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장송곡, 황천을 걸어갈 그대를 위해 (1)
* * *
대련이 더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더 이상의 대련은 없었다.
실습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각자 선택 수업을 듣기 위해 헤어졌다.
수연이는 쌍검술, 유하는 실용 마법.
나는 전교에 둘 밖에 없을 주술반이었다.
"나 참, 이런 곳에 교실을 박아놔도 되는 거야?"
내가 서 있는 곳은 수업준비실(창고)이 가득한 지하층.
지하층 구석에 처박힌 주술반으로 가기 위해 어두침침한 복도를 걷는 중이었다.
어둠을 견디다 못해 부적에 광光을 새겨 앞을 비췄다.
드러난 복도는 꽤 먼지가 쌓여 있었고, 이따금씩 거미줄도 보였다.
남아도는 청소 당번을 왜 여기로 안 보내는 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왠지 모를 으스스함을 느끼며 마침내 주술반에 당도했다.
주술학 교실
"."
특별히 다른 곳은 아니었고, 그냥 창고였다.
반을 나타내는 표지판도 없이 허름한 나무 문짝에 성의 없이 써갈긴 A4 종이가 하나.
문짝은 자칫하면 갈라질 듯 했고, 창문 따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카데미의 주술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사실 샬롯 스털링으로 주술 트리를 타면 이곳에 꽤 많이 들르게 된다.
때문에 나도 테스트 차원으로 들러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너무하단 생각이 든다.
주술의 컨셉이 아무리 '신비와 비운의 학문'이라지만
나는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당겼다.
기름칠이 안 된 경첩이 음산하게 운다.
광光에서 스피릿을 거두며 안으로 들어가자 나무 박스 위에 놓인 초 하나가 날 반긴다.
아무렇게나 밀어붙인 박스들, 낡고 긴 소파, 그 앞에 있는 탁자 대용 나무 박스, 흔들의자 하나.
소파 위에서 쉬고 있던 선배 한 명과 흔들의자 위에 앉은 선생님, 나무박스 위의 촛불
누가 보면 비밀결사의 모임 장소로 오해할만한 광경이었다.
"뭐야, 넌?"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던 선배가 아미를 찌푸린다.
새하얀 머리칼에 날선 인상.
3학년 빌보드 2위, 언령사 우혜나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서 말했다.
"신입생인데요"
"뭔 개소리야. 신입생이 여길 왜 와."
"주술반이라서요"
우혜나는 잠시 묘한 표정을 짓다가 짜증난다는 듯 노골적인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홱 돌려 흔들의자의 윤범중을 쳐다봤다.
"진짜야? 이게 신입생이라고?"
"맞으니까 가만히 있어라."
"쯧, 귀찮아지겠네."
우혜나의 얼굴이 다시 심드렁하게 돌아왔다.
그녀는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기지개를 켰다.
"으으 저 꼰대랑 같이 있어야 되는 것도 개빡치는데 이젠 되도 않는 수박년까지"
"."
선생은 우리에게 추호도 관심 없다는 태도로 손에 든 서적을 계속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열의 없는 학생과 무관심한 선생.
이게 극정 아카데미의 주술반이었다.
주술반이 이렇게 굴러가는 데는 꽤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주술사의 숫자와 가르침의 어려움에 관련이 있다.
애초에 주술반에 입학하는 사람이 몇 년에 한 명씩인데다, 주술이라는 이적 자체가 다른 마법 등과는 달리 범적인 가르침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윤범중은 장송곡을 주로 사용하는 퇴마사, 우혜나는 언령사, 나는 따지자면 부적술사다.
마법사는 서로의 학파가 다르더라도 마법진 구조 강의 등의 가르침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스피릿을 쓴다는 공통점만 있고 다른 건 다 다르다.
애초에 가르침 따위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라고 해도 어린 아이에게 검도를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저기, 수업은 안 하나요?"
"수업? 무슨 얼어죽을 수업. 너 주술 뭐 쓰는데? 장송곡 쓰냐?"
"부적술 쓰는데요. 장송곡은 이제부터 배워야죠."
"아주 지랄 부적술이나 열심히 해, 멍청아."
물론, 장송곡을 부르는 퇴마사가 부적술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장송곡을 가르칠 수는 있다.
문제는 주술의 매커니즘에 이상이 있단 거지.
영혼은 하나인데, 그 영혼을 다루는 법이 두 가지 이상이면 둘 모두 크게 약해진다.
그렇기에 대체로 주술사들은 하나의 주술만을 익히고 살아간다.
아카데미에서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멋대로 주술반을 편성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나 샬롯은 예외다.
이름: 정시현
진명: 발돋움하는 주술소녀, 스피릿 각성자
특화: 부적술 문자의 기적(B), 제사(A), 검술 기본 도법(C)
나는 애당초 두 개의 주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적술의 위력감소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혼이 깊기 때문에 여러 주술을 익혀도 된다는 뜻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샬롯의 경우처럼.
나는 우혜나에게서 눈을 떼고 윤범중을 바라봤다.
그는 무심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르쳐주세요. 장송곡."
"진심이냐? 굳이 그럴 이유가"
그 때, 혼을 뒤흔드는 비명이 들려왔다.
정제되지 않은 거대한 증오가 갑작스레 나를 덮쳤다.
"[아아아아악!!!!]"
"흑?!"
"이런! 우혜나!! 지금 뭐하자는 거냐!!"
"아, 아니, 이건"
숨이 차오른다.
동공은 점차 흐리게 변하고, 폐가 마구 오그라든다.
갑작스런 언령에 내 심령이 제압 당한 것이다.
"학, 하아, 하악"
"숨 쉬어라! 천천히!"
"하아, 하아, 하아"
식은 땀이 흐르는 등에 손이 올라온다.
손에서 퍼지는 남색의 스피릿이 요동치는 보랏빛 혼을 가라앉힌다.
나는 발발 떨리는 손으로 부적을 적었다.
적어내는 것은 저?.
가까스로 적어낸 글씨가 언어의 폭력을 몰아낸다.
서서히 회복되는 시야를 간신히 들어 우혜나를 쳐다보니,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뒷걸음질치며 가까스로 변명했다.
"아니, 이,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병신호구새끼로 보는 게 하루 이틀일은 아니긴 하다만, 신입생에게까지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아, 아 그런 게 아니라 지, 진짜로"
선생님은 낡은 문을 가리키며 축객령을 내렸다.
"꺼져라. 당장!"
"."
우혜나는 처음의 태도와 달리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교실을 뛰쳐나갔다.
쾅, 하고 닫힌 나무 문이 부서질 듯 삐걱였다.
나는 숨결을 안정시키며 천천히 일어서 그 뒷모습을 쳐다봤다.
***
야외 공원에 숨겨진 한 장소.
세금을 미친듯이 먹는 극정 아카데미답게 아카데미의 야외 공원은 빽빽한 수풀로 가득 차있었다.
우혜나는 가끔 수풀 사이에 나 있는 두 제곱미터 남짓한 공터에 와서는 마음을 달래거나 수업을 빼먹곤 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언령사가 잔디 위에 무너지듯 쭈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자꾸 이게 아니라는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멍청한 년.
"저리 가!"
아직도 털어내지 못했구나, 멍청한 것아.
"아냐, 아니라고!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우혜나의 혼에 기생하던 가문의 망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후배의 입학에 들뜨지 않았니. 다 보인단다.
"싫어 제발, 제발 그만해줘 가문 따위 필요 없다고 했잖아!"
네가 싫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란다, 혜나야. 이젠 받아들일 때도 되지 않았니?
우혜나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가능하다면, 이 씨발좆같은 개좆밥 망령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죽이고 싶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럴 힘을 갖고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그녀는 비참한 심정을 담아 소리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감정에 따라 내지른 언령.
가문의 집착이 빚어낸 악령은 크게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 되도 않는 저항은 그만 둬, 후계님. 그런 일차원적 언령으론 날 못 없애. 응?
"[내게서 떨] 어, 컥!"
이것도 몇번째인지 모르겠네. 참 저능하다니까.
우혜나는 심장을 부여잡고 검은 피를 토했다.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로 미친듯이 쏟아냈음에도 토혈은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우혜나가 당한 금제.
후계를 위대한 가주로 이끌 '성령'이 사라지면, 우혜나도 죽는다.
그 성령이란 것의 실체는 되다 만 잡귀였지만.
참 편하겠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자살할 수 있다니. 요즘 말로는 인스턴트 자살이라 그러니?
"왜, 왜 쿨럭,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흐윽"
악령은 언령사 가문의 가주가 죽자 갑작스레 나타났다.
가주가 되어야한다고 세뇌하듯 속삭이며 괴롭히는 악령이.
아카데미를 잘 다니고 있던 우혜나는 어릴 적 아이스크림 하나와 맞바꾼 금제로 인해 악령에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고, 나름대로 원만한 교우관계를 갖고 있던 그녀는 때때로 악령에게 빙의 당해 친구들에게 비명을 질러댔다.
결국 그녀는 혼자가 되었고,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까칠한 태도를 가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에서부터 부서지기를 일 년하고도 수 개월.
그녀는 새로 나타난 후배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다시금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후배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날 아주 씨발년으로 보겠지? 그 아이도 날 미워할 거야. 나를 피하고, 나를 경멸하고, 날 보며 괴로워하고
"흐윽, 미안해 미안해"
흠, 뭐, 그래. 가주 수업을 받을 용의가 생겼니?
"싫어 싫단 말야!"
그럴 줄 알았지. 쓸데 없이 의지력만 높은 아이라니까.
악령이 다시 우혜나의 내면에 가라앉았다.
열심히 해, 후계.
그녀는 한동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