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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1화 (11/119)

〈 11화 〉 더, 더 높이 (2)

* * *

하르미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능숙하지 않은 칼질에 열심히 익힌 티가 나는 부적술.

칠흑여제와의 교집합이라곤 하나도 없는 전투 스타일이었다.

"그나마 보여준 건 그 갑주 뿐인가."

그건 분명히 칠흑여제의 힘이 맞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거기서 뭔가가 더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르미아는 골치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뭔가 더 대단한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열어보니 껍데기나 다름 없지 않은가.

"차라리 대놓고 칠흑여제의 힘이었다면 확신할 수 있었을텐데."

애초에 칠흑여제의 딸이 스피릿을 쓰는 것부터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냥 내 착각인가? 아니, 그럴 리가. 결국에 모종의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어."

스피릿 각성자는 심장의 정류기관에 결손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마력도 못 쓰는 장애인이란 뜻이다.

칠흑여제의 딸이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버렸다면 저런 식의 전투도 말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 갑주는 거기에 안타까움을 느낀 칠흑여제의 안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닌가? 아냐, 맞을 것 같은데."

하르미아는 칠성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도 잊은 채 상상의 나래를 펴며 후후댈 뿐이었다.

그녀는 정시현이 뒤집어 놓은 마운틴 크롤러의 속을 발로 뜯어보며 싱긋 웃었다.

"재밌겠어. 조카님."

어느새 가설을 진실로 믿어버리고 만 하르미아였다.

***

"내가 헌터를 하는 거랑 시집 외우는 거랑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글쎄, 싸우고 죽이는 것만 하다보면 인격이 무뎌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이수아한테 되물었다.

"아니, 그런 건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지 않을까? 왜, 게임을 한다던지, 소설을 본다던지. 왜 시 암송을 강요하는 거야?"

이수아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핀잔을 줬다.

"인문학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구. 인간은 가끔씩 말초적인 쾌락이 아니라 조금 더 깊은 걸 찾아야 하는 법이야."

대체 무슨 소리일까.

나는 과거를 회고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하던 모이드의 게임에 감명을 얻어 앞뒤 안 재고 말초적인 쾌락을 찾아 모이드에 입사해 행복한 삶을 살다가

'회사가 망했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다페르헤이드를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이 고작 말초적 쾌락으로 치환될 무언가인가?

나는 건전한 일을 하면서 뿌듯함까지 덤으로 챙겼을 뿐인데.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이수아가 헤헤 웃었다.

"그래, 그렇게. 그런 게 사람에게 필요한 자세라니까?"

이수아는 공부 열심히 해— 라고 한 뒤에 내 옆에서 일어나 총총 걸어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말을 되뇌며 시험 연계 시들이 적힌 시들을 내려다 봤다.

"조금 더 깊은 것?"

당장 이거 외우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깊은 것은 무슨.

나는 다시 체육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시집을 외우기 시작했다.

***

드디어 시험 날이 다가왔다.

다행히도 나는 수행평가에서 최고점을 받고 무사히 정규반 입학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나는 수능 보는 기분으로 시험장의 문을 열어 젖혔다.

시험장은 정적으로 가득했는데, 여유 있게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머리를 박고 열심히 문제를 푸는 사람도 있었다.

'시험 직전까지 문제를 풀고 있다고? 어휴, 저 녀석은 망했네.'

앞으로 써야할 집중력을 지금 다 써버리다니.

나는 녀석의 탈락을 점쳤다가 아니라 예상했다.

'난 점쟁이가 아니니까 난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주술사라고.'

점쟁이들은 예정된 섭리를 내다본다고 이빨을 까지만 나는 섭리를 비틀어 이적을 일으킨다.

상성관계가 명확하지 않은가.

'그래, 삶은 만들어가는 거니까.'

바로 지금처럼.

1교시, 국어는 그럭저럭 쉬웠다.

전투계 학생들을 위한 시험이라 그런지 수능 난이도에 비하면 개껌이나 다름 없었다.

2교시, 마력학은 조금 까다로웠다.

아니, 더럽다 해야 하나.

난이도가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일명 노가다에 큰 비중을 둔 문제들이었다.

하긴, 단순한 전투계들도 어느 정도 손 댈 수 있게 만들려면 그게 용이하긴 하지만.

'필기시험은 무난하게 만점인 것 같은데.'

긴장했던 내가 다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시험보느라 굳어 있던 관절들을 쭉 펴며 점심 이후에 있을 실기시험을 생각했다.

신체능력 측정, 대련, 던전 돌파.

신체능력 측정은 솔직히 자신이 전혀 없다.

대련도 재수가 없으면 질 수 있겠지.

던전 돌파는 그나마 자신 있지만.

"전투계 학생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감독관에 안내에 따라 실기 시험장으로 향했다.

실기 시험장으로 쓰이게 된 체육관엔 수많은 이질적인 장비들이 비치 되어 있었다.

우선 진행 된 건 신체능력 측정.

악력, 완력, 각력, 근육 밀도, 키, 몸무게

나는 있는 꼼수 없는 꼼수 다 써가며 최대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소용은 없었지만.

"161cm에 45kg이라."

나는 내 몸을 내려다 봤다.

내 몸이 161cm에 45kg라는 거지?

새삼스럽지만 모르고 있었네.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인 거야?

잘 모르겠다.

다음은 대련이었다.

랜덤으로 선정된 사람 하나와 치르는 일대일의 진검승부.

내 상대는 건방져보이는 남자 애였다.

"정시현 대 박영우! 올라오도록!"

나는 태연하게 무대 위에 올랐다.

박영우라 불린 학생은 한손검과 방패를 든 전형적인 무장의 소년이었는데, 꼴에 건들대며 여유로운 척을 해보였다.

물론 내 눈엔 손 떨리는 게 다 보였다.

구경자들도 그걸 알아챈 건지 저희들끼리 킥킥댔다.

"야, 안 들리냐? 널 보고 비웃는 거잖아, 멍청한 년아."

나 참.

목소리나 안 떨고 있으면 몰라.

나는 조용히 허리춤(허리에 차는 홀스터를 새로 샀다.)에 매인 천린에서 송곳니 학살자를 뽑았다.

무대에 안전장치가 다 되어 있기에 진검의 사용을 허가하는 흔치 않은 대련방식이었다.

녀석은 서슬퍼런 송곳니 학살자의 날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건지 눈가를 달달 떨었다.

정규반 시험에서 진검의 사용을 허가하는 데에는 저런 애들을 걸러내려는 의도도 있다.

고작 날붙이 앞에서 떨면 제대로 된 헌터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을테니까.

"카운트 시작합니다! 삼!"

나는 조금 유쾌한 기분이 들어 농담을 건넸다.

"어디부터 잘라줄까?"

"이!"

"역시 귀인가?"

"일!"

"아니면 그 팔목이 좋을 지도 모르겠네?"

땡—

"꺄하하하하하하하!!!!"

"으, 으아아악!!"

시작 신호가 울리자 나는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말 그대로 미친 년처럼.

녀석은 내 기세에 질려 왼손의 작은 버클러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며 쭈그러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멍청하긴."

준비하고 있던 부적을 꺼내 버클러에 탁 붙여버렸다.

"어, 어어?!"

붙인 부적은 중?.

제대로 쓰려면 어려운 녀석이지만 지금은 저위력으로도 충분했다.

불쌍한 녀석은 버클러가 무거워지자 어어 하며 균형을 잃었고 나는 흰 워커로 휘청이는 몸을 한 차례 걷어차서 넘어트렸다.

그리고 넘어진 놈의 가슴팍에 발을 밟아 일어나려는 시도를 분쇄하고 목에 칼을 겨눴다.

"그만! 정시현 승!"

"."

싱겁기 짝이 없는 대련이었다.

이건 내가 강해서라기보단, 상대가 약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래서야 성적 반영이 제대로 되긴 하려나?'

아니, 뭐 그래도 순식간에 일방적으로 이긴 건 사실이니까.

설마 감점하지는 않겠지.

나는 발을 거두고 칼을 검집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충격 받은 표정으로 비척비척 일어나는 녀석을 한 번 보고는 무대를 내려 왔다.

"휘유! 대단한데? 반해버리겠어!"

"멋있다!"

이 쪽을 보고 있던 참가자 중 일부가 내게 환호를 보내왔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며 자리로 돌아왔다.

***

돌파.

간단히 말해서, 온갖 위협이 가득한 공간에서 최대한 몸을 보전하며 빠르게 탈출하는 시험이다.

"출발!"

나는 직선으로 뻗은 트랙을 달렸다.

트랙은 출발선부터 천천히 색을 잃어갔다.

저기에 닿으면 실패하는 판정이리라.

첫번째 난관.

길이 약 5미터 크기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타고 올라가기에는 너무 벅찬 장애물이지만, 나는 바닥에 부적 하나를 붙이고 그 위로 도움닫기 했다.

약?.

기동성을 위해 갈고 닦은 주술이 나를 위로 튕겨 올린다.

장애물의 높이보다 살짝 높게 뛰어올라 손쉽게 넘어버린 뒤 낙법으로 충격을 상쇄했다.

미숙한 낙법을 쓰느라 시간을 몇 초 정도 더 쓰고 말았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두번째 난관.

트랙은 어느새 경사진 오르막으로 변해 있었다.

산사태라도 난 듯 트랙을 가득 채우며 굴러오는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라도 제대로 맞으면 이어지는 암석 파도에 휩쓸리고 말겠지.

'산영추불출山??出, 월광소환생月光???.'

산 그림자는 밀어내도 움직이지 않고,

달빛은 쓸어도 쓸어도 다시 생기나니.

시험을 대비해 외웠던 추구집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우직하게 달려갔다.

신체능력이 좋지 않은 나는 이걸 다 부숴버리거나 피해내면서 갈 수 없다.

내게 최선은 달리는 관성을 최대한 잃지 않고 적절히 흘려내는 것.

나는 이를 악물고 칠흑여왕의 사랑을 켰다.

그리고 근육에 순간적인 부하를 주는 력力을 내 손목에 펴서 붙였다.

­ 다치지 말아요.

속삭임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고고한 밤을 내게 입혔다.

나는 송곳니 학살자를 들고 첫 바위를 마주했다.

'사선으로 흘려내야 돼!'

내게 정면으로 향하는 벡터를 살짝만 옆으로 보낼 뿐이다.

송곳니 학살자의 검면이 바위의 길을 인도한다.

살짝 사선으로 세운 길을 따라 바위가 흐르며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력力을 안 붙였으면 큰일날 뻔 했어!'

단단하게 변한 손목의 근육이 관절을 꽉 붙든다.

덕분에 손목은 큰 힘을 받고도 망가지지 않았다.

아직 산사태는 끝난 게 아니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서 시간차를 두고 돌진해온다.

나는 리듬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큰 바위를 가까스로 밀어낸 뒤 작은 바위를 쳐서 날려버렸다.

그런 식으로 산사태를 통과하고 나자 빠르게 다가오는 트랙의 오염은 내 지척까지 다다라 있었다.

나는 전신의 조직세포들이 산소가 없다며 아우성치는 걸 달래며 마저 오르막을 올랐다.

세번째 난관.

마지막 난관은 다행히도 내리막이었는데, 트랙엔 좀비를 비롯한 언데드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포진한 적들을 뚫고 탈출하기.

그게 세번째 난관이었다.

"그어어어어"

아마 아카데미에 고용됐을 네크로맨서의 시체들이 내게 고개를 돌린다.

나는 망설임 없이 성?과 정?을 준비해 검에 붙였다.

'주술사는 원래 퇴마 전문가거든!'

부적술 밖에 못 쓰는 반푼이지만 어쨌든 퇴마사 노릇을 할 수 있다.

스펙터도 손쉽게 쫒아낼 자신이 있는데 좀비 따위야.

나는 태도를 휘둘러 소극적으로 변한 시체들을 베어넘기며 내리막을 달려나갔다.

물론,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용서못 해"

도착선 앞을 반투명한 원귀가 가로막고 있었다.

원한으로 가득 찬 놈인지라 쉽게 쫒아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거내 놔!"

처녀귀신의 형상을 한 그것은 내게서 무언가를 가져가기 위해 덤벼들었다.

꽤 위협적인 기세에 발걸음을 멈춘 나는 태도를 휘둘러 원귀를 베었지만 원귀는 공포스러워하긴 커녕 얼굴을 일으러트리고 더욱 세게 덤벼왔다.

"내거잖아! 돌려 줘!"

"."

살풀이가 아니면 귀신과는 일체 말을 섞지 않아야 한다.

나는 계속 일방적인 대화와 공격을 해대는 놈에게서 살짝 떨어지며 부적을 하나 준비했다.

귀신들은 공통적으로 이승에 무언가 한이 남아 있어 세상을 뜨지 못하는 존재다.

그 한은 대개 누군가에 의한 강렬한 피해 경험이며, 그 때문에 귀신들은 본능적으로 그 무언가가 또 다시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힘으로 안 되는 구마는, 귀신의 트라우마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

"공?."

불길하게 팔랑이는 보랏빛의 부적을 검에 붙였다.

꺼림칙한 기운이 송곳니 학살자를 타고 흘렀지만 신경을 끄고 다가오는 원귀에게 훅 찔렀다.

그러자 원귀가 잔뜩 일그러트렸던 표정을 순식간에 두려움 어린 표정으로 바꾸며 덜덜 떨었다.

"시, 싫어! 오지 마! 또 자르지 말란 말야!"

나는 태도를 박고 덜덜 떨며 오지 말라는 원귀를 앞으로 천천히 밀어붙여 그대로 도착선을 통과했다.

다행히도 트랙의 침식은 나보다 늦게 도착선에 도달했다.

"정시현, 통과!"

'더럽게 힘드네.'

나는 칼을 휙 휘둘러 칼에 붙들려 있던 원귀를 떨쳐냈다.

원귀가 끼아아악, 하는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부족한 숨을 폐 한가득 들이쉬었다.

***

"정시현이란 아이는 꽤 독특하군요."

"그렇더군. 세상 흔치 않은 주술사라니."

원탁에 둘러 앉은 심사위원들은 정시현의 기록 영상들과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하르미아가 끼어 있었다.

"훗, 그렇지? 이 정도면 수석 줘도 되는 거 아냐?"

하르미아가 제 일처럼 우쭐대자 교직원들은 왜 저러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환상파수꾼은 개의치 않았다.

"험, 성적이 높긴 합니다만 수석감은 아니지요. 이 학생보다 뛰어난 사람이 네 명이나 있는데."

한 교직원이 그 말과 함께 수정구에서 다른 영상을 재생했다.

그 곳엔 원귀를 단칼에 베어죽이는 잘생긴 소년이 있었다.

"특히 이 현서진이란 학생이 말입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미아만 빼고.

"쟤는 필기 만점도 아닌데."

"하나 틀리긴 했죠. 근데 필기 반영 비율은 20% 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쟤는 대련도 시현이보다 늦게 끝냈는데."

"0.2초 차이잖습니까. 현서진은 심지어 선공을 양보했고요."

"아, 몰라, 맘에 안 들어."

하르미아가 의자 위에 늘어졌다.

애초에 그녀가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명백한 월권이었지만 교직원들은 한국 칠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눈치를 주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시현이랑 무슨 관계길래 저렇게 밀어주려는 거야.'

'쯧, 청탁이라도 받은 건지 원.'

자기도 모르게 교직원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만 정시현이었다.

***

정시현은 터덜터덜 걸어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아카데미는 시험 보러 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는 그게 불편해 자주 이용하는 한적한 골목을 통해 기숙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 조심하세요.

칠흑갑주가 정시현의 몸을 감쌌다.

카앙!

그리고 무언가가 경갑주를 요란하게 때리며 땅에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 내려다보니 뭔가가 묻은 침바늘이었다.

"뭐야, 이거?!"

나는 갑작스런 습격에 공격이 날아온 쪽을 보았다.

그곳엔 당황한채 대롱을 들고 있는 멀대 놈이 있었다.

나는 허리춤에서 천린을 풀어내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부적을 잡았다.

뭔진 몰라도 일단 제압하고 볼 생각이다.

"자, 잠깐!"

놈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나는 녀석이 무방비인 걸 확인하고 부적을 빚어내며 달려들었다.

발동한 부적을 팔목에 붙이며 검병을 뽑아들려던 찰나.

"흐랴!!!"

화륵, 하는 감각과 함께 등에서 사나운 열기가 느껴졌다.

"읏?!"

다행히도 칠흑여제의 사랑이 완벽히 막아냈지만 전해진 충격은 모두 흘려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이런!'

땅을 구르면서 본 것은 비열하게 생긴 구릿빛 금발 놈.

전형적인 양아치상이었다.

"카하하! 넌 잠깐 잠이나 자고 있어라! "

어느새 본색을 드러낸 멀대 놈이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나는 구르면서 준비하고 있던 부적을 대서 막아냈지만 날아온 유리병이 깨지며 핑크빛 연기를 사방에 퍼뜨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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