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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6화 (16/119)

〈 16화 〉 강 건너 대련 구경 (1)

* * *

실습 시간은 헌터의 최대 덕목인 무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수업이다.

기본적인 전투력, 동료와의 공조, 긴급상황에서의 탈출 등

최저 성적만 어찌어찌 넘기면 되는 이론 수업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지는 수업이다.

물론, 이론 수업의 최저도 못 넘기는 애들이 많지만.

"오늘은 실습 첫 시간이니까 가볍게 대련 몇 번 하고 끝내겠다. 아무래도 Z반의 자랑인 최우수 학생들이 나오는 게 모양이 좋겠지?"

""네!!""

그나저나 첫 날부터 대련질이라니.

오리엔테이션 같은 거 없어?!

"와, 첫날부터? 뭘 좀 아는데?"

"난 가기 싫은데."

"나도"

수연이는 이 상황이 꽤 신나는 듯 했지만.

최우수 턱걸이라 당했다

"일단 처음은 가볍게 해볼까. 화수연, 장영수! 앞으로 나오도록."

"아싸, 네!"

수연이가 신난다는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남들 앞에서 주목 받으며 싸우는 게 뭐 그리 신나는지

반면 장영수 쪽은 아니나 다를까 뭐 씹은 표정이었다.

하기 싫다는 티가 팍팍 나는 얼굴.

두 상반된 인물이 무대에 오르자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화수연이 5위, 장영수가 6위. 룰은 내가 승패를 선언하거나 한 명이 항복할 때까지. 무기에 블런트(Blunt) 마법이 걸려 있으니 다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양측 모두 준비 되면 말하도록."

그나저나 수연이가 싸우는 모습이라.

전투 모션이 워낙에 화려해서 만드는 데 애를 먹긴 했지.

'흠'

실력 좀 볼까.

***

무대에 선 둘은 서로를 마주 봤다.

쌍검과 방패, 방패와 쌍검.

얇은 검 두 개와 카이트 실드의 차이로 미루어 보건대 농담으로라도 쌍검이 유리하다 생각하기는 힘든 매치였다.

화수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영수에게 말을 걸었다.

"꽤 크네? 그거. 근데 다른 무기는 없어? 두고 온 거야?"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

"으응, 그래?"

'방패만으로 싸우는 타입인가?칼날 방패겠구나.'

대충 어깨를 푼 화수연이 등허리에서 칼을 뽑았다.

세이버, 혹은 사브르(Saber).

얇은 검신의 살짝 휜 외날검.

그 둘을 양손에서 빙글 돌린 붉은 패기의 소녀가 선언했다.

"저는 준비 됐어요."

화수연은 간만에 속에서 차오르는 기대감을 느꼈다.

호승심! 싸움! 승리!

비폭징류????와 벽류??를 가르친 스승도 그녀의 타고난 투사기질에 혀를 내두를 정도.

그녀에게 있어서 최고의 유희는 위기감을 자극하는 대련이었으니.

하물며 6위와의 대련이라면야!

"흠, 저도 준비 됐습니다."

장영수는 근육에 힘을 채워나갔다.

타고난 근골은 말 그대로 역발산기개세, 그 자체!

그에게는 남들이 제대로 드는 것조차 힘든 카이트 실드가 곧 무기요, 다른 무기는 모두 쇳조각에 불과했으니.

220cm의 거한은 저 170cm는 될까 싶은 맹랑한 소녀를 단숨에 때려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아, 둘 다 망설임 따위는 없군. 좋다. 그럼"

실습 교사, 김대순이 소리쳤다.

"시작!!!"

달려나간 건 붉은 소녀, 자리를 굳힌 건 잿빗 방패.

왼손의 사브르가 굳건히 선 성벽의 옆을 돌아 그 속의 거인을 노렸다.

"흠!"

거인은 태연히 방패를 강하게 휘둘러 사브르를 세게 쳐냈다.

예상을 충격에 갈피를 잃고 저만치 젖혀진 화수연의 팔.

장영수는 그대로 방패를 앞세워 그녀를 덮쳤다.

'쯧, 나랑은 영 별로네.'

덮쳐오는 방패의 가속력은 대단했다.

그 누구도 그녀가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화수연은 그 예상을 깨트리기 위해 뒤로 넘어지듯 무게중심을 넘겼다.

벽류??ㅡ후퇴??.

종아리에 마력이 모인다.

순간적인 기동엔 무릎보단 발목이 중요하므로.

파앙!

물을 세게 차는 소리와 함께 종아리에 고였던 마력이 발꿈치로 발출된다.

화수연의 신형은 빠르게 돌진의 범위에서 물러났다.

"."

"으, 생각보다 더 세네. 함마 같은 거 들 생각 없어?"

많은 힘을 주지 않고 찔러본 공격이라 다치진 않았다.

손목에 힘주고 들어갔으면 분명히 다쳤으리라.

'살벌한 곰돌이 놈.'

그녀는 이렇게 된 이상 기동력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방패는 백날 쳐봤자 꿈쩍도 하지 않을테고, 저 거체를 방패 째로 뒤집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기에.

"조금 빨리 가도 될까? 나도 속력 하난 자신 있는데."

"."

"칫, 뭐라고 말 좀 해봐. 재미 없긴"

비폭징류는 검술, 벽류는 체술.

둘을 엮어 만들 수 있는 공격은 꽤 다양하지만, 그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 있는 것을 골랐다.

해검??.

붉고도 푸른 흐름이 그녀 발 언저리를 휘돌아 감싼다.

흐름은 급류로, 급류는 격류로, 격류는 곧 폭류로.

'흐름을 만들고, 흐름에 탄다.'

거대한 태산도 해일을 막을 순 없으리.

시원한 파도가 화수연의 등을 떠민다.

'이런.'

화수연이 장영수의 힘에 감탄했다면 장영수는 화수연의 기세에 경악했다.

아직 변변한 체술 하나 익히지 않은 초짜 신입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힘이었으므로.

흐름이 격화될 때 뛰어들어 저지했어야 한다는 후회만이 그의 뇌리에 남았다.

비폭징류????ㅡ해검??.

붉고도 푸른, 빠르고도 위압적인 흐름이 성벽을 덮친다.

벽 틈새로 새어드는 바닷물처럼 수많은 검격이 방패의 사각으로 베어온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강!

"큭!"

실린 힘은 보잘 것 없다.

하지만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시선을 피해 베어온다.

최대한 방패를 갖다 대 막고는 있지만, 바닷물에 완전히 잠기게 되면 그것조차 못하게 되리라.

"아하하!"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강!

화수연은 사과를 깎듯이 장영수의 근처를 휘돌았다.

사과깎기와 다른 게 있다면 도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껍질을 깐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피익!

"크윽"

장영수의 활동복이 찢어진다.

블런트 덕분에 살갗이 베이진 않았지만 이대로는 난도질 당해 패하는 건 시간문제.

그는 상황 타개를 위해 맞는 걸 감수하고 방패날을 크게 휘둘렀다.

"읏?!"

까아앙!

거인을 삼켰던 바다가 걷혔다.

화수연은 사브르를 들어 공격을 막긴 했지만 튕겨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손목도 완전 맛이 가버렸고.

"나 참, 으, 무슨 힘이 저래"

그래도 외관상 멀쩡한 그녀와 달리 장영수의 꼴은 참으로 볼만 했다.

활동복이 완전 넝마주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자동수복이 된다곤 하지만 저 상태라면 족히 수일은 걸릴 것이다.

"그만!! 화수연 승!! 승자에게 박수!!"

"와아아아!"

짝짝짝짝

***

"대단한데."

"역시 5위인가? 저 괴물이 쪽도 못 쓰네."

"와 너네는 저게 보이냐? 난 하나도 안 보이는데."

수연이가 익힌 검술은 비폭징류????, 그와 함께 익힌 체술은 벽류??.

흘려내는 듯 몰아치고, 몰아치는 듯 흘려내는 절정의 쌍검술이다.

게임 상에선 시작 시점부터 익히고 있는 성장형 검술이었고.

"어때? 수연이가 싸우는 건 처음 보지?"

"응, 대단하네."

"뭐야, 왜 이렇게 미적지근해? 난 더 극적인 반응을 원했는데."

그야 더 빠른 천렬검???이나 좌태우일????도 봐왔으니까.

그와는 별개로 위압감이 쩔어주는 건 맞지만.

"그치? 직접 마주하면 진짜 무섭다니까. 수연이 눈빛도 바뀌어서 더 그래."

"대련 해봤어? 같은 반이었나?"

"응. 물론 내가 이겼지만."

유하가 자랑스레 가슴을 내밀었다.

물론, 그래도 나보다 작았다.

"어떻게 이겼는데? 실드로 막았나?"

"음, 사실 해검을 깨트린 적은 많아. 수연이가 해검을 연습한다고 나한테 계속 달려들었거든."

"오는 족족 깨버린 거야?"

"물론. 한 번도 당한 적 없지."

유하는 얼빠진 내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쿡쿡 웃었다.

"더 빠른 반응속도로 받아쳐도 되고, 무식하게 온 몸을 실드로 둘러쳐도 되고. 또 그라운드 웨이브나 조금 무리해서 그리스 같은 걸 써서 균형을 무너트려도 되고, 안 되겠다 싶으면 기동 마법으로 거리를 벌려도 돼. 물론 금방 따라붙지만."

저런 걸 태연하게 말하다니.

저걸 반응속도로 쳐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실드로 둘러쳐서 막았다간 마력이 순식간에 토막날 것이다.

해검이 은근 파훼하기 쉬운 절기는 맞지만 저런 식의 해법은 인정하기 힘들다.

저것도 실력이 받쳐주니까 가능한 거겠지

"하아, 난 갈 길이 멀다니까"

"9위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린치 당할 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관람을 하다보니 어느새 대련이 끝났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둘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왔다.

"멋있다!"

"스타버스트 스트림!"

"하하하하!"

축하를 뒤로한 수연이는 손목을 다친 건지 손목을 부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돌아와 불퉁한 표정을 지은 채 손을 유하에게 내밀었다.

"치료해주라."

"시러요!"

"귀여운 척 하지 말고, 이 초록 대가리야."

"흥."

유하는 퉁퉁 부어오른 수연이의 손을 살피다가 마법진을 틔웠다.

몇 번 마법진을 굴린 그녀는 내게 했던 것처럼 부어오른 손목을 슷슷해서 붓기를 가라앉혔다.

"오늘은 웬만해선 아대 하고 다녀. 들고 다니는 거 있지?"

"안 하면 어떻게 돼?"

"또 다치겠지."

"그러면 우리 유하 의사님이 알아서 잘 고쳐주지 않을까?"

"안 해줄 거야."

그 말에 수연이는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극정 아카데미에 다니다보면 인대가 늘어나거나 상처가 나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다.

골절이나 인대 파열, 심하면 괴사나 절단까지도 가끔 발생하곤 하니.

물론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아가페 길드의 사제가 말끔히 치유해주기에 문제는 없다.

근손실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도 앞으로 유하를 애용해야겠는걸?"

"넌 주술로 알아서 해, 수박아."

수박이라니, 가슴 좀 크기로서니.

이건 명백한 질투다!

우리가 시시덕대는 사이 선생님은 배틀레코더를 확인하더니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대련을 선언했다.

"좋은 대련이었다! 보고 배운 게 있으면 좋겠군. 시간이 남았으니 다음 대련으로 넘어가볼까. 현서진, 채유하! 앞으로 나오도록!"

""오오~""

호명과 동시에 유하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아하하! 걸렸대요!"

"저런, 잘 다녀와."

앗싸.

내가 걸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다행인 일이었다.

유하는 기분 나쁘겠지만 뭐 어때.

나만 아니면 돼!

나와 수연이는 수석과 차석의 대련을 기대하면서 무대로 향하는 유하의 처진 등을 바라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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