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40화 (40/119)

〈 40화 〉 일어나 죽이거나, 엎드려 살거나 (10)

* * *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샬롯이라지만 200명 중 30명을 혼자서 싹 다 쏴죽이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하지만, 온몸으로 부정한다고 해서 '샬롯 스털링, 30킬'이라는 글귀가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었다.

존버 외에 무언가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30킬.

데스카운트 300초 추가.

기본 데스카운트까지 합치면 샬롯은 무려 360초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 데스카운트는 330초니까… 이대로 버티면 내가 진다.

'이렇게 되면… 내가 이기는 수는 둘.'

샬롯이 죽거나, 내가 더 죽이거나.

앞으로 샬롯이 킬을 더 올리지 않는다 가정하면 내가 4명을 더 죽였을 때 확실한 우위를 갖게 된다.

"……."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야 하나?'

'아냐. 진정해, 시현아. 상식적으로 샬롯이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그래, 킬수가 제일 많으니까 공공의 적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기지. 샬롯은 죽을 거야!'

'근데… 만일 데스카운트를 믿고 숨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가뜩이나 발빠른 샬롯인데?'

'그건… 답이 없지?'

"이런 젠장."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 무엇을 해야 내가 우승할 수 있을까.

우선 내가 생존자를 죽여 데스카운트를 늘리는 건 터무니 없는 탁상공론이다.

지금의 나는 부적이 겨우 11개 밖에 없고, 혼자 대책 없이 싸움을 걸고 다닐 정도로 강하지도 않으며, 샬롯이 추가적인 킬을 만들어낸다면 4킬 정도로는 이길 수 없다.

'아예 눈 꽉 감고 버텨?'

이건 차라리 2위라도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리도 완벽하게 역경을 돌파해놓고, 2위로 안주한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억울하고 서러워서라도 1위를 해야겠다.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그래도, 다른 누군가가 샬롯을 죽일 가능성이 높다면… 버티는 게 제일이긴 한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샬롯이 의린이나 수연이 같은 애도 아니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이상은 온 힘을 다 해 존버를 할 거다.

더욱이 샬롯은 1학년 내에서 가장 기동력이 좋은 학생이니, 다른 생존자들이 이 악물고 달려든다 해도 못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황을 타파할 전략을 찾으며 낑낑대던 내게 셀레스티가 말해왔다.

­ 저기, 그 친구가 엄청 빠르다 했죠?

"…그렇지?"

­ 제가 옛날에 인간의 역사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옛날에 인간이 사슴을 어떻게 사냥했는지 나와 있더라고요.

"사슴? 그냥 주먹도끼나 투창 던져서 잡은 거 아냐?"

­ 훗!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요!! 어떻게 잡았게요?

"…어떻게 잡았는데?"

셀레스티가 등 뒤에서 한껏 펄럭이더니 당당하게 외쳤다.

­ 그야, 지쳐 쓰러질 때까지 따라 붙어서 잡았죠!!

***

작전명, 사슴 사냥.

셀레스티의 의견을 받아들인 나는 그렇게 20분을 멍하니 기다렸다.

겨우 20분이 지나고 10분이 남았을 때, 지도의 빨간 점은 겨우 11개만이 남아 있었다.

생존을 위해 모였던 무리는 끝이 다가오자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았고, 덕분에 생존자 무리는 더 이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의 형세는… 정말 살얼음판 같네.'

11개의 점이 서로 적절히 떨어진 거리를 두고 못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싸운다면 그쪽으로 하이에나가 몰려올 게 뻔하기에 도저히 먼저 싸움을 걸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미묘한 균형도 결국 깨질 수 밖에 없다.

'데스카운트가 적은 쪽이 먼저 움직일 거야.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견디다 못해 남을 잡으러 가는 놈들은 시간이 없는 쪽, 그런 놈들을 피해 도망치는 쪽은 시간이 많은 쪽이야.'

그러니까 균형이 깨졌을 때 맞서 싸우거나 싸움터로 향하는 이들은 시간이 없는 생존자다.

당연히 그쪽은 상대해줄 이유가 없으니 무시하고 도망치는 쪽을 유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러다 샬롯의 위치를 특정해내면, 추격한다.

그냥, 앞뒤 안 재고 미친 년마냥 추격한다.

아무리 멀리 가도, 아무리 강한 저격을 날려도.

계속 추격하고, 추격하고, 추격해서…

샬롯이 지칠 때까지 추격한다.

그게 내 작전이다.

사실 작전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샬롯을 잡는데는 이만한 작전이 없다.

샬롯은 빠르지만 체력이 엄청 좋은 편도 아닌데다 계속 쫒다보면 필연적으로 하이에나가 개입해 추격에 도움을 줄 테니.

물론, 이건 내게도 큰 위험이 닥칠 수 밖에 없는 작전이다.

샬롯이 도망치며 쏘는 화살을 맞으면 그대로 끝인데다 하이에나가 샬롯에게만 붙는 것도 아니니.

심지어 내 체력이 샬롯보다 근소하게 좋다곤 해도 결국 거기서 거기니 상황에 따라 내가 먼저 누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샬롯을 죽이는 데 총력을 다한다…!"

­ 멋있어…!

우선, 샬롯의 위치를 특정해야 한다.

도망자가 샬롯만 있지는 않을 터.

순위 방어를 위해 도망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의 샬롯은 그런 도망자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이동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 그 첫째요, 긴 거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 그 둘째니.

이 특성을 이용해 지도에서 샬롯을 구분해야 한다.

'움직인다…'

5분이 남았을 때, 비로소 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한 점이 근처의 점에게 향했고, 이윽고 만난 두 점은 서로 겹쳐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의 또 다른 두 점이 그 쪽으로 향했고, 열심히 싸우던 둘은 하이에나를 보더니 각기 다른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둘에게 한 명씩 추격자가 붙으며 형국이 격변했다.

나머지 장소에서도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쪽으로도 오는구나. 그보다 샬롯으로 추정되는 건 둘이야.'

북서쪽에 하나, 북쪽에 하나.

둘만은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하… 찾았다."

북서쪽의 점을 추격하던 점이 갑자기 멈추더니 사라진다.

저격에 맞은 것이다.

"서북쪽… 기다려라…!"

이 주수리가 간다…!

삽시간에 동굴을 뛰쳐나와 협곡을 올랐다.

반대쪽 절벽에 창을 든 누군가가 보인다.

그는 나를 보더니 협곡을 뛰어넘기 위해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빌보드 4위, 이원.

날 잡으러 온 건 바로 그였다.

그에게서 눈을 떼고 서둘러 절벽을 올라 땅을 디뎠다.

부적을 적고, 다리에 붙인다.

적는 것은 빠를 속?.

그 동안 다리가 멀쩡할 새가 없어서 쓰지 못했지만, 속?은 사슴 사냥에 필수적인 주술이었다.

땅을 딛는 다리의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진다.

극적으로 빨라지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이원 따위는 무시하고 달릴 수 있다.

그대로 돌산을 내달려 서북쪽으로 향했다.

이원이 나를 쫒는 듯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우월한 속력을 유지하며 거리를 벌려 떼어냈다.

가뜩이나 좁은 험지였기에, 작정하고 내달리자 1분만에 샬롯에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도상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껏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정신을 일깨웠다.

'자, 이 정도면 나를 눈치 챘을 테지…!'

바람이 스친다.

몸을 한껏 숙이고 사선으로 계속 내달린다.

팔뚝을 내밀어 머리를 가리고, 샬롯이 있는 곳을 바라본다.

[보정률: 20%]

샬롯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시위를 한껏 당기고 날 겨누고 있었다.

저 한 방만 어떻게든 흘려내면 작전의 반은 성공이다.

피이이잉ㅡ!

바람을 실은 화살이 내게로 향한다.

내 예상 경로를 완벽히 꿰뚫은 화살이다.

하지만, 저격수를 먼저 발견한 이상은 도저히 맞아줄래야 맞아줄 수가 없는 저격이다.

달리던 속력 그대로 땅을 세게 박찼다.

내 신형이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화살을 빗겨냈다.

나는 공중제비를 돌던 관성 그대로 땅에 착지하며 계속 내달렸다.

"……."

샬롯은 저격이 빗나가자 냉큼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며 화살을 퍼부으려는 낌새가 보이길래, 부적을 적어 대응하기로 했다.

적는 것은 헛보일 환?.

내 모습이 살짝 흐트러져 보이는 효과를 낳는 주술이었다.

"…!"

암만 샬롯이라 해도 도망치면서 속사를 당겨 날 정확히 맞추기는 힘들 터.

예상대로 화살을 매기던 그녀는 일렁이는 내 모습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고 활을 내렸다.

이제 반격의 여지도 없앴으니, 계속 쫒기만 하면 된다.

'자아, 누가 먼저 지치나 볼까…!'

그렇게, 우리는 계속 내달렸다.

샬롯은 계속 도망치며 정령으로 나를 공격하거나, 먼저 앞으로 달려나간 뒤 자리를 잡고 저격을 해보는 식으로 날 멈추려 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내 약점을 모르는 정령의 공격이야 칠흑여제의 사랑으로 받아내면 그만이었고, 저격은 내가 눈을 부릅 뜨고 있는 이상 맞아줄 이유가 없었으니.

중간중간 다른 생존자를 마주칠 뻔하기는 했지만 샬롯도 생존자와 마주치는 건 사양이었는지 계속 생존자가 없는 쪽으로 내달렸다.

그건, 결코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추격전을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금지구역이 설정 되고 말았다.

<이제 섬에="" 안전구역은="" 없어!="" 세상에,="" 이렇게="" 길게="" 싸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데스카운트: 5m="" 29s=""/>

각자의 머리 위에 남은 데스카운트가 떠오른다.

지도를 힐끗 보니, 남은 생존자는 5명.

아마 추격전을 하는 둘을 빼면 유하, 이원, 현서진 셋이 남았을 터였다.

이제부터 진짜 사슴 사냥의 시작이다.

'현서진은 그 동안 킬을 안 했으니 제일 간절하게 나올 수 밖에 없어. 무기의 제한해제를 했을 리가 없을 테니 저 멀리서 싸우고 있는 유하나 이원보다는 우리를 노리러 올 거야…!'

만일 내 추측이 맞다면, 현서진은 우리의 추격전에 끼어들 터.

그렇다면 누구를 쫒아오냐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건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

나는 쫒고 있고, 샬롯은 쫒기고 있다.

당연히 현서진의 사냥감은…

'샬롯이다…!'

번쩍ㅡ!

빛무리와 함께 나타난 현서진의 혜성임세???世가 샬롯의 앞을 가로막는다.

지친 기색이 완연한 샬롯은 기함해서 방향을 틀었지만, 그의 공격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읏…!"

허리를 노리고 들어간 검이 샬롯의 옆구리를 찢는다.

위력제한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위력제한이 없었다면 단숨에 허리가 동강났을 일격이다.

"흐아아압!!"

시간이 20초 남짓 남은 현서진의 검이 높이 올라간다.

땅을 세게 박차 샬롯에게 몸을 던진 그가 붉게 타오르는 검을 땅에 내리찍었다.

그 일격은, 명백한 검격이었음에도 믿을 수 없는 타격력을 품고 있었다.

성광도래?光??, 제오식?五?.

유성타지????.

부상으로 속력이 크게 죽은 샬롯에게 자비 없는 검기가 쇄도한다.

그것은, 대지를 부수는 유성.

샬롯은 재빠르게 굴러 검을 피해냈지만 그 충격파에서 완전히 무사할 수는 없었다.

콰아아아아ㅡ!!!!

땅이 무너지듯 부서지며 거대한 반구 모양의 폭발을 자아낸다.

부서진 땅의 파편이 한가득 공중에 떠오르며 위압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지도를 봤다.

샬롯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짤랑… 짤랑…

­ 샬로오옷!!!

­ 알록달록아아!!!

­ 다, 다쳤잖아… 으앙…

방울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수많은 정령이 모여든다.

이윽고 폭발로 인한 먼지구름이 걷히자, 폭발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샬롯이 나타났다.

그녀는 주변에 수많은 정령을 거느리고 눈을 부릅뜬 채 현서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원시의 힘으로 이성을 흐린 뒤 감정과 직감을 끌어올린 것이다.

'…됐어. 끝났네.'

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역방향으로 도망쳤다.

샬롯이 원시의 힘을 켜버리고 현서진에게 맞서기로 한 이상은, 그녀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이성이 남았다면 현서진의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을 텐데.

'둘 다 죽겠네.'

등 뒤로 태양빛과 정령이 맞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령의 비명소리가 공간을 메웠고, 지도에서 점 하나가 사라졌다.

샬롯이 현서진의 검에 죽고 만 것이다.

'그래봤자, 현서진에게 남은 시간은…'

고개를 힐긋 돌려 현서진을 봤다.

현서진의 머리 위에 뜬 카운트는 약 10초.

샬롯이 조금만 더 늦게 죽었어도 현서진은 그대로 터져 죽었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지."

이미 샬롯이 죽고 나서 10초가 다 됐으니.

그와 함께, 지도에서 점이 하나 더 사라졌다.

사슴 사냥의 끝이다.

'다 이겼다.'

마침 유하와 이원의 싸움도 끝이 난 듯 했다.

나는, 그대로 하나 남은 점에게서 도망쳤다.

"시현아아아아아!!!!!"

나는 절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 멀리서, 전과 같이 만신창이가 된 유하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으니.

익숙한 소각의 창이 내게 달려든다.

"아하하하하하!!!!"

나는 거대한 열기를 등지고 숨을 할딱이며 달렸다.

이미 크게 지친지라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또 다시, 그 협곡에 닿았으니.

그대로 아래에 몸을 던지며 크게 외쳤다.

"내가!!!! 이겼다!!!!!! 멍청이들아아아아!!!!!!!"

<데스카운트: 1m="" 40s=""/>

<우승자: 정시현=""/>

<축하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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