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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19화 (19/119)

〈 19화 〉 장송곡, 황천을 걸어갈 그대를 위해 (2)

* * *

앞에서 말했다시피, 주술반 교실은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

책걸상은 고사하고 전등도 항상 나가 있는데다 그나마 있는 소파 등의 가구는 교무실에서 버린 걸 주워 온 폐품이다.

하지만 창고라서 좋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면, 교실에 작은 방으로 통하는 쪽문이 딸려 있다는 것 정도.

"들어와라."

선생님은 아무렇게나 쌓인 박스들을 치우고 쪽문을 열었다.

나는 그를 따라 쪽문으로 들어가면서 박스 안을 힐끔 봤는데, 그곳엔 심장이나 수술에 대해 적힌 서적이 가득했다.

작은 방은 교실과 다르게 꽤 깔끔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더 좁아서 그런 건지 양초 하나만으로도 방 전체가 훤했고, 가지런히 정리된 책장과 수납장엔 여러 주술 관련 물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굵은 소금, 오곡, 은검, 그리고 저건 복숭아 나무 목검인가? 잘 모르겠네.'

개중에는 십자가에 염주가 얽힌 정체 모를 도구도 있었다.

"편히 앉아라."

선생님은 방 중앙의 흔들의자에 앉았다.

앉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지만 의자 비슷한 건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잠시 탁자 위에 앉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몸놀림에 꽤 거침이 없군. 치마 차림이면 조금 조심하는 게 어떠냐."

"아."

나는 치마를 입고 양반다리를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무릎 꿇은 자세로 바꿨다.

아니, 이러니까 구도가 이상한데.

나는 그냥 양반 다리를 하고 마이를 벗어 하반신에 덮었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우선 혜나에 대해선 내가 사과하마.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다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조금 놀랐을 뿐인데요, 뭘."

나는 손사래를 쳤다.

우혜나가 이미 악령에 씌어 있다는 건 아니까.

수많은 역대 가주들의 언령이 주박이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는 사실도.

"그래도, 괜찮다면 선배님이 왜 그러셨는 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것 같군. 이해해주면 좋겠어."

"보아하니 평소에도 자주 저러시는 것 같은데,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

눈 앞의 윤범중 선생님은, 어린 우혜나에게 목숨을 빚졌던 적이 있고, 그녀가 악귀에 씌인 몇 년 전부터 우혜나를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는 것도.

"좋다. 자세한 내막은 알려줄 수 없지만, 상태에 대해선 말해주지."

선생님은 그러곤 한숨지었다.

미간을 짚는 손 끝에서 옅은 자괴감이 묻어나왔다.

"혜나는 잡귀에 씌어있다."

"잡귀요? 주술사가 잡귀에?"

나는 모른 체 반응했다.

"그래 악질적이지. 거대한 집착과 미련이 느껴지는데도 격은 어디까지나 잡귀다. 놀라운 건, 심장에 잡귀와 떨어지면 발동하는 금제가 걸려있단 거지. 수많은 언령이 빈틈 없이 꽉 아물려서 심장을 옥죄는 아마 혜나의 집안과 관련된 일일 거다. 나는 그 잡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흔들의자를 움직였다.

한 번 느릿하게 왕복할 때마다 찌걱, 하고 나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흔들의자 뒷편에 걸린 청동방울을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왜 모른 척만 하고 퇴마하지 않으신 건가요?"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거다. 말하지 않았나. 혜나의 심장엔 금제가 걸려있다고. 퇴마를 하면 혜나는 죽어. 그리고 내 힘으론 금제를 풀어낼 수도 없지."

그러면서 그는 들고 있던 책의 겉표지를 벗겨냈다.

드러난 속표지에는 '심전도와 심실중격의 재극성화'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심장의 금제를 제거하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흉부외과 공부를 하고 있다. 주술사, 의사, 신관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거든. 그런데 길이 전혀 보이지 않더군."

"."

"아카데미에 하나 있는 주술학 선생이 제자에게 들러붙은 잡귀 하나 떼어내지 못하다니. 웃기지 않나."

게임 상에선 실제로 윤범중을 충동질해 수술을 집도할 수 있다.

당연히 심장을 열어 금제를 물리적으로 마주하더라도 그걸 풀어낼 방법 따위 없는데다, 금제를 잘라내려는 순간 우혜나의 심장은 터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나는 우혜나의 악령을 떼어내는 법을 안다.

당연하겠지만 쉬운 방법은 없다.

첫째, 내 심장 곁에 있는 칠흑여제의 사랑이나 로엠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을 마해고동 같은 두번째 심장을 몸에 박고 퇴마해버리는 것.

둘째, 영혼에서 악령이 뿌리내린 부분을 통으로 찢어내 금제를 발동시키지 않고 제거하는 것.

셋째, 그도 아니면 현서진을 성장시켜 성광도래 제팔식, 우주홍황????을 써서 금제를 깔끔하게 베어내는 것.

첫째는 일단 심장이 터지는 걸 전제로 하고, 셋째는 현서진이 검성을 뛰어 넘을 때까지 우혜나가 죽지 않게끔 묶어놔야 한다는 게 문제다.

다행히도, 혼을 찢어내는 건 꽤 좋은 해결방책이었다.

악령이 내린 뿌리는 잡귀답게 그리 깊지 않으므로.

사실 게임상에선 우혜나를 살리는 데 너무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데 반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으므로 히든 업적으로 넣은 이벤트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주술사였다.

"그 정 안 되면 금제를 수술로 제거할 게 아니라 아예 혼을 찢어내면 안 되나요?"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이지?"

"악령이 뿌리내린 부분을 찢어내면 안 되느냐고요."

"미쳤군. 사람의 혼을 찢어낸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하지만 그렇게 치면 사람의 심장은 막 다뤄도 되고요? 모르긴 몰라도 제 생각엔 언령사 가문의 금제가 그렇게 허술할 거라곤 상상하기 힘든데요."

"그렇다 해도 네 말대로 혼을 찢어버리는 것보다야 나을 거다."

눈 앞의 남자는 그러더니 흔들의자를 더 크게 흔들었다.

윤범중이 심적으로 동요할 때 나타나는 습관이었다.

물론 혼을 찢어내는 건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혼에 결손이 생긴 사람은 백치가 되거나 광인이 되므로.

하지만 육십사괘??四?가 있다면야 못할 것도 없다.

나는 그의 앞에서 부적을 적어내려갔다.

외괘는 곤?, 내괘는 진?.

땅이 천둥을 감싼 모습.

그것은 땅 밑에서 태동하는 부활의 우레.

즉, 재생. 복원. 순환.

"이건."

"지뢰복?雪?이에요, 선생님."

불타올라도, 휩쓸려도, 꺾여도.

다시 재생하고 마는 자연의 끈질긴 회복력이, 내 손에 담겼다.

선생님은 살짝은 놀란 눈으로 부적을 보다가, 이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신기하긴 하다만, 뭘 하자는 건지 설명해줬으면 좋겠군."

지뢰복?雪?은 금방 사그러들고 말았다.

내 숙련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지뢰복은 죽어라 수련했기에 펼칠 수라도 있는 것이다.

"이걸로 찢어진 혼을 재생하면 될 거에요."

마법이나 신성력 또한 신체의 수복이 가능하다.

주술은 순환을 통한 정상화, 마법은 재생 가속, 신성력은 재창조라는 면에서 현저히 다르지만.

하지만 주술은 영혼의 파장인 스피릿으로 일으키는 이적인 만큼, 영혼의 재생 또한 가능하다.

특히 부적술의 정점인 문자의 기적이라면 더욱 깔끔하고 완전하게 재생하는 게 가능하다.

"혼을 재생한다 확실히 가능해보이긴 하다만, 그 힘이 너무 작지 않나?"

"저는 아직 성장 중에 있어요. 제 혼을 들여다 보셨잖아요? 스피릿으로."

떨리는 혼을 안정시킬 때 분명히 느꼈을 거다.

내 혼의 깊이를, 가능성을.

"그래. 너는 참 깊은 가능성을 쥐고 있더군. 나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래서 장송곡을 가르쳐달라 한 건가."

흔들의자가 멎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숙인 채 제 손에 들려있던 책을 잠시 내려보다, 결심한 듯 책을 뒤로 던져버렸다.

그리곤 내게 고개 숙여 부탁했다.

"좋다, 부탁한다. 장송곡이고 지랄이고 다 퍼줄 테니, 이 미진한 선생을 도와다오. 그 지뢰복이란 걸로 말이다!"

장송곡, '황천을 걸어갈 그대를 위해'가 내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

방과후.

나는 선생님을 따라 야산에 있는 한 허름한 저택에 당도했다.

저택은 버려진 지 수십 년은 된 듯한 모습으로, 깨진 창문들과 자라난 식목들이 그 방치의 세월을 증명했다.

"그래서, 제가 여기를 정화해야한다고요?"

­ 끼아아아아아아악!!!!!

저택 안에서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가 내 말에 호응하듯 이어진다.

입학시험 때 봤던 원귀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원한이다.

"그래. 아무리 네가 혜나를 구할 수 있는 열쇠라곤 해도, 내 장송곡을 아무에게나 가르쳐줄 생각은 없다."

"아카데미 선생님이면 당연히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싫으면 평범한 장송곡을 가르쳐줄 수도 있다만. 그리고 이런 자격 시험을 주는 것부터가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호의에 해당한다. 무턱대고 가르치면 네 혼이 어떻게 될 지 모르거든."

"하아."

실제로 그의 장송곡은 꽤나 위험했다.

영혼을 구슬려서 황천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힘으로 제압해서 황천길에 처박는 쪽에 가까우니까.

실제로 아무나 익혔다간 큰일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위험할 것 같진 않은데"

"내 장송곡이 일인전승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잔말 말고 들어가라. 싫으면 포기하든지."

­끼아아아아아아아악!!!!!!!

아, 젠장.

정상적으로 공략하면 며칠을 있어야 하는 던전인데

선생님은 트렁크에 실어서 가져온 흔들의자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그리곤 그 위에 앉더니 아니나 다를까 느긋하게 의자를 흔들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언제까지요?"

"밤을 샐 의향은 있지만, 새벽 6시까지 나오면 좋겠군. 등교해야 하지 않나."

"저걸 하룻밤 안에 정화하고 나오라고요?"

"물론."

허, 참. 가혹하기 짝이 없구만

나는 크로스백 앞주머니를 가득 채운 소금의 무게를 느끼며 반 쯤 부서진 저택의 대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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