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위를 향한 일상 (1)
* * *
이튿날.
나는 수연이와 유하를 데리고 하르미아의 교무실로 향했다.
하르미아는 여느 때와 같이 몽환적으로 웃으며 우릴 맞이했다.
"잘 왔어! 홍차 마실래?"
"아뇨 전 커피요."
"그냥 냉수 주세요."
"혹시 녹차는 없나요?"
모두에게 홍차를 거절당한 하르미아는 시무룩한 기색으로 각기 다른 차들을 내 왔다.
솔직히 그냥 홍차라면 기꺼이 마실 용의는 있으나, 하르미아의 홍차는 물에 탄 것 같은 이상한 맛이 나므로 도저히 선뜻 마시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으엑, 이거 왜 에스프레소예요?"
"아, 미안. 난 커피는 진하게 먹는 주의라서. 바꿔줄게."
내가 초코라떼를 좋아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아미를 찌푸린 나를 보고 옅게 웃었다.
"흐흐 아, 미안. 너무 노려 보지는 말렴. 여기 업데이트 모듈이야. 가슴에 박으면 돼."
"앗! 감사합니다!"
내 표정을 보고 웃고 있던 하르미아가 내게 작은 수정을 건넸다.
하르미아 시스템의 권능 연동을 강화할 수 있는 물건이다.
"솔직히 효율은 안 좋을 거야. 철문을 열쇠가 아니라 주먹으로 부숴서 여는 격이니까 그래도 쓰다 보면 감을 조금 잡을 수 있지 않겠어?"
"그렇죠? 정말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우리 사이에."
하르미아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녀는 내가 권능을 타고났다고 알고 있기에 감을 잡는다, 그런 말을 한 거겠지만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거다.
애초에 영웅담과 어둠은 각각 셀레스티와 칠흑여제의 소유니까 말이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만능열쇠 같은 거라도 건네준 거예요?"
"맞아. 뭐든 열 수 있는 만능열쇠."
"우와!! 시현이 나중에 괴도 같은 거 할 거야? 빌런 집단 들어가서? 괜찮은 것 같다!"
"음, 가슴에 저런 걸 달고 있는 시점에서 은밀기동은 물 건너간 것 같은데"
"."
기필코 빼고야 만다.
하르미아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는 찻잔을 흔들었다.
"아, 혹시 너희 방학에 무슨 계획 있니?"
"아뇨? 아직 없어요. 유하는 마탑 간대요!"
"네, 담피스트에 가보려고요. 마법학파 하나가 새로 만들어졌대서."
"조카님은?"
"전 설악산에 가보려고요."
"오, 훈련하러 가는 거니?"
"네. 거기가 실전감각 기르기 좋은 곳이래서"
제법 멋진 명산이었던 설악산은 차원충돌 이후 통째로 던전이 되어 버린 산이다.
본래라면 헌터를 동원해 전부 쓸어 버렸겠지만, 가뜩이나 험한 설악산에 강력하고 지능 높은 괴물들이 들어서며 토벌이 곤란하게 되었다.
해서 헌터 협회는 설악산 주위에 결계를 치고 그 밖으로 나오는 괴물만 사냥하기로 방침을 잡았다.
결계 밖으로 나오는 괴물들은 꽤 강력하면서도 대체로 홀몸으로 나오기에 경험이 부족한 헌터들이 실력을 쌓기 좋은 상대다.
해서 실력을 쌓으려는 극정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설악산으로 봉사활동의 탈을 쓴 훈련하러 가곤 한다.
물론, 나는 그런 깨끗한 이유로 설악산에 가려는 게 아니다.
'설악산 대청봉에 꽂힌 푸른 갈기를 뽑으러 가는 거지.'
내게 투척이라는 수단이 생긴 이상은 푸른 갈기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물론 그걸 뽑으러 가려면 몰래 결계를 넘어서 설악산의 괴물들을 피해 대청봉까지 올라가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해야 하지만 딱히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일 뿐이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 뭐, 방학을 어떻게 보내든 내가 상관할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아카데미에 있는 게 좋을 걸. 북방전선이 심상치 않거든."
"북방전선이라면?"
"언데드의 수가 갑자기 너무 적어졌어.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아마?"
우리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자 하르미아는 말을 끊고 홍차를 들이켰다.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런 눈빛을 하는 게 알려줄 용의가 없는 듯했다.
"글쎄. 기밀유지 서약에 걸리네. 말해 줄 수 없겠는걸."
"."
"아니, 다들 그런 눈으로 보지는 마. 대충 짐작 가는 건 있잖아?"
사실 한국 칠성 정도의 강자라면 조잡한 서약 따위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서약이니 뭐니 하는 건 그냥 핑계고 우릴 놀리고 싶은 거다.
'그래도 짐작 가는 게 있긴 하지. 언데드가 줄었다는 건 곧 대규모 침공이 있을지도 모른단 소리니까.'
요즘 들어 핫한 재앙침략설에 힘을 보태주는 근거다.
하르미아는 이미 헌터 협회에게 영원한 순회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테니, 우리에게 당분간 조심하라는 충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소문이 맞다는 암시와 함께.
유하는 그 속뜻을 대충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수연이는 빨간 눈을 땡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우, 그래서 아카데미에만 있으란 소리죠? 어디든 나가서 놀고 싶은데!"
"말리진 않겠지만 되도록 여기서 보내렴. 나도 사실은 확신이 없긴 하지만."
하르미아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을 끝맺었다.
물론, 나로선 어찌 되었든 간에 설악산으로 향할 거지만.
"근데 저희 아직 기말고사 시즌이거든요. 방학까진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 정도는 찍고 자. 칠성 중에 여기 기말 통과할 수 있는 애는 단 한 명도 없을 걸? 헌터에게 글 공부를 시키다니, 참 미련한 것들이라니까."
"그럼 서술형 칸에다가 하르미아 님이 다 찍고 자라고 했다고 써도 돼요?"
"왜, 아예 만점처리 해 달라고 적지 그러니. 내가 압박 좀 넣으면 그건 일도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
짧은 만남을 끝내고 개인수련장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예약조차 힘들 만큼 핫플레이스지만, 기말고사가 가까워지면서 불지옥 같은 예약 없이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와, 여기 좋네요? 왜 평소엔 안 왔어요?
"안 온 게 아니라 못 온 거야. 예약이 0.4초만에 다 끝나는데 어떻게 오니?"
아이돌 공연 티켓팅을 한답시고 PC방에 죽치고 앉아 있던 옛 친구 놈을 떠올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느린 손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매번 수십 배 가격의 암표를 사서 들어 갔던 녀석이다.
'더욱이 여기 있는 애들은 죄다 기준을 뛰어넘은 초인이니 어휴.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의 티켓팅은 헌터들이 돈 받고 대신 해주나?'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적당히 저렴한 이용료의 수련실을 잡고 키를 받았다.
허수아비와 매트가 덩그러니 놓인 흰 수련실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외투를 벗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셀레스티가 쥐고 있던 암기를 시원하게 풀어 내는 사이, 와이셔츠를 헤치고 가슴에 업데이트 모듈을 박아 넣었다.
[하르미아 시스템 ver. ULTIMATE ROOT dear my love 업데이트 모듈 확인.]
['업데이트: 권능 연동 강화' 모듈을 시행하겠습니까?]
나는 망설일 것 없이 모듈을 시행했다.
[업데이트 중 하르미아 시스템의 전원을 끄지 마세요!]
[완료!]
[ver. ULTIMATE ROOT dear my love: DREAMBORNE 으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어째 버전 이름이 너무 길어진 것 같은데.
심플하게 G만 박아도 괜찮을 것을.
어느새 어깨 위로 올라와 하르미아 시스템의 메시지를 훔쳐 보고 있던 셀레스티가 신나게 몸을 흔들며 말했다.
= 오! 됐다됐다! 어서 연결해 봐요!!
"음 잠깐만. 설명서 좀 보고 아, 됐다."
[권능 연동 New and Fresh!]
[가까이에 있는 권능을 다룰 수 있습니다.(단, 2m 이내여야 함)]
[권능의 소유자가 연동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유의 바랍니다.]
[본 기능은 하르미아 시스템의 동력을 극도로 많이 사용하는 기능입니다.]
설명서는 간결한 내용 뿐이었다.
역시 직접 연결해 봐야 하는 거겠지.
"일단 거기서 내려오고. 준비 됐어?"
= 준비하고 자시고가 뭐 있나요. 늘 준비 만땅!! 까만 질투쟁이보다 제가 먼저예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어깨 위에서 나풀대는 셀레스티를 잡아내린 다음, 하르미아 시스템을 움직였다.
약간의 두근거림을 안고 파동을 내뿜은 가슴의 수정이 눈앞에 메시지를 띄운다.
[외부 디바이스 확인됨, 연동 시작.]
[권능 '영웅담'과 연동 성공.]
[최초 동기화 중 하르미아 시스템의 전원을 끄지 마세요!]
= 우앗, 기분 나빠 진흙이 온몸을 감싼 것 같아요.
"아마 진흙이 아니라 환상일 걸. 그런데 대체 영웅담은 뭐 하는 권능이야?"
= 뭐긴요! 말 그대로 영웅의 이야기를 실현하고 써 내려나가는 권능이죠!
"그러니까 그게 아, 떴네."
동기화가 완료되었는지 하르미아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권능 연동의 활용법과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구조였다.
권능, '영웅담'(소유주: 셀레스티 라시아 프라임워커)
강력한 권능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기능 목록]
승리의 공식(소비량 알 수 없음): 사용 가능
위풍당당(327%): 사용 불가
서사 실현(2,031%): 사용 불가
혼신, 극의(9,999%): 사용 불가
영웅강림(9,999%): 사용 불가
[잔여 동력: 100%]
"너 생각보다 대단한 애였구나?"
= 훗! 제가 악마 때는 온 마계를 휘젓고 다녔죠! 공포의 빨간 망토 셀레스티!!!
"악마 아니라며, 멍청아."
= 마, 맞다. 신나서 그만
부끄러움에 몸을 꽈배기처럼 비트는 망토를 냅두고 메시지에 시선을 돌렸다.
하르미아 시스템의 잔여 동력을 사용해서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일 텐데, '승리의 공식'을 제외한 모든 기능은 동력의 최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소비값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지막 두 개는 아예 표기 제한을 넘어 버렸는지 둘 다 9,999%로 표시되고 있었고.
"천사님. 몸 좀 그만 꼬고 이것 좀 설명해 봐. 이게 뭐 하는 것들이야?"
= 음, 흠! 간단하게만 설명해드릴게요. 승리의 공식은 행동에 보정을 주는 거예요. 위풍당당은 기세를 떨치는 거고. 서사 실현은 옛 영웅담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 혼신 극의는 온몸의 에너지를 격발하는 버프, 영웅강림은 이 망토에 담긴 힘이예요.
셀레스티가 배배 꼬았던 망토를 살짝 흔들었다.
설마 퍼베이시브 에픽의 발동효과가 동력 9,999%짜리 권능이었을 줄이야.
앞으로 이 시끄러운 망토를 자주 빨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보다 승리의 공식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라. 저건 뭔데 유일하게 발동가능한 거야?"
= 그냥 단순히 행동에 보정을 주는 거니까요. 한 번 써 보세요.
셀레스티의 말에 따라 '승리의 공식'을 발동했다.
하지만 딱히 변하는 건 없었다.
동력도 여전히 100%를 가리키고 있었고.
= 자! 천마군림보!!
"?"
= 바, 발구르기 하라구요! 천마군림보 몰라요?
조금 못미더움을 느끼며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하르미아 시스템의 동력이 뭉텅 깎여나가며 발에 믿을 수 없는 힘이 실렸다.
[위대한 승리를 향한 발구르기(67%)]
[잔여 동력: 33%]
쿠웅─!!
나는 별생각 없이 디딘 발길이 만들어 낸 울림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단단하게 만들어진 수련실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발구르기.
골렘의 발걸음에 비견하는 일보에 천장에선 페인트 조각이 부스스 떨어졌다.
"와, 이게 무슨"
[하늘조차 찢어발기는 감탄하기(10%)]
[잔여 동력: 23%]
"?"
무슨 감탄하기?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당황해서 팔에 감긴 망토를 바라봤다.
[파멸을 노래하는 자의 잔혹한 내려다보기(7%)]
[잔여 동력: 16%]
= 우앗! 그, 그런 눈으로 볼 것까진 없잖아요! 일단 권능부터 꺼요!
"응."
[부서진 신화를 이어 붙이는 대답하기(9%)]
[잔여 동력: 7%]
[절전모드에 들어갑니다.]
안 그래도 절전모드에 들어가면서 승리의 공식이 꺼졌다.
설마 행동하나하나마다 저런 낯 뜨거운 수식어를 붙이면서 동력을 깎아 먹을 줄이야.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다.
= 승리의 공식은 영웅의 행동하나하나에 섭리적인 보정을 가하는 버프! 영웅담에 쓰이는 수많은 수사를 앞에 붙여서 그 힘을 증폭시키는 거예요! 말에는 힘이 있다고 하니까!
"아니, 그렇다고 단순 감탄에 하늘을 찢어발기는 그런 말을 붙일 이유는 없잖아. 내가 미친 중2병 태도충 검은 코트 주술사도 아니고."
= 우잉? 아니었어요? 흠흠!! 아무튼 이건 원래 그런 거예요. 제어를 잘해서 그런 잡스런 행동에는 영향이 가지 않게 잘해야죠! 동력의 소비량도 익숙해지면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순간 부적술로 셀레스티를 퇴마할까 생각했지만 적당히 눌러 참았다.
아무튼 쓸 만한 기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충전까지 얼마나 걸려?"
[현재 동력: 8%(완전 충전까지 04h 33m 58s)]
그건 그렇고, 오늘은 글렀다.
강화된 권능 연동으로 어둠까지 연결해 보려 했건만.
셀레스티. 혹시 일부러 그랬나요?
= 아니, 영웅님이 컨트롤 못한 거 갖고 왜 나한테 성질이야! 질투나??
흥. 추하군요. 떠넘기기라니. 그게 자칭 파트너로서 할 말인가요?
= 떠넘겨!? 팩트가 그런데 어쩌라고!! 고작 감각둔화 따위가 권능인 애한테 듣고 싶지 않아!!
오랜만에 심상세계에서 보실까요?
어느새 등장한 칠흑갑주와 망토가 서로 투닥대기 시작했다.
칠흑여제와 망할 망토를 적당히 달랜 뒤 짐을 챙겨 개인수련장을 나왔다.
이것들은 어째 틈만 나면 싸우려고 드는 것 같다.
'그래도 이거 잘 만 활용하면 엄청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칼질이나 주먹질에 적용을 못 하면 어쩌지?'
고작 발구르기에 전체 동력의 2/3가 날아갔다.
차차 연습해서 줄이면 된다지만, 칼질이 너무 격 높은 행동이라 영웅의 공식을 적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많이 슬플 것 같다.
그러면 진짜 위협용 천마군림보로만 써야 할지 모른다.
개인수련장의 바깥은 재수 없게도 비가 왔다.
일전에 토템을 만들던 때처럼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퍼붓는다.
차라리 번개라도 치면 토템이라도 만들러 갈 텐데, 번개는 안 치고 그냥 비만 미친놈처럼 왔다.
말 그대로 미친놈처럼.
= 우아, 옷 다 젖겠네!! 동력만 있었어도 비 하나 안 맞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천지를 뒤흔드는 빗방울 피하기, 그런 거로?"
= 네! 그런 거로요! 멋있지 않아요?
나는 온몸을 비틀며 빗방울을 피해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멋진 건 모르겠고 퍽 웃기긴 하겠다.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럴 기미가 안 보여 그냥 갑주를 입고 달리기로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우산 따위 안 챙기는 나로서는 무척 익숙한 일이다.
"저기, 혹시 우산 없어?"
그때, 뒤에서 친절한 남정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힐끗 돌려 확인해 보니, 그곳엔 우산을 든 현서진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처럼 기말고사 시즌을 틈타 개인수련장을 이용한 것 같다.
"빌려줄까? 우산."
"응? 아, 고마운데 너 그거 하나 아냐? 같이 쓰는 건 좀 불편한데."
"하하. 그게 아니라, 난 없어도 되거든."
현서진은 내게 우산을 쥐여 주고는 칼을 뽑고 빗물 속으로 들어 갔다.
그러더니, 돌연 칼을 위로 들고는 검을 빠르게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검기로 형성된 검막이 빗물을 깔끔하게 튕겨 내며 빛나는 우산을 만들었다.
"허."
"난 먼저 갈게!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내일 봐!"
대놓고 미친 짓을 선보인 현서진이 칼을 휘두르며 폭우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연하게 셀레스티를 바라보며 질책했다.
"넌 왜 방수가 안 돼?"
= 아니, 이 영웅이 보자 보자 하니까
나는 약간의 패배감을 느끼며 노란 우산을 펼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