 재앙임에도 인간 사이에 조용히 숨어 살기를 즐겼으니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으음 궁금하네."
그녀는 궁금한 걸 딱히 참는 성격이 아니다.
다른 조들을 모니터링하며 점수를 매겨야하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좋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애초에 정식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잘 주면 되겠지 뭐~"
하르미아는 정시현이 있는 환상차원으로 도약했다.
***
우리가 떨어진 곳은 협곡 한가운데였다.
우리는 일단 서로 등을 맞대며 사주경계를 했지만 딱히 적이랄 건 없었다.
홍성우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멀리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저기 표지판이 있는데. 이수아. 읽을 수 있어?"
"어디어디? 아, 저깄네."
이수아가 궁수 특유의 좋은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협곡 반대편에서 오는 괴물들을 막으면 돼? 멋진 하르미아가?"
아하.
서서 막으면 되는 건가.
내용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빛이 마법진을 틔워 손 끝에서 굴리다가 하늘로 집어 던졌다.
하늘로 날아간 마법진은 하나의 구가 되어 정지했다.
"어때? 뭐가 보여?"
"으음, 오크인 것 같은데. 큰 거미도 하나 보이고."
"마운틴 크롤러겠군."
그 말에 이수아가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팔뚝을 쓰다듬었다.
"난 걔 싫은데."
"우리라고 좋을까. 2분 뒤에 도달할 것 같은데? 진형 서자."
홍성우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자 나는 그 오른쪽 뒤에 섰다.
김빛과 이수아는 우리 뒤에 자리해 각자 할 일을 했다.
"약 40m 앞. 곧 눈에 보일 거야. 옵저버 끌게."
"보인다! 오크가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어! 크롤러는 아직 우리를 발견 못한 것 같아. 준비해!"
나는 송곳니 학살자를 뽑아 검신에 전?을 두 개 붙였다.
이 정도면 오크라도 별 수 없이 감전 당하리라.
걸리적거리는 천린은 땅에 고이 내려놨다.
광분한 오크 떼는 더러운 울음 소리를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약 25m 남았을 때 쯤, 홍성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시현."
홍성우의 부름에 나는 재빨리 빈 부적에 글귀를 새겨넣었다.
멋들어지게 새겨진 글귀를 불태우며 부적을 발동시키고 홍성우의 입 앞에 가져다 대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크나큰 목소리가 협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부적에 새긴 글자는 대大.
이건 아직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주술이지만 단순히 마력이 담겼을 뿐인 목소리라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오크들은 직진하는 마력 음파에 깜짝 놀라 순간 발걸음이 더뎌졌고, 이미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그랬다는 건 우리가 선공권을 잡는다는 의미와 똑같았다.
"카에다! 하이츠! 히포르테!!"
김빛이 시동언을 뱉으며 마법을 발동했다.
발동한 건 화염계열 마법.
쏘아진 팔면체의 마법진은 오크 한가운데 떨어지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아무도 맞추지 못했지만, 갑작스런 폭발음에 당황한 오크는 이미 무너진 기세를 수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오른쪽 견제할게!"
나는 앞으로 뛰어나가는 홍성우의 뒤를 따라 달려가며 오크 하나를 맡았다.
작은 불꽃을 보며 얼타던 오크는 당황한 숨소리와 함께 나를 돌아봤지만 송곳니 학살자는 이미 놈의 어깨를 투로에 두고 있었다.
촤악!
놈은 재빨리 어깨를 뺐지만 흘러들어온 보랏빛 번갯불에 꼴사나운 괴성을 지르며 전신의 근육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나는 무력화 되어 쓰러지는 놈을 무시하고 왼쪽으로 비켜 섰다.
그러자 날아온 짧은 애기살이 감전당한 오크의 가슴을 꿰뚫어 결정타를 냈다.
"계속 원호할게!"
나는 홍성우의 측면으로 달려오는 오크 하나를 감전시키며 그의 곁에 섰다.
나를 눈치챈 홍성우가 상대하던 오크를 왼손으로 팍 밀어내며 오른손을 내게 뻗었다.
나는 준비하고 있던 화火를 건틀릿에 탁 붙여주며 살짝 뒤로 빠졌다.
"우오오오!"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건틀릿을 꽉 쥔 홍성우가 밀어낸 오크에게 결정타를 가했다.
"시에나! 카테! 아게나라!!"
다시 한 번 날아오는 마법.
이번엔 충격파 마법이다.
나와 홍성우는 재빨리 몸을 수그려 충격을 견뎠고, 다시 일어서 휘청거리는 오크들을 마저 정리했다.
"잘했어!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조심해!"
다음.
마운틴 크롤러였다.
오크에게서 선공을 잡기 위해 증폭된 사자후를 사용했지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크롤러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크롤러는 징그럽게 8개의 다리를 순차적으로 타닥타닥 놀리며 빠르게 다가왔고, 이수아는 내게 익숙한 신호를 보내왔다.
"시현아!!"
나는 부적을 일필휘지로 적어내어 능숙하게 땅 위로 패스했다.
부적의 효과가 제멋대로 발동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흙을 튀기며 화살로 다가오는 부적을 긁어 인챈트를 마친 이수아가 활시위를 꽈아악 당기다가 놓아버렸다.
피이이잉—
화살은 거미의 몸체에 예술적으로 박혀들었고, 체내를 자색 불꽃으로 태우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악!"
"카에다! 하이츠! 트라이카!!"
이번엔 붉은 색으로 불타는 정사면체의 마법진이 여유를 주지 않고 거미에게 날아갔다.
갑각은 불에 큰 타격을 입지 않는 듯 했지만 그 위에 숭숭 난 털들은 그렇지 못했고, 거미는 우리에게 닿을 때 쯤 몸체에 완전히 불이 붙어 약간이나마 남았던 침착함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놈은 아직 죽지 않았고, 살아남기 위해 죽음의 위기에서 강해지는 마물의 특성상 더더욱 강해진 기세가 우리를 향해 악의를 뿜고 있었다.
나는 홍성우와 눈을 마주치고는 자리에 의연히 섰다.
"우리가 결정타를 칠게!"
나는 송곳니 학살자를 움켜쥐며 다가오는 놈의 다리를 노려봤다.
홍성우 또한 족히 3미터는 되어보이는 놈의 앞을 당당히 가로막았다.
그리고 셋을 세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대로.
하나.
움직임을 살핀다.
비대한 앞다리 두 개가 땅에서 올라가더니 나와 홍성우를 향해 떨어졌다.
둘.
대응한다.
나는 놈의 앞 다리가 낫 모양으로 생겨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송곳니 학살자를 놓은 채 아예 아래로 굴러 들어가버렸다.
안에서 타고 있을 보랏빛 불꽃이 가깝게 느껴져 왔다.
셋.
반격한다.
자세를 잡으며 부적을 빠르게 써내려간다.
땅을 딛고 있던 다른 다리들이 내게 쇄도해왔지만 나는 침착하게 부적을 완성하며 속으로 염원했다.
그러자,
당신만을 바라볼게요.
달콤한 속삭임과 함께 소환된 검은 경갑주가 내 상체를 덮으며 다리를 부드러이 흘려냈다.
나는 써내려간 부적을 놈의 배에 붙였다.
"진?."
현재 내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두번째로 강한 공격.
팔괘, 진?이었다.
꽈과과광!
부적이 우렛소리와 함께 백열하며 거미의 몸을 뒤흔든다.
터져나간 번개는 거미의 외골격을 뚫고 들어가 아직 불타고 있을 내기관을 터트렸다.
뒤늦게 쇄도한 주먹이 크롤러의 몸을 강타하며 결정타를 먹이며 거미를 쓰러트렸다.
수행평가는, 성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