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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주술사로서 살아간다는 것-60화 (60/119)

〈 60화 〉 만남과 진실 (2)

* * *

일반적인 주술사와 샤먼을 비롯한 무당은 같은 주술을 쓰더라도 나타나는 효과가 판이하게 다르다.

주술이란 개념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술사는 주술의 과정을 인과적으로 이해한다.

"내가 이런 주술을 썼으니까, 이런 효과가 나타날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펼친 주술은 실제로 정형화된 하나의 효과만이 나타난다.

즉, 같은 주술을 쓴다면 늘 일정한 효과가 나타나기에 그 결과를 쉬이 제어할 수 있다.

무당은 타 주술사와 조금 결이 다르다.

그들은 주술에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간절함과 믿음을 품는다.

예컨대 끝없는 가뭄을 끝내기 위해 비를 내려달라고 비는 기우제라든가, 알 수 없는 운명의 끝자락만이라도 엿보기 위해 불확실한 흐름에 의존하는 점술이라든가.

덕분에 무당의 주술은 일반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고 효과는 그때그때 제멋대로다.

"허어~ 어디 볼까~"

내 주변에는 온갖 제기와 공물이 제 나름의 간격을 유지하며 놓여 있다.

늙은 건지 젊은 건지 알 수 없게 생겨 먹은 무당은 신기하게도 내 머리카락을 꼿꼿하게 세워 향로에 꽂더니 다른 향들과 함께 살랐다.

나는 왠지 불안해져서 물었다.

"무당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암만 봐도 제사 형식이 아니라 공양의식 같은데. 제가 공물들 사이에 서 있을 이유가 대체 뭐죠?"

"헹, 설마 당신을 공물로 바칠까. 돈 가지고 장난은 안 치니까 한 번 믿어 보쇼."

뭔가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을 내뱉은 무당이 박도를 들고는 어둑해진 훈련장을 돌며 주문을 읊었다.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지라 뭐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당보다는 샤먼에 가까운 것 같네'

조율이시나 홍동백서는 고사하고 탁자에 제대로 올리지도 않은 공물.

일반적인 제사에 쓰이지 않는 생고기 더미와 수많은 가축들의 대가리와 피.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경한 주문과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까지.

무당과 샤먼의 특징을 한데 섞은 듯한 의식이었다.

­ 아──하──이───야───

지하의 어둠을 밝히던 촛불이 하나씩 꺼진다.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던 촛불은 순차적으로 빛을 잃으며 연습장에 어둠을 가져 왔다.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의 어스름한 불꽃 사이로 무당이 박도를 쳐들고 괴기한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촛불이 꺼지자, 시야가 완연한 어둠으로 푹 꺼졌다.

짜그랑, 짜그랑

시각이 사라지자 박도에 걸린 금속고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름 끼치도록 불규칙적인 그 소리는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 짤랑!!!

­ 뀌이이익!!

앙천대소하는 모양으로 놓여 있던 돼지의 대가리가 단말마를 내뱉는다.

순간 격해졌던 쇳소리는 단말마와 함께 멎었고, 멈춘 박도는 몇 초 뒤 다시 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물론 희생양은 돼지만이 끝은 아니었다.

­ 음머─!!

다음은 소였고.

­ 꼬옥!!

그다음은 닭이었다.

살아 있지 않은 가축의 대가리일 뿐이었는데 비명을 지르다니,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뭐, 뭔가 무섭네'

그리 생각하는 내 귓가로 누군가가 속삭였다.

깊게 갈라진 울림이 달팽이관에 닿는다.

­ 다음, 다음 공물이 남았다네

순간 소름이 쫙 끼친 나는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내 몸은 이미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내 머리카락과 함께 타오른 향의 연기가 몸을 잡아 놓고 있던 것이다.

짜그랑 짜그랑 짤랑!!!!

"!!!"

일순간, 가슴팍으로 칼날이 꽂혀들어 왔다.

온몸이 굳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칼날은 심장이 있는 왼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흐윽?"

하지만 심장이 꿰뚫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허어─ 그렇군─! 거기 있었느냐, 악마야─?"

무당의 박도는 칼날의 반이 사라진 채로 내 가슴 앞에 닿아 있었다.

마치 공간의 틈을 쑤셔 박은 것처럼 허공에 꽂힌 박도는 제멋대로 고리를 흔들며 불경한 쇳소리를 내었다.

무당은 찌르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혼자 대화를 시작했다.

"놀랄 것은 없느니라─ 나는 삼신제석을 모셔 이 땅에 닿은 도리천의 나졸─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고─?"

"뭐라─? 내 그대를 단숨에 찢어 죽이는 건 일도 아니 거늘─ 그대의 목에 들이민 게 무엇인지 모르는가─?"

"하─ 그대는 무고한 이에게 들러붙은 잡귀일 뿐─! 그곳에 갇혀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

쨍강!!!

허공 어딘가로 통하는가 싶던 칼이 깔끔하게 박살 나버렸다.

무당은 서둘러 박도를 던져 버리곤 유수와 같이 내 허리에 손을 가져 갔다.

"잠시 빌리겠소."

허리춤에서 송곳니 학살자를 뽑은 그는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칼끝을 찔러 넣었다.

붉은 기를 띤 검날은 공간의 어딘가를 찌르고 불길한 기운과 함께 검신을 덜덜 떨었다.

무당은 끊어졌던 선문답을 계속했다.

"그대여─ 꽤 강력한 악마로구나─! 그런 존재가 대체 무엇을 질투하여 어린 주술사에게 붙어 있는 겐가─?"

"아무리 봐도 숭고한 목적으로는 보이지 않는구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대체 무엇을 믿어달란 말인가─? 큰 호통을 듣기 전에 어서 말하는 것이 좋을 게야─!"

"그런가─? 그대가 가녀린 주술사의 영육을 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렇다면─ 알았다─! 잠시 기다리라─!"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무당은 허공에서 칼을 뽑고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흔들리며 내게 땀이 튀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행히 송곳니 학살자는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후우 대체 뭘 한 거요, 의뢰자 양? 혹시 악마계약자요?"

"그런 거 아니예요. 그나저나 대체 뭐였어요? 무슨 대화를"

"그런 건 직접 가서 보는 게 나을 거요. 바로 가지!"

그 말과 함께 무당은 번개처럼 칼을 휘둘렀다.

시야를 덮쳐오는 검날이 의식에 어둠을 가져 왔고, 그렇게 나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도약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무, 무슨?'

암전된 의식이 알 수 없는 곳을 느릿하게 움직인다.

이리 가는 듯하면서도 저리 가고, 위로 뜨는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몸이 틀어진다.

단순히 우주를 유영한다, 그렇게 설명할 수도 없는 기괴한 감각이 온 의식에 사무친다.

하지만 규칙 없는 의식의 흐름은 뚜렷한 방항성을 띠고 있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의식이 한 곳을 향해 흐른다.

싱크대에 떨어진 물줄기가 배수구를 향하는 것처럼.

'아.'

뭔가 보인다.

시꺼먼 반타블랙으로 칠한 세계 속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내 의식은 그쪽으로 천천히 이끌렸다.

가까이서 보니, 그 빛은 다름 아닌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고 붉은 요람에 몸을 뉘인 어린 소녀의 모습을.

그 모습은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무척이나, 무척이나 공허한 낯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녀는 이쪽을 보더니 서둘러 요람에서 몸을 일으켰다.

요람은 순식간에 작게 변하더니 등에 매여 붉은 망토가 되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셀레스티'

내 부름을 들은 건지, 어딘가 성숙한 셀레스티는 살풋 웃어 보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

­ 저기요? 헤이! 히어로 걸!! 웨이크 업!!!

"히어로 걸이 아니라 히로인이겠지."

정신을 차렸다.

굳은 몸을 부스스 일으켜 주변을 보니 무당과 공물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제야 지하의 불이 켜졌다는 걸 의식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히로인은 무슨! 히로인이 되기 전에 죽입시다 몰라요? 히어로 걸로 해요!!

"그래, 히어로 걸 그나저나 무당은 어디 갔어?"

­ 바쁘다고 가던데요? 아니, 들어 봐요. 신기한 게 제 존재를 알고 있더라고요!! 저를 딱 보더니 바쁘니까 간다면서 명함이나 잘 건네주라던데요?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

셀레스티는 그리 말하며 천을 움직여 명함을 내 손에 쥐여줬다.

명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무신?? 최첨침입니다="" ^^=""/>

"."

별호부터 이름까지 죄 별난 사람이었네.

­ 아,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요?? 그 망할 짭영웅담은 누군데요!?? 어서 혼쭐을 내줘요!!!

"셀레스티."

­ 네?? 왜요??

나는 잠시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숨겨서 이득을 볼 일도 아닌데 고민해서 뭘 하겠는가.

"그거 너던데."

­ 넹? 아하, 그 건방진 분홍수정이 오류를 일으킨 거예요? 제가 둘이라고?

"아니 그 짭이 미래에서 온 너라고."

­ 우잉?

몸을 꼬물대던 셀레스티는 그 말에 몸을 딱 굳히고 말았다.

약 5초 간을 그러고 있던 셀레스티는 이내 숨기고 있던 암기를 죄다 땅에 떨궜다.

쨍강! 챙! 팅!

­ 제가 회귀했다구요??? 제가요??? 거짓말!!!!

"음, 회귀라기엔 시공간의 틈새에 끼어 있던데. 걔가 내 머리에 넣어 준 정보가 맞다면 말이지만."

­ 아니, 제가 왜 거기 있죠??? 회귀??? 으, 으움 앗!!! 그런 걸 수도!??

셀레스티는 쥐고 있던 암기들을 모두 토해 낸 뒤 내 팔뚝 위에 섰다.

그러곤 이리저리 천 귀퉁이를 휘둘렀다.

­ 제가 그동안 읽은 수많은 영웅담에 따르면!!!! 영웅은 대개 회귀, 빙의, 환생 중 하나는 꼭 하죠!!!! 그렇다면 아예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녜요!!!!

"근데 회귀한 건 너잖아? 넌 영웅담이지 영웅이 아닌데."

­ 궈, 권능을 가진 건 저거든요!!!! 비록 제 자신은 영웅이 될 수 없지만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회귀를 한다고 치면 영웅님이 해야 하는데?? 으음, 설마

양 귀퉁이를 마구 휘두르던 셀레스티는 제 몸을 감싸듯이 천을 접고는 부르르 떨었다.

­ 영웅님이 죽은 뒤 제가 망토에서 떨어져서 새 육신을 구성한 뒤 제 자신을 영웅으로 규정하고 업적을 쌓아서? 아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영웅님이 왜 죽어요!!!!! 그리고 제 권능엔 회귀 따위 없거든요!!!!! 시간의 대천사도 못하는 걸 제가 어떻게 해요!!!!!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시공의 틈새에 낀 셀레스티가 간단히 전한 정보는 네 가지.

1. 영웅담(2)의 정체는 미래의 셀레스티가 맞다.

2. 미래의 셀레스티는 시공의 틈새를 떠다니고 있다.

3. 하르미아 시스템을 매개체로 내게 접촉했다.

4.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음, 또 뭔가 있었는데.'

저것들은 사실상 곁다리일 뿐이고, 진짜 중요한 사념은 따로 있었다.

눈앞에 직접 그 환상을 보여 주기까지 하면서 전한 정보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무척이나 장엄한 광경이었다.

천의린한테 맞았을 때 본 환상처럼.

"."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혼란이 가중된다.

별 기대 없이 부른 무당이 상상 이상의 실력자였고, 그 덕에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속속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회귀했고, 왜 회귀했으며, 왜 하필 셀레스티이며, 어째서 내 하르미아 시스템과 연결을 했고, 대체 나로 하여금 무엇을 이루고 싶은 건지.

혹시 나도 회귀하고서 모종의 이유로 그 사실을 잊었다거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아닐 거다.

아마도.

'회귀를 했더라도 내가 기억나는 게 없는데 뭐 어쩔 거야. 통 속의 뇌 같은 의미 없는 의문이지.'

어찌 됐든,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는 대로 살고, 내가 판단하는 대로 살 거다.

단지 의문의 조력자와 의문의 사건들이 사이에 끼어들었을 뿐.

네 가지 재앙을 물리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저, 이미 뒤틀린 시나리오의 스토리를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면 충분하다.

"그래, 회귀했다면 좋은 거겠지. 아니어도 상관은 없고."

­ 근데 영웅님 회귀자예요? 미래의 제가 혼자서 올 리는 없잖아요!! 회귀자 치고는 어딘가 맹하긴 하지만!!

"회귀자 아니야. 그리고 내가 어딜 봐서 맹하니?"

빙의자 치고는 맹한 게 맞긴 한 것 같다.

나는 증폭되는 의구심을 덮어둔 채 명함을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미혹에 빠지기엔 너무 맹한 삶을 살아왔으니 적어도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

***

'회귀?'

그 시각, 그림자 속에서 나올 타이밍을 놓친 권하율은 둘의 영문 모를 대화를 듣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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