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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57화 (57/119)

〈 57화 〉 뒤틀리는 국면 (3)

* * *

"그래? 그런데 어떡하나? 나한텐 선배보다 널 잡는 게 더 중요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자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교수는 성초은의 목을 더 조이며 날 압박했다.

"되도 않는 심리전은 그만두게. 초은 양의 목숨을 쥐고 있는 건 나라네."

"글쎄. 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도 난데? 다른 건 몰라도 네가 그런 짓을 하면 넌 확실히 죽어."

물론 교수를 죽이는 것보다 성초은을 살리는 게 오만 배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약하게 나오면 성초은은 성초은대로 잡혀가고 나는 나대로 위험해진다.

오히려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는 게 훨씬 나은 것이다.

"그런가? 자네가 날 죽일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왜 이리 아가리가 길지? 기껏 변절자가 되어 놓고 촉수 휘두르기 밖에 못하는 놈이 그런 말을 하다니 조금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아?"

변절자는 모두 제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우월에 가입했다.

때문에 제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니, 내 협박을 무턱대고 걸러들을 수는 없을 터다.

심지어 저 녀석은 가뜩이나 몸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뇌까지 파괴되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하더라도 과도한 자극은 금물인지라, 부적을 적지는 않고 대놓고 팔랑이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 긴장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겠어? 그거 놓을래, 아님 죽을래?"

"놓아주면 무사히 놓아주겠나?"

"그건 안 되지. 되도 않는 인질극은 그만두고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붙어보자니까. 네 입으로 난 널 못 죽인다며? 거짓말이었어?"

"과학자에게서 정정당당을 찾다니 끌끌. 역시 돌대가리 전투계라 그런지 뇌가 굳어 있군. 내가 왜 상황의 이점을 내 손으로 버려야 하지?"

망토가 손을 죄는 것을 느끼며 눈동자를 힐끔 굴렸다.

놈이 등지고 있는 창문은 늘상 그렇듯이 평온한 햇빛을 품고 있었다.

"뇌를 반이나 잘린 놈이 나보다 똑똑하다고? 지식배틀이라도 한 번 해볼까? 보아하니 교수도 청탁으로 된 것 같은데."

"흥, 할 줄 아는 건 나불거리는 것 밖에는 없나보지? 이젠 되도 않는 인신공격이라니."

"그래서 한다고, 안 한다고? 아가리 존나 기네, 진짜."

"거절하지. 지금 상황에서 지식배틀이나 하게 생겼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판국에 말이지."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갔다.

둘 모두 싸우기를 원치 않는 까닭이다.

나는 인질이 잡혀 있고, 교수는 인질을 잡고 있다는 유리함을 고수하고 싶으므로.

'왔네.'

하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다.

타앙──!!!

창문에서 새는 빛이 강해진다.

이윽고 창문은 과열된 전구가 터져나가듯이 와장창 깨져나가며 빛의 기둥을 드러냈다.

한 줄기 직선을 그리며 날아온 탄환은 섬전처럼 짓쳐들어가 성초은을 잡고 있던 촉수를 파괴해버렸다.

"이 무슨!!"

타앙──!!!

두 번째 총성.

이번에는 교수의 몸통으로 탄환이 쇄도했다.

빛은 교수의 가슴에 농구공만한 구멍을 뚫었고, 심장을 꿰뚫린 교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거렸다.

"돌입!!!"

손잡이가 망가진 문을 부수고 정복의 헌터들이 뛰어들었다.

극정 아카데미의 치안을 맡는 헌터협회의 특수경비대다.

정신을 못 차리고 비틀대는 교수를 뇌전마법으로 지지고 철퇴로 으깨버려 완전히 제압한 헌터들은 순식간에 온갖 구속구와 마법족쇄를 채워 악질 교수를 체포했다.

나는 전문성이 묻어나오는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곤 연구실 천장에 박힌 CCTV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몰라도, 온갖 유리잡기가 깨져나갈 정도의 괴성을 지르는데 경비대에 신고가 안 들어갈 리가 없었다.

'역시 나보다 멍청하네.'

나의 승리다.

***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성초은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는 일단 피의자 신분으로 경비대에 끌려갔고, 당시 상황에 대한 진술을 해야 했다.

CCTV라는 명확한 증거와 휴대폰의 전화기록이 남아 있어 내 행동을 입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경비대장이란 놈은 날 순순히 놔줄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머리카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고리를 머리에 두른 원형탈모의 경비대장이 내게 눈을 부라리며 책상을 힘껏 쳤다.

"그래서 홍규호가 괴인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어!?? 짜고 친거 아닌가!!!"

"아니, 지금 몇 번째 말해요. 선배님은 애초에 그 교수랑 친분도 없었고, 바닥은 스몰 크라켄의 기름 투성이에, 그 새끼가 뻔한 거짓말로 선배님의 행방을 속이려고 하는데 의심이 가요, 안 가요? 가뜩이나 연락 잘 받던 선배가 연락도 안 받아서 걱정하던 찰나에 그런 광경을 마주했으니 의심이 가는 건 당연하죠!!"

"후우, 그래. 딴 건 그렇다고 쳐도, 당신은 너무 침착했어!! 저런 종류의 괴인이나 괴수는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는데, 그런 끔찍한 걸 처음 보고도 크게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고!!!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아니,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혐의를 줘요!? 뭐 그딴 억지가 다 있어요!!"

확실히, 이 인간은 날 놔줄 생각이 없나보다.

무언가 하나라도 주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 그런 압박을 은연 중에 넣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공무원이라면 비리는 패시브니까.

"그딴 짓을 하니까 탈모가 오는 거지!"

"뭐, 뭣!!"

"제 폰 줘요!!! 전화할 곳 있으니까!!!"

뻘쭘하게 보고 있던 다른 경비대원이 눈치 있게 압수했던 휴대폰을 넘겨줬다.

휴대폰을 받은 나는 또 다른 범법자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릇 썩어 빠진 사회에선 다른 것보다 돈과 인맥이 최고다.

­ 여보세요?

"가소희 헌터님!!! 저 좀 도와주세요!!!"

의도적으로 가소희 헌터라는 말을 강조했다.

손수건으로 정수리에 흐른 땀을 반딱반딱하게 닦던 경비대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경비대장을 노려보며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 아,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큰일이야?

나는 크게 화난 목소리로 가소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게 뇌물을 요구한다는 말과 함께.

물론, 은연 중에 요구한 것을 아주 대놓고 요구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내가 언제"

­ 네에? 헌터협회에 아직도 그런 머저리가 있다고요? 그 새끼한테 전화 좀 바꿔주시겠어요?

나는 스피커폰을 끈 뒤 전화를 대머리에게 넘겼다.

가소희는 직위상으로 한낱 별동대원에 불과하지만, 그건 가소희가 책임지는 자리를 싫어해서 그런 것일 뿐.

사실상 그녀는 헌터협회를 움직이는 실세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소희의 전화를 차마 거절할 수 없던 대머리는 무척이나 공손한 자세로 전화를 받아들고는 연신 허리를 굽혔다.

운이 좋으면 가소희의 경고만으로 끝나겠지만, 재수가 없으면 파직까지 나갈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 모든 건 지금 가소희의 기분에 따라 달린 일이다.

"예, 예에 하, 하지만 대놓고 요구한 적은 아, 아뇨 아뇨!!! 예!!! 제가 했습니다!!! 예!!! 그렇고 말고요!!! 채, 책임!? 그, 그, 그, 그것만은 저한테는 가족이 알 바 아니라고요!??? 안 됩니다!!! 뭐든 다 할 테니 제발!!"

대머리는 숫제 머리를 깊이 숙이다 못해 땅에 박는 듯한 자세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경비대장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벙찐 대원에게 냉수 한 잔을 시키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대머리의 사죄러시를 관람했다.

얼음이 동동 뜬 냉수를 받고는 새삼 떠오른 노래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반성중, 반성중, 반성중독~"

"예, 예에 알겠습니다 예에 선처에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봐준 모양이다.

하긴, 파직은 귀찮으니까 그냥 압박으로 끝낸 거겠지.

나는 풀려나기만 하면 장땡이지만 말이다.

잔뜩 피폐해진 대머리에게 전화를 넘겨받자 킥킥대는 가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푸흐흐 아, 오랜만에 갑질하니까 기분이 괜찮네. 그런 건 학창시절 이후로 끊었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양아치 같은 성격이셨군요."

­ 뭐어, 다들 그럴 때가 있는 거지. 쟤한텐 네가 하는 말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라고 해놨어. 마음에 안 드는 애 있으면 경비대 불러서 수사하는데 쓰든가, 맘대로 해. 아, 그리고

가소희가 잠시 침묵하다가 운을 뗐다.

­ 나 당분간 일본 가.

"일본? 왜요? 지금 여행금지국가 아니에요?"

­ 내가 그리로 여행하러 가겠니. 장기휴가를 낸 건 맞지만 그쪽에 친구가 있어서 부탁을 좀 받았거든. 일본의 환란을 제압하는데 도움을 줄 거야.

가소희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 그래서 당분간은 스승 노릇을 하기 힘들게 됐어. 나 오기 전까지 혼검기 만들기, 숙제야.

"으음 그런가요. 근데 친구가 누구에요? 남의 나라까지 그 고생을 겪으러 가는 걸 보면 혹시 남자친구는 아니겠죠?"

­ 남친 없어. 겪어봐서 아는데 남자는 다들 똑같거든. 그냥 오랜 친구야. 스승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하고 아무튼 난 이틀 뒤에 떠나기로 했으니까 알아둬. 알겠지?

"그럼 언제 다시 와요? 오긴 올 거죠?"

­ 글쎄 아마 혼란이 제압되고 나서야 오지 않을까. 그 정도로 깊은 친구라서. 미안해.

그녀의 사과에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카타스트로피와 직접 싸워본 그녀라면 확실히 일본의 혼란을 제압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태평양의 침공을 막는 게 일본이고, 대륙의 침공을 막는 게 한국이었으니 둘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남은 하나는 국방에 있어서 상당히 곤란해진다.

­ 고마워. 그럼 나중에 또 통화하자. 그때는 국제전화겠지만.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 너도~

전화를 끊었다.

앞을 힐끔 보니, 경비대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녹은 얼음물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경비대를 나왔다.

가소희는 몰라도 나는 갑질을 하는 취미 따위 없었으니까.

­ 그럼 물은 왜 떠오라고 한 거예요?

"조용히 해."

나는 성초은이 누워 있을 병원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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