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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36화 (36/119)

〈 36화 〉 일어나 죽이거나, 엎드려 살거나 (6)

* * *

망치!

세상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도구이다.

우습게도 만병지왕을 자처하는 검은 세상에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시정잡배들이나 쓰는 무기이고, 멀리서 쿡쿡 찔러볼 줄이나 아는 창은 근접전투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의 무기이며, 애초에 무기조차 아닌 주먹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망치!!

창천을 부수고, 대지를 무너트리는 그 무기!

멀리서 조그마한 화살이나 뾱뾱 쏴대는 궁수, 제 딴엔 지적인 척하며 졸렬하게 불덩이를 날려대는 마법사, 천박하게 노란 종이를 흔들대는 주수리, 그 외의 잡것들!

그 모두의 골통을 공평하게, 단 한 방에, 즉시, 간편하게 까부수는 강철의 은총!!

"누구도 망치 앞에 적수 없으리이이이!!!!"

"…!"

까아앙!!

박지혁이 철봉을 휘둘러 망치를 걷어냈다.

쇠가 부딪히며 섬뜩한 불똥을 튀긴다.

"철봉!!! 아, 좋은 무기지!!! 그래도 망치보단 아냐!!!!"

"미친 놈…!"

저 정도면 망치가 아니라 망치忘?인 것 같다.

험지를 수색하던 박지혁의 무리는 이수아를 쫓다가 채유하와 마주쳤다.

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험지를 돌아다니던 채유하가 혼자일 거라 생각해 우르르 달려들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북쪽 빙하에서 세력을 모은 채유하가 혼자일 리는 없었고, 매복전략에 가감 없이 당한 박지혁의 무리는 여기저기 도망치며 뿔뿔히 흩어져버렸다.

잘못된 선택으로 한순간에 혼자가 된 박지혁 또한 추격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추격자는 대개 이런 실력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람 보는 눈이 좋은 채유하의 선발이었으니 당연하다.

박지혁이 돌아버린 망치 예찬론자에게서 물러나며 무언가를 꺼냈다.

밝디 밝은 빛이 혼연히 점멸하는 유리구슬.

다른 생존자를 사냥하다 주운 섬광탄이었다.

까득, 찌이이잉ㅡ!!!

"끄아악!!! 지엄한 망치의 신이시여!!!"

"흐아압!!"

검붉은 철봉이 공기를 찢는다.

철봉은 훌륭한 궤적을 그리며 상대의 머리에 쇄도했지만, 거짓말 같이 곧추선 망치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섬광탄에 당해 눈을 질끈 감은 사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망치를 든 전사가 감히 눈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하는가!!!"

투박한 망치에 힘이 들어가더니, 철봉이 세게 내쳐졌다.

사내는 우하하, 웃으며 정확히 이쪽으로 망치를 휘둘러왔다.

상체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웃통 벗은 구릿빛 사내.

입학시험에서 원귀에게 그래플링을 시도한 머저리라길래 만만히 봤지만, 그 전투력은 결코 얕볼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흥…!"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한 박지혁이 왼쪽 돌려차기로 사내의 무릎을 부쉈다.

상체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하체를 노린 것이다.

"끄으아악!! 내 신성한 망치를 피하다니, 제법…!"

"좀, 개새끼야, 그 놈의 망치!!!"

빠각!!!

철봉이 사내의 골통을 부순다.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한 사내가 빛무리로 흩어지며 우하하 웃어보였다.

박지혁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봉을 털었다.

"후우, 미친 놈…"

그는 몰랐겠지만, 습격자는 사실 카우디의 견습제자로 현재 아카데미에서 망치질을 수련하는 학생이었다.

'…젠장, 또 있잖아.'

배틀로얄에서 여덟 최우수 학생은 참으로 묘한 위치에 있었다.

채유하나 박지혁처럼 무력과 명성으로 무리를 이뤄 리더가 되거나, 천의린이나 화수연처럼 공포스런 포식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여덟의 위치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보니 여러 도전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신나게 싸움질을 하던 화수연이 무리한 전투로 지친 뒤에는 역으로 사냥감이 되기도 했고, 무리를 잃고 패주하는 박지혁에게도 추적자가 붙었다.

극정 아카데미가 인정한 최우수 학생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큰 영예였으므로.

"나와, 씨발. 나 아직 안 지쳤어."

박지혁이 씹어뱉듯 말했다.

그의 숨소리는 이미 거칠어진지 오래.

당당하게 선언한 것과는 달리, 그는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미안한데, 네가 지쳤든 안 지쳤든 너는 죽어."

녹색 머리카락이 바위 뒤에서 나타났다.

빌보드 2위 채유하가, 직접 박지혁을 잡기 위해 행차한 것이다.

'…노렸구나, 영악한 년. 잡기 힘든 먹잇감은 놓아줄 거라 생각했건만.'

철봉을 꽉 붙든 박지혁이 낭패감을 느꼈다.

채유하는 마법사답지 않게 근접계열에게 큰 승률을 기록하는 강자였으니.

그가 만전이라고 하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상대인 것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나서는 게 좋았을 텐데. 왜 다른 동료가 다 죽고 나서야 나타난 거지?"

"서로의 이익으로 뭉친 무리는 영원할 수 없어. 게임도 슬슬 후반으로 접어드는 것 같은데, 슬슬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야. 겸사겸사 네 힘도 빼고."

"그런 이유로? 네 말만 믿고 날 추격하다 탈락한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채유하가 소리 없이 웃었다.

미안함이라, 어디까지나 개인전인 싸움에서 상대를 탈락시켰다고 미안함을 느껴야할 이유는 없다.

초반엔 독고다이로 싸우는 것보다는 무리를 이루는 게 생존 확률이 높았기에 그리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리를 이루는 게 훨씬 불리하다.

사냥감이 적어지면 그 공격성이 자연스레 내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너처럼 '우리가 남이가~' 하다 뒤통수 맞는 일은 사절이거든."

채유하가 양손에 마법진을 틔워올렸다.

일부러 박지혁을 산맥 깊이 몰아 방해요인을 최소화했다.

그녀는 그저 꽃을 꺾듯이 경쟁자의 목숨을 가져가면 될 일!

최우수 학생이란 변수를 쉽게 제거할 기회를 만든 채유하가 웃음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도망도 못 칠 것 같냐!!"

철봉의 전사가 여분의 섬광탄을 흩뿌렸다.

채유하는 예상했다는 듯이 왼손의 마법을 활성화해 빛을 막고, 나머지 한 손에 들린 마법진을 던졌다.

마법진은 도망치는 박지혁의 등을 쫒아 정확하게 붙어, 그대로 과녁처럼 변했다.

"카에다! 히리샤! 티아나프!!"

그녀의 손에 정이십면체가 떠오르더니 곧 얼음의 창으로 변한다.

허연 김을 내뿜는 창이 과녁을 향해 쏘아진다.

박지혁은 있는 힘을 다해 철봉을 휘둘러 창을 깨트리곤 계속 달려나갔다.

'젠장, 인덕티브 타겟에 맞았어…! 지형이 험한 곳으로 가야…!'

근방의 마법을 끌어당기는 과녁 마법.

지금 당장은 마력으로 과녁을 깨트릴 상황이 안 되니 지형지물이 많은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벌거숭이 산만 가득한 이곳에서 장애물이 있는 곳은 높은 산 뿐.

박지혁은 별 수 없이 산을 뛰어올랐다.

"카에다! 하이츠! 트라이카!!"

전혀 멀어지지 않은 목소리가 시동언을 읊는다.

이번엔, 마력을 두르지 않고는 막을 수 없는 화계 마법이다.

"크윽…!"

차오르는 숨을 삼키고 마력을 끌어올린다.

얼음을 날리는 빙계 마법과는 달리 화계 마법은 깨졌을 때 시전자에게 리바운드가 가니, 시간을 벌려면 무리해서라도 맞서서 깨트리는 것이 옳을 터.

그리 판단한 박지혁이 철봉에 마력을 두르고 봉을 휘둘렀다.

하지만, 채유하가 그 점을 모를 리가 없다.

"흐압!"

푸르스름한 마력을 두른 철봉이 정사면체의 불꽃을 깨트렸다.

아니, 그리 보였을 뿐이다.

애초에 정사면체의 불꽃, 테트라 아르손은 보기와는 다르게 이산적인 불꽃의 집합이니까.

무슨 말이냐면, 이 불꽃은 여느 마법과는 다르게 충격을 가해도 깨지지 않고 모양이 흐트러질 뿐이라는 뜻이다.

"무슨…!"

화아악!!!

"네가 마법 공부에 소홀하다는 건 한참 전에 습관분석으로 알아낸 사실이거든."

타고난 관찰가인 채유하는 늘 주변 환경을 분석에 의식을 할애한다.

박지혁이 마법대응력이 모자라다는 것도, 화난 천의린이 습관적으로 왼쪽 눈썹을 꿈틀거린다는 것도, 정시현이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흔들리는 가슴을 고정하려 의식적으로 팔짱을 낀다는 것도…

헌터로서는 꽤 뛰어난 재능이다.

"큭, 으아아아!!!"

몸에 불이 붙은 박지혁이 산 너머로 굴러 떨어진다.

하지만, 테트라 아르손은 폭발 없이 불만 붙이는 방화계 마법이라 결정력이 조금은 모자라다.

채유하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이런, 절벽으로 떨어졌네."

<14 kill="" (+500)=""/>

<으아악!! 정말="" 끔찍하군요!!="" 마녀를="" 처형할="" 때도="" 불만="" 붙였지,="" 불을="" 붙이고="" 살을="" 지지는="" 고통="" 속에서="" 험한="" 돌산을="" 구르게하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의="" 잔혹함에="" 찬사와="" 함께="" 추가="" 점수를!!!!="" (+444)=""/>

"…하르미아님도 참, 잔혹은 무슨."

<배회자를 잡았군요!="" 바위골렘의="" 잔해를="" 확인해보세요!="" (+1000)=""/>

"???"

채유하가 난데 없이 떠오른 메세지에 눈을 크게 떴다.

***

"수아야아아아!!!!"

"꺄악!! 뭐야!!!"

펑!!

바위골렘이 있는 현장에 도달한 나는 한창 싸우고 있던 이수아에게 석궁을 쐈다.

다른 건 아니고, 부적을 붙인 평범한 물풍선이었다.

갑작스런 기습에 본능적으로 활대를 휘두른 그녀였지만, 특별한 돌멩이 같은 게 아닌 물풍선이라서 물을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적에서 뿌리가 뻗어나왔다.

꽈드드득…

"꺄아아악!!!"

물풍선에 붙인 것은 목?.

오행의 일원인 목?은 수생목???의 묘리에 따라 신선한 물을 뒤집어쓴 그녀의 몸을 뿌리로 얽어매며 급속히 성장했다.

이수아는 빠르게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팔을 타고 올라오는 뿌리를 잘라낸 뒤, 뱀이 허물을 벗듯 입고 있던 바지를 벗어버리고 다리를 붙들어맨 뿌리에서 탈출했다.

거친 나무껍데기에서 다급히 탈출하느라 살갗에 나뭇조각이 박혔지만 그녀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사, 살아 있었구나!? 어떻게!?"

"네가 준 선물은 잘 받았어, 수아야아아!!!"

귀여운 얼굴에 한껏 당황한 빛을 띄운 이수아가 급히 뒤로 물러나며 속사로 화살을 쐈다.

정확히 하반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며 약?을 이용해 사선으로 튀어나갔다.

FPS게임의 금기는 직선무빙이듯, 궁수나 마법사를 상대로 거리를 좁히는 근접계열에게도 직선무빙은 금기이다.

"읏!"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수아가 흰 맨다리를 놀리며 다시 화살을 꺼냈다.

가까운 거리를 의식했는지, 이번엔 무려 세 개다.

그녀가 세 개의 화살을 활에 매기는 것을 보며 손 위에 놓인 부적을 적어내렸다.

"수아야, 정말 섭섭하다!!!"

"미, 미안!! 그걸 맞고도 살아 있을 줄은 몰랐지!!"

피이잉ㅡ!!!

하르미아 시스템이 화살의 경로를 잡아낸다.

예상대로, 대놓고 칠흑여제의 사랑을 피해 하반신으로 날아오는 화살이다.

내가 적은 부적은 약?.

화살에 대응할 수 있는 부적은 아니다.

다리를 움직여 화살 두 개는 피해냈지만 나머지 하나는 허벅지에 꽂히고 말았다.

"윽…!"

고통이 느껴졌지만, 지금 보정률을 낮추는 건 미친 짓이기에 이를 악물고 달려가던 관성 그대로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약?을 짚고 힘껏 밀어냈다.

퍼어엉!!

뛰어오른다는 건, 다리가 아닌 팔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일전에 있었던 유하와 현서진의 대련을 보고 떠올린 활용법이다.

둘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진다.

나는 빠르게 몸을 가누며 칼을 들어 팔을 휘둘렀다.

"죽어라아아아!!!"

"히익!?"

이수아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멈칫대는 반응을 보니, 내 다리에 화살을 꽂아서 이겼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미안하지만, 내가 할 때는 하거든…!'

촤아악!!

활대와 함께 이수아를 베었다.

목 언저리에 치명적 일격을 당한 그녀는 곧 빛무리로 화해 사라지고 말았다.

다리에 화살을 박은 채 공중을 날던 나는 곧 땅에 나동그라졌다.

"으갸악!!"

제대로 된 낙법을 구사하지 못해 땅을 몇 차례 구른 뒤에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허벅지의 화살이 상처를 마구 헤집었지만, 땅을 구르며 보정률을 낮춘 덕에 크게 아프진 않았다.

"이겼다!! 복수 끝!!!"

­ 잠깐만요, 위에!!

"고오오오오!!!"

나는 주저앉아 화살을 뽑으려다 말고 급히 몸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잊고 있던 바위골렘이 내가 있던 곳을 크게 내리찍었다.

저 충격력을 버티다니, 새삼 칠흑여제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장비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 하지만 방해꾼이 사라진 이상, 저 다 부서져가는 바위골렘도 영웅님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죠!!

"……."

­ 영웅님?

"내 부저어어억!!!!"

쿠우웅!!!

골렘이 다시 이쪽을 찍어내렸다.

재차 굴러 공격을 피한 나는 텅 빈 크로스백을 아연히 내려다보다가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약?으로 공중을 날아가던 그때, 부적이 망가진 가방에서 다 새어나가고 말았다.

문제는, 낙법 없이 몇 바퀴를 구르다가 부적이 새어나간 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젠자아아앙!!"

쿠웅!!!

아직 멀쩡한 왼다리로 폴짝 뛰며 부적이 쏟아진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그 길목을 골렘이 완벽하게 차단하며 내게 위협을 가했다.

부적이 없는 나는 놈에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다.

장송곡이 바위에게 먹힐 리 만무할 뿐더러, 다리에 화살이 꽂힌 채로 바위골렘을 마무리할 수 있을 만큼 내 칼질은 뛰어나지 않으니까.

'다리라도 멀쩡했다면 그냥 때려 죽이면 되는 건데…!'

이렇게 창피하고 무력한 죽음이라니…

나는 처참한 심정으로 칼을 뽑았다.

그 때, 하늘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끄아아아아!!!!"

"고오오오오!!!!"

콰지지직!!!!

하늘에서 난데없이 불타는 사람이 떨어지더니, 골렘을 박살냈다.

떨어진 사람은 빛으로 변했고, 전신에 금이 간 골렘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곧, 그곳에는 큐브 하나와 불타는 바위만이 남고 말았다.

"???"

나는 넋을 놓고 휴먼 미사일이 만들어낸 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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