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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7화 (17/119)

〈 17화 〉 강 건너 대련 구경 (2)

* * *

우정, 노력, 승리!

점프의 3대 표어이자 현서진의 스토리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세 단어이다.

검성의 자식으로 태어나 검성을 뛰어넘을 운명을 타고 난 존재.

그럼에도 늘 노력하는 성실파.

전형적인 용사 주인공의 캐릭터였다.

이는 제작 과정에서 '초면 존댓말과 예의바른 인사' 라는 특징이 가미된 이유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안녕?"

"이름이 채유하, 라고 하셨죠? 앞으로 잘 지내봐요."

"그 존댓말부터 집어 치우면 안 될까?"

채유하의 불편한 기색이 가득 담긴 말에 현서진은 하하 웃고 말았다.

"그럴까? 미안. 습관이라서"

"그래, 뭐 살살 부탁해."

채유하는 웃는 얼굴에 침 뱉기도 뭐해서 현서진에게 마주 웃어보였다.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웃음이었지만.

'쯧, 뭔가 맹해보이네.'

로맨스 소설에 많이 나오는, 그 뭐냐, 천연 금발 왕자님?

딱 그 스타일인데.

채유하는 정작 그런 캐릭터를 질색팔색하며 싫어했지만.

천연이 아니라 다른 류의 귀여움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현서진이 1위, 채유하가 2위. 각각 유시험과 무시험 수석이군. 룰은 아까와 같이. 준비되면 말하도록."

"준비됐어요."

"저도 준비됐습니다."

둘은 더 이상의 사담은 않겠다는 듯 준비를 마쳤다.

김대순은 그 둘을 보며 씩 웃고는 손을 아래로 내렸다.

"시작!!!"

얼굴에서 웃음을 지운 현서진이 채유하에게 달려간다.

무릇 마법사를 상대할 때 가장 신경 써야할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손과 입술을 놀릴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현서진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제 나름대로 빠르게 달려 나갔지만, 아쉽게도 채유하는 그런 얕은 수가 먹히지 않는 베테랑이었다.

'1학년 주제에 무슨 베테랑이겠냐만은'

채유하의 장점은 비단 넘쳐나는 마력 양과 수많은 학파의 마법만이 아니었다.

손가락과 손목이 부서져라 연습한 마법진 형성, 목이 갈라질 정도로 외쳐댄 수많은 시동언, 웬만한 연구계 뺨칠 정도로 공부해댄 마력학

그 위에 덤으로 얹힌 판단력과 창의성, 반응속도까지.

이 모든 것이 채유하의 무력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채유하가 오른손으로 가볍게 굴린 정이십면체가 검과 부딪힌다.

틔워낸 마법은 크리스탈 실드.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큰 장점이 없어 사장된 실드 마법이었다.

파카앙ㅡ!

아니나 다를까 형편 없이 깨져나가는 유리 조각들.

하지만 왼손의 마법이 발동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카에다, 사이파! 타피스트!!"

왼손에서 굴리던 마법진은 타이니 에어로 블라스트.

진짜 에어로 블라스트보다 한참은 약하지만 지금은 마냥 얕볼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크리스탈 실드의 파편들이 작은 돌풍과 함께 했으니까.

깨진 유리조각이 위험하다는 건 어머니께 등짝 맞아가며 배운 만고의 진리!

현서진은 달려드는 유리 폭풍 속에서 의연히 섰다.

한편 채유하는 다음 마법을 준비하며 당혹감을 느꼈다.

충분히 위협적인 연계를 통해 현서진을 떼어 놓겠단 의도였는데, 도리어 정면으로 깨부수려 하다니.

'저걸 깨겠다고?'

마법이 깨지면 사용자에게 타격이 온다.

마력이 흔들리며 내상을 입히거나, 몸의 활력을 빼앗는 식으로.

마법사를 잡으려면 마법부터 잡으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폭풍에서 물러나지 않은 현서진의 행동이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압!"

한국 칠성, 검성 현우석은 체술을 쓰지 않는다.

아니, 검술 이외에 다른 기술은 익히지도 않았다.

그의 검술은 다른 모든 기술을 대체할 수 있고, 그 어떤 잡기보다도 강맹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아들인 현서진도 마찬가지.

그는 검 손잡이를 높이 들고 검극을 아래로 향했다.

성광도래?光??, 제삼식?三?.

북두물변北???.

푸른 별빛을 머금은 검이 휘둘러진다.

다른 별들은 북극성을 기준으로 뱅글뱅글 돌 뿐.

현서진은 몰아치는 유리조각 사이에서 하나의 북극성이 되었다.

"무슨 쿨럭!"

그를 중심으로 폭풍이 갈라진다.

유리 조각들은 현서진의 옷깃을 겨우 스치고 마력으로 화하고 말았다.

마법이 깨진 채유하는 마력이 흔들리는 걸 느꼈지만 마력 양으로 짓누르곤 계속 마법진을 굴렸다.

"꽤 하는데!"

"시에나! 리트! 베타라스!!"

좋은 마법사가 전투에서 내뱉는 건 오로지 오더와 시동언 뿐.

채유하가 다음 마법진을 틔워냈다.

예쁜 손톱들과 부딪히며 피어난 마법은 쓰러스트 어웨이.

이름 그대로, 밀쳐내는 마법이다.

녹색 마법사는 정육면체의 한 모서리를 손으로 뜯어내 '반작용 상쇄'의 수식을 제거했다.

파아앙ㅡ!

"어딜!"

채유하의 손에서 충격파가 퍼져나와 현서진을 덮쳤다.

그는 아까처럼 북두물변으로 마법을 갈라냈지만 둘의 사이가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북두물변을 쓰려면 일단 멈춰야 하는데다, 마법사는 자기가 만든 충격파에 휩쓸려 빠르게 뒤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검성의 아들은 급히 제이식, 혜성임세???世로 쫒았으나 시간을 너무 주고 말았다.

채유하는 벌어낸 시간으로 큰 마법을 준비하며 무영창으로 바닥에 얼음을 덮었다.

현서진이 아니라 착지할 발 밑에.

촤아아악!!

균형을 잡으며 손 위에서 마법진를 굴려낸 그녀는 마침내 입술을 열었다.

"카에다! 하이츠! 익스피리아 카스트로!!"

카에다는 원소, 하이츠는 불.

익스피리아 카스트로는 그 중에서도 소각의 창.

삼차원을 넘어 사차원에 닿은 초입방체의 마법진이 붉게 빛나며 적에게 향했다.

채유하가 만든 불꽃은 블레이징 페네레이션.

맞추기만 한다면 발군의 위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절기였다.

더욱이 지금은 못 맞추기가 더 어려운 구도였으니!

"고출력으로 나온다, 이거지!"

북두물변으론 안 된다.

저건 분명히 북극성보다 밝게 빛나는 별일테니까.

하지만, 현서진은 밤하늘에 빛나는 그 어떤 항성보다 밝은 별을 알고 있다.

'경이적인 화력은 인정하지만!'

검성의 아들은, 재미있게도 마법사보다 화력이 강한 검사였다.

그는 거대한 소각의 창을 향해 마주 달렸다.

성광도래?光??, 제일식?一?.

태양천천太???.

양산형 싸구려 검이 빛나는 태양검으로 변한다.

지구를 환히 비추는 태양도 결국 별의 일부.

성광도래로 끌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서진은 불꽃을 향해 태양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ㅡ!!

"하아아아압!"

"시에나! 라투나! 리이파시아!!!"

태양빛이 붉게 타오르는 거창을 갈라나간다.

미친듯이 일렁이는 불꽃이 검광을 잠식해나간다.

거창이 갈라지나 싶더니만, 뒤늦은 강화마법이 균열을 이어붙인다.

검광이 사그라드나 싶더니만, 크게 내지른 기합이 검에 힘을 불어넣는다.

둘의 힘겨루기는 결국 마법의 패배로 끝났다.

"흐아아아아압!!"

진홍 불꽃을 갈라내는 태양빛.

옅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검신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먹구름을 살라먹고 개선하는 당당한 자태로.

처음 3초간은 그랬다.

땡그랑!

"아?"

검이 반 쯤 망가진 채 동강 부러져버렸다.

아무리 질이 좋다고 해도 결국 공장 태생.

태양과 불꽃의 대결 사이에 서기엔, 자동 단조장치의 성의가 부족했다.

"아 하악, 하악"

공을 들인 마법이 정면으로 깨져나가며 채유하의 체력은 완전히 동난 상태.

뒤로 엎어져 숨을 할딱이는 소녀는 더 이상의 싸움을 지속할 수 없었다.

"으, 으음"

부지깽이가 된 검과 소녀를 곤란한 눈으로 번갈아 바라본 검성의 아들은 엉거주춤 채유하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까앙!

""

"하악, 하악"

무영창 실드에 막혔다.

체력이 동난 거지 마력은 아직 건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50cm 남짓한 고물이라면야.

"끙"

현서진은 실드를 깨기 위해 뻘쭘한 기색으로 마저 쇳덩이를 휘둘렀다.

마치 석탄 캐는 광부처럼.

깡! 깡! 깡! 깡!

"푸흐흡"

"그만!! 현서진 승!!"

짝짝짝짝

그렇게 팽팽했던 짧은 승부는 1위의 승리로 끝났다.

***

우리는 무대에서 내려온 유하를 맞이했다.

"아하하! 하하하하하하!"

"휴 그냥 항복해라, 한 마디면 끝나는 걸"

"그걸 굳이 막은 너도, 풉, 대단한데."

"맞으면 아프잖아. 걘 무슨 레이디를 때리려고 하냐."

원래 아카데미제 무기는 쉬이 부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역 헌터급 학생 둘이 작정하고 박살을 내려고 하니까 그렇지

여러모로 참 대책 없는 충돌이었다.

"아하하하 휴우, 후 그나저나 너 그런 것도 쓸 줄 알았어? 그 정도면 B급 헌터는 가볍게 씹어 먹겠는데?"

"맞춰야 말이지. 깨지면 뒤가 없기도 하고. 마법진도 한참 굴려야 한단 말야."

"그게 한참 굴린 거였어?"

나는 머릿속으로 나와 유하와의 대련을 상상해봤다.

몇 번을 굴려봐도 이길 각이 안 나온다.

천린을 써도 결과는 같을 거다.

애초에 거리를 좁힐 수단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렇다면 현서진은?

"걔 말야, 상대해보니까 어때?"

"걔? 으음, 곤란했지. 적당한 검사였으면 얼음 마법으로 전장을 장악하고 상대했을 텐데 걔라면 그게 안 통할 것 같았거든."

유하가 싸우느라 흐트러진 머리를 넘기며 주머니를 뒤졌다.

내가 참빗을 건네자 그녀는 받아드는 대신 자기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해조."

"이 정도는 네가 해."

"해줘어~"

"에휴."

내가 잠자코 빗을 들고 그녀의 뒤로 가자 수연이가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열심히 헝클어진 단발을 빗기 시작하자 유하가 마저 말을 이었다.

"으음 사실 워낙 짧은 시간에 결판이 나서 내가 뭐라 하긴 힘들지만 일단 반응속도가 은근히 좋은 듯하고, 기동력은 의외로 낮지만 출력 하난 끝내줘. 그건 다들 봤지? 공격을 갈라내는 검술을 갖고 있던데 그걸 쓰려면 멈춰야 하는 듯 했고. 검기도 깔끔하니 대단한 수준이고, 음 그와 별개로 판단력 부분은 모르겠네. 자신의 힘을 잘 알고 있는 건지, 아님 자기과신인지 결국 마법은 둘 다 깨졌지만."

스윽, 스윽 툭.

"아야! 잘 좀 빗어봐!"

"해본 적이 있어야 알지"

"너 진짜 머리 긴 여자 애 맞니? 완전 손길이 빗 처음 잡은 애 같애."

"시현이는 원래 봉두난발로 다녔잖아. 되게 웃겼는데."

수연이는 뒤로 묶은 자신의 긴 머리를 풀어 마구 흩트렸다.

마치 옛날 음침한 주술소녀처럼.

"아핫, 맞아. 그러고 다녔지. 처음 잡는 게 맞을지도."

"아휴, 네가 해. 나 삐졌어."

"아아~ 그러지 마~"

잔뜩 볼을 부풀리며 빗을 거두자 유하가 앙탈을 부려왔다.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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