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42화 (42/119)

〈 42화 〉 무기여 잘있거라 (2)

* * *

암살부.

뭔가 굉장히 뒤가 구릴 것 같은 이름이지만 이미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건전한 동아리로, 주로 은신이나 잠행, 암기술 등을 다루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암살부는 타 동아리와 다르게 공터에 마구잡이로 쌓인 녹슨 컨테이너 다섯 개를 부실로 사용한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함을 불허하는 부원들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까닭이었다.

"되게 범죄조직 아지트 같이 생겼다! 삼류 양아치들이 본드나 불고 있을 것 같은 장소야."

"글쎄? 진짜 그러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내부를 밖에 공개한 적이 없으니까. 그나저나 그런 애들이 암기 던져보러 왔다고 하면 받아줄까? 쫓겨날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을 거야. 첫인상과는 다르게 친절한 분위기라 들었으니까. 정령부만큼은 아니겠지만."

스프레이로 주요 부실이라 적힌 컨테이너로 다가가 벽을 퉁퉁 두드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벽이 자동으로 스르르 내려가며 그 속을 드러냈다.

컨테이너의 안은 상당히 어둑하고 음침한 분위기였는데, 한 쪽 벽엔 곰팡이까지 슬어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제각기 다른 복장을 입은 네다섯의 부원들은 진짜로 본드라도 부는 양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시시덕대고 있었고, 부장으로 보이는 단발의 여성은 푹신한 안마의자에 늘어진 채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여러모로 정말 수상해보이는 광경이다.

"…친절한 분위기라고? 이게?"

"에이,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말고. 들어가보자."

나는 긴장한 기색의 둘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느긋하게 새하얀 연기를 뿜어대던 단발의 여성이 우리에게 눈동자를 돌렸다.

"…너희들은 뭐니?"

"그, 암살부를 체험하러 왔는데요."

"체험? 왜애…?"

"여러 무기를 경험해보고 있는데, 암기를 좀 써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졸린 눈을 하고 허파 속의 연기를 화악 뱉어낸 여성이 주머니에서 웬 주사위를 꺼냈다.

그러더니, 구석에서 킥킥대는 부원의 뒤통수에 냅다 던져버렸다.

따악!

"악!!"

"부루마블 그만하고 얘네 좀 안내해… 암기 던지러 왔대…"

"아으, 잠시만요. 이것만 끝나고… 잠깐, 주사위 하나가 어디 갔나 했더니 부장님이 갖고 계셨습니까!? 대체 언제 가져가신 겁니까?"

"너네 부루마블 하는 거 보기 싫어서 훔쳤는데… 어떻게든 남은 하나로 꾸역꾸역 하더라… 집념 하나는 정말 끝내줘… 그치이…?"

암살부 부장이자, 3학년 빌보드 4위.

권하율이 왼손에 들고 있던 시가를 던졌다.

"으악! 그만 던지십쇼! 보드판 탈라!"

"우우~ 외부인 앞이라고 멋부리지 마요!"

"불평하지 말고 가아… 얘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부장님 말이 옳다! 파산했으면 일해야지."

"으, 네에…"

보드게임이라는 참으로 건전한 놀이를 하고 있던 부원은 죽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지개를 펴는 꼴을 보니, 어지간히도 오래 앉아 있었나보다.

그 모습에 잠시 벙쪄있던 유하가 권하율에게 물었다.

"…부활동에 부루마블도 있어요? 그, 걸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RPG게임애서 암살자는 행운을 올리잖아… 저건 행운 수련이야… 애들이 하도 힘들어하길래 넣어줬어…"

그러니까, 부원들이 힘들어하길래 행운수련의 명목으로 부활동애 보드게임을 넣어줬다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비리에 할 말을 잃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안마의자에서 일어나 신발굽으로 바닥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바닥에서 철컹이는 소리가 나더니 곰팡이 핀 벽이 내려가며 옆쪽에 이어진 컨테이너 내부를 드러냈다.

"오, 오오… 개멋있어…!!"

"하하하, 우리 건물이 좀 멋있긴 합니다. 전부 부장님의 취향이죠."

"맞아. 취향 되게 유치하지 않아?"

"너어… 쓸데 없는 소리하지 마…"

이윽고 방에 환한 불이 켜지며 분위기가 밝게 변했다.

환풍기가 돌아가며 자욱한 담배연기를 삽시간에 몰아내고, 황동색 축음기에서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부실이 음침한 폐컨테이너에서 고풍스러운 접객실로 일변하는 순간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바라보자, 어느새 깔끔한 교복복장이 된 남성 부원이 눈을 찡긋거렸다.

"어디 가서 이런 거 말하지 마세요. 소문 나면 부장이 또 갈아엎거든요."

"야아…"

"자, 투척연습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옆 컨테이너로 넘어갔다.

거기에서 뭔가를 또 건드리자 책장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아래에 숨어 있던 지하계단을 드러냈다.

참으로 공들인 구조였다.

유하가 철컹이는 기계장치를 흥미 있게 보더니 부원에게 물었다.

"이거 되게 신기하네요. 만드는데 얼마 들었어요?"

"듣기로는… 사천만원? 네, 사천만원 정도 들었을 겁니다."

"세상에, 그걸 다 부장님 돈으로 한 거에요?"

"네. 돈이 엔간 많으시거든요."

'권하율이 엔키트의 후계라는 건 공공스런 비밀이긴 하지.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엔키트는 한국의 4대 길드 중 하나로, D급 정도의 약한 헌터부터 A급에 달하는 최고급 헌터까지 아우르는 거대길드이다.

던전 토벌이나 전선 출진 등의 수단으로 돈울 벌어들이는 타 길드와 다르게 의뢰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길드인데, 별 것 아닌 고양이 찾기 의뢰부터 대규모 던전소탕 같은 큰 의뢰까지 돈만 있으면 모두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해결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길드이기도 하다.

'그런 길드의 후계자니 돈이 없을 수가 없지. 정작 권하율은 엔키트 길드장보단 헌터 생활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자, 위에 있는 컨테이너보다 훨씬 큰 지하 훈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갖가지 모양의 투척형 암기 뿐만 아니라 클로, 창포검, 심지어는 너클반지와 톤파까지…

품 속에 숨길 수 있는 무기는 다 진열해놓은 긴 진열대 너머론 작은 사람 모양 과녁과 허공을 나는 표적 등의 훈련기구가 잔뜩 널려 있었다.

"와아, 무슨 무기가 이렇게 많아요?"

"암기란 여러 형태가 있으니까요. 암기마다 자신의 손에 맞는 게 있고 안 맞는 게 있으니 모두 배치해 놓은 겁니다. 숨길 수 있는 근접 무기도 암기의 범주에 들어가니 비치해둔 거고요."

수많은 냉병기가 자랑스레 날을 번쩍이는 광경을 본 나는 홀린 듯이 진열대로 다가가 손도끼와 침형 수리검을 집어들며 부원에게 물었다.

"이거… 던져봐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이쪽 말고 저쪽에요."

흔히 토마호크라고 불리는 손도끼를 공중에 던졌다 받았다.

손에 착 감기는 무게감이 기분 좋다.

'…좋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팔을 뒤로 뺀 뒤 허리와 어깨를 한껏 비틀고 시선을 과녁에 고정했다.

하르미아 시스템으로 과녁에 초점을 맞추고,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렇게, 도끼가 내 손을 떠났다.

파각ㅡ!

깔끔한 사이드암으로 던진 도끼가 상당한 회전력을 싣고 과녁에 날아가 박힌다.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과녁이었음에도, 정중앙에 깔끔하게 맞힐 수 있었다.

"오!! 엄청 잘 던지십니다? 혹시 투척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아뇨… 처음 던져보는데."

부원의 칭찬에 머쓱하게 웃으며 손의 감각을 되새겼다.

이번엔, 침형 수리검이다.

'젓가락 던지기라… 회전이 들어가면 안 되겠지.'

그래서 손목을 딱딱하게 굳혔다.

침형 수리검은 손목스냅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궤도가 비틀릴 테니까.

때문에 침형 수리검은 사용 난이도가 꽤 높은 무기이기도 했다.

팔을 휘둘러 젓가락 같이 생긴 침형 수라검을 던졌다.

퍽ㅡ!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명중.

손맛이 아주 예술이다.

내 모습을 보던 부원은 꽤 놀란 표정으로 과녁을 바라봤고, 유하와 수연이는 감탄한 표정으로 내게 박수를 쳤다.

"와아!! 저거 원래 저렇게 잘 맞는 거야? 나도 해볼래!"

"저건… 그냥 재능의 영역인 것 같은데? 가뜩이나 손재주 없는 네가 잘도 맞추겠다."

"야!! 나도 한다면 하는 여자거든! 줄여서 한…!"

"엣흠, 그런 말 하지 말고. 나도 한 번 해봐야지."

진열대로 간 수연이가 망설임 없이 차륜형 수리검을 한아름 들고 왔다.

흔히 닌자스타라 불리는 별모양의 날붙이였다.

수연이는 내 곁에 서서 제 나름대로 자세를 연구하다가 힘껏 수리검을 던졌다.

물론, 잡는 법부터 엉망이었던지라 수리검은 과녁에 맞기는 커녕 땅에 곤두박질쳤다.

내가 그 모습을 보며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수연이는 침착하게 자세를 수정하고 다음 수리검을 던졌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나고 말았다.

"음, 흠! 뭔가 이상한데? 이건 공기역학적으로 무슨 문제가…"

"너 진짜 손재주 없구나."

"뭐? 그럼 네가 던져봐! 이거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알았어. 음… 대충 이렇게 던지면 되나?"

엄지와 검지로 칼날을 잡고, 회전을 실어 던진다.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간 수리검은 이번에도 깔끔하게 명중했다.

내가 이런 데에 재능이 있었다니.

…하르미아 시스템의 보조가 크긴 했지만.

"이, 이럴 수가… 내가 못하는 것도 있다니…"

"아하하, 넌 천상 검사니까. 시현아, 이것도 한 번 던져보지 않을래?"

"응? 이건…"

유하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다름 아닌 투창이었다.

"투창…?"

"이것도 왠지 모르게 있더라고. 던지는 거라서 그런가?"

그녀에게서 투창을 받아들었다.

언뜻 보면 작살 같기도 한 그것은 생각보다 꽤 가벼운 무게를 갖고 있었다.

"아, 그것도 암기입니다. 접이식이거든요."

"접이식이요? 투창이 접이식?"

"사실 암기투척 한 방으로는 표적을 즉사시키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투척무기를 쓰는 사람들은 살상력이 높은 투창 몇 개 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게 일상적이죠."

부원이 내게서 투창을 받아들더니 투척 준비자세를 취했다.

창을 옆으로 들고 몇 보 도움닫기를 딛던 그는 한 바퀴 돌며 창에 관성을 준 뒤, 그대로 던졌다.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투창은 나무 과녁을 완전히 꿰뚫어버리며 그 파괴력을 과시했다.

"이렇게 던지는 겁니다. 살상력이 높아서 결정타로 많이 쓰곤 하죠."

"오… 근데 위험해보이네요. 자칫 옆으로 날아갈 수도 있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초심자는 투창을 못 배웁니다. 투검으로 감을 익히다가 어느 정도 감을 잡으면 그제서야 투창을 배우는 식이거든요."

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완전히 꿰뚫린 과녁을 바라봤다.

확실히 저게 있다면 암기의 부족한 살상력도 커버가 가능하리라.

'…암만 생각해도 마음에 드는데.'

투척이라.

몸 곳곳에 숨길 수 있기에 선제공격에도 유리하고, 거동이 불편해지지도 않는다.

또한 손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무기라 부적을 적기도 쉬워지며, 바쁜 전투 중에도 얼마든지 발도술을 행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무기라는 게 마음에 든다.

단점이라면 살상력이 낮다는 것 정도가 되겠지만, 그건 부적술과 발도술, 투창으로 커버가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원에게 말했다.

"저기요."

"네."

"입부신청서는 어디 있죠?"

***

기숙사.

셀레스티가 천 귀퉁이로 단검을 쥐고 흔들었다.

­ 그래서, 이걸 제가 잡고 있어야 한다고요?

"응. 하는 게 없으면 그거라도 해야지."

­ 아니!! 저보고 하는 게 없다니요!! 영웅님의 위상을 드높여주고 있잖아요!!

"위상을 높이긴 무슨, 망신을 주는 거겠지."

­ 뭐, 뭐라구요!?

그날, 나는 검도부를 탈퇴하고 암살부에 들어갔다.

그 후 밖을 돌아다니며 암기술에 필요한 이런저런 물품들을 샀다.

부적과 암기를 걸어 놓을 홀스터와 긴 코트, 장갑 따위를 말이다.

­ 아니이!! 아무리 그래도 영웅의 파트너인 제가 품 속에 이런 날붙이들을 숨기고 있어야 한다고요!? 성검의 손잡이에 묶여 있으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후우, 정의를 행한다는 건 항상 꽃밭을 걷는 일은 아니지."

­ 그, 그런 멋있는 말로 꾀려고 하지 마요!

셀레스티는 그렇게 툴툴대면서도 결국 내 요청에 따라 작은 투척용 단검 네 개를 천 속에 숨겼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천을 휘날리는 모습이 꽤 감쪽 같았다.

"오, 잘 숨기는데?"

­ 그쵸? 훗! 못하는 게 없어서 탈이긴 하죠!

칭찬 한 번에 태도를 손바닥 뒤집 듯 바꾼 셀레스티.

그 모습이 재밌어 피식 웃고는 레그 홀스터를 몸에 착용했다.

부적을 넣는 용도로 새로 장만한 것이다.

­ 와, 뭔가 섹시한데요? 매끈한 허벅지를 조이는 홀스터라니! 혹시 미인계를 쓸 생각은 아니죠?

"아이씨. 되도 않는 소리 할래? 그냥 편해서 착용한 거거든?"

치마를 입고 레그 홀스터를 착용하니 의도치 않게 다리를 부각하는 효과를 낳았다.

허벅지살이 눌리는 게 겉으로 보여서 더더욱…

레그홀스터에 부적다발을 끼워 넣은 뒤 긴 코트를 걸쳤다.

검은 코트 안에는 수많은 은빛 쇠붙이들이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는데, 개중엔 암기 뿐만 아니라 연막탄 같은 전술용 무기도 있었다.

천린을 허리에 차고 전신거울을 마주했다.

그곳엔 꽤 맵시 있는 모습을 한 자안의 소녀가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중2병 감성이라 해야 하나?

­ 멋있어요!! 어반판타지에 나올 것 같은 현대적인 검객? 딱 그 모습이야!

"그러게. 망토만 없었어도 그랬을 텐데."

­ 뭐요!? 낭만 있잖아요, 낭만!

제자리에서 몇 번 콩콩 뛰어봤다.

코트가 묵직하게 흔들린다.

더러는 쩔럭쩔럭하는 소리도 났는데, 이 점은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대강의 움직임을 멈추고 착용했던 장비들을 벗었다.

사실 암기술을 제대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설레발을 쳐서 구매한 거니, 이것들을 입고 다닐 때는 아직 아니다.

그리고 검무를 익힐 기회가 온 나로선 검술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으니.

품 속에서 하르미아가 건넨 종이를 꺼냈다.

가소희가 내게 보냈다는 편지다.

편지는 한국 칠성이 한낱 아카데미 학생에게 보냈다기엔 너무나 간절한 요청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긴, 편지에 따르면 천이백억원 상당의 돈이 걸린 문제였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죽음의 무도가 가소희 거였다니…"

수연이가 신발가게에서 샀던 새빨간 킬힐.

죽음의 무도는 다름 아닌 가소희의 소유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