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위를 향한 일상 (4)
* * *
은하염허는 성광도래의 일곱 번째 초식.
현재의 그로서는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초식이나, 현서진은 잠력격발의 힘을 빌어 펼쳐내었다.
전장을 별이 가득한 밤하늘로 채우는 은하염허는 실로 강력한 기술이다.
물론 하르미아의 거짓실현에 비하면 격이 한참 떨어지긴 하나, 일정 구역을 자신에게 극히 유리한 세계로 덮어 씌운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별이.'
천구에 박힌 별들이 밝게 점멸한다.
그 순간, 나는 바닥에 깔린 이위화의 불꽃을 더 끌어올려 나를 보호했다.
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쏘아낸 광탄光?이 보랏빛 불꽃에 막힌다.
찌이이잉─!
쾅! 쾅! 쾅! 쾅!
아름다운 별들이 나를 쳐죽이기 위해 계속 광탄을 쏘아낸다.
실로 천리를 거스른 이에게 내리는 천벌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저것들을 격추할 재간이 없으니 때를 기다려야 해.'
그때까진 힘껏 광탄을 피한다.
오만한 별을 땅에 떨굴 때를 기다린다.
현서진이 있는 쪽으로 최루탄을 투척했다.
인화성으로 개조된 최루탄은 가스와 분진을 뿌렸고, 그것들은 불꽃에 반응해 몇 초 뒤 폭발을 만들어냈다.
그 멋들어진 폭발이 무색하게 현서진의 주위는 무척이나 멀쩡했다.
제육식, 극흑탄수???로 분진을 지워낸 까닭이었다.
분진을 지워낸 현서진은 몸을 굽히더니 단숨에 이쪽으로 도약했다.
사인참사검의 맹호 같은 기세가 해일처럼 닥쳐오며 나를 압박한다.
= 하지만 당신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영웅이죠!!
"맨손은 좀 아니고, 부적 한 가치로 하지!"
별빛과는 다른, 영웅의 빛이 몸에서 피어오른다.
영웅강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와라!!!!"
실로 용감한 외침과 함께 바닥에 마름쇠와 최루탄을 잔뜩 던졌다.
현서진은 그를 보더니 내 앞에 검을 내리찍었다.
얼핏 보면 유성타지 같은 초식이지만, 실상은 훨씬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성광도래?光??, 제일식?一?.
태양천천太???.
+
성광도래?光??, 제오식?五?.
유성타지????.
초식합성.
무극한 태양의 힘이 땅을 타고 흐른다.
꽈과과과광──!!!!
"칫!"
뒤로 쓰려던 약?을 위를 향해 사용했다.
저건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다.
단순히 얼굴 조금 익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파앙!!
충격파를 피해 위로 도약하자 별들이 내게 빛을 겨눈다.
이위화의 보호가 없는 지금은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
하지만, 나는 아직 수가 몇 개 남아 있다.
"정령들아!!!"
보라순이를 돕자아!!!
뛰어오르며 적어낸 부적은 답?.
별이 쏘아내는 광탄의 십자포화 사이에서, 나는 허공을 딛고 섰다.
밀어 주자!
조, 조심해!
허공을 받친 답? 위에서 포화를 피해 옆으로 도약했다.
귀여운 바람의 정령들이 내 조악한 도약에 힘을 실어 주며 광탄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딜!!"
다시 이위화의 불꽃으로 숨어들려는 나를 본 현서진이 혜성임세로 쇄도해온다.
나의 궤적을 정확히 가로지르는 혜성이 허리를 동강내기 위해 검광을 번뜩였다.
하지만, 영웅강림과 승리의 공식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홉 하늘을 경악시키는 기적의 허리 비틀기(50%)]
[남은 동력: 39%]
혜성임세가 다가온 순간,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발끝을 움직였다.
발끝은 사인참사검의 '검면'에 자리했고, 영웅의 빛이 한 차례 번뜩이며 다리에 믿을 수 없는 힘을 더했다.
나는 검면을 차고 다시 한 번 밤하늘을 날았다.
"이 무슨!?"
나는 공중에서 두 번을 도약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하늘의 별에 닿기 충분하다.
= 검을 차고 별을 날아!!!
남은 영웅의 빛이 한 번 더 반짝인다.
내가 향하는 곳은, 이 밤하늘의 중심.
북극성이었다.
찌이이잉─!
천구에 박힌 별이 일제히 이쪽을 겨눈다.
그리고 시작되는 극렬한 포화.
너는 거기서 반드시 죽는다, 그런 의지를 품은 포화였다.
하지만, 나는 장엄한 포화를 목전에 두고 계속 무언가를 가늠했다.
그리고, 때를 맞춰 칠흑여제를 불렀다.
권능 연동으로 쓸 수 있는 건 영웅담 뿐만이 아니었기에.
고작 별빛 따위로는 안 되죠.
[태양을 집어삼킨 뱀, 아포피스(ALL%)]
[남은 동력: 0%]
[남은 비상 동력: 0%]
[!전원 꺼짐!]
칠흑갑주가 시커먼 어둠을 내뱉는다.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폭사한 칠흑이 빛의 탄막을 쉽게 집어삼킨다.
남은 모든 동력을 태우고도 유지시간이 0.2초를 못 넘긴 방어였으나, 그 짧은 시간을 벌어준 덕에 나는 마침내 북극성에 닿을 수 있었다.
'발도!'
키이이이잉──!!
쩌엉!!!
사그라드는 어둠의 구를 찢고 나온 섬광이 북극성을 갈랐다.
반쪽이 나버린 북극성은 연거푸 점멸하다가 마침내 그 빛을 잃고 밤하늘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은하수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 됐다!!!
셀레스티가 흥에 겨워 소리쳤지만, 북극성을 떨어트렸다고 끝인 건 아니었다.
광탄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고 천구는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현서진에겐 아직 남은 수가 있었다.
"별이여!"
무너지는 은하염허를 목격한 현서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성광도래?光??, 제일식?一?.
태양천천太???.
+
성광도래?光??, 제삼식?三?.
북두물변北???.
"내, 명령에, 따라라─!!"
그러자, 별들의 요동이 잦아들었다.
가장 밝은 태양, 움직이지 않는 북두.
현서진은 그 둘을 합한 존재가 되어 밤하늘의 붕괴를 막았다.
= 뭐야!! 아카데미 1학년 치고는 너무 광오한데요!!!
"그러게 말야!"
하지만 저걸 제대로 다룰 수 있었다면 애초에 광탄 쏘기 같은 헛짓을 안 했을 거다.
하르미아 시스템이 꺼진지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명백히 피를 토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조금 더 토하게 해줄까!'
나는 공중에서 떨어지며 남은 최루탄을 한가득 까서 던졌다.
현서진은 이를 쳐내려 했지만, 최루탄은 하늘에서 무대 여기저기에 골고루 던져버렸기에 온전히 쳐낼 수는 없었다.
이위화는 스피릿을 거둬 꺼버린지 오래지만 최루탄은 그 자체로 위력을 발휘했다.
"콜록, 콜록 큭, 쿨럭!"
내상을 입은 상태로 최루가스를 들이 마시다니,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프겠다."
= 악마!
나는 땅에 착지하곤 서둘러 정령을 불렀다.
바람의 정령이 머리에 앉아 힘껏 최루가스를 밀어냈다.
전장은 현서진에게서 내게로 넘어왔다.
"서진아.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콜록, 아직이야, 아직"
"많이 아파 보이는데? 아니면 별에서 빔이라도 쏴보시지?"
"윽."
영웅강림과 동력, 마지막 발도술까지 쏟아부어 은하염허를 쪼갰다.
은하염허의 단점은 파훼당했을 때의 극심한 리바운드.
현서진은 어떻게든 무너지는 은하염허를 붙잡았지만, 본신의 힘이 극심하게 약화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콜록. 강하네. 설마 은하염허가 깨질 줄은 몰랐는데."
"언제는 잡스럽다면서?"
"그래, 잡스러워 그런데 잡스럽게 강하구나 콜록,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아"
최루가스 속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며 기침을 하는 현서진.
재미난 꼴이 된 그는 검을 서서히 돌리며 별들을 회전시켰다.
천구는, 이제 현서진을 중심으로 돈다.
"그래도, 하는데까진 해봐야겠지!"
"글쎄. 근데 그거 알아?"
나는 황동혼구를 보란듯이 내보이며 장송곡을 불렀다.
"──, ───, ───"
"큭, 쿨럭!"
꺅!!
쿠르르
혼을 뒤흔드는 노랫소리가 현서진의 집중력을 흐트렸다.
겨우 유지되고 있던 천구가 속절 없이 무너지며 저변의 흰 조명을 내보였다.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던 정령도 가냘픈 비명과 함께 도망쳐버렸지만.
"하는데까지 하고 안 하고는 내 선택에 달린 일이라서."
"쿨럭, 쿨럭"
나는 피를 한움큼 토하는 현서진에게서 등을 돌려 무대의 끝으로 걸었다.
그리고, 곧 무대의 결계가 풀렸다.
내가 이겼다.
"휴, 그러게 순순히 알려줬어야지"
= 와, 방금 그거 되게 깡패 같았어요! 말 안 듣는 사람 한 명 담그고 온? 그런 느낌!!
"실제로 말 안 듣는 사람 한 명 담갔잖아."
= 흥! 별명에 깡패를 추가해야겠어요!!
그나저나, 혼검기에 대한 걸 묻다가 이렇게 된 거였지.
쟤는 대체 왜 쓸데 없는 것에 신경을 써서 얻어 맞을 생각을 한담.
혼검기는 나중에 일어나면 물어봐야 쓰겠다.
***
이 세상의 호칭은 어딘가 잘못된 면이 있다.
신성력은 이름처럼 딱히 신성한 힘도 아니고, 천사(이하 날개 달린 사람, 익인)라고 해서 꼭 선한 존재인 것도 아니다.
마기 또한 조금 거칠고 까만 힘일 뿐이지 부정한 힘인 것도 아니며, 악마(이하 뿔 달린 사람, 각인) 또한 굉장히 극악무도한 존재인 것만도 아니다.
그럼에도 각인이 세간에서 이렇게 인식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
각인들이 다페르헤이드를 뒤엎으려 수작을 부리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언론플레이'에서 찾을 수 있다.
차원충돌 초기에는 아인델로제의 익인이 로엠의 각인보다 훨씬 극악무도했다.
적어도 인간을 같은 지성체로 생각했던 각인과는 달리, 익인은 그런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
하지만 천신이 환상을 다루는 인간에게 맞아 죽으면서 익인은 그 생각을 바꿔 먹을 수 밖에 없게 됐다.
마음에 안 들지만 밟아 죽이기보다는 자기 편으로 만들기로.
해서, 익인들은 인간의 성경을 보고 공부했다.
머리에 후광을 두르며 인간들을 치유했고, 자신들의 자랑인 날개를 희게 염색한 뒤 각인을 부정한 것으로 선포했다.
동시에 인간사회에 숨어들어 익인의 만행을 각인의 것이라 선동하며 한편으로는 교황을 세뇌해 익인을 아군으로 둔갑시켰다.
물론, 반박하는 이가 나타나면 땅에 심어버렸다.
그렇게 아인델로제의 날개 달린 사람들은 '천사'가 되었고, 로엠의 뿔 달린 사람들은 '악마'가 되었다
"와, 이 책 사실이에요?"
어.
"그런 것치고는 너무 선동의 의도가 다분한데요? 익족과 각족도 아니고 무슨 익인 각인이에요. 무슨 얼어죽을 인人자를 붙이고 앉아 있어?"
내용 자체는 사실이야.
스피넬은 고개를 홱 저었다.
적힌 정보는 대체로 맞는 말이었지만 악마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무척이나 다분한 내용의 서적이었다.
상대를 쳐죽이고 고문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괴물들에게 '뿔 달린 사람'이라니.
디즈X도 피를 토하며 도망칠 정도로 PC주의적인 묘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에 개조가 필요하겠어.
"에엑!? 그건 안 돼요!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확 경찰에 자수해버립니다?"
이딴 년한테 내 파편을 후우.
주인의 탄식을 들은 스피넬은 예쁘게 웃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
가죽커버를 씌운 600쪽짜리 책을 와작 뜯어먹은 소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촉수를 뻗어 원하는 서적을 찾아나갔다.
우월의 수장이자, 대악마 오팔의 계약자.
모든 사람이 교살당한 작은 도서관에서 스피넬이 설악산을 향한 단서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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