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5화 (15/119)

〈 15화 〉 정규반 개학 (3)

* * *

"내가 왜 저깄어?"

"잘 봤잖아. 혹시 예상도 못했던 거야?"

"응."

웬만큼 잘 봤다곤 생각했지만 설마 최우수에 들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예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필기 만점에, 대련 압승, 탈출도 성공 심지어 탈출은 성공자가 거의 없었지.'

순서를 기다리며 본 학생들은 모조리 2단계 쯤에서 탈락이었으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꽤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다음 학기에는 무조건 떨어지겠지만

"와아,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최우수니까 다 합쳐서 900만원!"

화수연이 눈을 크게 떴다.

만화적 표현이 허용된다면 눈동자가 달려표시($)로 바뀌지 않았을까.

경제관념도 없는 게 돈만 밝히긴.

"줄 생각도 없는데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딱히 달라고 한 적은 없거든"

네 눈이 반짝이는 걸 봤는데 무슨 소릴.

***

다음 날.

이번엔 늦지 않겠단 일념으로 여덟 시에 도착해 시간이 남아버리고 말았다.

있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나마도 엎드려 자고 있고.

다른 애들은 언제 오는 걸까?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면 말이라도 걸었겠지만'

굳이 일반 학생에게까지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내 근본은 아싸찐따니까!

나는 손으로 머리칼을 대충 슥슥대다 휴대폰을 꺼냈다.

할 일도 없는 거, 어제 유하가 말했던 그 영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분명이 유시험 하이라이트? 아니, 입학시험 명장면이었나.

나는 홈페이지에서 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 극정 아카데미 2051 입학시험 명장면

꽤 멋진 그래픽의 글씨가 영상을 메웠다.

기껏해야 영상을 대충 짜서 이은 것인줄 알았건만, 편집과 음악으로 보아 소위 매드무비 형식인 듯 했다.

'멋있는데?'

북이 웅장하게 두 번 울린다.

그 소리에 맞춰 방패로 적을 때려눕히는 남학생.

장영수였다.

뒤이어서 칼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현서진의 검격이 원귀를 단칼에 토막낸다.

찬란하게 빛나는 검기의 예리함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아, 저거 사인참사검 빨인데'

현서진의 실력이 1위에 걸맞는 건 맞지만 원귀를 단번에 토막낼 정도는 아니다.

사인참사검의 퇴마력이 대부분의 역할을 했으리라.

주술에 쓰면 딱인 검인데!

'나 참,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다시 한 번 둥— 하는 소리가 난다.

화면엔 그 소리에 맞춰 도약하는 내 모습이 있었다.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슬로모션 기법이 장애물을 단번에 뛰어넘는 내 모습과 무사히 착지하는 내 모습을 멋지게 표현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내 얼굴에 줌인.

이렇게 보니 꽤 멋진 장면이긴 했다.

애초에 단번에 뛰어 넘으라고 만든 장애물이 아닌지라 키 차이가 꽤 났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음악이 시작되며 여러 멋있는 모습이 지나간다.

창날을 미친듯이 휘둘러 좀비를 학살하는 이원, 굴러오는 돌을 빠른 움직임으로 모조리 피해내는 샬롯, 그와 대조적으로 바위들을 완전히 박살내며 전진하는 박지혁

상대를 걷어차고 칼을 겨누는 나도 있었다.

'인상적이네.'

나는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은 적 없건만.

항상 무표정이었단 말이다.

마침내 3분의 재생시간이 끝나갈 때 쯤 내 모습이 또 다시 나왔다.

마무리로 치닫는 음악과 함께 원귀를 칼로 꿰고 밀어붙이는 내 모습이.

원귀의 비명이 음악에 화음을 넣으며 내 무표정을 강조한다.

카리스마 있네.

내가 칼을 털어내며 원귀를 떨치는 모습과 함께 영상이 끝났다.

"으음."

영상미가 끝내주네.

나는 제니스에 접속해 개념글을 살폈다.

제목: 이번 기수 입학생 명장면....gif

작성자: 옥에서독식, 작성시각: 2051.2.27, 20:47

(사진)(사진)(사진)

추천 좀

댓글(207)

후후벨가: 이번 기수 걍 미친 놈들이네 ㅋㅋ

ㄴㅇㅇ: 2 3학년들 지금까지 뭐했냐 ㅋㅋㅋㅋ

ㄴ날풀어줘: ㄹㅇ

5월은 외박기원: 박지혁 바위 부수는 거 뭐냐고 ㄹㅇ

ㄴwlgur0830: 개멋있지 않냐? 솔직히 이번 기수 최고라 본다 ㅇㅇ;

ㄴㅇㅇ: ㄴ이 새끼는 원귀 썰어죽이는 거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냐 ㅋㅋㅋ

ㄴwlgur0830: ㄴ어쩌라고 ㅂㅅ

초고출력부웅쾅: 정시현만 5개를 처만드네 ㅋㅋ 고맙다

ㄴ초고출력부웅쾅: 근데 얘 인챈터임? 종이 바르는 거 존나 멋있네

ㄴ나혼자만재수중: 조기반 때 체단실에서 제사 지내던 앤데 무슨 인챈터임 ㅋㅋ

ㄴㅇㅇ: 그럼 강령술 쓰는 거임? 무당?

ㄴ기하보단미적: 무녀겠지 ㅂㅅ

ㅇㅇ: 서진 오빠 개멋있어ㅠㅠㅠ 복근으로 안아주면 좋겠다ㅋ큐ㅠㅠㅠ

ㄴ사랑해요독자군: 여기 여자도 있었냐

ㄴㅇㅇ: 나 남잔뎅

"아주 개판이네."

영상에 내 비중이 꽤 많아서 그런지 내 얘기가 좀 많았다.

개중에는 질투를 위시한 악플도 좀 있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나한테.

예를 들면

정시현팬클럽장: 시현누낭 수박가슴 헤응

ㄴ유토브하이: 촉감도 끝내줌 ㅋㅋ 넌 못 만져봤지?

ㄴ정시현팬클럽장: ㄴ뭐래;

이거 말고.

아이시테미테모: 정시현 존나 병신년 아니었음? 왜 갑자기 처나대지? 저 년 때문에 조별 수행 망친 적도 있는데 씨발

ㄴㅇㅇ: 이 새끼 시험에서 정시현한테 두들겨 맞은 애인듯 ㅋㅋ

ㄴ아이시테미테모: ㄴ아닌데 병신아 ㅋㅋ

ㄴ뷰현시지: 응 이쁘고 멋있으면 된 거야~ 그딴 거 상관 없어~

ㄴBLV는블라보: ㄴ이새끼 닉 ㅋㅋㅋㅋ

ㄴ775아카리: 유시험으로 뚫을 자신이 있는데 왜 너랑 수행을 해줘야 되냐? 꼬우면 너도 저렇게 하든지 ㅂㅅ

그래, 이런 거.

나는 이런 반응들을 열심히 탐독하다가 댓글 하나를 남겼다.

익명이니 하나 쯤은 상관 없겠지.

zx혼령환후xz: ㅋㅋ

닉네임이 이게 뭐야?

'빌어먹을 중2병 주술소녀가'

닉네임을 바꿔보려 했지만 그런 기능은 지원되지 않는 듯 했다.

부계정도 만들지 못하게 막혀 있는지라 나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뭐 어때.

나인 걸 누가 알아보겠어.

나는 제니스를 끄고 인터넷에 가소희에 대해 검색해봤다.

가장 상위에 뜬 결과는 북우위키.

믿을만한 정보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개략적인 정보는 다 있겠지.

내용을 쭉 읽어내려갔다.

­ 대한민국의 S급 헌터. 한국 칠성의 일원이기도 하다. 소속은 헌터협회 제1별동대. 직위는 대원이다(...) (이런 인력을 대원 따위로 쓰다니) (그렇게 치면 주하연도 비슷하다)

'쓸데 없는 사족은 여전하네'

­ 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칭호는 무검희(???). 자신이 직접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칭호로 선정한 것이다. 그 외에는 도향천리(????), 엔슬레이버(enslaver) 등이 있다. 참고로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무검희 가소희(...) (라임센스가 끝내준다)

엔슬레이버(enslaver)?

노예로 만드는 사람, 대충 그런 뜻 아닌가?

나는 계속 읽어내려갔다.

­ (동영상) 전투에는 독자적인 검법과 마법을 사용한다. 주술의 일종인 칼춤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용도로 보나 위력으로 보나 돌팔이 학문인 주술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 가소희가 쓰는 검술과 마법이 어느 류이고 어느 학파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일인전승 쪽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

"."

동영상으로 살펴본 결과 주술이 맞다.

부드럽게,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크게 휘두르는 동작은 칼춤의 그것이고, 춤을 개시하며 밟는 발자국의 자취는 분명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저게 검술이고 마법이면 학계가 뒤집어졌겠지.

'하긴, 비전문가들이니까.'

부채질하고 바람 불면 사라지는 이슬 같이 헛된 정보들을 지식이라 부르며 마구잡이로 뭉쳐놓는다.

거기에 자신의 주관까지.

주술이 돌팔이 학문이라니,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

"아주 부적으로 처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응? 뭐라고?"

"읏, 깜짝이야."

유하가 등 뒤에서 나타났다.

왜 다들 내 등 뒤에서 나타나는 거야?

"뭐 보는 거야? 무검희네?"

"무검희를 알아?"

"당연히 알지. 웬 생뚱맞은 질문을 하고 있어?"

유하가 내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자꾸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휴, 머리 안 빗니? 완전 엉켰네."

"귀찮아서"

"이런 머리를 가만히 놔두는 건 죄악이야!"

그녀가 머리를 슥슥 정리해주다가 안 되겠는지 주머니에서 빗을 꺼냈다.

꽤나 촘촘한 참빗이었다.

확신하는데 저걸로 머리를 빗으면 죄다 뽑혀나갈 거다.

"이리 와! 어딜 빼려고 하니?"

"굳이 그런 흉기로 내 머리칼을 괴롭혀야겠니?"

"괜찮아, 안 아프게 해줄게. 이 문제아야."

머리 손질 좀 안 했기로서니 문제아라니.

너무한 거 아냐?

"방금 불순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아, 아니거든."

"다 널 위해서라구. 절대 네 머리를 슷슷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

"응."

에휴.

나는 그녀에게 순순히 머리를 맡겼다.

유하가 착하다는듯이 내 머리를 몇 번 쓰담쓰담 하더니 빗질을 시작했다.

엄습할 고통에 가슴을 졸였지만 그녀의 빗질은 꽤 부드럽고 기분 좋게 진행되었다.

"저기, 가소희 말인데."

"가소희 헌터님."

"가소희 헌터님 말인데. 어떻게 싸우시는지 알아?"

"아까 동영상에 나왔잖아. 검무를 써서 싸우시는 거 아냐? 아, 혹시 그래서 봤던 거야?"

다행히도 유하는 제대로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역시 무시험 1등! 내신의 왕!

"머리카락 참 곱네. 대체 왜 안 빗고 다닌 거야?"

그녀가 손질을 마쳤는지 빗을 뗐다.

그리고 내 머리 냄새를 맡았다.

"꺅! 뭐하는 거야!"

"흐으 샴푸향 좋네. 무슨 향이더라?"

변태가.

유하가 내게 참빗을 내밀었다.

밝은 색감의 나무로 만들어진 참빗은 꽤 예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빗을 받아들었다.

"그건 주는 거니까 빗질 좀 하고 다녀. 빗으니까 예쁘잖아. 그렇지?"

"응."

내 대답에 만족스레 웃은 유하가 내 머리를 꼭 껴안았다.

나는 도리질 쳐서 쫒아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저기, 왜 껴안는 거야?"

"귀여워서."

"."

에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