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정규반 개학 (1)
* * *
내 학창시절이 모이드로 가득 차 있었니 뭐했니 해도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겸사겸사 다른 취미도 병행하며 즐기곤 했으니까.
예를 들면 웹소설 읽기라던지, 만화 보기라던지, 애니메이션 시청이라던지
물론 여가 시간의 80% 정도는 게임 파고들기에 몽땅 들이 박았지만 말이다.
공부 따위에 할당한 시간은 적었음에도 성적은 꽤 나왔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그런데 왜 갑자기 이딴 생각이 떠오르느냐고?
왜냐하면.
"지가악! 지각이다!!!!"
숱한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오는 장면을 내가 연출하고 있었으니까.
입에는 빵을 물어 들고 연신 지각을 외치며 두다다 달려가는 소녀.
오늘이 정규반 개학 첫 날인 것까지 완벽했다.
"꺅!"
"으악?!"
쿵.
잘생긴 미소년과 부딪히는 것까지 완벽.
나는 부딪힌 머리를 쓰다듬으며 땅에 떨어진 빵을 쳐다봤다.
반도 채 못 먹었는데 3초룰에 따라 주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괜찮으세요? 다치신 곳은?"
나는 들려온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고 휴대폰을 쳐다봤다.
시각은 8시 58분.
2분 안에 4층짜리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한다.
"아아악! 안 돼!!!"
나는 몸을 일으켜 중앙 계단을 올라갔다.
학생에게 있어서 무단지각이란 금기!
더욱이 개학 첫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어, 잠깐"
뒤에서 날 붙잡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역시 무시했다.
휴대폰의 시각이 8시 59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악, 학"
기숙사에서 쉬지 않고 달려 왔기에 숨이 가빠왔지만 나도 명색히 극정 아카데미의 일원.
순식간에 4층으로 뛰어올라가 Z반으로 향했다.
그 때,
띵—
스르르
"."
나와 부딪혔던 그 학생이 유유히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남학생은 내게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Z반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발."
어쩐지 여유롭더라니.
아마 날 부른 것도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부른 거겠지.
나는 턱 밑까지 격하게 차오른 헛된 숨을 고르며 Z반에 들어갔다.
극정 아카데미의 1학년은 총 여섯 반으로 나뉜다.
Z, E, N, I, T, H.
정점을 뜻하는 영단어 Zenith에서 따온 이름이다.
앞 철자에 가까울수록 성적이 좋은 반이고.
본래 유시험 전형 입학자는 무시험 입학자보다 낮은 반에 배치되는 게 평균이지만 나는 입학 시험을 잘 봤기에 계획대로 Z반에 편성될 수 있었다.
나는 문을 스르르 열어 안에 있는 학생들을 마주했다.
대체로 내게는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역시, 여덟 명 다 있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시험에 임한 이유.
꼭 정규반에 편성되는 것만을 노린 건 아니다.
Z반에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다 있기 때문이다.
'현서진, 천의린, 이원, 채유하, 장영수, 화수연, 박지혁, 샬롯 스털링.'
아까 나와 부딪혔던 소년, 현서진은 적당히 뒤쪽 창가에 앉은 이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의린은 앞에 혼자 앉아 있었고, 박지혁은 친한 패거리랑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화수연이는 복도 쪽 적당한 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슬금슬금 다가가 얼굴을 보니 눈을 감은 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속이 편한 아이다.
쿡.
"시현아."
"응? 유하?"
열심히 화수연을 구경하고 있노라니 채유하가 내 옆구리를 쿡 찔러오며 아는 체를 해왔다.
여전히 싱그러운 외모를 자랑하는 그녀가 후후 웃었다.
"너도 여기구나? 하긴, 시험 본 것만 해도 대단했으니까."
"어? 보러 왔었어?"
나는 입학시험 때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뭣하러 바쁜 애들을 불러서 내 모습을 보게 한단 말인가.
수아가 오겠다는 것도 거절한 나였다.
"아니? 홈페이지에 떴잖아. 입학시험 명장면."
그런 것도 있었어?
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본 거라곤 합격 여부와 반 배정 밖에 없는 나는 모르는 소리였다.
"이번 기수 명장면은 멋있다고 제니스에서 다들 난리던데. 혹시 안 봤어?"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서."
"이따가 꼭 봐. 너 되게 멋있게 나왔던데."
글쎄
뭐, 다른 학생들 퍼포먼스 정도는 봐두는 게 좋을지도.
대련을 엄청 자주 할테니까.
내가 알겠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앞문이 스르르 열렸다.
모두가 시선을 집중하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띤 사내가 제자리에서 화답하듯 손을 들어보였다.
"반갑습니다!"
문설주에 기댄 채 껄렁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 게 웃겼는지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천천히 문을 닫고 교탁으로 다가가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극정 아카데미에선 교사가 들어오거나 나갈 때 박수를 쳐서 인사를 대신하는 게 예의.
선생님은 미소를 머금은 채 칠판에 이름을 적었다.
박남진.
"박남진이라고 합니다. 이명은 뭐, 갈래번개라곤 하는데, 그렇게 잘난 놈은 아닙니다."
하하하
학생들의 웃음 속에서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었다.
"헌터 등급은 A, 전담 과목은 뇌속성 관련. 앞으로 번개를 쓰는 사람들은 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겠죠. 앞으로 1년간 Z반 담임을 맡게 되었으니 궁금하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마력학 질문은 안 됩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몇가지 전달사항을 말했다.
오늘 일정이나 향후 커리큘럼, 교무실 자리 대충 그런 것들.
나는 화수연의 앞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소리 없이 툭툭대는 감각 속에서 전달사항을 정리했다.
우선 수업은 크게 세 부류로 분류된다.
이론, 실습, 단련.
그 중 이론과 실습은 공통 수업과 선택 과목 수업이 따로 나뉜다.
세검술, 장궁술, 빙계 마법 이렇게 세분화 된 과목으로.
물론 나는 주술이다.
부활동 또한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몇 개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할 것.
부활동 또한 별게 다 있었는데, 조기반 때 몸 담고 있던 과학토론심화부 그런 것도 있을 정도였다.
대체로 부를 선택을 안 한 애들이 유배 당하는 곳이긴 했지만.
'일단 검도, 그리고 음, 샬롯이 어느 부더라?'
궁도부면 곤란한데.
나중에 선택하는 거 보고 따라가야겠다.
"극정 아카데미엔 두 개의 공식적인 랭킹이 있습니다. 첫째가 빌보드, 둘째가 랭크 대전이죠."
빌보드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붙는 벽보다.
전체적인 성적을 보여주는 순위로, 랭크 대전보다 공식적인 순위로 인정 받는다.
랭크 대전은 말 그대로 랭킹전.
하루 최대 다섯 번 참여할 수 있는 랭킹전에서 승부를 가려 점수가 등락하는 방식으로, 시즌은 한 달 단위이다.
놀랍게도 최상위권끼리의 대전은 토토를 돌리며, 시즌이 끝나면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받는다.
'꽤 재미 있는 시스템이야. 열심히 할 건 아니다만.'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고, 한 50위 안쪽에만 들어도 100만원은 나오니 그 정도로만 해봐야겠다.
툭툭.
수지타산을 계산하던 내게 화수연의 손 끝이 뻗어온다.
내가 슬쩍 돌아보다 화수연이 눈을 크게 뜨고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거 진짜야?"
"뭐가?"
"싸우면 돈 준다는 거."
그녀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싸우면서 돈까지 벌다니!
여러모로 그녀가 환장할 요소만 모여 있었으니까.
"응."
"우후후, 좋아, 좋아"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자리에 고쳐 앉는 그녀.
과거를 생각하면 돈을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가 버는 것과는 별개로 절약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의 무도 또한 반 쯤은 충동구매 아니었는가.
결과적으론 좋게 되었다만.
"아무튼, 오늘은 무기 선택 후 자유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거기 앞에 학생!"
"네?"
"임시 반장을 맡아주세요. 그리고 모두 절 따라와주시길 바랍니다."
앞에 앉았단 이유로 임시 반장이 된 천의린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학생들이 그녀와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대련장으로 향했다.
대련장엔 갖가지 무기군들이 여기저기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개중에는 권총 따위의 이상한 무기도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는 검이 쌓여 있는 쪽으로 다가가 도를 찾았다.
"저기요."
현서진이 두리번대는 내 곁에 다가왔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가 머리를 긁으며 사과해왔다.
"아침에 부딪힌 건 정말 죄송해요. 제가 딴 생각을 좀 하느라. 다치신 곳 있나요?"
아까 대답을 안 하고 냅다 소리지르며 달려가서 그런가.
하필이면 현서진이랑 부딪힐 건 또 뭐람.
나는 괜히 볼을 긁적였다.
"아니, 나도 미안. 지각할까봐 좀 달렸거든. 다친 곳은 없어."
그가 내게 사과해올 건은 아니었지만 어째 내가 사과를 받아주는 입장에 서버린 듯 했다.
심지어 동갑한테 존댓말이라니.
솔직히 대화하기 좀 어색하다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혹시 검수이신가요?"
"아니, 난 주술사긴 한데 도를 쓰긴 하지."
"주술사요? 스피릿 각성자셨구나. 처음 봐요. 스피릿 각성자는 엄청 귀하잖아요. 맞죠?"
"아 응."
나도 존댓말을 써야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둘 다 18세의 반 친구인데.
"그런데 주술사는 후방 포지션 아닌가요? 아, 혹시 검무를 쓸 줄 아시는?"
"난 후방 포지션도 아니고 칼춤도 못 추는데."
아니, 통상적인 칼춤은 전투에서 쓸 수 없다니까.
누가 싸우면서 칼춤이라도 추는 거야?
"아, 그러신가요? 제가 그런 걸 잘 모르는지라 혹시 가소희 님이랑 같은 류인가 해서요."
"가소희?"
"네, 무검희???요. 그 분은 검무를 써서 싸우신다길래."
검무를 써서 싸운다고?
가소희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