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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48화 (48/119)

〈 48화 〉 무검희, 가소희 (5)

* * *

일반적으로 다 크지 않은 게는 어획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남획으로 게의 씨를 말려버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괴물로 분류되는 검은바다게는 다르다.

강력한 신체능력을 가졌으면서도 특유의 생태로 인해 무서운 속도로 수를 불릴 수 있는 서해연안의 우점종이니 오히려 보이는대로 잡아 죽일 것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검은바다게는 발생과 생장이 무지막지하게 빠른데다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어미의 배딱지 속에서 보내다보니 어린 개체는 찾는 것 자체가 힘들다.

어린 검은바다게의 맛은 희소성과 비례해 일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애초에 보기도 힘든데다 꽤 빨리 썩어버려 돈이 있어도 쉽사리 맛보지 못하는 식재다.

"실제로 그렇지. 어린 게는 아이스 박스에 넣어도, 얼음 마법으로 얼려도, 심지어는 훈제해도 한 시간 안에 썩어버리거든. 그래서 나 혀 좀 놀려봤소, 하는 미식가도 웬만해선 먹어보지 못한 식재기도 해."

가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헌터에게 통용되는 말은 아니지."

쓸데 없이 멋있는 말을 내뱉은 그녀는 옷소매에서 꺼낸 버너와 양은냄비를 바닥에 놓고 그 안에 손바닥만한 게를 마구 집어 넣었다.

그녀가 시범 삼아 베어낸 검은바다게가 배딱지 안에 품고 있던 어린 놈들이다.

"어린 검은바다게는 아직 갑각이 한참 약해. 사실은 산 채로 씹어먹어도 무리 없을 정도지. 맛있기도 하고. 근데, 될 수 있으면 조리하는 편이 훨씬 나아."

소매에서 2L 짜리 정령왕 생수를 꺼낸 그녀가 일어서서 아름답게 걸음을 밟았다.

그러자, 꽃잎이 피며 현장의 더러움을 완전히 싹 몰아냈다.

마치 복숭아향 세제로 천의 때를 지워내는 것처럼.

"이거? 엘퀴네스가 만들어낸 물이야. 여기에 성직자가 없어서 말하는 건데, 성수 따위보다 육수 내는데 훨~씬 좋아. 그만큼 비싸게 얻어온 거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50톤 정도는 남아 있으니까 괜찮아."

가소희는 냄비에 정령왕의 물을 콸콸 부었다.

냄비 안에 잠긴 게는 갑각 사이로 꽉 여문 살 덕분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요리에 있어서 불 만큼은 마력으로 피우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더라고. 정령이 피우는 건 너무 투박해. 아, 스피릿으로 피워본 적은 딱히 없네. 혹시 불 좀 빌려줄래?"

"."

"아, 연습 중이구나. 괜한 소리를 했네. 계속해."

거듭된 격한 행동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나는 손을 떨며 부적으로 화火를 적어 건넸다.

부적이 꺼질세라 부랴부랴 받아든 가소희는 버너에 보랏빛 불을 옮겨 붙이며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고마워. 간만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겠네. 그나저나 어디까지 했었지? 아, 불 얘기 하는 중이었지. 아무튼, 얘네는 끓이고 나서 한 15분이면 완성될 거야. 삶은 바다게는 검은 갑각이 발갛게 변하고, 어린 놈은 가뜩이나 여리했던 껍질이 감자칩처럼 변해서 껍질채로 아득 씹는 식감이 정말 최고야. 향신료도 속살이랑 껍질에 고루고루 깊숙히 배어서 한 번 씹을 때마다 향이 화앗, 하고 퍼지는데 먹어보면 알겠지만 이게 얼마나 일품인지"

"저기요?"

"으, 응?"

"혹시 요리채널 나가세요?"

옷소매에서 다진 만드라고라나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을 꺼내던 가소희가 흠칫 굳었다.

저 놈의 옷소매는 대체 정체가 뭐길래 안에서 자꾸 뭔가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암만 봐도 그냥 평상복인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열심히 수련하던 제자에게 눈치를 먹은 그녀는 무안하게 헛기침을 하며 냄비에 다진 만드라고라(아무리 봐도 그냥 다진 마늘이랑 똑같다)를 한 큰술 집어 넣었다.

그녀는 괜히 땅에 피어난 분홍빛 꽃잎을 발로 이지러트리며 냄비에 고춧가루를 함뿍 털어 넣더니, 소매에 양념통을 집어 넣었다.

"뭐어, 너 연습하는데 심심할까봐.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싫으면 말을 하지."

"아니에요. 그나저나 요리 많이 하시나봐요? 그런 것들도 다 들고 다니는 걸 보면."

"그렇지. 정보 통제 때문에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 괴물미식가거든. 괴물 전문요리사기도 하고."

그러더니, 가소희가 자랑스럽게 외투를 펄럭여 가슴팍의 뱃지를 드러냈다.

뭔가 황금색 뱃지긴 한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괴물미식가라.

어감이 무척이나 괴물 같지만, 실은 괴물 요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미식가일 뿐이다.

직업 특성상 괴물이랑 부대낄 일이 많은 헌터가 주로 괴물미식가를 자처하며, 아직 인식이 곱지 않은 괴물 요리를 사람들에게 퍼트리는 일을 하기도 한다.

자랑스레 가슴팍의 뱃지를 내보이던 가소희는 내게서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자 시무룩한 기색으로 쪼그려 앉아 요리의 간을 맞췄다.

저게 대체 뭐하는 뱃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저게 뭔지 물어보기도 조금 뭣해서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하는인지도물어보고"

"."

답지 않게 꿍얼대는 가소희에게서 신경을 끄고 몸을 움직였다.

꺾일 듯이 몸을 넘어트리다가 자연스럽게 발을 내딛고, 그 발을 축으로 한 바퀴 돌며 검을 올려친다.

이렇게 보면 간단하기 짝이 없는 몸짓이지만, 저 모든 행동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제약이 있는 이상은 마냥 쉽다고 할 것도 아니었다.

"으앗!"

쿵.

제때 발을 내딛지 못해 넘어지고 말았다.

흘러가듯 넘어지는 건 이제 알겠는데, 발을 내딛는 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최대한 늦게 뻗으면 다급하게 내딛는 양이 되고, 미리 뻗어버리면 무척이나 어색한 꼴이 되기에.

몇 번 성공하면서 감을 잡긴 했지만 아직도 완벽하지 못한 검무였다.

"아~ 됐다!"

내 검무를 지도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건지, 그녀는 만면에 완연한 웃음을 띠고 냄비뚜껑을 열었다.

맵고 고소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나는 견디다 못해 고개를 홱 돌렸다.

"."

"왜 그래, 제자? 여기 볼 때야? 앞에 봐야지."

"혼자 먹어요? 지금 저 놀리는 거 맞죠?"

"아니, 그런 의도도 있긴 한데. 진짜 앞에 보는 건 어때?"

그녀의 말에 따라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삽사간에 퍼져나간 꽃게탕 냄새에 이끌린 게가 이쪽으로 발을 놀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쟤들 은근히 매운 냄새 좋아하더라. 복숭아향은 싫어하면서."

"노린 거에요? 매운탕 끓인 거?"

"아니? 그냥 먹고 싶어서 끓인 건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말한 가소희는 국자로 빨간 국물을 후르륵 마셨다.

맛있겠다.

"뭐하고 있어? 쟤 잡아야지."

"진짜로 혼자 다 먹게요?"

"아니? 내가 혼자 다 먹기 전에 잡으면 되잖아. 천천히 먹을게."

게를 껍질채로 아드득 깨물어 먹으면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

배고프다.

점심도 안 먹고 나온데다, 지금은 저녁시간이 다 됐으니 안 배고플 수가 없었다.

아까 카페에서 열량 높은 쇼콜라 티라미수를 먹고 왔다지만, 반은 하르미아에게 뺏긴데다 그나마 먹은 것도 검무를 연습하면서 다 태워버린지 오래다.

저 게를 와드득 깨물고 그 안에서 배어나오는 뜨끈한 매운 국물을 마시고 싶다!

"나빠요!"

"우웅?"

"다 먹지 마요!"

게를 물고 츄륵대고 있는 그녀에게서 뛰어나가며 큰 게를 마주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사실로 미루어볼 때, 배딱지가 좁으니 수컷이다.

나도 어린 게 먹고 싶었는데

'아니, 그딴 생각할 때가 아닌데.'

목적이 뭐가 됐든 저 게를 잡아야 한다.

검은바다게가 날 알아채고 몸을 돌린다.

녀석이 완전히 태세를 갖추기 전에, 검무를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었기에.

가소희에게서 받은 월왕구천을 비껴들고 몸에 힘을 뺀다.

적의 앞에서 넘어지자 본능이 요란스레 경종을 울려대지만, 이제껏 그래왔던대로 무시하고 부드럽게 발을 내딛었다.

내딛은 왼쪽 발끝이 축이 되며 몸을 돌리고, 그 원운동에 순응한 검과 다리가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올려베기.

사아아!

간만에 깔끔하게 들어간 개화?花가 보랏빛 꽃잎을 몇 떨기 휘날리며 놈에게 박혀든다.

노린 것은 놈의 몸통이었지만 검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검무로 무언가를 베는 건 처음이다보니 거리 계산을 잘못해 닿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방어를 위해 내민 집게에 깊은 상처를 내는 건 성공했다.

­ !

신체부위에서 가장 단단한 집게에 깊은 흠이 간 기 충격이었는지, 놈은 급히 다리를 놀리며 내게서 물러났다.

'이건 생각보다 강력해. 몸을 노리면 그대로 끝이야.'

같은 두께의 강철과 그 강도가 필적한다는 검은바다게의 갑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단단하다는 집게를 어설픈 검무로 상처낼 수 있을 정도라니, 이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다.

그럼 가소희는 어디까지 자를 수 있는 거지?

'괜히 암기로 갈아탄다고 했나?'

개화?花의 감각을 기억하며 앞으로 다가섰다.

왼 집게에 상처를 입은 녀석은 소극적으로 반대쪽 집게를 내밀며 몸을 사렸다.

보기에는 꼴빠지지만, 저러면 검무를 제대로 먹이기 힘들다.

'그래도 수는 있어!'

부적술을 쓰면 된다.

다만, 검무 자체가 스피릿이 안정되어야만 쓸 수 있는 것이므로 부적술과 동시에 발동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다면 단발성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부적을 쓰면 될 일.

허벅지에서 부적을 뽑아 글씨를 적어내렸다.

적어내리는 것은 오행五行.

세상을 대표하는 다섯 원소, 그 중에서도 토?.

그 근본은 품고, 감싸고, 막는 것에 있어 흐르고 잇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수?를 이기니.

그 자체로 토극수???라.

'당연히 물과 친한 게새끼한테는 토?가 쥐약이지.'

부적이 고운 흙더미로 부서져내린다.

손아귀에 꼭 들어오는 흙 한 줌을 꼭 쥐고 놈의 더듬이를 노려 확 뿌린다.

더듬이를 자르지 말라곤 했지만 감각을 방해하지 말란 말은 없었으니.

­ !!!

게는 집게를 들어 더듬이를 가리려 했지만, 뭉치지 않고 비산하는 흙은 집게로 쉽사리 막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놈의 품으로 달려가 개화?花를 펼쳤다.

다행히도, 이번엔 배때지에 잘 들어갔다.

사아아악!!

보랏빛 꽃잎이 허공에 넘실대며 배딱지를 제대로 베었다.

다급히 내민 집게는 내 목 언저리에서 멈춰섰고, 복부를 베인 게는 곧 다리에서 힘이 풀리더니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휴우, 생각보다 가뿐하네."

난 아무래도 실전에 강한 타입인가보다.

주저앉은 게를 퍽 차서 넘어트린 나는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을 닦고는 서둘러 가소희에게 향했다.

***

"이겼어요!!!"

"추카해! 우움"

열심히 게를 먹던 가소희가 게를 물고 눈웃음치며 싱글 웃었다.

간소하게나마 정성스런 인사를 건넨 그녀는 이내 열심히 아그작대며 게를 마저 씹기 시작했다.

서둘러 고개를 쭉 내밀고 본 냄비 안은, 국물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

"츄루룹 휴. 다 먹었네. 아쉬워라."

"."

"왜 그래, 갑자기? 어디 다친 곳 있어?"

"."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가소희를 바라봤다.

설마하니 그 많은 게를 정말 혼자서 다 먹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진짜 이 많은 걸 다 먹었어요? 혼자서? 전 안 주고? 그렇게 약올렸으면서?"

"국물 남겼잖아?"

"그걸 하아아아"

나는 비참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금 잡은 게새끼보다 훨씬 비극적인 몸짓이었다.

그녀는 내 텅 빈 눈을 보더니 왠지 모르게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확 살이나 쪄버리라지, 이 돼지 칠성

"그거 알아?"

"몰라요"

"우리 저거 아직 안 먹었어."

그녀는 죽은 게를 가리켰다.

확실히, 그녀가 먹은 건 어린 게 뿐이다.

내가 묘한 표정을 짓고 가소희를 노려보자 그녀는 눈을 피하며 멋쩍게 가슴팍의 뱃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목적은 여길 소탕하는 거니까. 임신 중인 게는 또 나올 거야. 그 땐 제대로 된 요리를 한 번 해줄 테니까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니?"

"혼자서 알짜배기는 다 먹어 놓고 한다는 말이 그거에요?"

"미안 어린 바다게를 먹는 것도 오랜만이라서 말야. 아니, 그보다 너 내 제자 아냐? 선배님 때문에 생각에도 없던 검무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 정도는 봐줘야지. 그렇지 않아?"

황금빛 배지를 옷깃으로 닦은 그녀가 뻔뻔하게 따졌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남은 국물이나 호로록 마셔볼 뿐이었다.

'맛있네'

그래도, 요리 하나는 잘하면 된 거 아닐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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