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장송곡, 황천을 걸어갈 그대를 위해 (3)
* * *
귀신.
유령이라고도 불리며, 이 세상과의 고리를 끊지 못해 이승에 남은 영혼을 일컫는 말이다.
대체로 음기와 원한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인간을 습격해 양기와 혼을 뜯어 먹으려고 하며, 드물게 몸을 지배해 새로운 인생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귀신은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섭리를 다루는 멋진 학문인 주술을 미개한 돌팔이 의식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원귀나 스펙터 따위의 인위적이고 격 낮은 귀신들은 인정하면서도, 자연적으로 탄생한 귀신들은 인정하지 않는 이가 대다수다.
"그렇게 치면 마법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참."
이리 와아아아!!!!
"와아아는 무슨, 네가 오크냐?"
입이 찢어진 채 배에서 흘러나오는 내장을 질질 끌고 다니는 메이드 귀신.
격이 낮은 걸 보니 본래라면 성불했어야 할 영혼이다.
이 저택의 음기는 그걸 들어주지 않은 모양이지만.
나는 빠르게 달려오는 귀신을 미나리로 쳐냈다.
그래, 그 먹는 미나리로.
짜악!
흐윽, 흐아아아 아파, 아파
"이건 이제 못 쓰겠네. 다 시들어버렸잖아."
짜악!
흐아아아악!!! 때리지 마아!!!
실체가 없는 귀신을 타격할 수 있는 기묘한 식물인 미나리.
풀 쪼가리 주제에 꽤 큰 구마력을 갖는 채소라 하잘 것 없는 잡귀를 때려잡기엔 제격인 무기였다.
짜악!
흐, 으, 아아
파스스
미나리로 몇 대 얻어 맞던 메이드 귀신은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파릇했던 나물이 완전히 검게 시들어버렸지만.
그래도 미나리는 아직 다섯 뿌리나 남아 있었다.
나는 손에 든 미나리를 휙 던져버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1층 주방의 귀신은 모두 처리한 상태.
나는 다리에 매달린 옅은 빛의 형광봉을 앞세워 로비 쪽을 빼꼼 내다봤다.
"으으음"
저택을 처음 들어갔을 때 마주한 로비는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수많은 언데드와 귀신들이 일제히 이 쪽을 쳐다보는 광경이란.
나는 그대로 뒤돌아 있는 힘을 다해 저택 밖으로 도망쳤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며 놈들을 겨우 따돌린 뒤에야 겨우 부엌 쪽 창문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부엌은 끔찍한 꼴을 하고 있는 메이드와 요리사 귀신이 잔뜩 산재해 있었지만 로비의 귀신들보다는 약했던지라 미나리 하나로 모두 때려죽일 수 있었다.
'아니, 때려죽이는 게 아니라 퇴마지, 퇴마.'
징그러운 몰골을 한 귀신들에게 둘러싸인다는 건 끔찍한 경험이긴 했지만 놈들의 수준이 잡귀에 불과했던지라 큰일이 나진 않았다.
실체가 없어 적당히 맞아줘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원귀가 가득한 로비를 뚫어야할 차례.
나는 조용히 움직여 무너진 찬장에서 그나마 멀쩡한 그릇을 꺼냈다.
4층에 있을 저택의 지박령은 꽤나 강력하다.
그 녀석을 상대하는 데에만 스피릿을 몽땅 털어내야할 듯 하니, 지금은 최대한 스피릿의 사용을 억제하고 소모품으로 승부를 봐야했다.
그릇에 담아낸 건 오신채.
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의 다섯 채소로 불교에서 금지하는 매운 채소들이다.
"화火, 연?."
나는 부적을 이용해 그릇에 담은 오신채에 불을 붙였다.
연?에 덮인 다섯 채소가 뿌옇고 매운 연기를 자욱하게 만들어낸다.
나는 숨을 참으며 그것을 들고 로비 쪽으로 달려들어갔다.
끼아아아아아악!!!
카하아아!
산 자다, 산 자가
곧 나를 눈치챈 수십의 귀신들이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눈 대신 야구공만한 시꺼먼 구멍을 가진 처녀귀신, 전신이 뒤틀려 거미처럼 기어다니는 원귀, 제 몸을 연거푸 손톱으로 찢어발기던 역귀
나는 눈이 매워지는 걸 참으며 바닥에 그릇을 고이 내려놓고 크로스백에서 한 떨기의 미나리를 뽑았다.
"콜록, 콜록 와바랏!!"
조명탄을 챙겨오지 않았기에 미나리에 광光을 붙여 시야를 확보했다.
적절하게 새어나온 눈물 덕에 귀신들의 자세한 외형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일제히 달려드는 수십의 귀신들.
오신채는 아직도 타닥타닥 타들어가며 뿌연 연기를 뱉고 있었다.
먼저 달려든 건 피눈물을 흘리는 원귀 하나.
녀석은 내게 닿기도 전에 연기에 닿으며 무시무시한 괴성을 질렀다.
나는 미나리를 휘둘러 놈의 영체를 찢어버렸다.
커, 으아아아아!!
"으, 진짜!"
이 놈의 귀곡성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나는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끼며 연기 안으로 몸을 숨겼다.
카흐으아 나, 나와!!!!
숨지 말고 나와아아!!! 너도 부서지란 말야!!!
꺄아아아아아!!!
'무서워 죽겠네, 진짜!'
오신채가 다 타들어가기 전에 끝을 봐야한다.
나는 빛나는 미나리를 들고 연기 속과 밖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원념의 합창을 차근차근 지워나갔다.
전염병을 퍼트리는 역귀가 독무를 뿜어냈지만 오신채의 매운 향이 독무를 지워버렸다.
흰 워커에 걸린 긴 머리카락이 발목을 당겼지만 다리에 힘을 줘 버티며 미나리로 잘라냈다.
아직은 부적술이 내 전부인 만큼, 그리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으으, 콜록, 콜록 이거 웬만하면 자제해야겠네"
마침내 향이 꺼지고 미나리가 까맣게 시들 때 쯤.
나는 마침내 1층 로비를 평정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떨리는 다리를 겨우 추스르며 빈 부적에 눈물을 닦아냈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저녁 7시 쯤에 들어온 걸 생각하면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2층과 3층은 별로 귀신이 없는지라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다른 게 있었지만.
몸을 소중히 해주세요.
쨍그랑!
2층에 올라서자마자 칠흑여제의 사랑이 발동됐다.
갑주가 막아낸 건 웬 도자기 한 점.
2층과 3층은, 폴터가이스트가 주로 일어나는 층이었다.
나는 조각들을 툭툭 털어내고 2층을 뒤졌다.
곳곳에 숨은 잡귀들을 퇴마하고 남은 귀금속들을 모조리 쓸어가기 위해서였다.
가져가면 가져갈수록 가구와 잡기들이 내게 맹렬히 덤벼들었지만, 그 때마다 칠흑여제의 사랑이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고마워, 칠흑여제!
별 거 아니랍니다.
2층에 숨어있던 귀신들을 모조리 잡은 후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의 마지막 방은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마지막 방엔 웬 백골이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음기가 가득한 이 저택에서 용케 귀신이나 언데드가 되지 않고 깔끔하게 죽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해골이 꼭 안고 있던 서적을 조심스레 빼어냈다.
[죽은 척(C)]
사람은, 고뇌하는 시체다.
놀랍게도, 죽은 척은 체술이다.
그냥 누워서 숨 죽이는 체술이지만.
생각보다 쓸 일이 많은 만큼 잘 챙겨두기로 했다.
나는 방바닥에 그 동안 쓸어 모았던 귀금속을 늘어놓았다.
죽은 이들이 남긴 것이나 공양했던 물품을 다시 가져가선 안 되는 이유는, 바로 부정한 힘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주술사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었다.
성?을 붙여 저주를 털어낸 뒤, 귀금속 사이에 섞여 있던 조잡한 철사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미숙한 효도(B)]
어버이날, 한 아이는 어머니께 드릴 반지를 만들었다.
이건 참 비극적인 장비다.
미친 살인마가 저택을 휘저은 건 아이가 반지를 만든 어버이날, 그 때였으니까.
아이가 반지를 들고 어머니께 달려 갔을 땐 반지를 끼울 어머니의 손가락은 이미 다 잘려나간 상태였다.
이 반지가 재생력 증강의 효과를 가진 것도 그 때문일까.
뭐, 나는 스토리 담당이 아니라서 이런 것까진 잘 모르겠다.
"."
나는 괜히 워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금속품을 챙겨 4층으로 올라섰다.
***
4층으로 올라서자 눈 앞이 캄캄해졌다.
주변은 마치 눈을 감은 양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으로 덮여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계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안심하고 다시 앞을 보니, 없었던 귀신이 어느샌가 나타나 있었다.
쇠사슬에 묶인 채 몸부림 치는 여성 귀신과 함께.
안녕하신가, 소녀.
"."
어이, 살아 있어? 아, 죽은 건 나지? 핫핫핫핫!
"."
귀신 특유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와 반대되는 껄렁한 말투.
저택의 모두를 하루만에 몰살시킨 살인마, 그가 이 저택을 지배하는 지박령이었다.
그래봤자 1페이즈가 지나면 볼 일이 없어지는 허접이지만.
나는 오신채를 피우며 미나리를 꺼내들었다.
귀신과 대화하는 건 주술사에게 있어서 금기.
내게는 퇴마의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하, 거 참. 건방진 년이네. 살아있다고 그래도 되는 거야? 가뜩이나 죽어서 여기 묶인 것도 서러워 죽겠구만.
"."
오른손에 미나리를 꽉 쥐고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놈은 죽 째진 안광을 구부리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충분히 손 닿을 거리가 되자마자 오른손의 미나리를 던지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천린에는, 송곳니 학살자가 아니라 미나리가 꽂혀 있었다.
사아아아
!
풍신의 바람이 담긴 미나리를 휘둘러 놈의 영체를 베어낸다.
심상찮음을 느낀 지박령이 살짝 뒤로 물러섰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치명타였다.
끄아아아아아!!!!
귀곡성이 울려퍼진다.
놈은 귀신답지 않게 비틀대며 왼손에 들고 있던 쇠사슬을 놔버렸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윽"
쇠사슬에 묶여있던 귀신이 괴성을 질렀다.
그녀를 구속하던 사슬이 풀려나가며 귀신이 몸을 일으킨다.
아, 안 돼! 내 허니가!
미워, 미워, 미워미워미워미워미워미워!!!!!!
여성이 달려들어 남성의 목덜미를 문다.
귀신인데도 피가 튀며 으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
여성 귀신이 살인마 귀신을 뜯어 먹는다.
하이에나가 시체를 뜯는 것처럼 자비 없이 와득와득
다만 그녀는 시체가 아니라 귀신을 씹어 먹는다는 게 조금 다를까나.
까드드득, 까드드
살인마는 식칼로 여성을 있는대로 찌르며 저항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이내 한 줌 비명과 함께 사라진 살인마의 흔적 위로 여성이 일어선다.
산발에 창백한 얼굴, 헐벗은 몸 곳곳에 아로새겨진 폭력의 흔적.
한 때 연인이었던 것의 혼을 씹어먹은 원령이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가녀린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넨다.
살아있어?
"."
살아있느냐고 묻잖아이씨발련아!!!!!
얼굴을 흉측하게 일그러트린 원령이 내게로 짓쳐들어온다.
나는 자욱한 오신채 향으로 몸을 빼며 바닥에 떨궈놨던 송곳니 학살자를 든다.
원령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부적에 글을 적어내려갔다.
구?, 파?, 정?, 성?, 척?, 화火, 공?, 포?, 멸?, 산?
도신에 미나리와 소금을 치고 합?까지.
나는 수많은 부적을 두른 송곳니 학살자를 원령에게 휘둘렀다.
칼은 원령에게 꽂혀 들어갔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윽!"
원령은 저항했고, 나는 계속 칼을 밀어붙였다.
부적들이 일제히 보랏빛으로 타오르며 스피릿을 소모한다.
지금부터는,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의 싸움이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닥쳐, 씨발련아!!!!"
검은 방이 요동친다.
그러더니 어둠 속에서 가구들이 나타나 내 주위를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나는 칠흑여제의 사랑을 켜며 엄습할 충격에 대비해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 물었다.
의자, 침대, 전등, 서랍, 베개 온갖 것이 내 몸을 강타했다.
상반신은 칠흑여제의 사랑이 훌륭히 막아냈지만 다리 쪽은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전쟁걸음이 정강이와 발목을 커버했지만, 오른쪽 무릎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말았다.
"아아아악!!!"
머리 쪽은 그나마 다행히도 먼저 베개가 날아와 부딪힌지라 다른 가구들에 의한 상해를 덜었다.
골이 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으, 아아아아아아아아!!!!!!
원한이 깊어지며 방이 한 차례 더 요동친다.
이번엔 내 몸이 떠올랐다.
나는 칼을 꽉 붙들고 부적에 스피릿을 털어넣었다.
이윽고 내 몸이 알 수 없는 힘에 휩쓸려 방 이곳저곳에 처박혔지만 그건 칼에 꿰인 원령도 마찬가지.
오히려 칼이 마구 흔들리며 원령의 영체를 헤집어 더 큰 피해를 주었다.
그렇게 고개를 잔뜩 웅크린 채 버티기를 몇십 초.
검은 방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아아!
원령의 힘이 떨어져간다.
내 수준에 안 맞게 무리해서 펼친 부적들이 하나 둘 떨어져나갔지만, 나는 더욱 크게 혼을 피워냈다.
그렇게 원령은 쌓인 원한을 모두 소모하고 말았다.
아, 아아
"."
그와 동시에 부적이 모두 떨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크로스백에서 소금을 꺼내 원령의 이마에 뿌려 원령을 소멸시켰다.
이 저택은, 완전히 정화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