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54화 (54/119)

〈 54화 〉 선거

* * *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밤새 두 번째 영웅담과 접선하려 했지만, 결국 아침이 밝을 때까지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다.

부적술부터 장송곡, 심지어는 잊고 있었던 제사까지 동원했건만 영웅담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좇을 수 없었다.

'젠장.'

정성스럽게 차려진 제삿상에 쓰러지듯 엎어져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향은 이미 끝까지 타버린지 오래고, 뜨거운 고깃국은 식어서 겉에 기름기가 떠올랐다.

창 밖으로 터오는 햇빛이 커튼 사이를 파고 들어 탁자 동쪽에 놓인 붉은 과실들을 덮는다.

­ 흐아암. 잘 잤다. 좋은 아침!!

"잘 잤니"

뻣뻣이 굳어버린 눈동자를 굴려 시야의 한구석을 본다.

하르미아 시스템에 나타난 시간은 6시 30분.

기숙사 기상 시간이다.

­ 안녕하세요! 퓨어하트 주하연입니다! 극정 아카데미 학생 여러분,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볼까요? 앞으로 밝게 빛날 미래를 위해 파이팅!!

"닥쳐어어어"

아침마다 어김 없이 들리는 주하연의 목소리.

매일 아침마다 아침잠을 깨우기 위해 저 녹음본을 벽이 울릴 정도로 크게 방송을 때리기에 학생들에게 원성이 자자한 목소리였다.

­ 어? 이거 아직도 하고 계셨어요?? 좀 주무시지!!

"음, 학교 가서 좀 자면 되지 아, 잠깐. 오늘 반장선거인데."

단 1분도 자지 못한데다 연설문도 못 외웠다.

"아. 모르겠다. 연설문이야 들고 하면 되지, 뭐."

­ 그러면 그 냉정한 양키걸이 뭐라 할 것 같은데

"그건 그럴지도."

밤을 샜지만 막 죽을 정도로 졸린 건 아니다.

이래봬도 전투계의 몸이라 하룻밤 안 자는 것 정도야 큰일이 아니니.

"대충 먹고 씻고 가야지. 연설문은 들고 외우는 척만 하면 돼."

­ 이걸 다 먹어요? 너무 많지 않아요?

"제사상에 차린 걸 다 먹냐고? 다 안 먹어도 돼. 성공했으면 몰라도 제사에 실패했으니 적당히 남기고 버리거나 얼려서 짱박아 놓으면 되지."

몸의 전주인이 제사를 하도 해서 그런지 제사 자체는 쉬웠다.

문제는 내가 원한 두 번째 영웅담이 나타나지 않고 온갖 잡귀들이 몰렸다는 거지만.

혼을 불러 위로하는 제사의식에서 장송곡을 부를 수도 없었기에 쫒아내는데 아주 혼이 났다.

'그 새끼들은 위패도 안 보나 떡하니 영웅담 투라고 적혀 있는 걸. 한 많은 건 알겠는데 왜 남의 제사상에서 지랄이야?'

생각 외로 극정 아카데미에는 한이 깊은 혼들이 많았다.

대체로 현실의 고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연구계 학생들이었다.

날 잡고 퇴마나 한 번 해보든가 해야겠다.

식어버린 쌀밥과 소고기무국을 끌어와 식사를 시작했다.

소금이나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는 특유의 강한 향취와 맛으로 귀신을 쫒아내기에 제사음식에는 전혀 간이 되어 있지 않았다.

김치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죄다 식어서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전과 고기로 반찬을 삼자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셀레스티."

­ 넹?

"저기 술 좀 따라주라."

­ 수, 술이요? 영웅님 아직 미성년자 아니에요!? 그리고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술이에요!

"역시 제사상은 청주와 함께 해야지. 이대로만 먹기엔 뭔가뭔가잖아."

천화수복이라 적힌 술병을 끌어와 셀레스티 앞에 뒀다.

셀레스티는 마지못해 영차, 하며 술병을 들고는 잔에 술을 따랐다.

나는 잔을 한 번 들어보이고는 한 번에 들이켰다.

생각해보면, 이게 여기 와서 처음으로 먹는 술이다.

"음 미지근해서 좀 그렇네."

­ 술에 그런 것도 있어요?

"알콜 없는 콜라도 미지근하면 별로잖아. 저어, 그 어드메에서는 콜라를 데워서 먹는다고 하지만"

콜라를 데워 먹다니,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식습관이다.

적당히 싱겁고 미지근한 식사를 하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늘 그랬듯이 밥상머리에서 뉴스를 확인하던 나는 그만 수저를 국에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 으악! 국물 튀었잖아요! 어제 열심히 씻었건만!!

"왜지? 뭔가 이상한데."

­ 또 왜요? 요즘 그런 말 달고 사는 거 알아요

"진짜 이상한 일들이 막 일어나는데 어떡해"

긴급속보로 보도된 기사에는 거대하고 흐릿한 카멜레온 괴물이 전력소를 부수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저 카멜레온 괴물은 카타스트로피가 키우는 재앙급 괴물이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건 진짜로 없던 일인데.'

내가 스토리 흐름에 전면 등장하면서 상황이 원래의 시나리오와는 꽤 벗어났지만, 그 임팩트가 일본까지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아카데미에서 사건을 벌이는 나와 일본이 대체 무슨 관련이란 말인가.

'이건 나 때문이 아냐. 가소희 때문이다.'

일전에 가소희는 한국에서 세를 불리던 카타스트로피를 소탕하며 어린 카멜레온을 때려잡았다.

그게 어떻게든 일본의 카타스트로피에게 영향을 준 것이리라.

카타스트로피 자체가 일본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진 것이니, 일본 지부는 당장에 난리를 일으킬 힘을 가지고 있었을 테고.

'지나가던 무녀가 빠르게 나섰다고 하니 제압은 되겠지만 전력소가 부서졌으니 규슈는 완전 아비규환이 되겠어. 규슈는 이제 놈들에게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타국의 헌터제와 다르게 안정성 있는 히어로제를 택한 일본이 저딴 걸로 박살이 날 리도 없지만 카타스트로피의 테러는 저걸로 끝이 아니다.

어떻게든 국가의 단속을 뚫고 해양괴수를 도발해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키거나, 히어로가 차출된 사이 비어버린 치안을 노리고 중요시설을 급습하거나.

하지만, 제일 심각한 건 사회적 혼란에서 오는 군중 선동과 세뇌다.

아무리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일본이라 해도 사회적 대혼란이 계속되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타스트로피의 행위에 부역하거나 심하면 동조까지 할테니 국가 입장에서는 존립의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이거 되게 큰일인데. 으음, 이걸로 반장선거 연기는 안 되나?"

­ 영웅이란 사람이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에요? 막 "이럴 수가!!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야 해!!" 하면서 일본으로 날아가 망토를 휘날리거나, 음. 그런 건 기대도 안 하지만

"솔직히 내가 혼자 뛴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니. 이모님한테 저기로 건너가서 싸워주세요, 한다고 해서 이모님이 그걸 들어줄 리도 없고."

조기진압에 성공한다면야 문제는 없을 테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면 한국에 지원요청이 올 수 밖에 없다.

그때는 이미 많이 늦었을 거라는 게 문제지.

한국 칠성 전원이 달려들지 않는 이상은 일본의 정상화가 힘들어질 거다.

'짭셀레스티도 그렇고, 얘네도 그렇고 당장에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겠지.'

하늘 너머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노려본다고 운석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고민은 잠시 미래로 제쳐놓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함이 옳을 터다.

"으, 네 잔 밖에 안 마셨는데 벌써 알딸딸 하네. 연설문 읽어야 하는데"

­ 거봐요. 아침 댓바람부터 이제 샤워하고 빨리 가요!

"응"

나는 대충 상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

반 정도 몽롱한 상태로 교실에 들어가 앉았다.

주술로 술기운은 몰아냈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해서 그런지 그만 연설문을 쥔 채 엎어져 자고 말았다.

정신 없이 자다가 겨우 일어나보니 천의린이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아침조회 대신에 반장선거를 하는 것이다.

"해서! 이 교실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벌점제를 도입하겠습니다! 벌점이 많이 쌓이면 대련장으로 끌려가서 저한테 두들겨 맞는 거죠!"

학생들이 천의린의 공약에 오오, 하며 호응을 보냈다.

교칙을 어기는 애들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천의린에게 직접 처맞는다는 벌칙 방식이 재밌었기 때문이리라.

'그 타깃이 자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하겠지'

천의린이 반장이 된다면 대련장은 Z반 학생들의 비명으로 가득 차고 말 것이다.

성격상 교칙에 있어서 무척 깐깐할 테니까.

타고난 리더십으로 마구 주먹을 흔들며 급우들을 휘어잡고 낭랑하게 연설하던 천의린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곤 자리에 들어갔다.

다음은 기호 2번인 샬롯이 연설할 차례였다.

샬롯은 스르르 일어나더니 교탁으로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기호 2번 샬롯 스털링입니다."

짝짝

천의린이 나왔을 때에 비해 무척이나 고요한 분위기였다.

어찌보면 냉담하다고도 할 수 있는 공기.

나는 불안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내 연설문을 힐끔거렸다.

'이거 외웠어야 되는데'

"친애하는 급우 여러분. 기말고사는 잘 준비하고 계신지요.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 올 테고, 방학이 끝나면 진정한 아카데미 생활의 시작이라는 2학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사늘해지는 가을이 가고, 한겨울 북해 같이 차가운 겨울이 가면 2학년이 되겠죠. 저는 그때까지만이라도 여러분과 함께"

안 된다.

저건 내가 들어도 졸리다.

내가 죽어라 짧게 바꾸라고 했건만, 입학식 날 교장의 연설에 감동이라도 먹은 건지 너무 길고 장황하고 세상 쓸데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제가 반장이 된다면 성적이 낮은 친구들을 위해 방과후까지 운영하는 보습반을 만들겠습니다. E반의 상위 30%보다 낮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을 남겨서 성적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시발. 잠깐만. 뭐?

지금 애들을 강제로 남기겠다는 말을 한 건가?

보습반 자체는 나도 좋다고 동의한 바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원한 사람에 한해 도움을 주는 형식이다.

강제로 남기는 것 따위는 사전에 논의한 적이 없는데

'자율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어서 강제로 정했구나. 미국에서 왔다는 애가 왜 이렇게 사고가 경직돼 있어?'

큰 홍역을 겪은 미국사회가 경직되게 바뀌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강제로 남길 생각을 하다니.

가뜩이나 호의적인 평판도 없는 애가 저런 공약을 내거는데 퍽이나 뽑아주겠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학생들은 퍽이나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뒤에 앉은 수연이는 발 끝으로 날 툭툭 치며 이게 맞는 거냐는 눈빛을 하고 있었고.

'번번히 떨어질만도 하구나.'

장황했던 샬롯의 연설이 끝났다.

돌아오는 박수소리는 참으로 작았다.

다음은 천의린과 짝을 이룬 부반장 후보, 소태연의 차례였다.

그녀는 꽤 날카로운 고양이상을 한 학생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나를 꽤나 싫어하는 눈치였다.

일전에 그녀가 북우위키에서 주워들었을 법한 같잖은 지식을 막 떠벌리며 자랑하고 다니기에 연구계의 갈등해소법을 동원해 그녀를 닥치게 만든 적이 있다.

아마 그 때문이리라

'어휴, 속 좁기는. 저러면서 천의린이나 유하한텐 잘도 빌붙는단 말이지. 제딴엔 기둥 있는 유학자 가문이라 하더니, 대인은 못 된다니까.'

뭐, 유?가 아니라 유?(아첨할 유)인가 보지.

앙칼진 눈으로 나와 샬롯을 한 번 노려본 소태연은 간단히 인사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여러분의 한 표 감사합니다. 이미 승부는 확정된 것 같군요. 상대 후보가 참 재미 있는 공약을 걸어주셔서 말입니다."

학생들이 재밌다는듯이 웃었다.

역시 군중들은 듣기 좋은 칭찬 열 마디보다 남을 깎아내리는 한 마디를 좋아하니.

"장장 5분 동안 공약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꼭 우리 기호 1번이 돼야겠구나. 반의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반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솔직히 저런 후보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의문스러워요. 랭크대전에서까지 이상한 홍보문구를 들고 다니더군요. Z반의 전교적인 망신이죠."

샬롯이 눈가를 찌푸렸다.

대놓고 자신을 깎아내리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으니.

"또 기호 2번의 부반장 후보에 관해서도 말이에요. 모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조기반 때에는 정말 괴상한 기행을 하고 다녔다는 걸 다들 아실 겁니다. 체력단련실에 웬 아이스박스와 탁자를 가져오더니 거기에 제사상을 늘어놓고 제사를 지냈죠. 사람의 양기가 가득차니 뭐하니 하면서요. 그 외에도 벌레나 뱀을 잡아 교실에 풀어 놓는다던지, 고추장 찌개를 부정한 것이라고 외치면서 식판을 뒤집어버린다던지, 외에도 수많은 짓들을 벌였죠. 이런 걸 부반장이라고 뽑아야 할까요?"

학생들은 여전히 흥미롭다는듯한 분위기였다.

몇몇은 이쪽을 힐끔이며 옆의 친구와 킬킬대기도 했다.

나와 친한 몇몇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게 대세가 되지는 못했다.

'용감하다, 참. 유하는 물론이고 천의린도 싫어할 짓을 공연히 하고 있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다음 순서가 나인데 나라고 저런 소리를 못할까.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소태연은 손을 들어 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냥, 까는 건 아니고요. 신중히 선택하라는 뜻이에요. 누가 더 적합할지. 이 반에 헌신할 각오가 된 1번이냐, 학생들을 억지로 헌신시킬 2번이냐. 이상, 1번 소태연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소태연은 요란한 박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의도적으로 내게서 시선을 피하는듯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살짝 올라간 광대가 감춰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 참.'

나는 소태연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빈손으로 교탁으로 나왔다.

이런 싸움에는 준비된 연설문 따위 필요 없으니.

"."

학생들은 여전히 눈에 흥미를 품고 있었다.

앞의 후보자가 한 말이 있으니 내가 뭐라 할지 기대하는 것이리라.

"안녕하십니까."

짝짝짝

적당히 고개를 까딱이고는 할 말을 생각했다.

본래 연설이란 선동 비슷한 것.

개인적으로 연설에는 연설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샬롯 때문에 쓰긴 썼지만.

"음, 굉장히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주셨어요. 우리 소태연 후보께서. 뭐가 그리 신이 나서는 나불대시던지, 어휴. 궁금하지도 않은데 자기 아는 거 나왔다고 신나서 말하는, 그런 건 줄 알았다니까요."

학생들이 웃었다.

즉석에서 말하는 거라 조금 과격한 언사긴 했지만, 선생님은 제지할 생각 따위 없어보였다.

모범적인 뿔테안경과는 다르게 굉장히 방임적인 선생님이었다.

"으음, 그런데요. 지금 기말고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만, 정규반에서 제가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나요? 기껏해야 등에 망토 좀 매고 다닌, 그게 끝이죠. 그건 적어도 연설이랍시고 남을 까내리는 짓보다는 훨씬 건전할 겁니다. Z반의 전교적 망신, 이런 말을 해주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소태연 후보가 이 아카데미의 망신 그 자체라 봅니다. 아직도 그딴 유치한 언플을 시도하다니."

"와하하하"

소태연의 실수라면, 더 과격한 표현을 쓰지 않은 것에 있다.

제 나름대로 과격한 표현을 썼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원래 선동이란 감정적인 말을 담아서 해야하는 것이다.

"샬롯 후보의 공약이 비현실적인 건 맞지만 최우수 학생에게 Z반의 망신이라는 말을 지껄이는 소인배가 부반장이 된다면 반장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의미 없습니다. 더욱이 반장은 공약으로 말 안 들으면 머리를 깨부수겠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더더욱. 여러분께서 저를 뽑아주신다면 강요 없는 반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만일 반장이 보습반을 강제로 시행하려한다면 제가 목숨 걸고 막죠! 천의린한테 머리도 깨져봤는데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오~"

학생들 사이로 반응이 퍼져나간다.

유하가 눈치 빠르게 박수를 치자, 다른 학생들도 그녀를 따라 박수를 쳤다.

바람잡이의 존재까지 있으니 정말 든든하기 짝이 없다.

"이건 유능과 무능,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의식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돌아오고 나니 할 말을 다 못한 것 같아 굉장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선거는 이길 것이다.

소태연의 되도 않는 급발진이 다 망쳤으니.

"오~ 유능하고 선한 정시현!"

수연이가 의자를 톡톡 찼다.

그녀에게 적당히 반응해주며 배부되는 선거용지를 받았다.

'으음,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짜증나는데 언젠가 저격이라도 한 번 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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