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47화 (47/119)

〈 47화 〉 무검희, 가소희 (4)

* * *

하수도 속은 꽤나 쓰레기 같은 냄새가 났다.

온갖 오수가 모여드는 곳이니 쓰레기 같은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아무튼 쓰레기 같았다.

쓰레기 같은 걸 쓰레기 같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리라.

하수도 속은 전등이 제대로 켜지지도 않아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그 어둠 사이로 들려오는 하수도의 물소리와 괴물 물고기의 울음소리는 은연 중에 공포감을 자아냈고, 땅의 질척한 감각은 온갖 상상력을 자극하며 두렵게 달라붙어 왔다.

"여기에요."

파아아ㅡ

어느새 월왕구천을 꺼내든 가소희가 검기로 어둠을 밝혔다.

그 은은한 복숭앗빛으로 드러난 하수도의 민낯은 꽤나 잔혹했다.

무언가에 의해 전신이 잔혹하게 찢겨죽은 거대 쥐의 사체가 하수구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모두 거칠게 찢겨 죽은 건 기본이고, 투박하게 씹어먹혀 벌건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체도 수없이 널려 있었다.

그 광경에 눈을 한껏 찌푸리며 내가 디디고 선 바닥을 힐끔 봤다.

전쟁걸음에 채인 질척한 감각은 다름 아닌 쥐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구불텅한 뇌조각이었다.

"히야아아아악!!!!!"

"뭘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4학년만 되면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광경인데."

"수, 순간 놀랐을 뿐이에요! 걱정 마세요."

서둘러 그 위에서 벗어나며 신발을 툭툭 털었다.

설마하니 초입부터 뇌를 밟게 될 줄이야.

재수가 지지리도 없다.

가소희는 그 모습을 보며 도향??으로 악취를 몰아내다가 물었다.

"혹시, 공부 잘하시나요?"

"네? 아 그런 편이죠? 이래봬도 최우수 학생인걸요."

"그럼 여기에 무슨 종의 괴물이 풀려났는지도 유추할 수 있겠죠? 아, 아직 추적학을 안 배우나요?"

"추적학은 배웠죠. 그런 건 나름 잘 한다구요."

가소희의 물음에 턱에 손을 대고 주변을 죽 훑어봤다.

우선 죽어있는 하수구쥐의 상처를 봤다.

거칠게 찢긴 근육과 가죽의 단면을 보아하니 말 그대로 쥐를 잡아당겨서 찢어버린 게 틀림 없다.

그 말인 즉, 바다괴물 치고는 강력한 악력과 완력을 가졌다는 것.

우선 무언가를 잡을 수조차 없는 물고기류의 괴물은 아니다.

또한 하수구쥐의 앞니가 모조리 깨져 있는 걸로 보아 외골격을 가진 괴물일 터다.

그리고 피식당한 사체의 상태.

쥐의 사체는 무척이나 어설프게 먹혀 있었다.

마치 겉만 떼어다 먹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팔다리나 복부 쪽은 비교적 깔끔하게 발라먹었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비뼈 안의 살점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구강의 문제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주변 환경의 의문점.

그 많은 학살이 일어났음에도, 바다괴물의 흔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수구쥐는 하나하나로 따지면 무척 약한 괴물에 속하지만, 조직을 이루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허나 이렇게 많은 하수구쥐가 떼로 달려들었음에도 바다괴물은 그 흔한 부상 하나 입지 않았다는 뜻.

이는 유입된 바다괴물이 하수구쥐와 아득한 격의 차이가 있거나, 애초에 부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방어력을 가졌다는 거다.

하수구쥐의 이빨이 깨진 것과 유입된 바다괴물은 식용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이건 검은바다게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쥐의 상처에는 공통적으로 으스러진 골격과 힘으로 찢긴 상처 단면을 확인했어요. 촉수를 가진 괴물도 이런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걔들은 저렇게 죽이기보다는 목이나 전신을 휘감아 으스러트려 죽이니까 그건 아닐 거에요. 피식당한 흔적도 어색한 게 어류나 연체동물에 익숙한 게의 포식흔적이 틀림 없고. 음, 무엇보다 싸움의 흔적으로 봤을 때 강한 외골격을 가진 괴물이 아니면 안 되죠. 게다가 식용이라고 했으니 검은바다게 밖에 남는 게 없잖아요."

가소희가 만족한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맞아요. 검은바다게죠. 진짜 맛있는 건데 여기에 잔뜩 풀려 있다니. 기대되지 않아요?"

"그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

"안 먹어 봤다고요? 으음, 그건 좀 불쌍한데."

검은바다게의 맛을 상상하는 건지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세상에 떨어진 후로는 괴물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긴 한데, 가소희가 저러는 걸 보니 맛이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걸까.

저 어둠 너머에서 게의 다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검은바다게 하나가 이 쪽으로 오는 것이다.

"아, 마침 오네요. 저거 상대법은 아시나요?"

"네. 더듬이만 자르면 끝 아닌가요? 대부분의 감각기관이 몰려 있어서 그대로 행동을 정지한다 들었는데."

"그렇죠. 그래서 검기 없이는 흠집도 내기 힘든 껍질을 갖고도 꽤 약한 괴물로 분류되고 있어요. 더듬이를 자르기 어려운 것도 아니니."

가소희가 월왕구천을 빙글 돌리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저는 제자님에게? 으음, 조금 어색한데.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냥 반말하셔도 되는데요."

"그래요? 그래, 그럼. 난 시범을 한 번 보여주고, 네가 지금 상태로 그나마 쓸 수 있는 검무 한 초식을 가르쳐준 뒤, 너한테 검은바다게를 잡으라고 시킬 거야."

그리 말한 가소희는 유려하게 한 보, 한 보를 밟으며 조심스레 구두를 땅에 부딪혔다.

새어나오는 도향이 서서히 짙어진다.

"그런데, 더듬이를 자르는 건 금지야."

"더듬이를 자르지 말라고요?"

"응. 골격 틈을 노리는 것도 금지. 외골격을 부수거나 베어내고 죽이는 것만 인정. 어때?"

"저한테 그런 걸 시키시겠다고요? 갑각을 부수는 건 제 수준으로 못 할텐데"

"물론. 아,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안 돼. 네가 이길 때까지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리 말한 가소희가 월왕구천을 앞으로 뻗어, 저 앞의 어둠을 밝혔다.

옆으로 열심히 기어다니는 거대하고 검은 갑각류가 이쪽으로 더듬이를 돌렸다.

검은바다게다.

"알고 있겠지만, 검무는 칼을 들고 추는 춤이야."

검은바다게가 잠시 머뭇대더니, 곧 쏜살 같이 다리를 놀려 다가온다.

약 2m를 넘는 게가 큰 묵색의 집게를 딱딱거리며 가소희에게 척 내민다.

둘의 격을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당랑거철????, 아니 방해거성????이나 다름 없다.

"검을 들고 추는 춤은 예로부터 많이 있었어. 주로 상대를 위협하며 살의를 내뿜는 용도로 쓰거나, 죽은 전사의 넋을 기리거나, 전승의 기쁨을 표현하거나 무당들은 귀신을 칼로 위협해 쫒아내는 용도로 쓰기도 하고. 겨우 그딴 용도에 쓰인다는 게 안타깝지만."

정면으로 똑바로 선 게가 큰 집게를 휘둘러온다.

가소희는 그저, 한 보 내딛었다.

집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빗나갔다.

퍼져나가는 복숭앗빛 향내가 달콤하다.

"검무는 누가 뭐래도 주술이야. 춤이고. 칼질이지. 그런데 그런 검무로 사람 하나 죽일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어. 억울해서 화편검무花???를 만들었고."

가소희의 몸이 넘어질 듯 기운다.

그녀의 발길이 부드럽게 내달아 넘어질듯 휘청이는 몸을 지탱했다.

내딛은 발끝이 시계방향으로 흔들리며 칼 끝이 공간을 휘돈다.

한 바퀴 빙글 돈 그녀의 몸은 또 다시 넘어질듯 낭창였다.

"이건, 내가 검기도 못 다루던 시절에 만든 첫 초식이야. 별거 없지만 제대로 봐둬."

화편검무花???, 제일식?一?.

개화?花.

휘어질 듯 휘어지지 않은 검로가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그것은 피어나는 복숭아꽃잎 가득한, 사선 올려베기.

무검희의 몸짓은 갓 피어난 꽃을 만들었다.

'와.'

딱히 강력해보이는 검격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요란한 동작이 아니었음에도.

그 모습에서 압도감이 느껴졌다.

검은바다게의 단단하기 짝이 없는 배딱지에 실선이 하나 들어섰다.

분홍빛 실선은 곧 얇은 면으로 변하더니, 서서히 게의 몸을 미끄러트렸다.

잘린 단면은 여전히 복숭앗빛으로 선연히 빛났다.

월왕구천에서 꽃잎을 털어낸 가소희가 반으로 양단된 게를 등지고 내게 웃어보였다.

"이렇게 하면 돼. 이해했어?"

나는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털어내곤 대답했다.

"아뇨. 너무 어려운데요."

"그래? 기본 중에 기본이긴 한데 검기도 안 썼고. 음, 그래도 이걸 익힐 수만 있으면 혼검기의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아마."

"감?"

가소희는 말 없이 씨익 웃고는 내게 월왕구천을 쥐여줬다.

그리고는 내 허리를 양손으로 꽉 붙들어 고정시켰다.

"힘 빼."

"힘을 빼요?"

"사실 남에게 가르치는 건 처음이라 대충 감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긴 한데, 내 검무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검기?"

"아니, 그거 말고. 일반 검술이랑 많이 다른 점이 있지 않아? 특히 움직임에서."

검술이랑 다른 점?

"움직임 움직임이 조금 많이 부드러운 것 같기도?"

"부드럽다 틀린 말은 아닌데, 난 무게중심을 의도적으로 잃는 게 일반 검술이랑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

"무게중심? 아!"

일반적인 무술은 신체의 무게중심을 매우 강조한다.

무릇 무술이란 기본적으로 몸을 가누는 법을 다루니 무게중심을 매우 강조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검무는 검술이 아니라 주술이다.

일신의 보존이나 상대를 쳐죽이는 것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표명해 섭리를 흔드는 게 주요 목적이다.

따라서 무게중심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몸을 불안정하게, 높고 화려하게.

그게 검무가 검술과 달라야 하는 점이다.

"검무를 추는 순간만큼은 몸을 흐트릴 줄 알아야 해. 사람은 본능적으로 몸을 소중히 여겨서 자꾸만 곧게 서려고 하지만 그래서는 의지를 표현하기 힘들거든."

그 말에 납득한 나는 서서히 허리의 힘을 풀었다.

사람의 균형은 대체로 허리가 관장하니, 우선 허리부터 어떻게 하는 게 맞으리라.

"더 빼."

"충분히 뺀 것 같은데"

"그래? 한 번 볼까?"

그리 말한 가소희가 허리를 지탱하던 손을 확 놓았다.

나는 순간 살짝 휘청였지만, 곧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거봐. 금방 균형을 잡아버리잖아. 은연 중에 힘을 주고 있었단 뜻 아냐?"

"으, 으음 의식적으로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 넘어지는데 두려움이 있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계속 해보는 거야. 허리부터 다리, 목, 등 유전자 단위로 각인된 반사반응을 의식적으로 이겨낼 때까지."

그녀는 내 허리를 흰 손아귀로 꽉 붙들며 살풋 웃었다.

"그게 안 되면 취권처럼 술의 힘을 빌릴 수도 있겠지. 그건 의식적 제어가 아니긴 하지만."

"으 이거 오늘 안에 할 수 있을까요?"

"적당히 하다가 개화만 가르치고 게 잡으러 갈 거야. 그나저나 오랜만에 게살 먹고 싶네."

그러더니 가소희는 행복하게 입꼬리를 휘고 읊조렸다.

"외골내육外???, 양목??이 상천上?, 전행후행?行?行, 소小아리 팔족?足, 대大아리 이족二足, 청장? 아스슥하는 동난지이 사오."

(겉은 뼈요, 안은 살이니 두 눈은 하늘을 향하고 앞으로 뒤로 갔다가 작은 다리는 8개에 큰 다리는 2개, 내장이 아스슥하는 게장 사시오.)

어지간히도 게를 좋아하나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